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는 원래 유목민

  1. Leonoir Michealis 라는 과학자

뜬금없이 한 옛날 과학자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 보기로 한다. 이전에도 그랬었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Michealis-Menten Equation’ 이라고 들어보았는가? 아마 생화학을 수강한 Bio 관련 전공자라면 상당히 친숙한 내용일 것이다. 효소의 반응속도와 기질 농도와의 관계를 규정하는…사실 생물학 쪽에서 방정식으로 기술되어 대학교 과정 정도에서 널리 다루는 것들이 그닥 없는데 이것만은 아마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할 것은 이 방정식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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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의 대상은 이 관계식에 대해서 연구를 수행한 두 사람의 과학자, 즉 Leonoir MichealisMaud Menten 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원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읽다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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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다시피  Michealis는 독일 사람, Menten은 캐나다 사람이다. Michealis는 원래 의사양반이었는데 연구에 흥미를 느껴서 베를린 대학에서 연구를 한다. Menten은 토론토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는데 캐나다에서 최초로 의학을 공부한 여성이 된다. 그 이후 연구를 하고 싶었지만 “여자가 무슨 연구~” 하는 당시의 사회상황에서 방황하다가 당시 독일에서 연구하던 Michealis 와 같이 독일에서 연구를 수행한다.

그래서 이 둘은 독일저널에 이런 논문 (영어로 번역된 내용) 을 내고, 이 논문에서 나온 방정식은 한 세기 뒤에도 생화학책에 여전히 남아있는 유명한 방정식이 된다…

그들은 이렇게 유명해져서 행복하게 연구를 하고 살았습니다…였으면 좋겠으나, 이들은 그 후에도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는다. Michealis 는 1914년, 그당시 독일에서 빅가이라고 설치던 Emil Abderhalden이 창안한 임신진단법이 재현이 안된다는 논문을 냈다가 독일에서 입지가 곤란해진다. (“아니, 우리 대가님의 방법을 듣보잡 너님이 무시하자는거야? 빼애애액!” 하는 무리들은 그당시에도 있었나보다)

그리고 1차대전에 패전한 독일의 경제상황은 악화되고…그런 상황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헬독일’ 을 뜨는 것이었고, 그 행선지는…

일본이었다.

일본?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에 유럽에 학생들을 파견하여 근대과학을 열심히 익혔지만, 실제로 서양의 과학자를 교수 위치로 초빙하는 것은 Michealis가 처음이었다. 그는 1922년 아이치 의과대학 (현 나고야대 의대) 에서 생화학교수로 취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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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프레 일본옷 입은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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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일본인 제자들과의 인증샷

1923년에는 아인슈타인 (‘그’ 아인슈타인 맞다) 이 일본에 방문했는데, 아인슈타인은 Michealis의 집에 방문하여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 켜고 Michealis는 피아노 치면서 놀았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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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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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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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실험지도를 하기도 했다. 설정샷 같은데  여튼 이렇게 Michealis 에게 배운 학생들은 일본의 초창기의 생화학계를 이끄는 학자들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물리적인 원리를 생화학에 도입하는 당시로써는 첨단의 어프로치를 일본에 소개했다는 것이 큰 영향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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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있을때도 꾸준히 해외저널에 논문을 투고했다.  단독저자…일본학생들은 잉여였나부다 ㅠ.ㅠ

그러나 그는 일본에 그리 오래 체류하지 않았다. 1926년, 그는 다시 미국으로 떠나서 존스홉킨스 대학에 갔다가 최종적으로 뉴욕의 록펠러 연구소 (지금의 록펠러대학) 으로 옮긴다. 왜 일본을 떴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무래도 서양인으로써 1920년대의 일본에서 ‘최초의 외국인 교수’ 로써의 부담이 컸을까? 잘 모르겠다. 암튼 일본에서의 Michealis 의 행적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면 여기를 참고

여튼 그는 51세의 나이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서 연구를 계속한다. 연구분야도 상당히 다양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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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투과성에 대한 연구(1927, Journal of General Physi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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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혈구의 호흡에 관련된 연구 (1933,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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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결합 단백질인 Ferritin에 대한 연구 (1942,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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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코페롤 산화에 관한 연구 (1949.Science)

이렇게 말년까지 줄기차게 연구를 하다가 1949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죽는 해까지 수편의 논문을 써내는…논문생산기계 ㄷㄷ)  즉, 후대의 우리들에게는 젊은 시절의 Michealis-Menten Equation 하나로 주로 알려졌던 분이나, 그 이후에 30년이 넘게 꾸준히 연구를 했다는 이야기.

2. 근데 이 양반만 그런 게 아니다. 

이 양반의 생애를 이렇게 주마간산으로보면 독일 – 일본 – 미국을 거쳐서 무려 3개국에서 연구를 수행한,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당시의 유명 과학자들의 생애를 본다면 이렇게 나라를 옮겨다니며 연구를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랄까. 특히 19세기 말의 과학종주국이었던 독일이 1차 세계대전 패전을 거치고, 나치스의 집권등을 통해서 수많은 독일 및 유럽 과학자들이 자신의 모국을 등지는 일이 일어났고 이들은 대개 미국으로 건너가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명실상부한 과학종주국이 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반대로 생각하면, 과학자들이 대거 등지는 국가/정권의 말로는 대충 다 비슷하다. 듣고있나?)

그러나 과학자의 대이동은 비단 전쟁과 혼란속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Leonoir Michealis와 같이 독일에서 연구한 Maud Menten 은 캐나다 출신의 과학자였고, 캐나다에서 여성으로써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독일에서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과학자들이 유입되는 한편, 분자생물학과 같은 일부 분야에서는 미국 출신 과학자들이 유럽에서 연구를 하는 상황도 2차대전 이후에도 어느정도 지속되어왔다.

한편 이전에는 과학의 변두리였던 아시아 과학자들이 미국 혹은 유럽에서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되는 것도 2차대전 이후에는 일반화되었고, 이제는 아시아계 과학자가 없는 실험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이다.

하여간, 과학자의 세계는 예나 지금이나 국경을 넘어서 이동하는 것이 빈번한 세계이다. 스크린샷 2015-10-19 17.35.45

출처

왜 과학자라는 직업은 다른 직종에 비해서 이동이 비교적 많은 편에 속할까? 아마 이는 과학의 보편성에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다른 전문직 – 법률가, 의사, 엔지니어 – 등에 비해서도 과학자가 국경을 넘는 것의 장벽은 훨씬 좁다. 아마 이것은 어느정도는 특정한 사회의 규범에 맞도록 훈련되는 이러한 여타 전문직에비해서 과학자라는 직업의 보편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가령 법률가나 의사라면 국경을 넘은 다음에는 각각 다른 국가에서 맞는 자격을 별도로 취득하기 전에서는 그 전문성이 인정되지 않지만 Ph.D는 일단은 어디서나 Ph.D 이다. (물론 출신 국적에 따라서 약간의 편견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차피 오늘날의 과학자는 어디에서 일하건 일단은 국제무대를 상대로 일하도록 교육되어 왔기 때문이다.

3. 과학자는 원래 유목민

과학의 보편성 때문에 과학자가 다른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다른 직업군에 비해서 용이한 것만으로 과학자의 빈번한 이동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과학자가 그리 빈번히 이동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과학연구라는 것의 본질적인 특성에 있다.

많은 과학자들은 자신이 수행하는 과학에 연구비를 타내기 위하여 그 과학이 창출하는 효과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과학은 과학이 창출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기대하지 않았던’ 부수효과는 분명히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러한 부수 효과 자체를 기대하고 과학을 하는 경우 오히려 그닥 대단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즉, 과학은 근본적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발전시키고 산업이 부흥되면 부수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과학이라는 것이다. 아마 근대과학이 발전된 어떤 국가의 사례를 살펴봐도 경제와 산업의 발전보다 과학발전이 앞서는 경우는 그닥 살펴보기 힘들 것이다. 즉, 잘 살기 때문에 명품의류를 사는 것이지, 명품의류를 샀기 때문에 잘 살게 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 되겠다.  국가라는 차원에서 과학은 일종의 ‘당장 안해도 먹고사는데는 그리 큰 지장은 없지만 제대로 안 하면 뭔가 국가로써 폼이 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자의 세계적인 이동 자체는 결국은 과학의 본연적인 속성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가령 초원을 떠도는 유목민이 한 곳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풀이 나는 지역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수 밖에 없듯이 과학자는 ‘과학에 대해서 투자를 잘 하는 국가’ 를 찾아 떠돌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전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쭈욱.

4. 그래서 그게 나쁜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좀 자괴감에 빠지는 과학자도 있을 것이다. “아니 우리가 집시야, 유랑극단이야, 즉 ‘장사’ 가 잘되는 곳을 찾아 떠돌아 다닐 수 밖에 없는 게 우리의 운명이라는거여?”

사실 농경민족의 후예인 한국인 과학자들의 경우 어느 한 곳에 뿌리내리는 인생이 FM, 그렇지 않은 인생은 떠돌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걍 느낌적 느낌이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근거를 가지고 하는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과학자를 선택한 이상 과학의 속성이 원래 그렇고, 과학에 대해서 투자하는 나라는 살아생전에 몇 번씩 바뀌게 된다. 남들이 양떼를 이끌고 풀이 있는 쪽으로 갈때, 풀 다 뜯어먹은 곳에서 버틸텐가?

오히려 이러한 과학자의 유목민적인 속성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우리는 많은 속박에서 해방되게 된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이 있는데,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누군가가 악용해서 더 기분이 안좋은)

그러나 과학자에게 ‘조국’ 은 뭔가? 자신이 인류 최선단에 서 있는 분야를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는 나라가 있다만 그 곳이 결국 당신의 ‘조국’ 이 된다. 만약 당신의 혈연적인 조국이 당신의 연구를 지원하지 않는다면? 그런 나라를 찾아가면 된다. 그게 가능한 직업군이 세상에 별로 없다. 그 중에 제일 쉬운 게 과학자이다.

과학자의 마음을 얻고 싶고, 보다 많은 세계적인 과학자가 당신의 나라에서 연구하는 것을 보고 싶으면, 국가가 알아서 과학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살펴볼 일이다.  실력을 갖춘 과학자는 어디에 가도 ‘갑’이고, 그들에게 잘해주는 곳이 그들의 조국이다.

그렇다면 과학자가 아닌 분들이라면 왜 굳이 한국에서 과학을 해야 하는지를 물을 것이다. 한 500년 정도가 지난 후에 후세의 역사가가 역사를 기록한다고 할때 과연 그 당시의 한국을 뭘 가지고 기억할 것인가? 한강의 기적? 아니 500년이 지난 다음에 지금 한강변에 있는 무엇이 서있을 것 같은가? 휴대폰, 자동차? 아니, 지금 당신은 500년 전에 마차 생산 그당시 세계 5위 국가가 어딘지, 시계 생산 종주국이 어디었는지 기억하는가? 아마도 한국에서 ‘500년 뒤에도 기억될 인류 지식의 확장’ 이 지금 일어난다면 한국은 기억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까.

아니, 한국이 500년 이후에 기억되느냐와 같은 사소한 것을 떠나서, 500년, 1000년 후의 인류에게 당신은 뭘 남겨주고 싶은가부터 생각하자. 이렇게 기억되기 싫으면 알아서 잘 하든지. 근데 이건 과학자 아닌분들이 더 신경쓸 문제일 것 같다. 우리는 뜨면 그만..

2 thoughts on “과학자는 원래 유목민

  1. 현재 북미에서 바이오 쪽 박사 과정 유학 중인데 정말 공감가는 글이네요.. 내 가슴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데, 커리어라든가 졸업 후 대우를 생각하면 외국에 남아 있는 게 이성적으로 옳은 선택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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