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 과 ‘진출’ 사이

이공계의 석박사급 인력 중 해외에 진출하여 연구활동을 하면서 귀국할 의사가 없는 사람들을 일컬어 ‘두뇌유출’ 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꽤 익숙한 일이다. 또한 이러한 ‘두뇌유출’ 이 심각하여 국익의 창출에 어려움이 있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네 하는 이야기 역시 나온지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일단 ‘유출’ 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자.

유출 : 네이버 국어사전

유출1 파생어 : 유출되다1, 유출하다1

명사

1 .으로 흘러 나가거나 흘려 내보냄.
2 .귀중한 물품이나 정보 따위가 불법적으로 나라나 조직의 으로 나가 버림. 또는 그것을 내보냄.

‘유출’ 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나가면 안될 것’ 이 나가버리는 것에 사용되는 용어이다. 즉 좌초한 유조선에서 새어나가는 기름으로 해양이 오염될 때,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물이 새나갈 때, 혹은 서버에 귀중히 보관되어야 할 개인정보가 새어나갈때 ‘유출’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니 과학기술을 전공한 연구인력이 해외에 취업하여 해외에서 연구활동을 하는 경우, 이것을 ‘유출’ 이라고 표현한다면 여기에 당연히 부정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즉 직업인 중의 하나로써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지는 과학기술 연구자가 (국내에 적절한 일자리가 없어서) 해외에 취업하고 국내에 들어올 수 없는 경우 이것을 ‘유출’ 이라고 표현한다…뭔가 이상한 이야기 같지 않은가? 물론 ‘기름’이나 ‘원유’ 처럼 소모가능한 자원이고 안 빠져나가도록 보존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유출’ 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거 내가 잘 안다. 이 자식들아. 

과학기술인 이외에 ‘해외 취업’ 을 많이 하는 사람은 프로 운동선수를 들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유출’ 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가? 물론 국내 프로야구 리그에서 리그를 주름잡는 탑 플레이어가 해외 리그에 진출하면 분명 국내 프로야구 리그의 경기력은 위축될수도 있다. 그러나 오승환, 이대호, 박병호가 해외리그에 ‘취업’ 을 한다고 하더라도 ‘유출’ 이라는 용어는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다. 그냥 ‘진출’ 이라고 하지. 왜 직업인(과학-공학자 혹은 프로 운동선수) 의 해외 취업에 있어서 직종별로 다른 잣대를 사용하는가?

물론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할수도 있다.

“프로운동선수들이 한국 리그보다 수준이 높은 상위리그에서 활약하면 이 활약상 자체가 국민들에게 화제가 되며 이것이 국익에 기여를 한다”

 

그러나 과학자는? 한국의 우수한 과학자 중에서 해외의 유수 대학에 자리잡아 학계의 중진 내지 석학으로 자리매김한 과학자들은 상당히 많다. 이러한 분들 중에 가령 이런 분들이 계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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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홉킨스대 하택집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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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김필립 (金必立) 교수

이런 석학들의 랩에서 많은 한국 학생, 포닥들이 연구했었고 이들중의 상당수는 한국 및 전세계의 대학및 연구소에서 활발하게 연구를 하고 있다. 즉 세계수준의 연구를 해외에서 행하고, 그 연구를 직접 접한 후학들이 국내에서 활약하고 있으므로 직접적으로 국내의 과학수준을 올리는데 매우 큰 기여를 한 분들이다. 이런 분들 역시 ‘해외 두뇌 유출’ 인가? 과연 이렇게 해외 연구계의 ‘1부리그’ 에서 주전으로 맹활약을 하시는 분들의 ‘국익 기여’ 가 스포츠 선수의 해외리그 활동에 비해서 폄하될 만한 일일까?

그리고, 여기 언급된 분들과 같이 한국에서 학부를 졸업한 이후 대학원을 해외로 유학하여 학위를 취득하고, 포닥을 마치고, 해외에서 연구실을 차리고 해외 정부에서 연구비를 수주하여 연구를 수행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과연 이들을 과학자로 성장시킨 국가는 어디인가? 기껏해야 학부 교육을 담당한 한국인가 아니면 대학원 및 포닥 과정, 그리고 독립연구자로써 성장시킨 해외의 어떤 국가인가?

만약 이런 석학 중의 일부가 해외의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다고 하자. 이 경우에 ‘두뇌 유출’ 은 어떤 쪽으로 일어나는가? 이러한 석학을 키우는데 그닥 큰 보탬을 주지 않은 한국 정부보다는 이들을 과학자로 키우고, 독립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해외의 정부가 ‘한국으로’ 두뇌가 유출된다고 생각하는게 당연한 것이 아닐까?  즉 지금까지 해외에서 과학자로 키워준 외국에서 두뇌를 유출시켜서 과학 및 기술을 발전시켜온 한국, 즉 해외 국가의 납세자의 세금으로 수행된 연구로 육성된 과학자/공학자의 덕으로 기술을 발전시켜온 일종의 ‘무임승차자’ 에 불과한 나라가 감히 두뇌 유출을 이야기한다?  이런 것을 보고 그냥 적반하장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석학급이 아닌 그냥 일반적인 박사학위 취득자, 혹은 박사학위 취득후에 해외에 포닥과정으로 연구하려 가서 해외를 떠돌고 있는 과학자들을 두뇌 유출이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과연 이 대.한.민.국. 은 이런 고급인력들에게 어떤 일자리를 제공했는지를 묻고 싶다. 즉, 비싼 납세자의 세금으로 양성된 국내의 박사학위자들이 해외에 떠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이들의 능력과 경험에 부합되는 적절한 일자리가 없어서 아닌가? 그런 일자리를 제공할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무슨 두뇌 유출을 운운하는가? 오히려 국내에서 양성되어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잉여 배출’ 된 고급인력을 자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해주고 있는 해외의 정부에 절이라고 해야 할 상황인데 무슨  Canis familiaris 싸운드인가? 

마지막으로 ‘이미 유출된 위험물’ 은 기름, 혹은 방사선 물질처럼 뭉치면 폭발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함부로 ‘과학두뇌 유출’ 이라고 쓰는 양반들, 밤길 조심해라. 괴수가 덮치면 약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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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프로젝트가 흥할때와 망할 때

성공적인 거대 과학/공학관련 프로젝트가 있는가 하면 많은 돈을 쓰고도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한 프로젝트가 있다. 성공하는 프로젝트의 예를 들자면 (1) 맨해튼 계획 (원폭개발) (2) 휴먼 지놈 프로젝트 (3) 아폴로 계획과 같은 것을 들 수 있겠으나 망한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경우로는 1970년대 닉슨 행정부 시절 추진된 ‘암과의 전쟁’ 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똑같이 많은 돈을 들이고도 어떤 프로젝트들은 성공하고, 다른 프로젝트들은 성공하지 못했을까.

일단 ‘성공했다’ 고 평가되는 프로젝트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듯 싶다.

(1) 원하는 목표가 가능하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확립되었으며 이를 완수할 수 있는 기술의 기본 원리가 확립된 경우

일단 휴먼 지놈 프로젝트라는 것이 시작되던 1980년대 말 – 1990년대 초에 대해서는 이제 유전암호에 대한 기본적인 성질은 완전히 알려져 있으며, 상당수의 유전자들이 실제로 클로닝되어 염기서열까지 결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또한 1977년 프레데릭 생거에 의해서 DNA를 효율적으로 시퀀싱할 수 있는 기술 역시 개발되었고 자동화가 막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맨해튼 계획의 경우에도 핵분열에 대한 기본 이론은 확고하게 확립된 상태였고 우라늄 235가 중성자를 흡수하면 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이 1938년에 확인된 상태였다.

물론 3Gb라는 인간유전체의 막대한 서열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기반 기술의 확립 (오토매틱 시퀀서의 개발, 100kb 이상의 큰 조각으로 DNA 단편을 클로닝한후 이들의 순서를 정하는 기술, 수백bp 의 시퀀싱 리드를 서로 비교하여 긴 서열을 조립하는 어셈블리 기술 등등) 이 필요했지만 이러한 것은 엄밀히 말하면 기술적/공학적 문제였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해결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진 상황이었다.

반면에 ‘암과의 전쟁’ 이 전혀 성과가 없이 끝났던 이유는 이러한 캠페인이 벌어질 때까지 우리가 암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암이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유전자의 돌연변이 때문인지? 아니면 감염성이 있는 병원체 때문인지에 대한 것조차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암과의 전쟁’ 이라는 켐페인에 의해 수많은 자금이 흘러들어왔다. 그 결과 이 연구비 중의 상당수는 ‘암을 유발하는 레트로바이러스를 찾는다’ (대개의 암이 전염성이 아니라는 것은 그때에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와 같은 헛된 연구에 사용되고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즉, ‘암과의 전쟁’ 을 시작하긴 했는데 ‘적’ 이 누구인지도 모른채 무작정 전쟁터에 뛰어들어간 격이라고나 할까.

(2) 구체적으로 달성 가능한 뚜렷한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경우

휴먼 지놈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어느정도의 정확도 (10,000염기에 에러가 1개 있는 수준) 으로 인간의 모든 염기서열을 결정한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계획된 시기 내에 이 목표를 달성한다면 성공이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인 것이다. 아폴로 계획에서는 사람을 무사히 달에 보냈다가 귀환시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그렇다면 ‘암과의 전쟁’ 은 어떻게 하면 성공한 것이고 어떻게 하면 실패한 것인가? 이렇게 ‘성공’ 과 ‘실패’ 를 구분할 수 있는 뚜렷한 기준이 없는 프로젝트는 그 프로젝트가 무엇을 성취했는지와는 상관없이 아무리 잘 해봐야 ‘절반의 성공’ 일 수 밖에 없다.

최근에 제시되는 거대 과학 프로젝트 (BRAIN initiative, ENCODE) 등의 미래를 예측하는데는 과연 이러한 프로젝트들이 얼마나 잘 정의된 목표와 성공/실패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3) 프로젝트의 성과물이 해당 프로젝트에 직접 연관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가?

휴먼 지놈 프로젝트에 그렇게 큰 비용이 사용되었음에도 여기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여기서 산출된 레퍼런스 지놈 시퀀스가 직접 지놈수준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레벨에서 ‘사람의 유전자’ 를 연구하는 모든 사람, 아니 생물학을 연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참고가 되는 자료로써 기능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해당 연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별 쓸모가 없다고 느껴지는 성과물이 생산되는 프로젝트라면 자연히 해당 분야의 연구자 몇 명만 관심이 있을 일에 수백명의 개별 연구자들의 연구를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 들어간다는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수행하는 프로젝트가 자기 생각에는 폭넓은 사람들에게 널리 사용될 수 있는 데이터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몰라주고 돈낭비라고 (부당하게) 비판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일단 이러한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오오오력을 해라! 즉, 내가 생산하는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있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너님의 연구에 어떤 임팩트를 줄 것인지를 설득하는 능력이 이러한 거대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기본인 것이다. 그게 안되면 못하는거지 모

(4) 프로젝트를 이끄는 사람(들)의 과학적 역량과 정치력이 조화를 이룰 때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입안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정치력이 필요하다. 일단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많이 들고, 이를 위해서는 돈을 댈 (주로 정부겠지만) ‘물주’ 를 설득할 정치력이 필수적이다. 이 뿐인가?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참여자들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갈등의 요소가 존재하는데, 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조정하느냐도 중요하다. 즉 이러한 프로젝트를 이끌기 위해서는 소위 말하는 ‘정치력’ 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력은 프로젝트의 목표를 설정하는 과학적 통찰과 같이 가지 않으면 대개 쓸모가 없어진다. 즉, 아무리 정부를 잘 설득하고, 이해당사자들간의 조정을 잘 해서 무난히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해당 프로젝트가 얻고자 하는 과학적 목표가 별볼일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휴먼 지놈 프로젝트와 같은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프랜시스 콜린스 (Francis Collins)와 같이 과학적으로도 훌륭한 업적을 남겼지만 행정적으로는 더 탁월했던 사람이 있었고, 영국쪽에서는 존 설스턴 (John Sulston)과 같은 사람들이 큰 역할을 하였다. 즉 프로젝트를 이끄는 리더들의 과학적 비전과 정치적 역량이 조화되었기 때문에 ‘돈 값 하는 프로젝트’ 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에서 왜 대형 과학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든가가 쉽게 짐작이 된다. 한국과 같이 과학적 역량과 정치력이 조화를 이룬 리더를 찾기 힘든 곳이 세상에 없다 -.-;;; 정치력이 있는 분들은 그런 큰 과학프로젝트를 이끌 만한 과학적 안목이 없으며 과학적인 안목이 있는 분은 그럴 만한 정치력이 없다는 것은 한국 과학계에 조금이라도 발을 걸친 사람이라면 쉽게 아는 일이다. 한국에서 정치력을 키우려면 과학적 안목을 쌓을 시간이 부족하게 되기 십상이고 과학적인 안목이 높은 분들이 한국에서 정치력이 있기는 어렵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엉뚱한 결론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니 한국에서는 웬만하면 거대과학 프로젝트는 안 하는 게 좋습니다.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