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현미경 덕후의 삶

아래의 글은 뉴욕타임즈의 2015년 8월 28일자에 실린 기사대충 번역한 그리고 쓸데없는 잡설을 붙인 내용이다.  번역 불평하려면 원문보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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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베치그 (Eric Betzig)

2014년 10월 노벨화학상은 세포내에서 벌어지는 생명현상을 보다 높은 해상도로 관찰하여 생물학 연구를 변모시킬 수 있을지도 모를 새로운 종류의 현미경을 개발한 세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이중 한명은 에릭 베치크 (55, 하워드휴즈 의학연구소 자넬리아 캠퍼스 그룹리더) 이다. 이번주 사이언스에는 살아있는 세포를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디테일로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에 대한 논문이 나왔는데 이것은 이 사람이 몇십년동안 추구하던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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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주간지의 표지

베치그 박사와 인터뷰한 내용이 아래에 있다.

당신이 새로 만들었다는 그 현미경이 현재 사용되는 것과 어떻게 틀린가요?

현재 대부분의 생물학 연구실에서 사용되는 광학현미경은 세포내에 있는 개별 분자를 볼만큼 충분히 확대를 할 수 없습니다.우리는 세포 내를 매우 자세히 관찰할 수 있지만 개별 분자를 보려면 이것보다 더 100배는 확대해서 봐야됩니다.최신의 전자현미경을 이용하면 분자 수준의 관찰을 할 수 있죠.그렇지만 이 경우에는 강한 전자로 세포를 쪼여야 하기때문에 간단하게 말해서 살아있는 세포를 실시간으로 볼 수는 없어요.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은 세포 내의 구성요소들을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현미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즉 궁극적인 목적은 분자생물학과 세포생물학을 통합해서 어떻게 생명이 없는 분자들이 모여서 생명을 이루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죠.

박사님은 자신을 생물학자라고 생각하시나요?

근데, 사실 저는 뭐라고 제 자신을 규정하는건 좀 별로예요. 원래 물리학을 공부했지만 내 자신을 물리학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노벨 화학상을 받았지만 전 화학을 전혀 몰라요. 저는 생물학자들하고 노상 같이 일하지만, 제가 아는 생물학 지식은 모두 일천한 수준입니다. 내 자신을 꼭 규정해야 한다면 ‘발명가’ 라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제 아버지도 발명가였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자동차업계에서 필요한 기계 및 장비를 발명하고 개발하는데 평생을 보냈습니다. 즉 저는 발명가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언제부터 이런 현미경을 만들기 시작하셨나요?

저는 코넬대학교의 원생이던 1982년부터 이 분야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1992년에 벨 연구소 (Bell Laboratory)에 제 실험실을 차리게 되었죠. 거기서 니어-필드 현미경 (near-field microscope) 라는 장치를 개발했는데 어느 정도는 작동을 한 셈입니다. 그렇지만 그 장비는 너무 복잡하고, 느리고, 샘플에게 손상을 많이 주기 때문에 살아있는 조직에 사용하기는 너무 어려웠어요. 저는 여기에 실망하고 1994년에 벨 연구소를 그만두었습니다.

(역자주 : ‘에이..연구업적 없어서 쫒겨난거 아냐’ 라고 생각할 분이 있을텐데 회사 중에 요런 논문도 내고 죠런 논문도 내고 했으므로 적어도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자신이 추구한 목표가 달성되지 못했다고 빡쳐서 그만두었다는 이야기 ㄷㄷㄷ)

회사를 그만둔 직후에 회사에서 만든 실험에 착안하여 간단한 논문을 1995년에 썼는데, 이게 결국 10년 후에 photoactivated localization microscopy – PALM 의 근간이 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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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백수(…)라서 그냥 자기 집주소 쓰고 가공의 회사 이름 하나 넣어서 논문을 냈다. ;;;;;

10년이요? 왜 이렇게 오래걸렸나요?

글쎄요, 한가지를 말씀드리면 벨 연구소를 그만둔 다음에 저는 매우 우울한 상태였습니다. 전처와 저는 그때 첫 애를 가졌고, 집에서 주부로 애 보면서 앞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했습니다. 의전원이나 갈까? 요리사가 될까? 저는 더이상 현미경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것도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어요.

놀랍게도, 회사를 그만둔 지 몇달후에 어떻게 내가 꿈꾸던 현미경을 만들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애기 유모차를 끌고있던 도중에 말이죠. 그 아이디어는 각각 떨어져 있는 분자간의 거리를 어떻게 측정하느냐에 대한 것이었죠.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3페이지짜리 논문을 써서 냈는데, 나중에 노벨 위원회가 저한테 노벨상을 준 것은 바로 그 논문 때문이라고 그러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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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설명자료에서도 분명히 1995년 논문이 중요하다고 나와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논문 자체는 별로 인용이 안 되었습니다. 아마 20년 동안 100번 정도? 이걸 보면 인용빈도를 가지고 연구의 임팩트를 따지는 것에 대해서 좀 뭔가 생각해볼 게 있는 것 같아요.

그 다음에 8년동안 저는 민간산업계에서 일했는데요, 민간산업계에서 일하는 것은 과학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역자주 : 이 양반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자동차 제조장비 회사에서 일했다. 그래서 집채만한 자동차 조립에 필요한 기기를 차 한대 크기로 축소한 기계를 만들었다. 수백만불의 개발비를 들여서 개발된 기계는 아주 잘 작동했다. 그런데 딱 두 대 팔렸고 상업적으로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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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계 만들다가 아버지 회사 말아먹었다

(아버지 회사 말아먹은다음에 무직으로) 2004년에 개인적으로 또 해메고 있었는데요, 벨 연구소에 같이 다니던 동료인 헤럴드 헤스를 찾아갔습니다. 헤럴드는 제가 벨 연구소를 퇴직한 몇 년 후에 역시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그 당시 디스크 드라이브를 테스트하는 장비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역시 현재 하고 있던 일에 만족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둘이서 같이 요세미테 산 같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여행을 하면서 앞으로 도대체 뭐 하고 살아야 할지를 고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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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에서도 실직한 아빠들은 회사가는척 하고 산에 올라간다

그러다가 지난 10년 동안 현미경 분야에서 나온 여러가지 논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헤럴드의 거실에서 10 년전에 제가 애기 유모차를 밀면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한 현미경인 PALM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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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네집 거실에서 만든 현미경 (역자주 : 자기 집에서 만들지 않고 친구 거실에서 만든 이유는 헤럴드 헤스는 당시 싱글이고 이 사람은 유부남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원히 고통받는 솔로부대)

그렇게 만든 것에 만족했습니까?

어느정도는요. PALM 은 이전에 말한 한계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2008년이 되서 저는 또 (!) 싫증이 나서 좌절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자주 : 이 사람이 2014년에 노벨상을 받은 업적은 PALM 개발까지이다) 그래서 PAM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다른 종류의 현미경에 대해서 연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도 그때는  저는 이미 하워드 휴즈 연구소에 취직이 되서 다른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냥 하면 되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래티스 라이트쉬트 현미경 (lattice light sheet microscope) 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이 현미경을 이용해서 기존에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살아있는 세포를 촬영할 수 있지만 세포에는 손상을 거의 안 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해상도 수준에서는 그 당시에 있던 다른 현미경에 비해서 특별히 나을 게 없었지요.

그래서 저는 매우 발전된 SIM microscope 라는 것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하워드 휴즈 연구소의 동료인 맷 구스타프손 (Mats Gustafsson) 에 의해서 시작된 것으로써 샘플을 고해상도로 찍으면서도 매우 높은 속도로 샘플을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맷은 제 사무실 옆에 있었고, 제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똑똑한 – 참고로 저는 아무한테나 이런 말 안합니다만 –  사람이었어요.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맷은 뇌종양에 걸려서 201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맷이 세상을 떠난 후에 저는 맷이 하던 그 프로젝트를 인계받아서 현미경을 개선시켰습니다. 그 이후에 우리는 그가 만든 고해상도 현미경을 살아있는 세포를 촬영할 수 있을만큼 빠르고 세포에 해를 주지 않게 개선했어요.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가 사이언스에 나온 논문입니다. 우리는 마침내 세포의 복잡성과 역동성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진 셈입니다.

대충 이런 것들을 찍을 수 있다.

노벨상을 탄 게 인생에 영향을 주었나요?

사실 노벨상을 타서 저의 행복한 생활에 지장이 꽤 많아요. 전 여행다니기 싫어하는데 와서 강연해 달라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재혼해서 2살, 5살짜리 애가 있어요. 그런데 제가 유명해진 바람에 해야 하는 여행들, 수많은 이메일 때문에 제가 제일 사랑하는 두 가지에 지장을 받습니다. 제 가족과 제 일 말이죠. 뭐 근데 이게 다 제가 자초한 일이죠. 저는 요즘 “안되겠는데요” 를 좀 더 자주 말하는 데 익숙해져가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는 원래 안정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최근의 성공이 자신감을 좀 더 가지게 된 점은 있죠. 반면에, 장래가 불안정하다는 것은 언제나 저를 생산적으로 만들어왔습니다. 요즘 저는 제 뺨을 때리며 혼잣말하곤 합니다. “넌 계속 나아가야해. 이게 끝이 아니야. 이것은 그냥 인생의 한 챕터일 뿐이야

강연 재미있으니 한번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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