Paper라는 아이패드 앱으로 끄적거린 것.

이건 그림그리는 앱도 아니고 노트남기는 앱도 아니고 뭐 중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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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edisplinary’ Science – 학제’전’ 과학

이전부터 꽤 재미있게 읽었던 글인데 역시 발번역. 아 근데 씬에디 횽 좀 단어 쉬운거 쓰자구..말도 존나 꼬아 쓰고 번역하다 돌아가실 뻔 했수.

학제 과학 (Antedisplinary Science)

Sean Eddy

“현재의 생의학 연구문제의 규모와 복잡성 때문에 과학자는 이제 개개인의 전문분야를 뛰어넘어 집단연구을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 모델의 가능성을 알아보아야 된다. 예를 들어 분자이미징의 발전에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 – 방사선학 의사, 세포생물학자, 물리학자, 프로그래머 등의 다양한 사람간의 협력이 요구된다” – NIH 로드맵 이니셔티브

위와 같은 문장을 읽을때마다 기분이 안좋아지곤 한다. “집단연구를 위한 새로운 조직 모델” 이라는 문장은 마치 테리 길리엄의 영화 ‘브라질’ 에 나오는 것처럼 과학자들이 공장같은 바닥에 죽 모여앉아 NIH 프로그램 오피서의 감시를 받으며 저자가 100명인 네이처에 나올 연구를 수행하는 것 같은 상상을 하게 한다. 그리고 과학이 개인의 능력으로 감당할 만큼 복잡해졌고 따라서 앞으로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는 학제적인 “미래를 위한 연구팀” 을 갖추어야 된다고 NIH 에서 생각한다는 것을 보면 조금은 암담해진다. 그렇지만 내가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쩌면 좀 이기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만약 획기적인 과학이 서로 다른 분야를 제대로 전공한 사람들이 모여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면 내 자신은 아마도 아주 안좋은 진로를 걸어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ㅠ.ㅠ

나는 이제 15년간 소위 계산생물학자 (Computational Biologist) 로 일해 왔다. 우리는 아직도 ‘계산생물학’ 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대략적으로 이 학문이 분자생물학, 전산학, 통계학, 수학 등등의 다양한 분야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것은 잘 안다. 내 자신은 이러한 분야 중 어떠한 분야에도 전문가가 아니다. 나는 ‘자격증’ 을 가진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아니고, 컴퓨터과학자도, 수학자도 아니지만 내가 일하는 시간의 대부분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수식을 유도하는데 쓴다. 나는 공식적으로 분자생물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지만 이것은 15년 전 일이며 아마 나는 지금 현재 분자생물학자라고 분류되기는 힘들 것이다. 가령 내가 실험할 때는 버퍼 다 손으로 만들어 썼지만, 요즘 실험하는 데서는 다 키트 가지고 하더만. ㅋㅋ

만약 내가 새로운 과학분야에 뛰어들기 위해서 기존의 학문분야에서의 전공분야를 버린 사람으로써 유일한 사람이었다면, 저 위의 “미래를 위한 연구팀” 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나기 이전에 뭔가 다른 일을 찾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 같은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최근에 “미래를 위한 연구팀” 드립이 한창 나오는 어떤 학회에 참석했다. 거기서 세균 주화성에 대한 매우 훌륭한 톡을 했던 하워드 버그하고 같이 앉아 있었는데, 그 사람 역시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나도 나지만 그 아저씨는 그 이야기대로라면 완죤 시망 ㅋ 그 사람은 제대로 트레이닝된 물리학자, 수학자, 화학자가 끼어 있는 학제적 연구팀도 아닌 주제에 물리, 수학, 생물학적인 방법론을 적용하여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아저씨가 어디선가 글 쓰기를 ‘나는 내 자신과 코웍하고 있다’ 라던가. -.-;;;

나는 휴먼 지놈 프로젝트의 성공 때문에 학제적 연구 드립이 가속화된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휴먼지놈 프로젝트와 같은 거대한 프로젝트에는 ‘거대과학’ 및 대규모 연구팀이 필요했다. 지놈 프로젝트는 또한 계산생물학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데 밑바탕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학제적 과학과 대규모 연구팀이 부적절하게 혼동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분명히 휴먼 지놈 프로젝트와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공학자, 물리학자, 컴퓨터과학자의 힘이 필요했다. 이렇게 거대한 기술적인 목표가 확실히 규정 있는 프로젝트에서는 대규모의 학제적 연구팀의 필요성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지금 새로 개척되고 있는 새로운 분야의 과학의 경우에는 학제적 연구팀이 자신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각각의 연구스킬을 합치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본다. 나는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연구자가 아닌 ‘한 사람의 학제적 연구자’ 가 이러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돌파구를 열 수 있다고 믿는다.

학제적인 연구자 개인이 아닌 학제적인 연구팀에 의존하는 것은 결국 학문간의 장벽을 부수기보다는 각각의 경계를 공고하게 만들 뿐이다. 학제적인 연구팀은 결국 일종의 위원회로써 연구팀 구성원 제각각이 실제의 과학적인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전공만을 내세워서 ‘이거 내 일이 아닌데염?’ 하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할 뿐이다. 각각의 전공의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팀이 전혀 새로운 과학분야를 개척한다는 것은 유엔에 한가지 언어밖에 못하는 외교관을 파견하는 것과 다름없다.

과학적인 진보는 새로운 과학적 의문에 의해서 주도되고, 이러한 새로운 의문은 새로운 방식의 생각이 필요하다. 즉 어떤 문제에 봉착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쪽으로 연구를 할 지가 결정되는 것이지, 내가 어떤 분야의 공식적인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어느쪽으로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시대에는 과거 분자생물학의 태동기에 슈레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가 물리학자를 생물학 연구로 이끌었던 것과 같은 것과 같은 좋은 계기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강력한 새로운 테크놀로지 (계산생물학), 오래된 문제를 풀기 위해서 되살아나는 어프로치 (시스템 생물학), 그리고 이러한 분야의 총합 (합성생물학) 등이 있다. 이러한 새로운 학문분야는 결국 새로운 문제와 방법론을 중심으로 새롭게 태동되게 마련이며, 이에 따른 새로운 공유되는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공유된 문화는 다음 세대의 과학자들을 양성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고, 몇몇 운좋은 사람들은 자신이 기존에 받은 교육과정을 극복해서 새로운 학문분야를 개척하게 될 것이다. 즉 ‘학제적 과학’ 이라는 것은 새로운 학문의 태동단계일 뿐이다. 학제적 과학 자체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것은 진보 자체에 비해 역사를 중요시하는 것 뿐이다. 즉 현재 과학자가 하고 있는 연구 대신 그 사람이 어떠한 백그라운드를 가졌는지를 중요시하는 것인데 이것은 별로 좋지 않은 생각이다.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분명히 이전의 경험은 어떻게 문제를 접근할 것인지에 대해 영향을 끼치며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상승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디에 중점을 두는가이다. 가령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간의 결합에서 과거의 경험은 서로간의 관계에서 어떤 것을 가지고 오는지 당연히 영향을 준다. 그렇지만 과거의 경험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현재의 프로젝트에의 헌신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가령 효모의 셀 사이클을 모델링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물리학자’ 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런 사람은 근본적으로 현재의 프로젝트에 헌신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분자생물학의 태동기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왓슨과 크릭을 분자생물학자라고 생각하지 그들을 조류학자나 물리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초의 분자생물학자들은 제대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일종의 어중이떠중이 혁명가적인 과학자들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직 물리학자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분자생물학에 뛰어들었을때 더 이상 자신이 물리학자라고 티내고 다니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새로운 종류의 생물학자라고 간주했다. 이들은 자신의 과거와 절연했던 것이다. 막스 델브릭은 물리학을 그만두고 박테리오파지 복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유전현상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데 가장 빠르고 최적의 길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물리학자와 생물학자로 구성된 학제적 연구팀을 구성했다면 분자생물학이 이렇게 빨리 발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분자생물학자는 일종의 순진한 이단자로 그 당시에 간주되었다. 생화학자인 어윈 샤가프는 “분자생물학이란 자격증없이 생화학 하는 것” 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분자생물학자들 역시 자기 자신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서 걱정했다. 마치 우리가 우리 자신을 계산생물학자라고 불러야 하는지 생물정보학자라고 불러야 하는지 고민하던 것처럼 말이다. 모든 혁명은 그 밑에서 단결할 수 있는 좋은 구호가 필요한 법이다. 프랜시스 클릭은 이러허게 설명한다. “내 자신은 어쩌면 내 자신을 분자생물학자로 부르기로 강요받았던 셈인데, 그 이유라면 행정직원이 너 뭐하냐고 물어보면 나는 결정학자, 생물물리학자, 생화학자, 유전학자의 짬뽕이라고 설명하는데 지쳤고, 어떻게 설명하든 알아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학문을 분자생물학처럼 융성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이 기존에 소속된 학문분야를 버리고 새로운 분야에 뛰어드는 것을 권장해야 한다. 새로운 과학은 그 과학 자체의 가치에 의해 평가받아야 되지, 사람들이 소속된 기존의 학문분류에 의해서 평가받아서는 안된다. 특히 급속도로 발전하는 학제적인 분야에서는 이전에 받았던 공식적인 트레이닝은 금새 옛것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연구비 프로포절에 통계분석이 들어 있다고 해도 정식 통계학자가 반드시 협력해야 한다고 리뷰어가 요구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 아마도 한정된 분야에 한해서는 어떤 통계가 필요할지는 정식으로 트레이닝된 통계학자만큼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슈퍼컴퓨터나 대규모 클러스터가 필요한 프로포절을 낸다고 전산과학자과 코웍을 해야만 프로포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문제다. 아마 전산과학자의 관점에서 생물학자가 절실히 필요한 슈퍼컴퓨터에 대한 문제는 별로 관심이 없는 문제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생물학자인 여러분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만큼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슈퍼컴퓨터를 잘 쓰면 그만일 것이다.

아마도 학제적 과학이라는 과학 자체가 권장되서는 안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이것의 진정한 의미는 ‘학제적 과학’이 아니라 ‘학제’전’ 과학, 즉 새로운 학문이 생성되기 전에 존재하는 과학, 법질서가 확립되기 이전의 서부개척시대와 같은 것이다. 새로운 개척지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주로 기존의 질서를 좋아하지 않아서 스스로 선택한 사람인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정보의 양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함으로써 과학 자체가 점점 복잡해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과학사를 살펴보면, 그 당시에는 과격하고, 알아듣기 힘들고, 학제적인 아이디어로 간주되었지만 지금은 학부생 꼬꼬마들에게 강의하는 것 투성이이다. 각 세대마다 우리는 우리의 지식을 압축해서 다음 세대의 진보를 허용할 만큼의 여유를 만들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거대 연구팀은 지금 눈 앞에 보이지만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거대한 기술적인 문제 (휴먼 지놈 프로젝트 등의) 를 해결하는데 그 의의가 있지만, 정작 학문의 발전은 새로운 지식을 형성하고 이것을 개개인에게 유용하게 만들어서 다음 세대가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개개인의 창의성에 의존한다.

전산학에서는 거대연구팀과 에니그마 코드를 풀었던 블렛체리 파크의 컴퓨팅 엔진 등등을 우리가 휴먼 지놈 프로젝트를 숭상화하는 것처럼 숭상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전산학의 발전에는 앨런 튜링이나 폰 노이만과 같은 후세에 남을 비전을 보여준 사람들의 역할이 더욱 크다. 나는 물론 휴먼 지놈 프로젝트와 같은 거대과학 논문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과거의 학문 분야를 버리고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한 선각자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며, 이러한 것은 한 사람에서 비롯되는 일관성과 확실성, 그리고 영광스러운 개성에서 나오게 된다.

너 지금 단백질에 들어갔다고 안심하는 것 같은데…착각하지마.

The Shigella flexneri effector OspI deamidates UBC13 to dampen the inflammatory response

이런 논문이 이번자 자연지에 슥 등장함. 

이런 것을 보고서 아니 Shigella 면 걍 박테리아 아님? 아니 요즘 세상에 박테리아의 웬 듣보잡 엔자임 하나가지고 자연지에 논문 내네 님들 재수 좋네염 아님 에디터와 사겨여 님하이런 생각을 하기 이전에 몇가지 생각해 볼 게 있음.

저기여, 님이 아시는 Post Translational Modification 은 어떤 게 있는지 한번 리스트를 대 봅시다.

  • 포스포릴레이션
  • 이거면 장땡임 ㅋㅋ
물론 이런 분도 있겠습니다만 -.-;; 
  • 유비퀴틸레이션
  • 스모일레이션
  • 아세틸레이션
  • 메틸레이션
  • AMPylation (혹은 Adenylation)

이런 것도 있습니다. 고갱님. 

즉 주구장창 연구되어왔던 Phosphorylation 이외에 다른 Post-Translational Modification 이 단백질의 기능을 조절하는데 열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게 점점 많이 알려지고 있음. 특히 아세틸레이션 같은 것은 뭐 히스톤에만 되는 거 아닌가염?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능. 

그렇다면 여기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Post-translational modification 이 발견된다면 이거 뭔가 좀 꽤 중요한 일이 될 것 같지 않음?

그래서 이 논문이 무려 자연지에 실린 겁니다요. 고갱님.

일단 논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Shigella flexneri 라는 균은 이콜라이와 매우 비슷한 성질을 가진 균으로써, Shiga Toxin (STX)라는 독소를 분비해서 사람에게 폭풍 설사를 유발시키는 병원균임.

그런데 사람의 면역체계라는게 그리 허술한 게 아니고 이런 세균의 ‘특징’ 을 잘 기억했다가 여러가지 면역반응을 일으켜서 세균을 방법시키는 기작이 매우 잘 발달되어 이씀. 이런것을 총칭해 Pattern Recognition Receptor Pathway라고 부름.

세포느님 미안 ㅋ 슬쩍 ㅋ 공정사용 돋네

즉 세균의 경우 세포표면에 돋아있는 Lipopolysaccahide 라든가 Lipoprotein 등을 Toll Like Receptor 톨게이트같이생긴리셉터 가 김지하여 저렇게 복잡한 시그널링 패스웨이를 거쳐 염증반응 관련 유전자를 켜게 된다. 참고로 작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은 저거 관련 유전자를 첨 발견한 양반들이 쳐묵 하셨져.

사실 면역 하면 아 B셀 T셀 안티바디안티바디 드립이 워낙 작렬하는 바람에 이쪽만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지만, 이런 소위 적응면역 (Adaptive Immunity)는 일단 사고터진 다음 ‘사고재발’ 을 위한 것이고, 당장 세균이니 바이러스가 감염되서 일어날때 이런 것으로부터 일차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이러한 내재면역 (Innate Immunity)에 의한 것임. 또 하나 중요한 점이라면 적응면역은극히 일부의 생물에서만 존재하지만 내재면역은 식물, 동물 할것 없이 존재한다는 것.

그런데 세균의 경우에도 놀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이런 내재면역체계를 피해가서 어떻게 먹고살 궁리를 하느냐 -.-;;; 가 중요할텐데. 이 논문은 Shigella flexneri 라는 세균이 이런 내재면역체계를 교란시키기 위해 어떤 희한한 전략을 쓰는지에 대한 논문임. 

이제 이런 결론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뭔 짓거리를 했나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하게씀. 

첫번째 데이터는 이 세균의 ospI 이라는 유전자가 내제면역계 활성화의 키라고 할수있는 NF-κB 활성화를 억제한다는 데이터임. 와일드 타입 균주인 YSH6000 과 ospI 뮤턴트를 처리해 보니까 뮤턴트는 NF-κB 활성화해서 발현되는 유전자 별로 발현 안되는디 뮤턴트는 디럽게 많이 발현 패스웨이 몽땅 활성화함. 글타쳐. 그럼 이 단백질 뭐하는 단백질임. ㅠ.ㅠ 몰라. 

그래서 구조를 봅니다 고갱님. PDB 등록정보

근데 이것만 봐가지곤 뭐해먹는 단백질인지 모르자나. 뭐 그래 꽈배기 몇개 있다치고..

PDB에 등록해 보니 비슷하게 생긴 단백질이 하나 잉네 비슷하다고 보긴 좀 무리 돋지만..

그럼 이 ‘비스무레한’ 단백질은 뭐하는 넘임? 아마도 대충 엔자임인 것 같은데 deamidase, cysteine protease, transglutaminase 비슷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듬. C패널에 보면 이런 엔자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Catalytic Triad가 대충 비슷한 위치에 있다는게 밝혀짐.

그래서 이 엔자임 뭐하는 건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한번 여기 뮤테이션 걸어 ㅋ 하기로 해씀. 모를때는 걍 패는게 좋습니다 고갱님

아미노산 몇 개 바꾸니 이 단백질 기능 맛가고 NF-kB 활성화되버림. 그래서 어디를 건드리는뎅.이걸 알기 위해 NF-kB 로 가는 경로에 해당하는 유전자를 하나씩 과봘현해서 실험해봄. 그러니 TRAF6 를 과발현해버리면 ospI 유전자의 저해기능을 불활성화해버리는 걸 보니 이 단백질은 TRAF6 혹은 그 업스트림을 건드리는 것을 확인. 

TRAF6 라는 단백질은 Ubigitin ligase로써 제일 처음 패스웨이 그림과 같이 작동해서 자기 자신에 유비퀴틴 줄줄 다는 것으로 패스웨이를 활성화시킴. 혹시 ospI 가 이걸 방해하는 거 아님? 생각해서 패널 e 처럼 유비퀴닐 줄줄이 다느냐 못다느냐를 봤는데 ospI 있는 경우에는 진짜로 유비퀴틴 줄줄이 비엔나 몬 달지만 ospI 뮤턴트는 상관읍음. 

그래서 ospI 은 TRAF6 에 어떻게 유비퀴틴 다는지를 방해하는구나 하는 결론을 얻었음.

그래서 어떻게 방해하냐구..진짜 저자들이 이 결론을 어떻게 얻었는지는 낸들 알겠냐만 뭐 스토리 상으로는 이 단백질을 치니까 TRAF6 이 작동하는 단백질 하나인 UBC13 의 100번째 글루타민 (짜고치는 고스톱 같아 ㅋㅋㅋ 딱 100번째 아미노산 ㅋㅋㅋㅋ) 의 아민그룹을 이 효소가 디아미네이션 해버린다는 것을 밝힘. 즉 글루타민을 글루타메이트로 바꿔버림 돋네..지네틱 코드? 그따위꺼 필요없어 일단 만든담에 다 바꿔버릴거임

그래서 이걸 확인하기 위해서 UBC13의 Q100 을 E로 바꿔봐도 동일한 효과 나옴 ㅋ 즉 Q를 E로 바꾸면 더이상 유비퀴티닐레이션이 되지 않습니다. 고갱님. 

(설마 이 글을 여기까지 읽고 있는 사람은 Q가 머고 E가 먼지 못외우는 사람 없겠지? Q 글루타민, E 엠에스쥐느님)

즉 결론은 이런거임.

– Shigella flexneri 라는 박테리아는 여러가지 개잡다한 병원성 단백질을 주사기처럼 생긴 Type III Secretion System으로 세포내에 찔러넣는데

– 개중 ospI 라는 효소는 NF-kB 경로에 의한 내재면역 패스웨이를 시망시키기 위해서

– 중간의 UBC13 이라는 넘이 유비퀴틴되는데 필수적인 글루타민을 글루탐산으로 바꿔버려서 기능을 못하게 만들어 버림

– 단백질에 있는 글루타민을 글루탐산으로 마구 바꿔버리는 효소 좀 ㅎㄷㄷ 하지 않음?

그럼 여기서 의문

– 저 넘의 효소는 UBC13에만 작용하는거임? 몰러. ㅋㅋㅋ 다른 효소에서 작용해서 뭔가 할지. 논문에 안나왔다고 안그런거라고 생각하는 당신은 아마추어

– 저런 방식의 새로운 포스트트랜슬레이셔널 모디피케이션은 어디 딴데 없음?

고갱님 그런 우리 다음 페이퍼입니다. ㅋㅋㅋㅋ

뭐 저기 예로 잠깐 나왔듯이 식물병원균에도 있대매..꼭 저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글루타민을 디아미네이션을 해서 글루타민으로 바꿔서 단백질을 맛가게 하는 조절방식은 저거 말고도 또 있을거 같아. 

– 디아미네이션은 글타쳐. 그러면 단백질에 있는 글루탐산을 글루타민으로 바꾸는 효소는 없을까?

님이 찾아서 자연지 내셈. 

– 어떻게 원하는 글루타민만을 딱 찾아서 고칠 수 있는겨? 단백질 결합구조 없음?

님이 찾아서 두번 내세여


흐느적거려도 상관없다 지킬것만 지켜다오

…..무슨 괴랄한 윤리켐페인 같은 제목이지만 일단 제목은 잊어주시져.

흔히 업자가 아니라면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만 ‘단백질은 일차구조-이차구조-삼차구조-사차구조로 나뉘거던요’ 하는 것은 매우 교과서적인 이야기. 생물종에 따라서 틀리지만 대개의 진핵생물의 단백질 중에서 약 30-40% 는 특별한 이차구조를 가지지 않고 걍 흐느적거리는 부분, 업자용어로 intrinsically disordered proteins 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단백질 전체가 이렇게 부정형의 구조를 가지고 흐느적 (되게 좋아하네 흐느적 소주깠냐) 거리는 경우도 있지만 진핵생물에서 많이 보이는 멀티도메인 단백질의 경우에는 몇가지 고정된 3차구조를 가지는 영역들도 있지만 중간에는 와장창 흐느적적하는 부분으로 이어져있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읽으신 대학생물학 1학년 정도 지식을 가진 조낸 똑똑한 분은 ‘아항, 진핵생물 지놈의 대다수가 단백질을 코딩하지 않는 인트론인것처럼, 단백질 내부에도 그런 잉여쉑히같은 영역이 있다 이거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흐느적거리는 부분은 우리의 웬수 웬수를 죽입시다’ 하실듯.

바뜨…여기서 내가 흐느적거린다고 했지 아무 쓸모도 없다고 하진 않았거던요? 잠깐 설명을 들으삼.

세포내에서 단백질은 효소와 같이 독자적으로 저분자 물질과 반응하여 다른 물질을 만들어 내는경우도 많지만, 대개의 경우 서로 다른 단백질과 결합하여 ‘뭔가’ 를 한다. 즉 특정한 단백질의 기능을 조절하는 기작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액틴 지가 하는 단백질 깔때기 돋네과 같은 세포구조를 유지하는 구조단백질의 경우에는 단백질의 레종데뜨르 걍 존재의의라고 해라 어차피 너 불어 모르잖냐너 스펠도 모르지 자체가 단백질끼리 서로 액틴액틴하고 붙는 것. 즉 단백질-단백질 상호작용은 단백질의 기능과 그 조절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데, 여기서 흐느적거리는 부분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흐느적 흐느적 해야 상대에 잘맞춰 잘붙지 그런거여

가령 몇 가지 예를 구조로 본다면

PDB:2D1K

여기서 파란 것은 액틴, 보라색은 MIM (Missing in Metastasis)라는 단백질에서 액틴 붙는 영역. 제일 밑의 알파힐릭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영역은 액틴과 붙지 않을 때는 걍 흐느적흐느적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액틴과 붙을때는 정확히 저 영역에 들러붙는다.

PDB:1S70

여기서 회색은 단백질 탈인산효소 1 (Protein Phosphatase 1), 빨간 것은 단백질 탈인산화효소에 결합하여 기질특이성을 결정하는 서브유니트의 하나인 마이오신 타게팅 서브유니트 (MYPT1). 단백질 탈인산효소와 결합하는 영역에는 매우 긴 흐느적흐느적 영역이 있다. 게다가 해당 효소와 결합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시퀀스 영역도 ‘흐느적영역’ 안이다.

즉 이렇게 단백질내부의 disordered region 걍 흐느적이라고 써라 갑자기 영어 좀 쓴다고 유식하게 안본다 은 많은 경우 단백질-단백질 상호작용에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것.

그렇다면 걍 생각없이 흐느적거리는 영역과 그렇지 않고 단백질 상호작용에 역할을 하는 영역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저렇게 구조를 얻으면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그렇지 않고 생물정보학적인 방법으로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런 논문이 나온겁니다. 고갱님.

Proteome-Wide Discovery of Evolutionary Conserved Sequences in Disordered Regions

위 연구의 핵심 가설은 다음과 같다.

1. 단백질 내부의 흐느적 영역 중에서 단백질 상호작용에 관여하는 부분이 많이 있으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영역들이 많이 있다.

 2. 생물종에서 서로 다른 단백질이 거의 비슷하게 상호작용을 한다면,  상호작용을 하는 부분은 그렇지 않은 부분에 비해서 보다 잘 보존될 것이다. (상호작용을 하는데 필요한 부분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인터렉션 시망…이 될 가능성이 더 높으므로)

3. 흐느적 영역 중에서 단백질 상호작용에 관여하는 부분은 저 위의 예에서 본 것과 같이 약 10 아미노산 정도의 짧은 시퀀스로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착안하여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1. 여러종의 유사생물의 프로테옴 데이터베이스를 뒤져서 이러한 짧은 상동성이 있는 부분들을 슥슥 추려내고

2. 이중에서 단백질 구조예측및 2차구조 예측을 해서 Disorder된 부분만을 고르고 (폴딩이 잘되어 있는 부분에서 보존이 잘된 부분은 관심없다 난 지금 그거 찾는거 아니거던요?)

3. Disorder된 부분 중에서 보존된 부분들을 골라보아여

구체적인 알고리즘은요? 이런거는 바이오인포매틱 전문가에게 묻습니다 고갱님

이들은 효모를 모델로 사용해서 약 5천개 정도 단백질에 대해서 요런식으로 ortholog 모아서 컨져브된 영역 찾고, 이중 흐느적 부분만을 골라냄.

그렇게 해서 발견된 모티프 하나가 단백질 상호작용을 해서 특정 단백질들의 분해를 유도한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임

이런 식으로 효모나부랑이에서 보존된 시퀀들은 다른 생물에서도 보존되고, 비슷한 방식으로 단백질간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 그건 너의 생각이고

그리고 hub protein, scaffolding protein은 이런 ‘흐느적거리는 속에서 보존된’ 이런 서열들을상대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다는 주장

즉 간단하게 말해서 단백질의 흐느적거리는 영역 중에서도 생물종간 보존되어 있는 영역은 아무래도 단백질간 상호작용 핫스팟이 될 수 있다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쩜 멋있게 생물정보 하는 척 하면서 풀어나간 논문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까.

1줄 요약  ‘아무리 흐느적거려도 (아미노산) 지킬것만 지키면 짝은 있습니다’

과학 연구에서 ‘멍청함’ 의 중요성

The importance of stupidity in Scientific Research

이걸 발번역해봄 ㅋ 

마틴 슈와르츠 (Martin A. Schwartz)

최근에 오랫만에 옛 친구와 재회하게 되었다. 우리는 분야는 다르지만 같은 학교에서 박사과정에 있었다. 그녀는 나중에 대학원을 중퇴하고 하버드 법학대학원에 가서 이제 주요 환경 단체의 선임변호사로 재직하고 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화제가 왜 그녀가 대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는지에 미쳤다. 놀랍게도 그녀가 대학원을 그만두게 된 것은 자기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즉 몇년간 매일매일 자신이 멍청하다고 느끼는 것을 반복하게 된 이후 더 이상 이것을 견디지 못하고 딴 일을 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아마 그녀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고, 그녀가 대학원을 중퇴한 이후 경력은 그녀가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를 증명해 준다. 그렇지만 그 친구가 이야기한 ‘멍청함’ 이라는 이야기는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다음날 갑자기 생각이 번쩍 들었다.

나 역시 과학연구를 하면서 멍청하게 느껴진다.

단지 난 여기에 익숙해져 버린 것 뿐.

오히려 여기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나는 적극적으로 멍청하게 느껴질 기회를 찾고 있다. 나는 이런 느낌 없이는 무엇을 어찌 할지도 모르겠다. 심지어는 이것이 과학 연구에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볼까 한다.

과학을 현재 하고 있는 대부분의 우리가 과학을 좋아하게 된 이유라면 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 우리가 과학과목을 잘 했던 것이다. 물론 이것만은 아니겠지. 아마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욕망이 우리를 과학연구에 뛰어들게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고교나 대학시절의 과학은 대개 수업을 듣고, 수업에서 잘한다는 것은 대개 시험을 잘 본다는 것이다. 만약 문제의 정답을 알면 잘하는 것이고,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박사과정에서 해야 하는 연구 프로젝트는 이런 ‘과학’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내 경우에서 이것은 매우 겁나는 일이었다.

어떻게 중요한 발견을 할 수 있는 문제를 생각할 수 있을지. 

실험을 디자인하고 이 결과를 해석하여 완전히 확실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지,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미리 예측하고 이것을 미리 회피할 수 있을지,

문제에 봉착한 경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내 박사과정 테마는 일종의 학제적 연구과제여서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나는 우리 과에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교수를 찾아가서 상의하곤 했다. 어느날 Henry Taube (2년 후에 노벨상을 수상한다) 를 찾아갔을때 그는 내가 봉착한 문제를 어떻게 풀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당시 나는 3년차 박사과정 원생이었고, 아마도 Taube 교수는 당시 나보다 1000배는 더 많이 알것이다. (많이 낙관적인 예측 —;;)  만약 그가 해답을 모른다면 이 세상에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아무도 알리가 없다. 

바로 그때 번쩍 생각이 떠올랐다. 

아무도 알리가 없다. 

그래서 이것은 연구할 가치가 있는 문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 연구토픽이므로 이것을 푸는 것은 나한테 달려 있다.

일단 이러한 사실을 직시한 다음에는 난 이 문제를 며칠만에 해결할 수 있었다. (사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단지 몇가지 시도를 했어야 했을 뿐. 내가 모르는 것의 정도는 단순히 거대한 것이 아니라 무한한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때 난 의기소침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만약 우리의 무지가 그렇게 무한한 것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라고. 

나는 우리의 박사과정 프로그램이 학생들에게 두가지로 잘못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학생들이 연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하게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더우기 중요한 연구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말이다. 연구를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수업을 듣는 것보다는 비교도 안 될만큼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연구를 어려운 것으로 만드는 이유는 연구라는 것은 근원적으로  ’잘 모르는 것’ 속에서 헤매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를 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뭘 하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우리가 제대로 된 질문을 묻고 있는지도 알 수 없으며 결과를 얻을 때까지 우리가 제대로 된 실험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사실 연구비를 수주하는 것이나 탑 저널에 논문을 싣는 것 같은 것보다도 과학 연구는 그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인 것이다. 즉 과학 연구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어렵고, 학과나 학교 혹은 국가의 과학 정책을 어떻게 바꾼다고 하더라도 과학 연구의 그 근본적인 ‘어려움’ 을 완화시켜 줄 수는 없다.  

두번째로 우리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생산적으로 멍청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생각한다. 이 말은 우리가 연구를 하다가 ‘우리는 정말 멍청하다’ 라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저 제대로 연구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멍청함’ 이라는 ‘상대적인 멍청함’ 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즉 다른 학생은 수업준비를 잘해서 시험을 잘 보는 반면 자기 자신은 그렇지 않아서 성적이 나쁜 그런 것 말고 말이다. 내가 말하는 ‘멍청함’ 은 ‘절대적인 멍청함’, 즉 과학연구를 할때 느낄 수 밖에 없는 ‘세상 누구도 모르는 것’ 을 직면했을때의 멍청함 말이다. 이러한 종류의 멍청함은 항상 존재하며,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박사과정의 논문자격시험이나 논문심사는 심사위원이 학생이 잘못된 답을 이야기하거나 포기하고 ‘잘 모르겠는데요’ 할때까지 밀어붙일때 의미가 있다. 이러한 시험의 목적은 학생이 정답을 이야기하는데 있지 않다. 만약 이런 상황이 된다면 학생이 아니라 심사위원인 교수가 시험에서 실패한 것이다. 이런 시험에서 중요한 점은 학생의 약점을 파악하고 노력을 해야 할 부분을 파악하고, 학생이 충분히 높은 수준에서 지식의 한계를 느낄 수 있는지를 파악해서 이들이 과연 과학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생산적인 멍청함’ 은 자발적인 무지함이다. 중요한 과학적 문제에 집중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무지한 상황속에 빠지게 된다. 과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라면 우리가 이런저런 실수를 하고 반복해서 헤메게 되더라도 우리가 그 과정 속에서 무언가를 알게 된다면 괜찮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정답을 답하는 데 익숙해진 학생들에게는 적응하기 힘든 것일수도 있다. 그리고 적당한 수준의 자신감과 감정적인 회복은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난 과학교육 자체가 뭔가 큰 보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과학교육 과정이 다른 사람이 이전에 발견한 것을 배우는 것에서 자신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큰 전환과정에서 어떻게 역할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우리가 잘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서 인식할 수록 우리는 미지의 사실에 좀 더 깊게 다갈 수 있으며 보다 중요한 발견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놈이 운영체제라면.

윈도우가 오픈 소스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래서 개발과정중 매일매일 나이틀리 빌드가 있고 이걸 아무나 받아서 쓸 수 있슴다. 즉, 유저들이 쓰고 있는 빌드는 다운로드받은 날짜에 따라서 각각 조금씩 다른 버전이 되는 셈이죠. 물론 빌드를 받아서 쓰는 엔드유저는 소스코드를 볼 수는 없습니다. 

이런 운영체제를 지금의 윈도우처럼 벼라별 환경에서 다 쓰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온갖 스파이웨어, 바이러스가 우글거리는 환경에서 아무런 안티바이러스도 없이 쓰고 있고, 다른 사람은 생판 듣도보도 못한 업체의 하드웨어의 드라이버를 올려 놓고 쓰고 있지요. 게다가 가끔은 운영체제의 파일이 덮어쓰여지기도 하고, 지워지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묻지 말자 ㅋ) 컴터를 영하 30도의 냉동창고에서 쓰기도 하고, 60도가 넘는 사막 한 군데에서 쓰기도 합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제각각 다른 응용 소프트웨어를 쓰는 것은 당연하지요. 

이런 환경에서 특정한 문제가 있는 컴퓨터들이 있습니다. 가령 웹 브라우징을 어느정도 하다가 뻗어버리는 넘, 특정 하드웨어를 쓸때는 블루스크린이 나오는 넘, 갑자기 수행속도가 엄청나게 느려지는 넘, 특정 소프트웨어를 쓸때 잘 죽는 넘…

워낙 문제가 빈번하니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해결책이 없나 알아보기 위해서 여러가지 시도를 했는데, 이제는 윈도우에 딸린 모든 실행파일 및 데이터파일을 덤프해서 바이트 코드를 뽑고, 이를 디스어셈블리해서 각각의 차이가 있는지를 봅니다. 웹 브라우징을 하다가 뻗어버리는 넘과 그렇지 않은 넘의 각각의 실행파일의 바이너리를 비교해서 틀린 바이트가 있는지를 찾아봅니다. 대개는 비슷하지만 몇 kbyte 에 한 바이트 정도씩 차이나는 것이 있네요. 20만대를 조사해 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바이트를 골라냅니다. 그렇게 했더니 ‘윈도우 익스플로러의 수행시에 프리징되는데 관여되는 바이트’ 들이 나오네요. Single Byte Polymorphism (SBP) 라고 부르도록 하죠. 아마 다음부터는 전체 실행파일의 바이너리를 보지 않고 이 바이트만 보면 이 컴퓨터가 윈도우 익스플로러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실행하는지에 대해서는 예측할 수 있을 거예요. 아참. 무슨 바이트들이 $FF에서 $EF로 바뀌었을때는 윈도우가 부팅될 때 윈도우 로고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 SBP를 ‘윈도우 로고에 관여하는 바이트’ 라고 부르도록 하지요. 저희가 개발한 $17orYou 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이렇게 찾아진 자신 윈도우의 SBP 들을 간단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SBP만 봐서는 컴퓨터의 불안정성을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해요. 대신 시스템 파일이 삭제되거나 중간이 잘라지는 현상이 시스템별로 있으며, 어떤 파일이 존재하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컴퓨터의 이상증상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동일한 파일이 여러개 존재하기도 하는데, 이것에 따라서 운영체제의 안정성이 결정된다고도 주장하죠. 
…그건 그렇다 치고 툭 하면 죽는 내 컴퓨터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냐구요? 지금 하는 연구가 내 컴퓨터의 안정성을 개선하는데 얼마나 중요하냐구요? 
글쎄요. 그런 것은 지금으로써는 무리고요. 일단은 여러분의 컴퓨터 안에 있는 윈도우가 다른 사람들의 윈도우와 무엇이 틀린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슨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드라이버를 쓰는지도 중요하다구요? 아, 그게 중요한 것인지는 잘 아는데..워낙 응용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드라이버는 천차만별이지 않습니까. 솔직히 그걸 다 고려하기는 지금 기술로는 역부족이죠. 하하. 아시다시피 컴퓨터 한 일년 쓰면 맛 가지 않습니까? 깨끗하게 포맷하시고 최신 나이틀리 빌드 윈도우 받아서 새로 까세요. 프레쉬 스타트. 

회전초밥집에 자주 가는 것이 연구에 좋은 이유

Mechanisms of dendritic mRNA transport and its role in synaptic tagging

요런 리뷰 논문을 보고 있는데, 한마디로 뉴런에서 핵에서 만들어진 mRNA는 dendrite 로 한참 이동해서 시냅스에서 트랜슬레이션되게 되는데, 이 과정에의 이동은 마이크로튜블 네트워크를 타고서 주르르 이동하게 된다는듯. 

큰 그림 링크

회전초밥집에서 벨트위에 놓여있는 초밥이 주르르 돌면서 배고픈 고갱님이 그 접시를 집듯이 마이크로튜블 네트워크를 통해서 돌아다니는 mRNP는 ‘배고픈’ 고갱님  시냅스가 척 채가서 여기서 전사가 일어나게 된다 어쩐다..하는 이야기.

모델 제창한 사람 스시덕후다에 뷁원 검

그런데 이 모델은 mRNP의 이동에 관한 것이었는데 최근에 세포느님에 mRNA 말고도 neuropeptide도 이렇게 스시벨트처럼 이동한다는 논문이 나오심. 

세포느님 논문 Wong et al., Neuropeptide Delivery to Synapses by Long-Range Vesicle Circulation and Sporadic Capture

여기에 대한 프리뷰를 울과의 에리카 눈화가 쓰셨는데 아예 스시테이블 그려놓음 ㅋㅋㅋㅋㅋㅋ

즉 nucleus (soma)에서 바깥으로 이동하는 ‘접시’는 Kinesin 타고 이동하고, 반대방향으로 가는 접시는 Dynein 타고 이동한다고..뭐 당연한 거지만. 

비전공자를 위한 1줄 요약 : 과학자들도 스시집에 자주 가야 이런 모델을 창안할 수 있으니 주변의 돈없는 과학자 친구에게 스시 좀 잘 사주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