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 과 함께 보는 현실의 과학연구(전편)

스토리가 있는 연구의 함정

과학자가 아닌 사람, 혹은 경력이 일천한 과학도의 경우 과학논문을 ‘객관적으로 입증된 과학적 관찰 혹은 사실에의 기술’ 과 같이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널에 지금 나오는 과학논문만으로는 그것이 ‘확실히 입증된 사실’ 이 되는 것도 아니고, 결론을 배제한 단순한 ‘관찰’ 로만 논문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은 대개의 과학논문은 ‘자신이 입증하고자 하는 명제에 대한 주장 및 이것을 입증하기 위한 근거의 제시‘ 이다. 이러한 개별적인 ‘주장’ 들이 모이고, 어떤 경우는 서로 상이한 주장들이 대립하다가 반박되기도 하고, 수정되기도 하면서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서 어떤 의문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과학적 지식이 하나씩 씌여져 나간다.

그러나 프로페셔널 과학자가 아닌 대개의 사람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정제되서 과학적 지식의 엑기스화되어 있는 것들을 교과서로 접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교과서에 적혀 있는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탄생되는지에 대한 과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뭐 대개는 이런 과정을 잘 모른다고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자가 아니니까!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걸음을 처음 떼는 학생들, 특히 대학원에 처음 들어온 학생들이다. 즉 열심히 교과서를 읽고 교과서에 소개된 과학지식과 발견의 이야기를 읽고 과학에 흥미를 느끼고  과학자가 되는 첫 길을 걸으며 대개 느끼는 것은 ‘책에서 읽은 과학과 직접 하는 과학은 같지 않다‘ 라는 것이다! 책에서는 과학적 발견을 위해서는 기존의 연구결과와 관찰을 통해서 가설을 성립하고,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실험을 해서, 결론을 내고, 논문을 빵 내고 유명한 과학자가 된다고 들었다! 그리고 저널클럽에서 읽는 그런 논문들도 다 그런 식으로 씌여져 있다.  그러나 나의 실험은 왜 교수님이 처음 이야기한 그대로 안 되는가!

오늘 할 이야기는 이런 것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헐리우드 스타일의 영화와 논문

영화 이야기를 했으니 계속 영화 이야기를 해보겠지만, 대개의 흥행 영화들은 그리 복잡한 구도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액션 영화라면 우리가 감정이입할 히어로 (혹은 히로인) 이 있으며, 이들과 대립하는 악당(매드사이언티스트라든가 -.-)이 존재한다. 히어로를 도와주는 조역들도 존재하며, 그중에는 영화 중반에 안타깝게 죽어주어야만 하는 희생양도 존재한다. 스토리는 처음에 몇가지의 단서가 튀어나오면서 점점 긴장이 고조되다가 클라이막스를 향해서 최고 절정에 달하며, 긴장이 해소되고 우리의 히어로는 지구 정복을 획책하는 나쁜 매드사이언티스트를 물리치고 지구를 구한다. 그러나 요즘 성공적인 영화는 속편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 완전히 모든 긴장이 해소되기보다는 뭔가 뒤끝을 남기는 편이다.

이와 비슷하게 요즘 유명 저널에 실리는 논문도 비슷한 식의 구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가령 처음의 논문의 서론에서는 연구의 배경을 소개한 다음, 무엇이 현재 안 풀린 문제인지를 제시한다. 그리고 결과의  Figure 1 에서는 연구의 전제가 되는 첫 데이터를 통해서 주요 ‘등장인물’ (유전자나 단백질일수도 있고, 특정한 표현형을 가지는 뮤턴트일수도 있다)를 소개한 다음, Figure 2, Figure 3 에서는  이들의 정체를 규명하여 이들이 어떻게 ‘사건’ 에 연루되었는지를 소개한다. Figure 4, Figure 5 에서는 ‘범인’ 이 어떻게 범인인지를 입증하는 여러 증인들이 나와서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것을 서술하고, Figure 6 에서는 그렇게 해서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소위 ‘메커니즘’ 을 보여주는 그림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결론을 제시한다. 아직 안 풀린 미스테리에 대해서는 ‘후속편’ 이 될 논문에서 답을 해 줄 것을 약속하고..이렇게 해서 블록버스터 논문을 마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헐리우드 영화 스타일의 잘 짜여진 스토리를 가진 논문’ 은 실제 연구 수행시에도 그렇게 잘 짜여진 가설에 의거하여 빈틈없이 수행된 것일까? 조금 연구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즉 연구를 시작할 때의 가설은 실제 논문에 씌여진 것과는 전혀 딴판일 수도 있고, 현재 논문에서 원래의 결론을 보조하기 위해 수행된 것처럼 씌여진 실험 데이터는 실제로 다른 쪽 방향으로 나가던 연구가 현재의 방향으로 나가게 된 계기가 된 데이터일수도 있는 것이며, 연구의 전제가 되어 이를 바탕으로 연구가 진행된 것처럼 서술된 지노믹스 데이터는 개별 유전자에 대한 실험이 수행되어 결론이 이미 도출된 상황에서 연구의 합목적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추가된 데이터일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실제의 많은 논문은 연구과정의 시간대별로의 기술이 아닌, 일종의 ‘수정주의적 역사관’ (Revisionist History)과 비슷한 방식으로 씌여진다는 이야기이다.

상당수의 연구는 원래 기획된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서, 예기치 않은 발견이 생기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설명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들이 발견된 이후에, 원래의 연구를 시작할 때와는 크게 틀린 ‘새로운 가설’ 이 제시되고, 여기서부터 다시 논문이 씌여져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승전결’ 이 말끔하고 ‘스토리가 명확한’ 논문이 되는 경우가 많다.즉, 대개의 연구자는 아직 확정된 대본이 없이 촬영되는 영화, 즉 촬영 현장에서 씌여지고 수정되는 쪽대본에 의해서 촬영되는 영화 속의 연기자와 비슷한 상황이라고나 할까. 다만 연구자는 연기자와는 달리 이 대본이 쓰여지는 과정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경험이 많은 연구자라면  스토리가 잘 보이지 않는 마구잡이의 필름 무더기를 가지고도 기승전결이 짜여져 있는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영화감독처럼 단편적인 증거에서 ‘이야기’ 를 찾아서 ‘이야기가 되는’ 논문의 스토리를 엮어나가며 앞으로의 연구를 진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역량이 뛰어난 연구자는 훌륭한 영화감독처럼 연기자나 다른 스탭들은 짐작하지 못하는 필름 더미에서 이것을 잘 편집하여 기승전결이 구별되는 영화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훌륭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력이 부족한 연구자, 또는 연구를 처음 시작하는 연구자라면 현실 연구의 복잡성에 좌절하거나 길을 잃기가 쉽다. 물론 여기서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 지도교수의 존재의의겠지만, 세상 일이 언제나 다 이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즉, 논문을 작성할 때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와 같은 단선적인 스토리’로 쓰는 것은 분명 논문을 읽는 독자들을 위한 유효한 방법론이긴 하지만, 실제 과학을 수행하는 과학도에게 있어서는 결코 현실 연구상황에 근접한 방법은 아닐수도 있다. 즉, 현실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언제나 깔끔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으며, 생각보다 좀 더 복잡하고 골치아픈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 웃기는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러니까 누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만 보래? 그러니 다양한 영화를 보라!

뭐래는거야 이 인간이라고 생각하셨을지 모르겠는데 뭔 말인지 궁금하시면 빨리 다음 내용으로 스크롤

라쇼몽 (羅生門)

본 블로그는 분명히 과학덕후를 위한 블로그이나 본 블로그의 관리자는 과학덕후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외에도 다른 장르의 덕질을 많이 하고 있는데….그 중의 하나가 영화 감상이고, 특히 일본 고전 영화를 꽤 열심히 본다. 비단 일본 고전영화 뿐만 아니라 영화 쫌 본다고 잘난체 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영화 중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黒澤明 감독이 1951년에 제작한 ‘라쇼몽’ 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안 본 분들을 위해서 간략히 영화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이 영화는 제작된 지 50년이 넘은 영화로써 저작권이 만료되어 합법적으로 유튜브에서 시청이 가능하다!

%ec%8a%a4%ed%81%ac%eb%a6%b0%ec%83%b7-2016-10-14-18-13-17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다 쓰러진 ‘라쇼몽’. 라소몽은 원래 시체 갖다버리는 곳이다.

%ec%8a%a4%ed%81%ac%eb%a6%b0%ec%83%b7-2016-10-14-18-13-31

일어난 사건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

%ec%8a%a4%ed%81%ac%eb%a6%b0%ec%83%b7-2016-10-14-18-13-58

목격자인 나무꾼은

%ec%8a%a4%ed%81%ac%eb%a6%b0%ec%83%b7-2016-10-14-18-14-14

나무를 하러 숲속 깊이 들어가서

%ec%8a%a4%ed%81%ac%eb%a6%b0%ec%83%b7-2016-10-14-18-14-56

칼에 찔려 죽은 시체를 발견

%ec%8a%a4%ed%81%ac%eb%a6%b0%ec%83%b7-2016-10-14-18-15-13

관아에 신고하니,

결국 칼에 찔려 죽은 사무라이의 시체, 겁탈을 당한 사무라이의 부인, 용의자로 추측되는 산적이 관가에 끌려가서, 각각의 증언을 듣는다.

%ec%8a%a4%ed%81%ac%eb%a6%b0%ec%83%b7-2016-10-14-18-15-40

잡혀온 산적 (미후네 토시로) 의 증언

내가 사무라이를 죽인 것은 사실이야! 그렇지만 이것은 정당한 결투를 통해서 죽인 이라고! 나는 사무라이와 아내를 보고서 아내에게 혹심을 품었다. 나는 보물을 숨겨둔 장소를 미끼로 사무라이를 데려온 다음 그를 습격해서 포박한다. 그리고 사무라이의 아내를 데려온 , 사무라이 앞에서 그의 아내를 겁간했지. 그러자 그의 아내는 사무라이와 도둑 하나는 죽어야 된다고 싸움을 부추겼고, 나는 사무라이와 결투해서 정정당당하게 이겼다. 그런데 여자는 도망갔을 뿐이지.

사무라이의 아내(쿄 마치코)의 증언

제가 그 도둑에게 겁간을 당한 것은 사실이예요. 그런데 그 후 도둑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나를 보는 눈이 심상치 않더군요.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그 눈빛! 저는 차라리 남편에게 저를 죽여달라며 단도를 주었지만 계속 노려보기만 하더군요! 결국 저는 이성을 잃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단도가 남편의 가슴에 꽂혀 있더군요. 이후에 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영매를 통해서 증언한 사무라이(모리 마사유키)의 유령 :
도둑이 아내를 겁간한 다음, 도둑은 아내에게 자기와 같이 살자고 꼬셨다. 그러자 아내는 도둑을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나한테도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그 눈길로! 아내는 도둑에게 남편을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도둑은 아내의 말을 듣지 않았고, 아내는 도망쳤다. 그리고 도둑은 나를 풀어줬지. 여기서 나는 도둑을 용서하기로 했어. 나는 아내가 배신했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결국 아내가 가지고 있던 단도로 자결했다.


나무꾼 (시무라 다카시) 의 증언 2탄.
사실 나무꾼은 시체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숨어서 상황을 보고 있었다. 도적은 아내를 겁탈한 다음 자신과 함께 달아나자고 여자를 꼬셨다, 그러나 여자는 사무라이를 풀어주었다. 도둑은 이것이 둘이서 싸워서 이긴 사람이 아내를 차지하라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무라이는 이런 여자를 위해서 목숨걸기는 싫고, 내가 왜 싸워야 한다고 하며 아내보고 자결하라고 한다. 그걸 보고 도둑 역시 여자에게 정이 떨어졌는지 여자를 포기한다. 여자는 빡쳐서 사무라이와 도둑에게 싸움을 붙인다! 남자답게 싸움을 해서 이긴 사람이 자신을 차지하라고! 그렇게 해서 억지로 하는 사무라이와 도둑의 싸움은 도둑이 말한 정정당당한 싸움은 커녕 매우 추잡한 개싸움이 된다. 그러다가 휘두른 도둑의 칼에 사무라이는 죽었고, 여자는 사라진다.

????????

여기서 얼핏 이 사건의 제 3자인 나무꾼의 이야기가  객관적인 진실인 양 받아들여질 것 같지만 여자가 자결을 할 때 쓰려던 값비싼 단도는 어디 갔을까? 결국 나무꾼은 그 단도를 훔친 사건의 관찰자가 아닌 사건의 한 귀퉁이에 연결된 ‘당사자’ 의 일원이며, 그 역시 완벽한 관찰자가 아닌 사건의 당사자 중의 1인이다. 따라서 그의 증언 역시 완벽한 제 3자가 아니므로 그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왜곡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결국 여기서 확실한 팩트는 다음과 같다.

(1) 사무라이는 단도에 심장을 찔려 죽었다.

(2) 도둑은 사무라이의 부인을 겁간한다

(3) 단도는 사라졌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것은 불확실하다.

(1) 사무라이를 실제로 살해한 사람은 누구인가?

(2) 사무라이와 도둑은 어떤 과정에서 싸우게 되었는가?

(3) 사무라이와 그 부인은 누가 누구를 배신하였는가?

결국 이 영화는 절대적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끝난다. 즉 이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는 자신의 입장에 따라서 해석된 ‘진실’ 을 이야기하지만 그 ‘진실’ 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과연 그들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기에 ‘거짓’ 을 이야기하는가? 어쩌면 그들이 말하는 그들의 ‘진실’ 은 해당의 사건의 이해당사자로써 가질 수 밖에 없는 편견에 의해서 왜곡되어서 관찰된 그들 나름만의 ‘진실’ 이며, 인간은 원래 그러한 존재라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즉, 자신과 연관되어 있는 사실을 자신의 시각으로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것은  개인의 윤리적 문제 차원이 아닌 인간 본연의 문제라는 것이 감독의 시선이다.

근데 이것이 과학 연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우리는 과학을 하다 보면 종종 라쇼몽의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자주 처하기 때문이다. 과연 과학연구의 논문에서 말하는 것은 얼마나 ‘객관적인 진실’ 인가, 아니면 라쇼몽의 주인공들이 각자 진술하는 ‘진실’ 인가?

나는 지금 실험실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영화 촬영장에 있는 것일까.

연구를 하다 보면 종종 특정한 결과에 대해서 다른 설명을 제시하는 논문이 종종 나올 때가 있다. 때로는 과거의 연구결과를 부정하는 논문이 나오며, 이것을 또 다시 반박하는 논문이 이어지며 긴 논쟁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특정한 연구의 한계가 드러나서 어떤 쪽의 결론이 옳은 것으로 판명되기도 하는 반면, 두 개의 서로 대립된 설명이 사실에 부합되지 않고, 제 3의 설명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여러 개의 설명이 각각 해당하는 부분에서는 맞지만, 전체적으로는 잘 부합이 안 되는 경우도 종종 존재한다. 이것은 완전히 ‘라쇼몽’ 과 같은 상황이 아닌가!

이것은 연구가 어느정도 정돈된 결론으로 정리되어 논문으로 나왔을때의 이야기이다. 아직 논문형태로 정리가 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의 연구의 경우 이전의 실험 결과와 부합되지 않는 결과가 나오는 것은 연구에서 일상다반사이다. 과연 이것이 현재 실험과정에서의 실수인가? (실험자가 게다가 실험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쪼랩 연구자라면?)  아니면 과거의 실험에서 문제가 있었나? 어디서인가 문제가 있었다면 과연 무엇이 그런 오차를 내게 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원래 현재의 측정한계로는 오락가락하는 결과가 나와야 정상인걸까?  동일한 실험이 아닌 A와 B가 현재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이것은 A나 B중에 무엇이 문제인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이론이 문제인 것인지? 혹시 현재의 A와 B의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은 가능한 것일지? 이를 입증하려면 어떤 실험 C를 수행해야 할 것일까?

문제는 실험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가 객관적인 관찰자가 되기는 생각외로 힘들다는 것이다.  가령 특정한 가설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하는 경우 이 가설에 부합되는 관찰과, 그렇지 않은 관찰을 100% 객관적인 시선으로 평가하기는 힘든 경우가 많다. 만약 다른 여러가지 실험이 가설에 부합되는 것으로 나왔지만 한두가지 실험이 가설과 상반되게 나왔다면 과연 여기에 집착하여 다른 설명을 찾아보려고 하는 쪽해당 관찰은 실험상의 오류 혹은 아티팩트라고 간주하고 넘어가는 것 중 어느 쪽을 선택하게 될까? 만약 해당 논문을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 실험자의 졸업, 취업, 승진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라면? 그리고 동일한 주제에 대해서 자신이 실험한 것과 타인이 실험한 것의 결과가 상반되게 나왔다면 과연 누구의 실험 결과를 더 신뢰하게 될까? 아무래도 자기 손으로 관찰한 것에 대해서 좀 더 선입관을 가지고 높게 평가하는 것이 보통 아닐까? 아니면 서로 다른 실험 테크닉, 혹은 모델 시스템을 이용하여 수행한 결과가 다를 때, 어떤 테크닉을 좀 더 신뢰하게 될까? 객관적인 관찰을 하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험 연구에서의 관찰은 확증편향을 피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경우가 많다. 흔히 이러한 것을 ‘연구윤리’ 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물론 이러한 것이 연구부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어쩌면 이 문제는 연구윤리 차원에서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즉, 진지하게 연구를 해 본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번쯤은 ‘라쇼몽’ 속의 나무꾼이 된 느낌을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과학자로써의 능력이 부족한 것일까? 라는 자괴감에 빠진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과학은 사람의 활동이며,  이러한 한계 속에서 조금이나마 합리적인 설명을 찾으려는 노력이 바로 과학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해서 주변에서 관찰한 실제 과학 연구에서 벌어진 ‘라쇼몽’과 비슷한 사례를 소개하기로 한다. 그러한 사례는 과학사를 통틀어 매우 많이 있을 것이고 연구 경험이 어느정도 된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라쇼몽’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사람도 가급적 주변에서 관찰한 사례, 즉 ‘나뭇꾼’ 의 입장에서 본 한 사례를 들고자 한다. 후편을 기대하시라 ! 근데 라쇼몽에서의 나뭇꾼은  단도라도 주웠지만 난 별거 주운 게 없는데?

One thought on “‘라쇼몽’ 과 함께 보는 현실의 과학연구(전편)

  1. 실험 결과는 일상다반사같습니다. 결과가 가설대로 진행된다싶다가도 주제에 반박하는 결과도 나오네요. 정말 이럴때는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의문이긴합니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