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기술의 원천을 찾아서 : PCR 이야기

서두 : 돈 되는 기술’ 의 원천을 찾아서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항상 과학계에 일하는 사람만 만나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들과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있다. 가령 명절에 오랫만에 만나는 친척들이 “그래, 요즘 뭐 하고 있나?” 하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상황에 따라서 틀리겠지만 열심히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했더니 그 친척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볼 때가 있다. “….그걸 연구하면 앞으로 전망이 좋은가?” 보다 직설적인 분이라면 이렇게 물어보기도 한다.

그거 하면 ?

상황에 따라서 틀리지만 “그거 하면 돈 돼?” 라는 물음에 “그럼요!” 라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중력파를 검출한다든지와 같은 연구는 제아무리 상상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그 연구가 어떤 실용적인 가치, 즉 가까운 시일 안에 ‘돈’ 과 연결되는를 줄수 있을지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하기 힘들 것이다. 심지어 명백하게 목적이 보이는 응용연구를 하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지금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상용화되서 실제 경제적인 이익으로 실현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즉 대개의 자연과학 연구는 어차피 직접적인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반대로 ‘확실히 돈이 되는 연구’ 는 무엇일까? 이론적으로 그 가능성이 예측되었고, 실험적으로 그 이론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시간, 노력(=돈)을 들여서 이들을 구체화하고 최적화하여 산물을 만드는 것 정도는 ‘확실히 돈이 되는 연구활동’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반도체의 미세공정을 한 단계 낮추어 수율을 높인다든가, 특정한 단백질을 저해하는 화합물을 찾고, 이를 최적화한다든가 이런 것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기존에 이미 알려진 원리를 구체화하는 ‘개발’ (Development) 에 속하는 일로써, 엄밀히 말하면 공학의 영역에 속하는 일일 것이다. 물론 산업화를 위해서는 이러한 구체적인 개발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발’ 은 대개는 이전에 존재하는 ‘뭔가’ 를 더 낫게 개량하는 일에 속한다. 그렇다면 그 처음의 ‘뭔가’ 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그 ‘뭔가’ 를 태어나게 하는 이론과 실험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가령 지금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산물을 생각해 보자. 휴대폰, 컴퓨터, 자동차,  항바이러스약, 바이러스 진단 키트 등등..분명히 전 세기에는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기존에 개념조차 없었던물건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 등장하게 되는가. 생각외로 이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아마도 우리 주변에 보이는 현대문명의 산물 우리가 이것의 탄생과정을 개념 창시 단계부터 바라볼 있었던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 할 이야기는 그러한 기존에 없던 개념 어떻게 탄생하고, 이것이 어떻게 우리의 특정한 문제를 해결할 있는 기술로 발전하여, 실제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하나의제품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작은 전혀 기대하지 않던 곳부터 일어난다.

어떤 미생물학자
이 이야기의 시작을 이끌 사람은 톰 브록 (Thomas D Brock)이라는 사람으로써 1926년생이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후 2차세계대전으로 징집되어 해군에서 복무하다 제대후 1946년 오하이오 대학에 입학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버섯과 효모에 대한 연구를 하여 1952년에 학위를 취득한다. 그는 대학에서 연구를 하기를 원했지만 학교의 자리는 그리 쉽게 나지 않았고 그러다 항생제를 연구하는 제약회사 업존 (UpJohn) 에 취업을 하게 된다. 이전에는 세균학에 대한 경험이 없었지만 회사에서 항생제 관련한 미생물을 스크리닝 하는 등의 연구를 하면서 세균학 연구에 대한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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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그는 1960년 인디애나 대학에 조교수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다. 그는 여러가지 종류의 미생물 관련 연구를 했지만 점점 미생물 생태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던 도중 발견한 해양미생물인 Leucothrix mucor 라는 미생물이 필라멘트 형태로 자라면서 매듭 형태의 모양을 형성한다는 현상을 발견하여 S모잡지에 표지로 실리기도 한다.
여튼 그는 부지런히 연구하는 미생물학자였다.
끓는 온천 속의 미생물
그러던 중 1964년 그는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 여행을 갔다.  거기서 그는 다음과 같은 광경을 보았다.%ec%8a%a4%ed%81%ac%eb%a6%b0%ec%83%b7-2016-09-28-15-14-12

뜨거운 온천 주변에 온통 초록색의 물결이 있고 위치에 따라서 색이 틀려지는 것을 보았다.

이거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이 아닐까? 그는 온천이 동적 평형을 이루는 생태계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 속에 어떤 미생물이 존재하는지를 찾아보려고 했다. 그는 광합성에 관심이 있었으므로 이렇게 채취한 샘플 중에서 클로로필 함량을 측정함으로써 온천 내에서의 미생물 생태계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1965년부터 샘플을 채취하였다.

그러나 어떤 온천에서는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식으로 핑크색의 거품이 일어나기도 했다. ‘문어못’ (Octopus Spring) 이라고 이름붙인 곳에서는 끊임없이 핑크색의 물질들이 흘러나왔고 여기의 온도는 섭씨 82도에 달했다. 과연 이렇게 높은 온도에서도 미생물이 살 수 있을까? 그 당시까지 알려진 미생물 중 가장 높은 온도에서 사는 미생물은 섭씨 55도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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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을 채취해서 분석을 해 본 결과 단백질이 존재하였다! 이 이야기는 여기에 뭔가 생명체가 살고 있을 것이라는 의미였다.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여튼 그는 더 본격적인 연구를 하기 위해서 미국과학재단 (National Science Foundation:NSF)에 옐로우스톤 온천의 미생물, 특히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을 중심으로 연구를 하기 위한 연구비 신청서를 제출하였고, 이것이 통과되서 1966년부터 연구비를 받아서 본격적으로 옐로우스톤의 온천에 사는 미생물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학부생이 찾은 미생물 
1966년부터 톰 브록은 옐로우스톤에서의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연구를 위해서는 거들어 줄 인력이 필요하기 마련 이때 학부 2학년생의 허드슨 프리즈 (Hudson Freeze)라는 학생이 실험실에서 학부연구생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브록 교수는 그에게 같이 옐로우스톤에 가서 샘플을 채취하지 않겠느냐고 권유한다. 이 학생은 좋다고 (공짜 여행인데 당연히 좋다고 하겠지!) 샘플 채취여행에 따라나선다. 그들은 80도에서 솟아나오는 핑크색 샘플과 이보다 조금 낮은 온도인 70도에서 솟아나오는 몇 군데의 온천에서 샘플을 채취했다.

그래서 그는 학부생 허드슨에게 배양을 시켜보았다. 그는 교수가 시키는대로 샘플을 배지에 넣고 70도에서 배양해 보았다. 며칠 지나도 일반적인 미생물이 배양되면 생기는 것처럼 배지가 뿌옇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튜브의 밑에는 모래 비슷한 것이 조금 깔려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실망해서 튜브를 그냥 버릴까 하다가 다시 70도 워터베스에 놓아두고 며칠동안 내버려 두었다. 며칠 지나니 그 ‘모래’ 비슷한 것이 점점 늘어났다.

그는 “모래가 더 많이 생겼네?” 생각하고 버릴까 하다가, 이를 현미경으로 관찰해 보기로 했다. 그 결과..
막대기 형태의 박테리아가 디글거렸다! 그와 Brock 은 그 박테리아에 YT-1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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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은 다른 온천에서도 비슷한 미생물을 찾을 수 있는지를 보았다. 다른 온천에서도 여러 종류의 미생물이 나왔다. 재미있는 것은 온천이 아닌 인디아나 대학의 온수 파이프에서 채취한 생물에서도 70도에서 배양을 해보니 비슷한 미생물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미생물을 여러가지 온도에서 키워서 최적 생장 조건을 보니 약 69도에서 제일 자랐으며 78도 정도에서도 꽤 자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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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이들은 이들의 발견을 1969년 Journal of Bacteriology 에 논문으로 내고 이 미생물은 Thermus aquaticus 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약칭 T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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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해에는 그들은 Taq유래의 효소인 aldolase 를 정제해서 그 특성을 살펴보았다. 재미있는 것은 미생물 자체의 생육 최적온도는 약 70도이지만, 이 미생물에서 유래된 효소는 약 97도에서도 활성을 유지했다!
처음에 이 미생물을 발견하였을 때는 ‘세상에 이런 일도’ 식의 취급을 받았지만, 높은 온도에서도 활성을 유지하는 효소는 다른 생화학자들에게도 서서히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래서 Thermus aquaticus 유래의 효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한둘씩 늘어갔다.
1976년에는 신시내티 대학의 존 트렐라 (John M Trela) 라는 사람은 이 미생물 유래의 DNA Polymerase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 미생물 유래의 DNA Polymerase 를 추출하여 정제해본 결과 최적 활성 온도가 80도라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분자량은 약 63,000에서 68,000 에 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논문을 하나 내고, 더이상 여기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았다. 조금 늦게 연구를 했더라면 DNA Polymerase를 암호화하는 유전자를 클로닝한다든지 이러한 연구를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아직 유전자 클로닝 등에 대한 것들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던 시기여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이렇게 논문 하나 쓰고 더이상 이 미생물의 DNA 중합효소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십여년 후에 땅을 치고 후회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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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를 안 내고 뭐했습니까 님들아
한편 1980년, 러시아 (당시 소련) 의 과학자들이 역시 비슷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역시 Thermus aquaticus YT-1 유래의 DNA Polymerase를 정제하고 그 활성을 보았으며, 다른 DNA Polymerase와 유사하게 마그네슘 이온이 반응에 필요하고 분자량은 약 62,000 에 효소 활성의 최적온도는 70도임을 확인하였다. 그들 역시 논문 하나 내고 더 이상 연구를 하지 않았다.

극한미생물

한편 Brock이 최초로 이렇게 높은 온도에서도 미생물이 산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 다른 연구자들도 이렇게 높은 온도에서 사는 미생물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를 시도하였다. 특히 바다 속의 해구에서는 Thermus aquaticus 가 생육하는 온도보다 훨씬 높은 온도, 즉 거의 ‘끓는물’ 에서 살 수 있는 고세균 – Archeae 가 발견되었다. 독일의 미생물학자인 Karl Stetter가 발견한 이 미생물이  Pyrococcus furious 이다.이 미생물은 섭씨 70도에서 103도까지 자라며, 생육 최적온도는  ‘끓는물’ 온도인 섭씨 100도이다. 섭씨 70도 이하는 이 녀석들에게 너무 차가운 냉장고 수준의 온도라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

Thermus aquaticus를 시작으로 고온, 극단적인 pH 등 정상적으로 생물이 살기 힘들다고 생각되던 조건에서 잘도 살아남는 미생물들이 발견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이러한 미생물은 그저 ‘세상에 참 별난 일도 있네’ 수준의 호기심거리 정도로만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 미생물 유래의 효소 역시 높은 온도에서 활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이들은 서서히 응용의 용도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가령 이 미생물 유래의 단백질 분해효소인 ‘aquolysin’ 이라는 효소가 역시 80도 이상의 온도에서 최적활성을 나타내고, SDS같은 계면활성제에 저항성을 가진다는 것이 1988년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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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Bacillus thermocatenulatus 라는 박테리아에서는 70도 이상에서도 활성을 나타내는 지방분해효소가 발견되었다. 아니, 단백질 분해효소나 지방분해효소가 높은 온도에서 활성을 나타내는 것이 뭐가 중요하냐고? 빨래의 때의 성분인 단백질이나 지방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가 높은 온도에서 활성을 나타낸다면 더운물 빨래를 할때도 넣을 수 있는 세제용 첨가물로써 유용하겠지? 그리고 여러가지 당의 가공에 있어 사용되는 효소의 경우에도 온도가 높은 상태에서도 효소반응이 유지된다면 더 빠르게 효소반응이 일어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성질을 가진 효소는 꽤 유용하게 사용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극한미생물 유래의 효소가 나름 쓸모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는데, 역시 극한 미생물의 효소가 극적인 역할을 하는 기술이 1980년대 중반에 개발되게 된다. 여기에 설명하기 전에 일단 시계를 다시 뒤로 되돌려 톰 브록과 학부생 허드슨 프리즈가 막 Thermus aquaticus 논문을 출판하던 1960년대 말로 되돌아가보자.

별난 대학원생

한편 1960년대 말, 버클리 대학의 생화학과에는 케리 멀리스 (Kerry Mullis) 라는 이름의 대학원생이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었다. 그가 다니고 있던 랩은 조 닐렌드(Joe Neilands)라는 교수의 랩이었고 주로 연구하는 토픽은 미생물의 철 수송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닐렌드 교수는 거의 랩의 학생들이 뭘 하든 내버려두는 스타일이었던 듯 하고, 멀리스는 그냥 자기 하고 싶은거 아무거나 하면서 60년대말의 대학원 생활을 만끽했다. 생화학과 학생이 우주론에 관련된 논문(?)을 네이처에 개제하는가 하면, 60년대 히피문화의 상징인 LSD를 마음껏 즐기다가 음악 강의를 듣는 등 그 당시의 시대상에 걸맞은 생활이라고 쓰고 막 산다고 읽는 을 하는 젊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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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캐리 멀리스. 사진만 봐서는 멀쩡해 보이는데

그러나 이런 대학원생이라고 쓰고 백수라고 읽는 생활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었다.  지도교수는 결국 멀리스를 졸업시켰으며 -.- 멀리스는 1972년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당연히도 미래에 대한 계획 같은 것이 없었다. 인생 계획이 있다면 막 산다는 말을 듣진 않겠지 학생시절 졸업한 아내가 의대 진학 관계로 캔사스로 이사하자 같이 따라갔다. 거기 의대에서 포닥으로 약 2년 동안 연구를 했다. 그러다가 결혼생활이 깨졌고, 그는 다시 캘리포니아로 되돌아왔다. 딱히 직업이 없어서 빵가게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UCSF의 실험실에서 테크니션처럼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그는 캘리포니아의 Cetus 라는 바이오텍 회사에 부사장으로 있던 친구인 톰 화이트(Tom White)의  DNA 올리고를 합성하는 일자리를 얻어 Cetus에 취업하게 된다. 이때가 1979년이었다.

Cetus

Cetus는 1971년 캘리포니에에서 수립된 거의 최초의 생명공학회사로써,  주된 프로젝트는 당시의 1세대 바이오텍에서 진행되는 것과 같이 인터루킨-2 (IL-2), 인터페론 등의 사이토카인을 재조합 DNA 기술을 이용하여 생산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그 당시 이 회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연구는 해당 유전자를 먼저 확보하는 일이었다. 즉 단백질 서열에서 유추된 DNA 서열에 의거해서 만들어진 올리고를 이용하여 cDNA 라이브러리에서 원하는 유전자를 스크리닝하여 찾아내는 일이 이 회사의 주력 R&D였다. 그래서 멀리스는 회사의 올리고 합성실에서 올리고 합성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Cetus 는 이외에도 여러가지 분야의 연구를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는 유전병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분자진단이었다. 이미 당시에도 몇 종류의 질병, 가령 헤모글로빈 유전자에 대한 돌연변이에 의해서 일어나는 겸상적혈구증 (Sickle Cell Anemia) 의 존재는 알려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 것인가?

물론 1980년대초 당시에도 이론적으로는 재조합 DNA를 클로닝하여 증폭하는 기술과, 1977년 생거의  DNA 시퀀싱 기술이 개발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퀀스를 결정함으로써 개개인의 유전변이를 알아내는 것은 가능했다. 그러나 약 32억 염기서열에 달하는 거대한 휴먼 지놈 안에 들어있는 원하는 조각을 어떻게 찾는가?

그를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1) 지놈을 조각내어 파지 DNA에 연결한 ‘라이브러리’ 를 구축

(2) 이 라이브러리 중에서 원하는 조각이 들어있는 파지를동위원소로 라벨링된 Probe를 이용하여 찾는다.

(3) 이렇게 얻어진 파지에 들어있는 조각을 제한효소를 이용하여 잘게 쪼갠 다음 시퀀스 결정!

출처

말은 쉬어보이지만, 그 당시는 이것 자체만 성공적으로 수행해도 박사학위를 받을 수준의 일, 즉 수년의 시간과 노력이 걸리는 일이었다.  단 한 사람의 유전자에 대해서도 이러한데 개별 환자에 대한 진단과 같은 일은 불가능한 셈이었다. 즉, 지놈 상에 존재하는 특정한 서열 내에 존재하는 변이를 아는 것도 그리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런 것을 비교적 쉽게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멀리스는 옆의 랩의 의뢰로 올리고를 합성해주던 와중에, 해당 랩에서 진행되는 베타 글로빈에 존재하는 돌연변이를 검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최초의 아이디어

멀리스는 1990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게제된 에세이를 통하여 당시 그가 어떤 식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갔는지를 설명한다.

멀리스는 처음에 생거 시퀀싱처럼 우리가 돌연변이를 알아보고 싶은 영역 근처에 대해서 올리고를 만들고 여기에 DNA polymerase와 dNTP, ddNTP 를 넣어 시퀀싱을 하면 안됨?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험을 별로 열심히 안 한 멀리스의 아이디어답게 (…) 이 방법은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든 방법이었다. 즉 약 32억 베이스에 달하는 길고 긴 인간 지놈 DNA에 약 20bp 정도의 올리고와 비슷한 영역은 많이 존재하고, 여기저기에서 붙어서 DNA 중합반응이 일어나면 제대로 된 시그널이 나올리가 없었다.

멀리스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랐다. 만약 지놈 시퀀스 상에서 아래와 같은 G 영역이 G 인지, 아니면 다른 염기인지를 알아보려고 한다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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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DNA 이중나선을 끓여서 떨어뜨리고 양쪽 방향에 해당하는 프라이머를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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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DNA 중합효소와 동위원소로 표지된 ddNTP를 넣는다. dNTP는 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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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만약 원하는 염기서열이 G 라면 ddC 가 프라이머에 들어가고 더이상 중합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동위원소가 프라이머에 DNA 중합효소에 의해서 끼어들어갈 것이며, 이것은 프라이머를 조사해 봄으로써 알 수 있다. 어떤 동위원소가 프라이머에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프라이머 다음 염기가 어떤 염기일지 결정될 것이다. 보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 반대편 가닥에도 프라이머를 만들고, ddG 가 들어가게 되면 의심할 여지가 없이 우리가 알아보려는 서열은 ‘G’ 일 것이다.

그래서 멀리스는 ‘오 나님 좀 똑똑한듯!’ 하고 자신의 아이디어에 만족을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멀리스의 그 회사에서의 직업은 올리고를 합성하는 일인데, 올리고에 종종 반응하지 않은 dNTP 가 들어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dNTP 를 없앨 수 있을 것인가? 만약 dNTP가 올리고에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DNA 중합효소는 중합반응을 진행해 버릴 것이고, 원하는 대로 확인하려는 염기서만 ddNTP가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DNA 올리고를 PAGE 로 정제하면 dNTP와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멀리스는 그런 생각을 못했나보다)

그는 미량의 dNTP를 없애버리기 위해서 그냥 올리고 + 두 쌍의 프라이머 + DNA 중합효소를 넣고 반응을 진행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남아있는 dNTP 보다 올리고의 양이 많다면 어차피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고.

그러던 중,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멀리스의 말에 따르면 그는 이 아이디어를 야밤에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고가면서 떠올렸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Polymerase Chain Reactions

만약 두 개의 프라이머가 지금은 한 염기를 건너서 있지만 어느정도 적당히 떨어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이 상태에서 DNA 중합반응이 일어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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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프라이머의 거리에 상응하는 두 개의 DNA 분자가 생성될 것이다. 여기에 다시 동일한 반응이 일어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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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분자가 4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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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분자가 8개가 되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사이클을 반복할수록 2-4-8-16-32-64로 증가할 것이다. 즉 염기서열을 알고 있는 임의의 DNA 서열은 두 개의 프라이머와 DNA 중합효소를 이용하여 증폭가능하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떠올린 다음날 회사에 가서 도서관을 뒤져보았다. 과연 이런 비슷한 아이디어를 이전에 생각한 사람이 없을까? 이렇게 간단한 아이디어인데? 그러나 실제로 그런 아이디어로 DNA 를 증폭해 낸 사람은 없었다.

그는 이 과정을 시험해보기로 했다.그래서 회사의 다른 분자생물학자들과 이야기를 해 봤다. 그러나!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평소에 그의 회사에서의 평판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상황

그는 그 당시 제넨테크에서 처음 클로닝하여 발표한 인간 신경성장인자(Nerve Growth Factor) 유전자의 400bp 단편을 지노믹 DNA에서 증폭하려고 시도를 했다. 만약 특정한 하나의 엑손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이전처럼 cDNA 라이브러리를 만들고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지노믹 DNA에서 증폭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폭이 되지 않았다! 사실 멀리스는 대학원 때 그리 열심히 연구를 한 사람이 아닌 관계로 실험테크닉이 그리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다. 게다가 콘트롤 실험을 제대로 하지 않는 과학자로써는 매우 안 좋은 버릇도 있었다. 그는 그래서 실험을 프레드 팔루나(Fred Faloona) 라는 테크니션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지노믹 DNA를 가지고 제대로 증폭이 되지 않는 관계로, 그는 그의 아이디어가 진짜로 작동하는지를 보기 위해서 일단 플라스미드에 클로닝된 유전자를 대상으로 약 370bp 의 밴드가 증폭되는지 보기로 했다. 그리고 당시의 사용하던 DNA 중합효소는 일반적인 대장균 유래의 중합효소인 관계로 열을 가해서 DNA 가닥을 풀어주는 과정에서 불활성화된다. 따라서 매 사이클마다 효소를 추가해주어야 했다.

그리하여 약 1984년경 멀리스는 플라스미드에서 원하는 단편을 증폭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실험은 아무런 콘트롤 없이 단 하나의 튜브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제대로 된 콘트롤이 없다고 생각한 Cetus 의 다른 연구원들은 그닥 관심을 두지 않았다.

1984년 가을, Cetus 의 연구원들은 자신들이 연구하는 프로젝트와 그 계획을 발표하는 사내 컨퍼런스를 열었고, 여기에는 노벨상 수상자이자 Cetus 의 자문을 하고 있었던 조슈아 레더버그 (Joshua Lederberg)가 참석하였다. 멀리스도 자신의 결과를 발표하였고 조슈아 레더버그는 이 결과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인다. “만약 제대로 된다면 말이지

지노믹 DNA에서의 증폭과 유전자 검출. 

멀리스를 회사에 취직시킨 톰 화이트는 멀리스의 PCR를 회사에서 진행중에 있던 헤모글로빈 유전자 돌연변이 검사 프로젝트에 응용하기로 한다. 그러나 문제는 멀리스는 그닥 꼼꼼히 실험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또 착실하게 프로젝트에 임하는 성격도 아니었으므로 연구가 잘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대개의 연구자들은 그의 결과를 신용하지 못했다. 게다가 콘트롤 실험을 잘 하지 않은 과학자로써는 매우 안 좋은 버릇도 있었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개시된 지 약 1년이 넘었는데도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는 데이터를 뽑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톰 화이트는 실험을 더 꼼꼼하게 잘 하는 랜달 사이키 (Randall Saiki) 라는 사람에게 멀리스 대신 PCR 관련 실험을 시켰다. 그는 몇 달만에 원하는 데이터를 뽑아내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PCR 을 이용하여 헤모글로빈에 존재해서 겸상적혈구증을 일으키는 돌연변이를 검출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어낸다. 단, 이때의 DNA 증폭 효율은 그닥 좋지 못해서 아가로스 젤에서 밴드를 확인할 수 없어서 동위원소와 써던 블롯을 이용하여 DNA가 증폭된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리고 DNA 중합효소는 여전히 대장균의 중합효소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매 사이클마다 뚜껑을 열고 효소를 넣어주는 반복작업을 수작업으로 해야만 했다. -.-;;

그래서 원래의 계획은 멀리스가 PCR의 이론과 이를 입증하는 결과를 내는 논문과 이를 이용하여 겸상적혈구증을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의 논문 두 개를 동시에 내기로 하였다. 그러나 멀리스는 논문에 필요한 실험을 하는 대신, 회사 컴퓨터에서 프랙탈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래밍 잉여짓을 하면서 놀았다.

그래서 멀리스의 논문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사이키의 응용 논문이 사이언스에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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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폭 산물이 아가로스 젤에서 EtBr로 보이지 않았으므로 동위원소와 써던 블랏을 이용하여 증폭되었다는 것을 표시하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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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증폭된 PCR 산물을 제한효소로 잘라서 지노타이핑을 할 수 있게 된다.

한편 뒤에 투고한 멀리스의 논문은 이미 PCR의 응용 논문이 나왔다는 이유로 사이언스와 네이처에서 모두 리젝되었고 1987년도에 Method of Enzymology 의 이슈에 수록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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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안정성 DNA 중합효소와 PCR 사이클러

이렇게 최초로 등장한 PCR 은 매우 불완전한 것이었다. 즉 사이클마다 연구원이 지키고 앉아있다 대장균의 DNA 중합효소를 1마이크로리터씩 넣어주는 노가다를 해야 했다. 즉 30사이클의 반응을 위해서는 튜브를 열고 30번 효소를 넣어주어야 한다! 한때는 사이클에 맞추어서 DNA 중합효소를 자동으로 넣어주는 기기까지 개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섭씨 95도로 DNA 가닥을 풀어주는 과정에서도 그 활성을 잃지 않는 열에 강한 DNA 중합효소가 있다면? 시약을 추가하지 않아도 한번에 반응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효소는 이전에 발견되었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즉 앞에서 말했듯이  1976년 신시내티 대학의 존 트렐라라는 사람이 이미 Thermus aquaticus 에서DNA 중합효소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상태이다. Cetus 의 연구원들은 이 문헌에 따라 곧바로 Thermus aquaticus 에서 DNA 중합효소를 정제하고, 이를 이용하여 PCR 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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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멋지게 증폭되었다! (A의 9-11). 기존의 E.coli 중합효소로 PCR을 (매 사이클마다 효소를 넣는 노가다를 해 가며) 하는 경우에는 제대로 증폭이 잘 되지 않아서 인간 유전자를 증폭하고자 할때 아가로스 젤에서 밴드를 보는 것은 불가능했고, B에서 보는 것처럼 동위원소를 이용하여 서던 블랏을 통해서만 겨우 원하는 DNA가 증폭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Thermus 의 열 안정성 DNA 중합효소를 이용하니 효소를 더 넣을 필요도 없이 한번에, 그리고 인간 염색체에 있는 DNA를 아가로스 젤에서 단일밴드로 볼 수 있을 수준으로 증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PCR 좀 해 본 사람이라면 ‘당연한 거에 왜 호들갑이냐’ 라고 생각할런지 모르곘지만 이 당시는 이게 당연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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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PCR 산물을 직접 시퀀싱하여 염색체에 있는 염기서열의 변화를 바로 알아볼 수 있게 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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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kb가 넘는 긴 DNA 단편도 증폭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결과를 모아서 그들은 1988년 사이언스에 논문을 출판한다. 이 논문이 출판될 때인 1988년에는 이미 멀리스는 회사를 떠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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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는 온도를 바꾸는 것을 어떻게 자동화할 것인지였다. 아마 처음의 PCR은 연구원이 각각의 온도로 맞추어진 항온수조에 튜브를 옮기며 (…) 실험을 진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 사이클의 반응을 이렇게 진행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를 자동화하기 위하여 Cetus 는 Perkin-Elmer 라는 회사와 합작하여 온도를 바꿀 수 있는 펠티어 소자 (peltier device) 를 이용하여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든다. 이것이 최초의 PCR 기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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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계 써 보신 분 있으려나 모르겠다. 지금 글 쓰는 사람은 이거 써봤다. 요즘 나오는 PCR 기기와 기본적인 원리는 같지만, 요즘 기기는 샘플의 증발을 막기 위해서 위에서 히팅을 하는 히팅 덮개가 있지만 이 기기는 그런게 없다. 그래서 튜브에 샘플의 증발을 막기 위해서 미네럴 오일을 넣어야만 했다. 당시 퍼킨 엘머와 Cetus 는 PCR 기술의 보급을 위해서 이 기기를 미국 내의 대학이나 연구실에 많이 공짜로 뿌렸다고 한다. 그 결과 이 기기는 아직도 중고로 Ebay 등에서 그닥 비싸지 않은 가격에 구할 수 있다.  집에 실험실을 차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 노려볼만 하다!

여튼 PCR은 이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원래 응용용도 처럼 분자진단 등의 용도로 이용되었으나 그후에는 분자생물학 실험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적인 실험 기술이 되었다. 즉 이전에 개발된 DNA 시퀀싱과 DNA 재조합기술과 함께 1세대 유전자 조작 기술의 ‘3종 신기’ 중의 하나가 된 셈이라고 할까. 특히 1990년대 이후에 휴먼 지놈 프로젝트를 비롯한 각종 동식물 및 미생물의 지놈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여러가지 생물의 지놈 시퀀스가 나오는 것과 PCR의 등장은 매우 큰 시너지를 가지게 되었다. 즉 기존에는 특정한 유전자를 얻어서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지루하고 복잡한 라이브러리 스크리닝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이제는 지놈시퀀스가 알려진 유전자라면 지노믹 DNA에서 어떤 서열이라도 증폭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PCR 이전의 분자생물학’ 에서는 특정한 유전자에 대한 클론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플라스미드에 클로닝된 유전자를 타인에게 안 주면 다른 사람은 그 유전자를 분리해 내기 위해서 수년간의 작업을 다시 반복해야만 했었으므로. 그러나 PCR 이후에는 일단 염기서열이 결정되어 있는 유전자라면 지노믹 DNA만 존재한다면 증폭해 낼 수 있다! 결국 PCR의 개발은 분자생물학 실험을 ‘정보학’ 의 범주로 끌어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후 그들은 어찌 되었나. 

캐리 멀리스

멀리스는 특허가 출원된 이후 발명의 댓가로 1만불의 보너스를 회사에서 받았다. 그러나 그는 회사 동료들과 그다지 원만하게 지내지 못했으며, 1986년 회사를 떠나서 다른 회사로 옮기고 얼마 안 있어 프래랜서 컨설턴트 라고 읽고 백수 된다.

Cetus는 그 당시 진행중이던 IL-2 의 FDA 승인이 제대로 나지 않아서 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졌고,  1992년 회사의 PCR 관련 특허와 진단은 Roche 에 3억불에 인수된다. Cetus 에서 PCR을 연구하던 대개의 연구자들은 두둑한 보너스를 받고 Roche 의 진단사업부로 옮겼다. 멀리스? 이미 오래 전에 회사를 떠난지라 그는 금전적으로 얻은 게 없었다. 회사 동료들은 ‘조금만 더 회사에 남아있었으면..’ 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뭐 이미 회사 한참전에 떠났는데 어쩌라고.

그러나 1년 후 그는 스웨덴에서 전화가 와서 상을 받으러 가게 된다. 어찌보면 회사에 남아서 PCR을 상업화하는데 기여한 동료들은 로슈에서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게 되고, 멀리스는 그의 아이디어가 인정되어 N모상을 받게 되었으므로 나름 균형이 맞는 결과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멀리스의 별난 성질은 여전해서, 노벨상 받으러 스웨덴에 가서 바로 수상식날 아침에 호텔방에서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레이저 포인터로 장난하다가 스웨덴 경찰에 구속될뻔 하기도 했다. 아..아재 뭐하세여

그래서 N모상 수상 이후 그는 상금을 받고, 여기에 따른 유명세로  그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연구를 하던 사람이 아니었으니 더욱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PCR에 관련된 강연만 하는 게 아니라 아무말 대잔치를 벌여서 물의를 빚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 기후변화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
  • AIDS가 HIV에 의해서 유발되는 것은 근거가 없다
  • 프레온가스에 의한 오존층 결핍은 근거가 없다.
  • 외계인을 만났다

그만해! 청중의 멘탈은 이미 0이야!

물론 그답게 (..) 특별한 근거를 가지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아무말 대잔치지   그러나 그 넘의 N모상 수상자라는 유명세 때문에 그의 어그로는 매스컴을 탄다는 것이 문제.

결국 그의 PCR이라는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 기술을 낳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는 이 점에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라는 측면에 있어서 그는 이전에도 그렇고, N모상 수상 이후에도 과히 존경받을 만한 과학자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뭐 어쨌든 상만 타면 그만이지! 과학사를 통해 최고의 ‘One-hit Wonder’ 의 주인공이라면 바로 캐리 멀리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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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스옹의 근황. 니넨 실험실에서 실험이나 해라. 난 서핑이나 하련다

톰 브록과 허드슨 프리즈

톰 브록은 그 후에 위스콘신 대학으로 옮겨서 연구를 계속하다가 은퇴하여 명예교수가 되었다. 극한미생물이라는 연구 분야를 개척한 학자로써 학계에서 두루 존경받고 있으며 그가 1970년에 처음 저술한’Biology of Microorganisms’ 이라는 교과서는 14번째 개정판이 출판되었고, 이제 집필은 후배 학자들이 하고 있지만 아직도 ‘Brock Biology of Microorganism’ 이라는 명칭으로 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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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이 Thermus aquaticus를 발견한 학부생 허드슨 프리즈는 논문을 낸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그리고 당생물학 분야의 저명한 학자가 되어 현재는 샌포드 번햄 연구소의 교수로 재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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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슨 프리즈

그들은 Thermus asquaticus 를 발견하여 극한미생물학의 시초가 되었고, 그리고 나중에 PCR 의 발견에 응용된 공로로 2013년, 둘이 공동으로 ‘Golden Goose Award‘ 라는 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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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황금거위상 (..)의 의의는 애초에는 응용 가능성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수행된 순수한 기초 연구 결과, 특히 연방정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고 수행된 연구 결과가 나중에 큰 파급효과를 발생하여 경제적/사회적으로 큰 이익이 주는 사례를 발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외에 GFP 의 발견에 관여한 사람들 역시 이 상을 수상한 바 있다.

PCR

한편 PCR은 분자생물학의 표준실험법으로 수많은 곳에 응용된다. 특정한 유전자를 증폭하여 유전형을 알아보는 그런 것부터, 네안데르탈인의 뼈에서 추출한 DNA에서 증폭한 서열로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관련성을 알아본다든지, 신종플루, HIV, MERS, 지카바이러스, 장염비브리오균, 콜레라균에 이르기까지 온갖 병원균을 검출하고 종류를 확인한다든지, 변사체의 신원을 알아본다든지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곳에 사용된다. Transparent Market Research 라는 곳의 추산에 따르면 전세계 PCR 시장의 규모는 2013년 기준 61억불에 달하며, 2020년에는 약 96억불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와는 별도로 PCR 이 기반 기술로 작동하는 차세대시퀀싱 시장은 조만간 200억불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PCR은 ‘현대 문명’ 을 구성하는 하나의 핵심적인 요소가 된 셈이다.

그리고 이것의 기반이 된 발견은 끓는 온천물 안에는 어떤 미생물이 살고 있을 것인가와 같은 어떻게 보면 엉뚱한 의문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끝마치며 : 돈이 진짜로 되는 기술은 어떻게 유래되고 개발되는가

여기서 우리는 불과 30여년 전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기술이 어떻게 개발되는지의 한 예를 볼 수가 있다. 이 발견의 근원이 된 DNA 복제효소라든지, 온천에서 사는 미생물과 같은 연구들은 연구 시작 당시에는 그 연구가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이, 그저 과학적인 호기심을 풀기 위한 순수한 ‘연구를 위한 연구’ 로써 진행되었을 따름이다. 아마 Thermus aquaticus 나 DNA 복제효소를 연구한 사람들이 당시에 이 연구가 나중에 큰 돈이 되는 연구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면 당신 좀 정신이 나간게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아무 짝에도 돈이 안 될 것 같은 연구’ 들이 나중에 엄청난 시장성이 있는 기술의 근원이 되었다.  물론 여기서 보여준 PCR의 예에서 보듯이 이러한 기초연구의 발견 자체가 시장성이 있는 기술로 발전하는데에는 여러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캐리 멀리스와 같이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Cetus의 동료 연구자들처럼 이러한 것을 실현가능하고 재현성 있는 형태로 구체화하여 발전시키는 것 역시 중요하며, 결국 이러한 과정은 상업과 과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쩌면 한국 같은 곳에서 수행되어 온 ‘연구’ 와 ‘개발’ 은 아이디어 정립단계 자체보다는 이미 어느정도 아이디어가 정립되어 있고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어 있는 것을 좀 더 ‘개선’ 하거나 ‘효율을 높이는’ 단계에 국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정한 문제 (캐리 멀리스가 직면했던 PCR 증폭의 문제)를 해결하여 기존에 없는 솔루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역시 기존에 없는 발견이 필요하며, 이러한 것은 상당부분 원래 의도하지 않은 다른 분야의 기초연구에서 기원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개발의 원재료’ 가 풍부한 토양에서는 응용 연구 역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으며, ‘원재료’ 를 풍부하게 접하기 힘든 환경에서 제대로 된 응용 연구 – 즉 사람들이 좋아하는 ‘돈이 되는 연구’, 혹은 ‘독자적인 원천기술’ – 가 수행되기는 쉽지 않다.

최근 매스컴 등에서 ‘한국은 이제 연구개발비에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왜 그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느냐’ 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정답을 나는 알고 있다. “‘한국은 돈이 되는 것 처럼 보이는 연구’ 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정작 새로운 원천기술을 만들어 내기 힘들다” 라고 말해주겠다.

즉, 지금 보기에’ 돈이 될 것처럼 보이는 연구’라는 것은 나만 아는 게 아니라 세계의 모든 해당 분야 연구자라면 다 아는 것이고, 결국은 기존에 진행되는 연구에 숟가락 하나 올리는 수준의 추격연구밖에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특허를 취득하든 지적소유권을 확보하건 어차피 이는 근원적인 기술의 확보는 되기 힘들다. 가령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처음 만드는 것과 스마트폰의 버튼을 둥글게 나오던 것을 네모지게 만든다 정도로 비교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것은 실제로 ‘물건’ 을 만들고 효율을 높여야 하는 산업계에서는 중요한 문제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품 개발 차원의 연구가 아닌  학계의 연구라면 기존에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한 ‘새로운 자연에 대한 이해’ 가 없이 세상에 없는 무언가, 그리고 세상을 바꿀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까? 물론 아주 운이 좋다면 남이 발견해 놓은 것들을 조합하여 남들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응용분야를 창출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것은 비슷하며, 요즘과 같이 정보의 유통이 빠른 시대에서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자는 언제라도 이것을 응용하는 응용연구자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물론 기초연구의 가치를 이러한 응용 연구의 토양만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비록 기초연구를 통해 창출된 지식 자체는 당장 응용될 수 있는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동안 인류가 쌓아올린 수많은 지식들과 견고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우리가 현재 자연을 바라보는 지식의 기반이 된다. 이러한 견고한 기반 위에서 국가와 사회가 바라는 국부 창출이건, 경제발전을 위한 기술이든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과연 몇백년, 몇천년 뒤의 역사가는 동아시아에 위치한 이 블로그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거주했던 어떤 동아시아 반도의 한 국가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이 시대를 대표하는 과학문명, 산업문명의 산물 중에서 진정으로 이 나라에서 기인하여 역사에 남을 수 있는게 과연 무엇이 있을까?  지금 이대로라면 그 시대 타국에서 주로 유래한 과학문명에 의존하여 무임승차를 한 이름없는 변방국가 정도로 평가받지 않을까 하는 게 솔직한 걱정이다. 그런 후세의 평가, 아니 지금 현재도 그렇게 보고 있을수 있는 주변국의 시선이 싫다면…알아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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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치엔 (Roger Y. Tsien:1952-2016) :툴 개발자의 일생

N모상은 거들 뿐

2008년 GFP로 시모무라 오사무, 마틴 챌피와 함께 스웨덴에 갔다온 UCSD의 로저 치엔 (Roger Tsien)이 6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의 과학자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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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갑작스러운 별세를 애도하는 의미에서 그가 과연 뭐하던 과학자였는지를 한번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이미 이 블로그에서는 얼마 전에 GFP를 처음 발견한 시모무라 오사무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고,  GFP 유전자를 처음 클로닝했지만 그 이후에 잘 풀리지 않아서 셔틀버스를 운전하게 된 더글러스 프레셔에 대한 이야기도 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다음 수순으로는 로저 치엔의 이야기를 할 차례가 아닌가?  특히 시모무라 오사무나 마친 챌피는 이전에도 글을 썼지만 어디까지나 GFP는 자신의 연구의 메인 토픽이 아니었던 반면, 로저 치엔은 GFP 관련 연구에 뛰어든 이후, 형광단백질의 응용에 관련해서 지속적으로 연구를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사람 역시 GFP 만을 연구한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하다가 GFP 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특히 GFP 관련 연구는 어떻게 전혀 다른 분야의 연구가 다른 분야로 연결되는지, 그리고 아무런 응용목적을 가지고 수행된 것이 아닌 기초연구의 성과가 어떻게 응용연구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게다가 매년 가을만 되면 스웨덴에서 날아오는 소식에 종종 ‘열폭’ 을 하는 어떤 반도국에서는 과연 N모상을 받을만한 연구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지를 설명할 수 있기도 하고 말이다.

과학신동 

유명한 과학자 중에서는 종종 ‘학교시절에는 공부를 별로 잘 하지 못했거나 심지어 저능아 취급을 받았는데 커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런 일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마 전수조사를 해보면 ‘학교시절에도 공부를 꽤 잘하거나 신동이라고 불리던 사람’ 의 비율이 좀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런데 왜 공부 못한 사람 이야기만 하냐고 – 그거야 과학자가 될려면 어렸을때부터 공부 잘해야 한다 같은 뻔한 이야기를 하면 애들이 겁먹고 과학 안할거아뇨. 

로저 치엔 역시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하는 그런 수재 타입의 과학자였다. 그는 1952년 MIT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한 중국 유학생 출신의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사촌형 중에서는 2차대전 전에 제트추진연구소 (JPL) 에서 로켓연구를 하다가 매카시즘 때문에 중국으로 추방되어 나중에 중국 로켓연구의 대부가 된 치엔수첸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영화 ‘마션’에서 JPL 책임자로 나오는 중국인 과학자는 아마 그의 오마주일 것이다). 아무튼 공부 쫌 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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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왼쪽에 있는 어린이가 그다.

그는 어려서부터 과학, 특히 화학에 흥미가 있는 ‘과학신동’ 이었으며 집에서 화학실험을 하기도 하던 ‘화학덕후’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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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사이언티스트 조기교육

그는 고등학교 시절인 1967년 미국과학재단에서 지원하는 여름방학 연구 프로그램에참여하여 오하이오대학의 화학 연구실에서 처음 연구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 후에 고등학교 3학년때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웨스팅하우스 사이언스 탤런트 서치‘에 참여하여 미국 전역의 고등학생들과 경쟁하여 1등상을 수상하고, 1만불의 상금을 받는다. 과잘잘

그리고 그는 메사추세츠에 있는 H모대학에 입학하여 학부과정을 하던 중, 뉴로사이언스에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졸업후에 대학원 진학을 어디로 할까 망설였는데, 결국 매사추세츠에 있는 ‘캠브리지’ 로 갈지 아니면 영국에 있는 ‘캠브리지’로 갈지 정도의 고민이었다. 그는 장학금을 받아 영국에 가기로 한다.

그는 캠브리지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허가를 받은 다음 지도교수가 R.H. Adrian 이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에 대해서 별로 들어본적이 었어서 방금 전에 옥스포드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예일대학에 교수로 임용된 형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형은 “에라 이 무식한 자슥아, R.H. Adrian은 영국에서 제일 유명한 근육생리학자고 노벨상 수상자 E.D. Adrian 의 아들이다” 라고 답해주었다. 그러나 로저는 “흥, 근육은 한물간 주제잖아! 난 뇌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다고!” 라고 형한테 말했다.

그리고 영국에 가서 지도교수가 될 R.H. Adrian 을 만나니 그는 로저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자네, 근육이 한물갔다고 생각한다며?”

(형인지 웬수인지 그걸 다 꼰지르냐 ㅠ.ㅠ) 

“…아 그게 사실은..” (버버벅)

그러나 R.H.Adrian은 대인배였으며  로저가 원하는 주제를 연구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로저 역시 원래 관심있다고 생각했던 뇌 전기생리학이 지루하다고 생각해서 흥미를 잃게 되었다.

그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뉴런이 어떻게 세포간에서 신호를 전달하느냐의 주제였다. 그는 뉴런에서 방출되는 화학적 신호전달을 발색, 혹은 형광으로 변환하여 이를 염색하는 등의 방법으로 관찰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러려면 기존에 없는 화합물을 만들 필요가 있고, 그를 위해서는 유기합성을 배워야 하는데? 다행히 그는 지도교수인 R.H.Adrian의 친구인 화학과 교수인 Ian Baxter 라는 사람과 연결되어 그의 비공식적인 지도학생이 되었다.

칼슘

그가 처음 성공적으로 수행한 연구주제는 생체내의 칼슘을 측정할 수 있는 화합물의 개발이었다. 생체 내에는 칼슘 (Ca2+), 마그네슘 (Mg2+), 소듐  (Na+), 포타슘 (K+) 의 많은 양이온이 존재하며, 이들은 각각 세포내에서 다른 목적으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양이온의 농도를 측정할 수 있을까? 특히 칼슘과 마그네슘과 같은 2가 양이온간의 차이를 구별하여 선택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화합물은 없을까?

그는 마그네슘보다는 칼슘에 더 친화도가 높은 킬레이터인 EGTA 의 구조에 착안하여 칼슘에 좀 더 특이적인 화합물을 개발하였으며, 그 화합물을 BAPTA (1,2-bis(oaminophenoxy)ethaneN,N,N′,N′tetraacetic acid) is a calcium-specific aminopolycarboxylic acid)라고 명명했다. 그의 결과는 1980년에 Biochemistry에 출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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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단독저자 논문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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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EGTA와 구조적으로 흡사하지만 칼슘과 결합시에 흡광 스펙트럼이 달라지는 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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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캠브리지에서 이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포닥을 하다가 버클리 대학에 교수로 임용된다.거기서 칼슘을 정량할 수 있는 더 개선된 형광프로브를 개발하는쪽에 집중하여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1985년 fura-2라고 불리는 지금도 널리 사용되는 칼슘 인디케이터를 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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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합성된 물질 중에서 fura-2 는 칼슘과 결합하면 다음과 같이 착물을 형성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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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슘이 결합한 형태와, 그렇지 않은 형태는 흡광 스펙트럼이 변한다! 즉 칼슘이 없는 상태에서는 380nm 의 빛을 흡수하여 510nm을 내게 되는데, 칼슘에 결합한 버전은 340nm의 파장을 흡수하도록 흡광 스펙트럼이 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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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화합물은 기존의 칼슘 인디케이터에 비해서 훨씬 밝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이용해서 1986년 살아있는 세포에서 최초로 칼슘의 수준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것이 가능하였고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칼슘 검출시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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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칼슘이 없는 상태에서는 380nm 파장의 빛을 흡수하여 510nm 의 빛을 내보내나, 칼슘의 농도가 증가할수록 340nm에서의 흡수능력이 늘어나는 것을 이용하여 두 가지 다른 파장을 조사하여 나오는 형광을 모니터링한 후, 380nm과 340nm에서의 시그널 비를 계산하면, 살아있는 세포에서 칼슘 농도 증가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고 이는 현재까지도 세포내의 칼슘 농도를 측정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방법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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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AMP

이렇게 칼슘을 성공적으로 검출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여, 로저는 꽤 유명해졌다. 그렇다면 칼슘과 같은 이온 말고 중요한 신호전달물질인 세포내의 사이클릭 AMP (cAMP)를 칼슘과 비슷한 방식으로 측정해보려고 했다. 그러던 와중 1989년 좀 더 좋은 연구조건을 제시한 UCSD로 이적하여 그는 버클리에서 샌디에고로 랩을 옮긴다.

칼슘의 경우에는 칼슘에 결합함에 따라서 흡광 형태가 틀려지는 유기화합물을 개발하는 것으로 정량이 가능하였다. 그렇다면 칼슘에 비해서 훨씬 더 복잡한 cAMP 와 같은 물질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그의 최초의 아이디어는 cAMP 에 의해서 반응하는 단백질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단백질의 가장 좋은 예는 Protein Kinase A 이다.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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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즉 Protein Kinase A는 원래는 조절서브유니트와 결합하여 그 활성이 억제되어 있는데, cAMP 의 농도가 높아지면, cAMP는 조절서브유니트에 결합하여 실제 단백질 인산화 서브유니트를 활성화시키게 되고, 단백질 인산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하여, 그들은 조절 서브유니트와 단백질 인산화 서브유니트에 대한 재조합 단백질을 만들고, 여기에 화학적으로 두 가지 다른 형광다이 (Fluorescein과 Rhodamine) 을 결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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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cAMP가 없는 상태에서는 조절서브유니트와 인산화 서브유니트가 결합해 있고, 두 개의 형광단이 근접해 있으므로 FRET (Förster resonance energy transfer)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즉 490nm 의 빛을 주면 580nm 의 형광이 나온다. 그러나 cAMP 를 첨가하면 조절서브유니트와 인산화 서브유니트가 떨어지고, 더이상 FRET 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490nm 의 빛을 주면 520nm 의 형광이 나오게 될 것이다.

세포에 형광다이가 결합된 단백질을 미세주입하여 490nm 의 빛을 떄리고 나오는 형광을 580nm 과 520nm 에서 각각 측정해서, 이것의 비율에 따라서 cAMP의 농도를 측정! 이러한 원리에 기반하여 그들은 1991년 N모잡지에 다음과 같은 논문을 출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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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사실 이 방법은 상당히 불편한 방법인 셈이다. 즉 대장균에서 두 개의 단백질을 정제한 다음, 효소의 활성을 해치지 않는 상태에서 단백질에 형광물질을 결합시키고, 두 개의 단백질을 복합체를 만든 다음 세포 내에 미세주입을 해야 가능했다. 만약 미세주입이 어려운 세포라든지, 전체 생물에서의 cAMP 의 농도 등은 측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방법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실험을 하려면 단백질을 만들어서 형광물질을 화학적으로 결합한 다음에 세포내에 찔러넣어야 하잖아. 만약 세포내에서 발현되서 형광이 나는 단백질 같은 게 있으면 이런 삽질을 안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단백질은 없잖아. 우린 아마 안될거야

그러던 와중 그는 해파리에 GFP 라는 형광을 내는 단백질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그 유전자는?

GFP

그는 1992년, 당시 UCSD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된지 얼마 안된 새로운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인 “MedLine” (현재의 PubMed의 전신) 에 “green fluorescent protein” 을 검색해 봤다. 그랬더니 더글러스 프레셔(Douglas Prasher)라는 사람이 발표한 GFP 유전자 클로닝 논문이 얼마전에 나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더글러스 프레셔에게 연락해 보았고, 그는 더 이상 연구비 사정으로 해당 연구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나중에 논문이 나오면 자신의 이름을 넣어달라는 것을 조건으로 GFP 유전자를 제공해 준다고 했었다. 그러나 로저 치엔의 랩에서는 당시 DNA 관련된 일을 해본 사람이 없었고, 1992년 로저 헤임 (Roger Heim) 이라는 스위스 출신 포닥이 와서야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 더글러스 프레셔에게 다시 연락하고 GFP 클론을 받게 되었다.

그 와중에 콜롬비아대학의 꼬마선충 연구자 마틴 챌피 역시 GFP 유전자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고, 뒤에 학회에서 만난 챌피와 이야기해본 결과 GFP 를 대장균에서 발현하면 형광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 GFP 가 형광을 내기 위해서는 외부의 물질이 필요한지 아닐지를 몰랐는데,  그 결과로 GFP 유전자만 발현하면 형광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셈이다.

그는 이미 챌피가 대장균과 꼬마선충에서 GFP를 발현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다른 생물에서 GFP를 이용하여 다른 단백질의 위치를 확인하려고 했다. 효모를 연구하는 옆 랩에서 관심이 있는 효모의 세포내 물질수송에 관련된 실험을 해봤다. 그러나 GFP 의 시그널 자체는 너무 약해서 원하는 시그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즉, GFP를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GFP 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셈이다.

로저 첸 랩에서 원래 하려고 했던 것은 cAMP를 측정할 수 있는 바이오센서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FRET이 일어나냐 하므로, 녹색 이외의 다른 색의 형광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GFP의 색을 바꿀 수 있을까? 이미 GFP의 형광발색단이 어떤 아미노산에 의해서 만들어지는지는 알려져 있었다. 즉 발색단의 형성에서 66번 타이로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포닥에게 66번 타이로신을 원래 형광을 내는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으로 변경해 보라고 했었다. 그런데 66번 타이로신을 트립토판으로 변경하니 단백질은 형광이 나지 않았다! 교수의 아이디어가 그대로 맞는 적은 별로 없지요

해당 실험을 하던 포닥인 로저 헤임은 대신 무작위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방법으로 GFP 에 돌연변이를 유도함으로써 초록색 형광이 아닌 파랑색 형광이 나는 GFP 돌연변이를 찾았다! 시퀀싱을 해보니 66번 타이로신이 히스티딘으로 바뀐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그는 GFP의 발색단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면 산소에 의한 산화가 필요하며, 다른 부위의 아미노산의 변화에 따라서 파장을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기존에 66번 타이로신만을 변형해서 트립토판을 넣었을때는 형광이 나지 않았지만, 이것은 갑자기 덩치가 큰 트립토판을 넣었기 때문이며, 다른 부위에 이 덩치가 큰 트립토판이 들어갈 수 있도록 별도의 돌연변이가 들어가면, 파장이 틀려진 Cyan Floresence Protein 이 나온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게다가 65번의 세린을 쓰레오닌으로 바꾸면 좀 더 형광이 강해진다는 것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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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발색단의 생성에 관여하는 아미노산을 뜯어고치는 것을 통해서 조금씩 다른 파장의 형광, 빛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GFP의 발색단은 생성될까? 이미 발색단의 구조와 어떤 아미노산이 이 발색단을 형성하는데 관여하는지는 시모무라의 선행 연구에 의해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발색단이 정확히 어떤 화학반응에 의해서 생기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로저 헤임은 이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연구를 했는데, GFP를 발현하는 대장균을 완전히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키우면, 단백질이 만들어지긴 하지만 전혀 색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 단백질을 산소 상태에서 산화시키면 다시 형광이 되돌아왔다. 이 의미는 GFP 의 발색단을 형성하는데에는 산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GFP의 발색단은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에 의해 생성된다는 것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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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로저 첸 그룹은 GFP를 좀 더 쓸모있게 만드는 첫 단계로 GFP의 형광 발색단의 형성에는 산소가 필요하다는 것과 발색단을 형성하는 아미노산을 바꿈으로써 다른 파장을 지니는 돌연변이 단백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밝혀서 논문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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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의 약속대로 더글러스 프레셔의 이름도 저자로 올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조로의 길

지금까지의 단백질 개량 작업은 단백질의 구조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진행된 것이다. 그러나 GFP를 뼛속까지 깊숙히 해부하여 이를 원하는 성질을 가지도록 고치기 위해서는 역시 단백질 구조가 필요했다. 사실 GFP자체는 유전자가 클로닝되기도 전인 1988년, 시모무라가 해파리에서 정제한 단백질을 이용하여 결정화되고 심지어 고해상도로 회절한다는 것도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위상결정의 문제 때문인지 구조는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자연산 단백질인 관계로 셀레노메티오닌을 치환하여 중금속이온을 도입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없고 대신 중금속 메탈을 이용하여 위상을 결정하려고 했는데 잘 안되었는지도 모른다. 여튼 구조는 풀리지 않고 있었고, GFP의 중요성이 점점 알려진 이때에 여러 랩이 이 구조를 먼저 풀려는 경쟁에 뛰어들었다.

로저 치엔은 구조생물학자인 오레곤대학의 짐 레밍턴에게 GFP 클론을 주었는데, 야생형 대신 S65T 돌연변이, 즉 야생형보다 더 밝은 돌연변이의 클론을 주었다. 아마 이미 여러 사람이 경쟁하는 연구주제인 관계로 구조를 뒤늦게 풀어도 적어도 논문을 낼 수 있게 된다는 배려였던듯하다. 그러나 예상외로(?) 구조는 빨리 풀렸고, 다음과 같은 베타 배럴 형태의 구조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발색단은 베타 베럴의 드럼통(?) 안에 들어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PDB:1EMA

이 논문이 매우 중요한 논문이라고 생각한 치엔과 레밍턴은 이 논문을 S모 저널에 투고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논문은 매우 부정적인 리뷰를 받았다! 한 리뷰어는 구조를 제대로 푼 것은 인정하나, 왜 이 단백질의 구조가 그리 중요한지 난 모르겠슴! 하는 리뷰를 보냈고, 다른 리뷰어는 왜 해파리가 초록색 형광을 내는 것이 해파리가 살아가는데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냐, 그런데 왜 너네들은 그걸 규명 못함? 하는 뜬금없다면 뜬금없는 리뷰를 보냈다. 그렇게 해서 저널에서 논문이 리젝되었다. 빡친 치엔은 “아니 단백질 구조를 가지고 생태학적인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라는 게 말이 됨? 이런 이유로 논문이 거절된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함!” 하고 S모 잡지 편집장에게 항의편지를 보냈다. 그 항의가 받아들여졌는지 편집장은 다른 제 3의 리뷰어에게 논문을 보내고 이걸 보고서 결정을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세 번째 리뷰어로부터의 응답은  시간이 꽤 지나도 오지 않았고 논문의 향방은 아직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던 와중, 어떤 인터넷 뉴스그룹에 다른 실험실에서 GFP 구조를 풀었으며, 이 논문은 곧 Nature Biotechnology에 게재된다는 포스팅을 보았다. 치엔은 이 내용을 이메일로 S모잡지 편집장에게 보내자, 기다리던 논문은 제 3의 리뷰가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다음날 바로 어셉트되었다. -.-;;

리빙포인트 : S모잡지에 논문을 내면 편집장과 키배를 벌여서 이길 책임저자면 된다

 

cAMP, Ca2+, Protease

이렇게 원래 계획한 FRET에 의한 바이오센서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가지 파장을 흡수해서 내보내는 다양한 형광단백질이 만들어진 다음에는, 원래 계획대로 cAMP 등을 FRET을 이용하여 검출하는 센서를 만들 차례이다. 원래 계획한 cAMP 이외에도 칼슘, 단백질 분해효소 활성, 단백질 인산화 등 다양한 생명현상을 다른 파장의 형광단백질 간에서 일어나는 FRET에 의해서 측정할 수 있는 센서가 속속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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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화학적 시약을 사용하는 방법에 비해서 이러한 유전학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센서의 경우 실제 살아있는 생물에서의 칼슘농도 등을 측정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가령 날아다니는 초파리의 대가리 속의 칼슘 변화를 잰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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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세포에서 단백질 인산화 활성을 잰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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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의 다양한 응용방법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팔레트

그래서 치엔 랩에서는 GFP에서 유래된 여러가지 다른 파장의 형광단백질, 즉 노란색, 파란색 등을 만들었다. 그러나 빨간색은 어떻게 하는가? 형광현미경 사진 쫌 찍어본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초록색 형광을 내는 것과 다른 것을 같이 찍으려면 빨간색 형광을 내는 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빨간색 형광단백질은 어디 없을까? GFP가 흥한 다음 많은 사람들은 다른 성질을 가지는 형광단백질을 찾았다. 그런데 형광단백질은 엉뚱하게도 러시아에서 발견되었다. 러시아 연구자들이 모스크바 수족관에서 찾은 산호에서 형광단백질을 발견하였으며, 이 단백질은 dsRed 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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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DsRed 에는 몇 가지 단점이 있었으니, GFP와는 달리 형광을 내기 위해서는 4개의 서브유니트가 테트라머를 형성해야 했다는 것이고, 이는 융합파트너로 목적단백질을 붙였을때 의도하지 않게 단백질이 테트라머가 되버리는 문제를 야기했다. 이러한 단점을 고치기 위하여 여러가지 돌연변이를 스크리닝하여 모노머 상태에서도 붉은색 형광을 유지하도록 단백질을 뜯어고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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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FP에서 하던 방법대로 발색단을 이루는 아미노산 잔기와 그 근처를 뜯어고쳐서 다음과 같이 다양한 색의 형광단백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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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가시광선 영역의 빨주노초파~ 까지 모든 색의 형광을 커버할 수 있는 팔레트를 만들었다. 이러한 팔레트를 가지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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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색을 발현하는 대장균을 가지고 이런 잉여짓도 가능하다 ㅋ

이렇게 적색과 녹색의 형광단백질을 가지게 됨으로써 아주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게 되는데,

세포주기에 맞추어서 각각 다른 색을 내는 리포터 시스템도 존재한다. 즉 G1 기와 S/G2/M 기에 각각 존재하고 세포주기가 넘어가면 분해되는 단백질인 Cdt1과 Geminin 의 degron 영역에 초록과 녹색의 형광단백질을 달아서, 세포주기에 따라 다른 색을 내도록 설계된 리포터 시스템을 이용하여 세포주기를 판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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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통을 넘어서

GFP이건 dsRed이건 이렇게 발견된 형광단백질은 대개 ‘맥주통’ 모양의 베타 베럴 형태의 구조를 띄고 있는 단백질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600nm 이하의 파장의 빛을 내는 단백질로써 생체내에서 피부를 관통하여 빛을 내려면 적외선과 같은 긴 파장의 빛을 내는 것이 필요하다.

2009년 치엔 랩에서는 기존의 ‘맥주통’ 모양의 형광단백질이 아닌, 박테리아 유래의 피토크롬 단백질을 뜯어고쳐서 이것을 684nm 의 빛을 받아들여서 708nm 의 빛을 내는 ‘적외선 발광’ 단백질을 만들었다. 그래서 쥐의 간에 단백질을 발현하여 살아있는 쥐에서 간에서 나오는 적외선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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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모잡지는 하도 많이 내서 카운트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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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을 뜯어고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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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뗑이가 부은 이 단백질을 발현하는 간에서 나오는 적외선을 살아있는 쥐에서 측정!

에필로그

그는 아직 창창한 64세의 나이에 이렇게 여전히 생산적인 결과가 나오는 랩을 두고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의 연구인생을 되집어 보면, 그의 연구자체가 바로 “도구”, 즉 생명현상을 볼 수 있는 도구를 만들기 위한 여정이었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저분자 형광물질이건, GFP이건, FRET을 이용한 센서이건, 그리고 가장 최근까지 몰두하던 자외선 단백질이건 말이다.

현대 생물학의 많은 발전은 결국은 이전에는 관찰할 수 없었던 생명의 ‘일부분’ 을 관찰하는 데서 시작되었으며, 이를 위해서는 전통적인 생물학을 하던 사람 밖의 힘이 필요하다. 가령 로저 치엔과 같이 화학덕후로써 생체물질과 반응하여 이를 형광으로 표현하는 것에 도가 튼 사람이라든지, 기존의 현미경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방식의 현미경을 만들던 어떤 물리학자라든지  생물학자의 새로운 발견에는 어디까지나 인접학문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로저 치엔의 연구인생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하나의 기술이 기초연구의 결과로부터 출발하여 완성되기까지 어떠한 최적화 과정이 필요한지, 그것이 왜 중요한지를 알 수가 있다. 비록 로저 치엔은 제일 먼저 GFP를 마커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가 GFP 및 다른 형광 단백질을 지금 우리가 쓰는 형태로 최적화하지 않았더라면 형광단백질이 지금과 같이 널리 사용되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흔히 기초과학자들은 최초의 발견에는 큰 의미를 두지만, 이것을 ‘실제로 널리 쓸 수 있도록’ 최적화하는 것에는 크게 가치를 두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그러지 마라. 최적화의 달인인 ‘엔지니어’ 에게 경의를.

 

P.S. 위 글의 대개의 내용은 로저 치엔의 노벨 렉처에 다 나온다.

어떤 손재주 없던 의사양반

고등학교 때는 유도를 하다가 대학교때는 럭비부에서 럭비를 하던 스포츠를 좋아하던 의대생이 있었습니다. 운동을 너무 열심히 해서인지 무려 10번이나 뼈가 부러졌다고 하네요 (…) 이렇게 뼈가 부러져서 정형외과에 들락거리다 보니 정형외과에 친숙해져서인지 (…)  그는 의대 졸업후 전공을 정형외과로 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는 엄청 손재주가 없는 의사였습니다. -.-

잘하는 사람은 20분이면 끝날 수술을 두 시간이 넘어도 못 끝내기가 일쑤였습니다. 동료들은 그의 이름을 “걸리적거린다” 라는 뜻으로 바꾸어서 별명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는 병원을 그만두고 다른 학교의 기초의학교실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약리학 교실에서 연구를 했습니다. 그래도 수술 보다는 연구가 적성이 맞았는지 4년 후에 나쁘지 않은 논문을 내고 졸업을 했습니다.

그는 그 당시 최신 기술이던 마우스 유전학에 흥미가 있었습니다. 즉 낙아웃 마우스/트렌스제닉 마우스 만들어 연구하는 것들 말이죠. 그래서 미국에 포닥을 가기를 원해서 수백 곳에 CV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정형외과의사로써는 별볼일 없는 의사에 분자생물학 경험이 없는 연구자를 쉽게 채용해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어떤 심혈관 연구소의 한 PI가 그에게 포닥의 기회를 주어서 그는 미국으로 포닥을 나갔습니다. 그 연구소는 심혈관 연구소답게 콜레스테롤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고 있었고, 그를 고용한 PI는 이런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RNA 에디팅 기능을 수행하는 APOBEC1 이라는 유전자가 있는데 이 유전자가 콜레스테롤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APOBEC1 을 생쥐의 간에서 과발현하는 마우스를 만들면 콜레스테롤 레벨이 줄어들고, 이를 이용하면 고지혈증 같은 것의 치료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이러한 PI 의 아이디어를 부응하기 위해 그는 열심히 연구해서 몇 달 만에 원하는 형질전환 마우스를 만들었습니다. 어느날, 마우스룸에서 일하는 그의 동료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어이, 네 마우스가 다 임신을 했어”

“그럴리가 없는데”

“정말이야. 다 배가 산 만해”

그런데 그의 마우스는 수컷이었습니다 -.-;;;

알고보니 진짜로 임신한 마우스처럼 배가 산만해졌고, 임신한게 아니라 간에 무지 큰 종양이 발생한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APOBEC1 은  암을 유발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원래 기대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그의 PI는 계속 연구를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 ‘심혈관 연구소’ 에서 유일하게 암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APOBEC1 에 의해서 영향받는 유전자를 찾아보았습니다. APOBEC1 을 과발현하는 생쥐에서 과다하게 RNA 에디팅이 일어나는 유전자를 찾았고, 이로 인해 단백질 발현이 제대로 안되는 유전자가 하나 나왔습니다. 그는 이 유전자의 이름을 New Apobec1 target 1 이라고 해서 NAT1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논문을 또 하나 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게 연구를 하고 있는데 가족들은 고국에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아이와 애들이 먼저 돌아갔습니다. 계속 남아서 미국에서 연구하고 싶은데 이전에 다니던 의과대학에서는 ‘님 안들어오면 님 자리 국물도 없음’ 이럽니다. 그래서 아쉽지만 귀국을 했습니다.

이전에 다니던 의과대학에서 말단 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의과대학에서는 그가 하던 연구에 그닥 관심이 없습니다. 의과대학에서는 의학과 약 개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연구를 하는 것이지 별 상관도 없는 기초연구 같은 것을 하면 좋지 않다는 충고도 듣습니다.

여튼 그는 연구를 계속합니다. 연구를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마우스장 관리하는 것도 다 스스로 해야 합니다. 이전에 한 NAT1 이라는 유전자에 대해서 연구를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APOBEC1 을 과발현하니 NAT1 이라는 유전자의 단백질 수준이 떨어진다고 했었죠? 과연 이것 때문에 쥐에 암이 생긴 것일까요. 그것을 알려면 NAT1 유전자를 낙아웃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ES 셀에서 NAT1 유전자를 낙아웃합니다. 그런데 쥐가 안 만들어집니다. 쥐가 다 배아단계에서 죽습니다. 알고보니 이 유전자는 ES세포가 분화하는 능력에 관여하는 유전자였습니다. 그는 이전에는 ES 셀은 쥐 만드는 도구로만 사용했는데 줄기세포라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여튼 그렇게 연구 결과는 잘 되서 논문을 써서 제출하나 이 저널, 저 저널 리젝이 됩니다.

연구비는 잘 수주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우울해졌습니다. 그가 미국에서 돌아가기 전에 유럽출신 랩 동료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네, 미국에서 귀국하면 PAD라는 무서운 질병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되네. PAD가 뭐냐고? Post America Depression이라네. 미국에서 귀국한 학자들이 모국의 연구여건이 미국보다 안 좋아서 겪는 우울증”

그거에 걸린 듯 합니다. 그냥 연구를 때려치고 의사로 돌아갈까 생각을 합니다.

그러던 중 두 가지 중요한 계기가 생깁니다. 그동안 떨어졌던 논문이 결국 논문화되었고, 이웃 나라의 과학기술 중심대학을 벤치마킹하여(?) 새로 생긴 신생대학에서 교수로 초빙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여기서는 이제 직접 마우스 관리를 안해도 됩니다!

그리고 미국의 위스콘신 대학의 톰슨이라는 사람이 인간 수정란으로부터 인간줄기세포를 확립해서 큰 화제가 됩니다. 별로 관심이 없었던 줄기세포 분야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집니다. 연구비도 이전보다 늘어납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줄기세포에 관련해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줄기세포가 어떤 세포로든 분화할 수 있는 능력에 어떠한 유전자가 관여하는지, 즉 만능성 (Pluripotency)을 유지하는 요소들이 뭔지 궁금했습니다. 마침 그 때 Oct4 라는 유전자가 여기에 관여한다는 논문이 나왔습니다. 그는 줄기세포에서 많이 발현되는 유전자들 중에서 그런 유전자가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줄기세포에서만 특이적으로 발현되는 Fbx15 라는 유전자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그의 특기인 마우스 만들기를 이용해서 Fbx15 유전자 대신 마커 유전자를  넣어서 유전자를 낙아웃하고, 이 유전자의 발현을 측정할 수 있도록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해당 유전자는 기대와는 달리 낙아웃되도 쥐가 멀쩡하게 잘 만들어지고,  줄기세포의 만능성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낙담하고, 그냥 평범한 논문 하나 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유전자에 촛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다가 Nanog 라는 유전자가 여기에 관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결과는 잘 되서 드디어 ‘세포’ 에 논문이 하나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와 다른 연구자들이 점점 줄기세포의 만능성 유지에 관련된 유전자를 찾아나갔습니다. 그러던 도중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줄기세포의 만능성에 관련된 유전자는 몇 개나 될까?

만약 이런 유전자들이 100개라고 치고, 이런 유전자를 몽땅 다 정상세포에서 발현해서 줄기세포와 비슷하게 만들 수 있을까?

우연의 일치인지 그의 랩엔 줄기세포가 될때 이를 알려주는 마커가 되는 유전자가 있었습니다. 즉 Fbx15 유전자 대신 G418 저항성 유전자가 발현되는 마우스를 이전에 만들었었죠. 만약 어떠한 유전자들에 의해서 만능성이 도입된다면 Fbx15 유전자가 발현될태고 G418 에 대해서 저항성을 띄게 됩니다. 즉 아무 유전자나 막 때려넣고 G418 을 친 상태에서 살아남는 세포만 선별하면 됩니다! 즉 이런 시스템이 있다면 수많은 유전자를 대상으로 스크리닝을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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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ES 셀의 cDNA 라이브러리를 이용해서 스크리닝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 전에 현재까지 알려진 약 24개의 줄기세포에 관련된 유전자를 시험삼아 몽땅 섞어서 넣어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유전자 24개를 몽땅 섞어 MEF 세포에 넣고 G418 을 친 상태에서 키워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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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가 자라고, 게다가 ES 셀 비스무레하게 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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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유전자 중에서 불필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해서 24개 조합에서 1개씩만 빼서 이들이 얼마나 이러한 전환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환에 꼭 필요한 것으로 밝혀진 유전자는 4개, Oct4, Sox2, Klf4, Myc 이었습니다. 이것은 OSKM, 다른 이름으로는 그의 이름을 따서 부르기도 합니다.

Yamanaka Factor.

이 이야기의 주인공, 즉 뼈 10번 부러져서 정형외과 의사가 되고 싶어하던 손재주 없던 의사의 이름은 야마나카 신야 (Yamanaka Shinya)라고 합니다.

위의 연구를 한 지 6년 후 그는 이 이야기를 스웨덴에 관광간 김에 (..) 청중들에게 합니다. 여기 적힌 이야기는 대개 이 이야기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53분 경부터 시작)

그의 영어는 그의 국적답게 어눌한 영어입니다만, 할말, 농담 다 합니다.

올해는 그의 그 논문이 나온지 10년이 된 해입니다. 물론 그 논문이 나오기 전에도 그는 열심히 연구하는 과학자였습니다. 아마 그 이후에도 그렇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