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맥주집에서 돈 되지 않을 쓸데없는 실험이야기 하던 몇몇 덕후들

2000년도에 나온 어떤 논문을 하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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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틸렌 비드에 Streptavidine을 달고, 형광물질과 바이오틴이 결합된 13mer짜리 올리고 DNA를 붙이고 콘포컬 현미경으로 보면 단일분자의 DNA의 형광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런 논문임. 형광을 봤더니 뭐? 그냥 보인다구…

“음…근데 그게 뭐 어쨌다고?”  무슨 DNA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딘가 쓸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여튼 별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 연구는 아니었다.

1990년대 중반에 캠브리지 대학 화학과에 부임한 인도출신의  젊은 교수가 있었다. 이름은 Shankar Balasubramanian (이름 읽기가 ㄷㄷ 그래 너 브라만계급인건 잘 알았다)이고 화학자였다. 주 특기는 형광물질을 합성하여 Nucleotide에 달고, DNA가 DNA 중합효소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를 보는 연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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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해보인다

그런데 논문을 하나 내려고 했는데, 리뷰어가 좀 빡센 요구를 해서 형광물질 달린 DNA를 가지고 레이저로 뭘 해보라는 실험을 해야 했었는데 그 방에는 그 기기가 없어서 옆방의 생물물리학 교수인 David Klenerman이라는 사람과 코웍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이 사람의 도움을 거쳐서 논문을 하나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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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지 맥주를 탐하실듯 싶다

그런 식으로 해서 친해저셔 종종 같이 펍(Panton Arms이라는 이름의)에서 술 먹는 사이가 되었다. 하루는 각각 연구실의 포닥 (아마도 실험을 직접 했을) 한명씩 4명이 펍에서 맥주를 먹으면서 실험/연구 이야기를 하다가 뭔가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뭔지는 아직 비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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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그런데  너무 뜬금없는 아이디어라서 같이 술먹으러 다니던 포닥 두명과 하는 장난스러운 프로젝트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어떻게 영국의 벤처캐피털 회사와 접촉을 하게 되었고, 약간의 자본금을 투자받아 벤처기업을 설립하게 되었다. 

그 회사의 이름은, 그들이 하는 단일분자의 DNA에서 따서 Sol, 웬지 X를 넣고 싶고, 그렇게 해서..

Solex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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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그 당시 떠올린 아이디어라는 것은 단일 분자의 DNA를 유리판 위에서 증폭한 다음, DNA Polymerase 로 한 베이스씩 합성을 하는 것이었다. 단, 이때 형광이 달린 Nucleotide를 이용하되, Nucleotide는 더이상 증폭이 안되는 terminator base이고, 이는 sanger sequencing에 사용되는 원리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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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이 사용한 terminator는 reversible, 즉, 화학처리에 따라서 다음 base가 결합할 수 있도록 blocking된 O-R기가 O-H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DNA Polymerase를 한 베이스 단위로 합성 – 중지 – 합성의 사이클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핵심 원리이다. 게다가 형광을 내는 화학기 역시 화학처리에 의해서DNA 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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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다음 그림과 같이, (1) 형광달린 Nucleotide가 DNA에 합tothe체  (2) 엌ㅋㅋㅋOH가 없어 더이상 진행불능. (3) 이사이에 사진한장 박으시고 (4) 화학처리로 형광이 떨어져나가고 OH가 재생! (5) 네 다음 Nucleot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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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과정으로 단계별로 한 베이스씩 합성이 진행되고, 이 형광을 모니터링하면 아래와 같이 시퀀스가 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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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양반들은 벤처캐피탈 회사에게 돈 투자해 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이런 식으로 시퀀싱을 하면 한꺼번에 10억 염기 (휴먼 지놈에는 약 32억 염기가 존재한다) 를 읽을수도 있다는!”  그 말을 들은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은

“……허 님들, 만약 당신들이 그거 10분의 1만 해도 저희들은 놀라 자빠질겁네다 ㅋㅋ”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는 1990년대말. 휴먼 지놈 프로젝트를 약 수조원의 돈을 들여서 한창 진행중이었고, 휴먼 지놈 프로젝트는 32억 베이스를 읽는 프로젝트고 마치 아폴로 계획에 비견되는 역사라고 선전되던 시절이다. 그런데 어디서 갑툭튀한 인간들이 한번에 휴먼 지놈의 1/3을 시퀀싱한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님들 허세 좀 쩌는듯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을듯 싶다. 그러나 허세에 쫄았던지 어느정도의 돈을 펀딩을 하기로 결정했고, Solexa는 회사가 설립되어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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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결의가 아닙니다   클린턴 횽이 좌벤터 우콜린스를 세우고 “인류가 휴먼 지놈을 정ㅋ벅” 선언을 한 것은 2000년이고, 저 두 맥주덕후 아저씨가 돈 타기 2년 전이다.

그렇게 해서 휴먼지놈 프로젝트가 완성..그 다음에는? “인간은 다 호모 사피엔스…호모 사피엔스의 지놈 시퀀스가 밝혀졌음. 그러나 나와 너님의 차이는 뭐지?” 에 대한 의문이 지속되었고, 2002년에는 “아마 이런 걸 알려면 사람의 전체 시퀀스를 한 백만원에 하면 병원가서 엑스레이나 엠알아이 찍는식으로 휴먼지놈 시퀀싱하고 모든 유전병으의 원인을 알 수 있을 거야.” 근데 지금 시퀀싱 비용은 엄청 비싸잖아. 우린 안될거야

그래서 좀 더 싸게 시퀀싱을 하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올라가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Solexa는 2006년에 최초의 제품 (Called Genome Analyzer)을 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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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exa 1G Genome Analyzer. 시퀀싱 용량은 1Gbp (Read길이가 25bp라는 것은 안자랑) 그리고 Solexa는 2007년 초에 illumina에 약 6억불의 가격으로 인수된다. 그 당시의 illumina는 BeadArray라는 Microarray를 가지고 당시 마이크로어레이의 최강자이던 Affymetrix에 덤비던 업계의 2인자 콩라인 였다.

그리고 2008년, illumina sequencer를 이용한 최초의 휴먼 지놈 시퀀싱 논문이 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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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저자는 맥주집에서 술먹던 포닥, 제이저자는 맥주값 내던 교수..

그리고 이것은 그 이후에 있을 ‘기승전걍시퀀싱’ 의 서막에 불과하였다. 한편 illumina에 인수된 ‘solexa’의 시퀀싱 기술은 계속 증가하여, 최신 기종인 HiSeq 4000은 한번 러닝에 이제 1000Gb 가 넘는 데이터를 생산한다. 10대 묶어서 파는 illumina의 HiSeq X10 의 경우 마침내 재료비 기준으로 1명당 돈백만원의 비용으로 시퀀스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떡밥 푼 지 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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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fimetrix와 옥신각신하던 illumina는 시총 281억불 (이것보다 기업가치가 큰 회사는 한국에 딱 3곳이 있다. 삼전, 현차, 하이닉스) 의 괴물이 되었다.

문득 오늘 실린 한국 신문의 기사가 생각난다.

“그 연구 돈 되냐?”

과연 그들이 1997년 영국 맥주집에서 떠들던 그 ‘연구’ 는 한국의 관료들이 그 당시에 듣기에 “돈 될 것처럼 보이는” 연구였을까? 그걸 떠나서, 지금 당신들은 미래에 돈 될 연구를 구분할 안목이 있는가? 

일본 과학 잡지의 위엄

추가해서, 해당 출판사에서 나오는 NGS 분석관련 서적의 내용 일부

실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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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눅스 환경에서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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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징 관련 서적은 ImageJ 스크립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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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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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잡지를 하나 창간해볼 생각은 없냐” 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도 ㅋㅋㅋ 그러나 알다시피 한국에서 요즘 종이로 된 잡지가 팔리는 게 있긴 하나요. 맥심 사실 이런식의 실용적인 지식을 블로그를 통해서 배포하는 분들은 꽤 계신데, 이런 블로그의 연합체 식의 플랫폼등을 구성해 볼 생각은 있으나 뭐 생각만 있는거뿐이죠. 생업 ㅠ.ㅠ

여튼 요즘 블로그의 업데이트는 그닥 빈번하지 않으나 짜잘한 글은 페북페이지 https://www.facebook.com/madscietistwordpress 로 계속 올라오고 있습다. 가끔 호응이 좋은 글들은 여기에 올려놓든지, 이것을 기반으로 블로그에 정리하고 있슴다.

“시험관 아기” 에 대한 대중 인식의 변화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때 이것이 대중에게 바로 ‘오오~ 세상 많이 좋아졌구만’ 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세상 말세네~’ 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특히 생명과 직접 관련된 기술의 경우 환영보다는 거부감이 우선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어떻게 보면 인지상정일지도.

그러나 처음에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류의 기술로 폄하되었지만 어느덧 보편화되어 대중이건, 정부건 ‘이제는 아주 당연한 것’ 으로 여겨지는 것들도 없지 않다. 바로 체외수정 (In vitro fertillization)을 포함한 생식보조기술 (Assisted Reproductive Technology)이다.

현재 한국에서 매년 태어나는 아기는 약 40만명 정도이다. 이중 체외수정등의 생식보조기술의 도움을 받아서 태어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정부에서는 전국가구 월평균 소득의 150% 까지에 해당하는 가구(4인가족 기준 월 725만원 이하의 소득이 있는 가구) 에 대해서 체외수정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난임부부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는데, 2010년의 경우 체외수정로 태어난 아기는 약 8천명, 인공수정의 경우 3천명으로 전체 출생인구의 2.4% 를 차지한다고 한다. 해당 지원사업을 받지 못하는 가구의 경우도 있을 것이므로 현재 한국에서 출생하는 인구의 약 2% 정도는 시험관 아이인 상황이므로 이정도면 거의 보편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 이 기술이 개발될 때의 대중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고고…가 아니라 역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로 대신 당시의 신문을 들춰보도록 하자. (요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없었으면 블로그 파리날리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적 느낌 ㅋ)

“시험관 아기” 로 검색했을때 이 단어가 최초로 나오는 시점은 1970년인데, 그때는 1978년 최초의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키는 주역이였던 패트릭 스탭토(Patrick Steptoe)가 최초로 시험관 아기 계획을 TV에 밝혔을때의 기사이다. (1970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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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라인만 봐도 세상에 이런 일도, 말세네의 분위기. 인간대량생산 ㄷㄷ

그리고 몇 개의 각계의 반응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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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대 영문학 교수라는 김진만이라는 양반이 기고한 컬럼에서도 시험관 아기 시도를 언급하며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이야기를 꺼냄. 결국은 ‘기술의 발전이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고…’ 류의 이야기. 가만히 냅두면 미친과학자들이 날뛰니 우리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잘 계도해야 한다능~ 은 태고적 레파토리 근데 너네들은 그거 외에 하는게 뭐냐.

그런데 사실 2011년 이 토픽으로 노벨상을 탄 로버트 에드워드는 1960년대부터 체외에서 난자를 성숙시키는 연구를 하고, 1969년 이미 인간 난자와 정자를 이용하여 체외수정을 한 결과를 네이처에 논문을 냈고, 그 이후에 인간 수정란 아기 계획을 밝혔다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는데, 당시의 한국 신문의 수준으로는 시험관 아기로의 전초전이 되는 1960년대의 연구에 대해서는 전혀 보도가 없었다. 그때는 논읽남도 없었으니 어쩔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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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님들은 신문을 멀리하고 논읽남을 이뻐해야 합니다

시험관 아기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단순히 일반인만의 이야기는 아니었음. 수십년 후에는 이러한 기술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경우에도 극히 부정적이었는데, 1974년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인 장윤석이라는 분은 다음과 같이 기고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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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존엄성 파괴, 남녀분포 균형깨지고, 일부다부제, 형제끼리 근친결혼 등등을 조장할 수 있다라는 지금의 현실을 돌아보면 그닥 이해가 안가는 논거를 가지고 시험관 아기를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수십년 후 산부인과의 주 수입원은 난임치료가 되는데..

그러나 스텝토와 에드워드의 시험관 아기 시도는 그 당시에는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간헐적인 기사만 나오는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1978년 최초의 시험관 아기인 루이스 브라운이 태어나니 그냥 헬게이트가 열리는데…

1978년 7월 26일 시험관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은 일간신문 1면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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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다는 학계에의 “공식” 보고이다.

실제로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다고 해도 “별거 아니다” 라는 의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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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병원 원장이라는 배병주 박사라는 분은 시험관 아기라고 해서 시험관에서 아기가 나오는 것도 아니므로 지나치게 현혹되지 말아야하고, 보편화되기에는 해결되어야 할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시험관아기가 우리나라 여성들의 불임을 해결하는 방안은 되지 못한다고 단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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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타락이 아니냐, 인간복제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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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한 공룡 나오고, 인간이 재주를 지나치게 부리다 제 꾀에 빠져서 멸종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동물학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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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시험관 아기 탄생의 뉴스는 1978년 해외 10대 뉴스 중 무려 2위에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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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토픽으로 이야기되던 시험관 아기는 198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서도 시도가 된다는 기사가 나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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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도에 국내 최초의 시험관 아기 쌍동이가 태어난다. 이미 그 시점에 해외에서는 약 1천 5백명 이상의 시험관 아기가 태어난 상태이므로 시험관 아기의 위험성에 대한 의문은 많이 불식된 상태. 이전과 같이 시험관 아기의 위험성에 대한 기사 등은 나타나지 않고 “경사” 라는 단어로 표현되고 있다. 

근데 국내 최초의 시험관 아이의 주역이라고 소개된 장윤석이라는 분, 저 위에서 시험관 아기 유감이라고 기고하신 분 아니었냐 

그리고 1978년 최초로 태어난 ‘시험관 아기’ 였던 루이즈 브라운은 다시 엄마가 되었고 현재 36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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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루이스의 엄마, 루이스, 루이스의 아들

그리고 시험관 아기의 탄생 주역인 생리학자 에드워드와 산부인과 의사 스텝토 중 스탭토는 1988년 사망했고, 더 오래 살아남은 (…) 에드워드는 2010년 노벨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노벨상을 수상할때는 이미 너무 연로해서 제대로 정신이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고, 자신이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인지도 못했다는게 후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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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렉처는 제자가 대신했고, 수상은 부인이 대신함.

어쨌든 시험관 아기는 이제 보편화된 기술이 되었고, 전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이 이 기술을 통해 태어났으며, 국내에서도 평균적으로 약 1만명 이상이 태어나고 있다.

이러한 시험관 아기의 보편화 과정을 살펴볼 때 생명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대중의 인식은 그리 하루아침에 쉽게 개선되지 않으며, 대중화를 위해서는 당장 가시적인 사회적인 이익 (불임 부부가 자식을 가지게 된다든지 등등) 이 획득되어야 함. 여튼 그래서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해당 기술을 추진하는 사람은 기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대중 및 사회의 기술에 대한 공포를 이해하고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편 CRISPR/Cas9 등을 통하여 고등동물의 유전정보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게 된 현 시점에 이르러, 과연 인간에 대한 유전자 교정 등은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지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몇십년 후에는 과연 인간의 유전자를 출생 이전에 교정하는 등의 일이 지금의 시험관 아기 정도로 보편화될까? You will see…

그리고 그 때도 과거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등을 찾아서 ‘우하하 그 당시에는 그랬었구만…’ 하는 글을 쓰는 블로거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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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가 되는데 사람이 기술적으로 안될 것은 없다. 다만…

한국의 “DNA의 원류”를 찾아서

뭐 흔해빠진 “한국인의 DNA” 무슨 한의 정서 나오고 우짜고 하는 같은 DNA의 개념을 흔드는 글을 쓰려는 게 아니고, 그냥 한국에서  ‘DNA’ 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가 좀 궁금해졌다. 그래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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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검색하면, 한국 신문에서 최초로 “DNA” 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1958년 9월 30일자 동아일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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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테리아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의 유전은 물론이요 생물과 미생물의 경계에 놓여있는 바이러스의 유전까지를 좌우하고 있는즉, 생명의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역할을 하여 그 기본단위의 순열변화로써 개체나 종류에 대한 어떤 유전세포를 박테리아나 식물 또는 인간으로 발전시키는 유전자료의 저장고라고 알려져 있는 “DNA”라는 활성화화합물이 9월초 미국출신인 일단의 과학자들에 의하여 불활성물질로부터 합성되었다는데 이러한 생활과정의 기본적 메키니즘에 대한 동력원물질을 합성하였다는것은 생명의 기본화학반응을 해명하는 동시에 암과 같은 가장 중대한 병인을 추구치료케되리라는 소식”

그 당시에서부터 암치료 드립이 있었다 ㄷㄷㄷ 한국언론의 과대포장의 ‘DNA’는 그때부터 여전했던듯

즉, 외국의 연구 단신을 전한 것인데, 이것은 1958년 아서 콘버그에 의해 DNA Polymerase I (결국 나중에 DNA를 복제하는 효소가 아닌 수선하는 효소로 밝혀진) 가 발견되고 최초로 DNA를 세포외에서 합성한 논문을 의미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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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 유명한 1953년의 왓&클의 DNA 이중나선 구조 논문은? 아마 그 논문은 당시에 국내에 뉴스로 소개되지 않은 듯 하다. 지못미 왓&클 (그 논문의 소개기사를 발견하셨다면 덧글을 달아주삼)

그렇다면 한국에서 최초로 핵산을 연구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것은 아마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생화학교실의 초대 주임교수인 고 이기녕 박사 (李基寧, 1914-2002)로 생각된다. 이분은 1952년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에 유학하여 각종 생물의 핵산 내의  퓨린 및 피리미딘 염기의 분포를 조사하여 몇 편의 논문을 1956년에 발표하였다. 그 이후에 귀국하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생화학교실에서 후속 연구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Content of purine and pyrimidine base in desoxyribonucleic acid of bacteria

Comparison of contents of purine and pyrimidine bases and of desoxyribonucleic acids in certain animal species

물론 원문을 볼 도리가 없으므로 구체적인 연구 내용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불어 ㄷㄷ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핵산’ 을 검색어로 찾아보면 1956년에 이기녕 박사의 학술원 연구발표회 “핵산의 성분에 대하여” 라는 강연 기사가 나오는데, 아마 프랑스에서 귀국한 후 해당 논문의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DNA를 화학적으로 분해한다음 크로마토그래피로 염기를 분리하고, 종별로 서로 다른 C-G 혹은 A-T Ratio가 달라지는 것에 따라서 생물의 분류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로 수행된 초기의 연구라는 언급 (학부시절 강의에서 이 분의 연구를 소개한 교수님의 이야기에 따르면)이 기억이 난다. 좀 더 자세한 소개는 여기

그러나 해당 연구는 어디까지나 생화학적인 DNA의 조성에 관련된 연구였고, 이를 이용하여 계통분류학적으로 생물을 분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에 의한 연구였으므로 1950년대 이후에 활발하게 발전된 분자생물학의 주류 (DNA와 센트럴 도그마, 유전암호 등등)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연구였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분자생물학 연구는 1970년대 중반이 되어 미국 등에서 분자생물학을 연구한 신진 학자들이 귀국한 이후에 시작되는데..뭐 여기에 대해서는 여백이 부족해서 지금은 생략 -.-

리빙포인트: 귀찮으면 페르마드립을 하면 좋다

Radial Profile Plugin을 이용한 원형 물체의 Profile 측정 (ImageJ)

잊을까봐 적어놓는 ImageJ PlugIn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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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요런 그림을 자주 들여다보는데 (쥐 난자의 형광염색사진임. 적색은 actin, 청색은 DNA, 초록색은 ‘어떤’ 단백질) 이런 것을 보다보면 intensity의 profile이 궁금할때가 있음. 그럴때는 대충 이렇게 선을 선택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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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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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따라서 채널별로 플롯을 그릴수도 있고, 이것을 데이터로 익스포트할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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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위의 녹색 채널과 같이 잡시그널이 많은 경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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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렇게 노이즈가 많이 나옴. 이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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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요런 식으로 여러개의 선을 그려서 측정한 다음 평균을 내면 어떨까? 그러나 손으로 이걸 하려면 오차도 많이 나고 좀 무리데스.

이런 경우에 쓰라고 어떤 양반이 ImageJ Plugin을 만들어 놓은 게 있다.

Radial Profile Extended 

위의 링크에서 Radial_Profile_Angle_Ext.jar 를 받고 ImageJ의 PlugIn 폴더에 넣는다. (맥인데요, 아이콘만 있고 폴더는 어디있어염? 하는 분이라면 이대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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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해당 플러그인을 설치한 후 PlugIn메뉴에서 “Radial Profile Angle”을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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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메뉴가 뜨고, 데이터 화면에는 아래와 같이 원이 그려지는데, 저 원을 주변으로 profile이 그려진다. 화살표를 이용하여 원호의 중심을 조절하거나 Up/down으로 원의 반경을 조절할 수도 있고, 메뉴에서 적절히 조절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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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Calcurate ROI Profile”을 선택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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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영역에서 평균된 intensity profile이 표시됨.

원이 완벽하지 않은 경우에는 아래와 같이 일부 각도에 대해서만 profile을 재는 것이 좀 더 샤프한 profile을 얻을 수 있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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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보다 샤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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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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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데이터를 export하여 플로팅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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