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박사 배출 현황 (2015년)

미국과학재단 (National Science Foundation) 에서는 매년 미국 대학에서 배출되는 박사학위자에 대한 통계를 내고, 이것을 보고서로 발표한다. 금년도의 보고서도 얼마 전에 나왔다.

2015 Doctorate recipient from U.S.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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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것이 왜 중요한가? 서문에서는 대략적으로 “미쿡 대학은 세계 제일의 킹왕짱임.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가장 뛰어난 닝겐들이 미쿡 대학으로 박사따려고 몰려옴. 그러나 이것이 언제까지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슴. 만약 미쿡 대학이 더이상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되면 그들은 다른 나라로 가버리고 거기서 일하게 될 것임. 그러면 안돼잖아?” 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뭐 이것은 미쿡 사정이고…이 글을 읽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어 해독자일 것인데, 무슨 상관이 있을까?

물론 상관이 많이 있다! 좋든 싫든 미쿡은 현재 세계 학계의 중심이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여기서의 트렌드 변화는 세계의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친다. 더우기 한국의 경우 한국의 학계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이런 기본적인 동향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보고서의 내용을 모두 다 소개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므로 이중에서 취사선별해서 흥미있다고 생각되는 그래프 위주로 소개하도록 한다.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원문 보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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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이래 미국 대학에서 박사를 따는 사람은 급격히 증가해오고 있다. 특히 과학&공학 (S&E) 출신의 박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75% 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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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공학계에서 외국인 (Temporary visa holder) 의 비중은 2015년 약 30% 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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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외쿡인을 국가별로 분류하면? 미국대학 외국인 박사 국가별 3대장은 중!인!한!  2005-2015년 10년간 한국인 출신으로 과학 공학계 미국박사를 딴 사람이 만명이 넘는다 ㄷㄷㄷ

그렇다면 분야별로 보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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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로 보면 역시 생명과학이 제일! 미쿡의 생명과학력은 세계제이이이이이일!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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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로 미쿡인과 외쿡인의 비율을 따져보았습니다. 수학/컴싸, 엔지니어링은 월등히 외쿡인이 많군요.

그렇다면 이들은 학비를 어떻게 조달하는가? 흔히들 생각하는 오해가 미쿡 유학을 가면 집안 기둥뿌리가 부러진다 등등의 이야기인데, 적어도 대학원 유학에서는 그렇지 않다. 자기 돈으로 박사학위 공부를 하는 사람은 미국의 박사과정 중에서 1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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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것도 분야별로 그때그때 달라요인데, 주로 과학, 공학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거의 자기부담은 없고, 펠로우십, RA, TA 등이 많은 반면, 교육, 사회과학등은 자기부담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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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에 걸리는 평균 시간..Education..이거 실화냐 ㄷㄷㄷ 그것도 대개 자기부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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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렇게 졸업한 사람들은 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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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에 따라서 포닥이 디폴트인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음. 생명과학, 물리과학 등은 박사 졸업자의 60% 이상이 포닥을 합니다. 그러나 수학 혹은 컴싸, 아니면 엔지니어링 등은 3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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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직업을 얻으면 대략적으로 어느정도 수입을 올리나? 산업계로 진출한 수학/컴싸 출신들이 가장 높은 소득을 올립니다. IT 의 위엄…그 다음이 공학계, 물리과학..생명과학계는 심리학/사회과학보다도 낮은 수준...지금알았냐 그래도인문학보단 낫잖아

그렇다면 외국 유학생들은 미국에 남고 싶어하는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에 남고 싶어하는 희망을 보이는 경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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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국가별로는? 미국 유학의 3대장인 중인한 중 중-인은 거의 90% 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미국에 남고 싶어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국은 60%대..특이하게도 태국의 경우에는 28% 의 사람만이 미국에 남고 싶어하고 나머지는 자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경향을 보였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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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로는 확실히 과학 – 공학 분야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미국에 죽치고 있으려는 성향이 높고 사회과학, 교육, 인문학 등은 그렇지 않은 경향이 많았다. 역시 미쿡에 죽치고 앉아있으려면 공학, 혹은 컴퓨터과학을 하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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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혹시 외국인은 미국인에 비해서 좀 더 학위를 오래 할까? 전반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학위를 딴 후에 미국을 떠나려고 하는 사람이 미국에 남으려고 하는 외국인보다 전반적으로 학위취득에 소요되는 기간이 긴 것 같다. 왜?   왜긴 왜야 학위가 길어지니까 미쿡에 이골이 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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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미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각각 어떤 식으로 지원을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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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보면 알겠지만 미국인/영주권자에 비해서 외국인은 자기 돈으로 유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이할 만한 것은 외국 정부에서 장학금을 받은 사람의 비율이 미국을 뜨려고 하는 사람에게서 많다는 것이다. 역시 미국 유학을 가서 거기 죽치고 앉아있는 것을 막으려면 정부에서 족쇄를 채워야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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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미국에 죽치고 앉을 사람아려면 압도적으로 산업게에 자리잡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을 뜰 마음이 있는 사람은 학계에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이제 적지 않은 숫자 (2015년 기준으로 13,077명이며, 그중 공학계 3332명, 자연계 2282명, 의약계 2056명이다)의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있는데, 이들이 어떤 진로를 가게 되고, 이들이 분야별로 어느정도의 소득을 올리는지 등의 조사와 통계는 있는지 모르겠다.

P.S.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2011년부터 국내 박사학위 취득자들의 진로현황 등을 조사하는 듯하다. 

여기 또 한명의 정년트랙 과학자가 쓰러지다

요즘 S모 잡지가 과학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글을 많이 올리네염. 부수가 요즘 줄었나? 뭐 여튼 그냥 대충 번역해 볼 뿐입니다. 판단은 알아서.

Another tenure-track scientist bites the dust

Adam Ruben

매튜는 보통 주말에 연구비 신청 결과를 확인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그러나 그는 연구비를 심사하는 연구분과 (Study Section) 위원회가 연구비 심사 과정을 마치고그가 신청한 두개의 R01 연구비 신청을 펀딩할것인지의 여부를 발표했다는 것을 알았다이 연구비가 지원되느냐에 따라 매튜의 연구실 운영경비대학원생의 인건비 및 매튜 자신의 월급이 나오느냐가 결정된다그리고 이전에 냈던 다른 연구비 신청과는 달리 이 연구비의 결과에 따라서 그의 학계에서의 경력이 계속되거나아니면 끝나게 된다(역자주: R01 과제는 NIH연구비의 근간이 되는 개인 연구과제이다. 5년간 지원받으며 성과가 좋은 경우 renew 가 가능하다)

 그래서 매튜 – 내가 대학원생때부터 알던 미국 남부에 있는 큰 연구중심대학의 조교수여기서 매튜는 가명이다 – 는 월요일까지 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주말에 확인하기로 했다

 매튜는 스마트폰을 들고 미국국립보건원 (National Institute of Health)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그 결과를 지켜봤다.이게 없었다면 그냥 기분좋은 일요일 오후였을 그때그는 공원에서 그의 운명을 스마트폰을 통해 읽었다

 과학자특히 학계에 있는 과학자는 이런 종류의 긴장감을 많이 경험한다자신의 연구결과를 정기적으로 정당화하여 연구비를 얻는 것은 과학자로써의 직무 중의 하나이다그리고 이것은 학계뿐만이 아니다산업계에서 일하는 과학자로써 나는 상대적으로 이런 것에 의해서 내 인생은 덜 좌지우지된다그러나 나 역시 상당부분 연구과제에 의해 펀딩되는 회사에서 일하므로 이런 기분을 어느정도 이해한다.  

 그렇지만 매튜에게 있어서 이것은 다른 연구비 리뷰 과정과는 달랐다그는 6년간 조교수로 지냈다그동안 그는 수업을 했고학회에서 발표를 했고연구를 했고대학원생 지도를 했다. 그렇지만 열번 이상의 연구비 신청을 했지만, 그는 한번도 연구비를 얻지 못했다. 매튜는 그가 임용되었을때 받은 정착연구비를 다 써 버렸고, 계속 정년트랙에 남아있으려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 

그는 충격 속에서 스마트폰을 응시했다. 매튜가 제출한 두 개의 연구비 신청의 상태는 이러했다. “논의되지 않음” (Not Discussed)

연구비에 인생이 걸린 사람에게 있어서 “논의되지 않음” 이라는 것은 매우 잔혹한 것이다. 당신은 수년 동안 연구를 했고, 몇달에 걸쳐서 연구비 신청서를 썼다. 그리고 나서 알게 된 것은 당신의 연구비가 단지 지원을 못 받게 되었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애초에 연구비를 줄지 말지 진지하게 고려대상이 되지도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의되지 않음” 이라는 것은 연구분과위원회가 연구신청서에 점수를 부여할 때, 아예 논의에서 배제되었다는 이야기다. 즉 리뷰어들은 특별히 그 연구신청서를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싫어하지도 않은 셈이다. 왜냐하면 위원회에서 오직 3명만이 그것을 읽어봤기 때문이다. 즉 처음에 당신의 연구신청서를 읽어본 3명의 초기 리뷰어들이 이 연구비 신청서는 위원회에서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결정했다는 이야기이다.

올림픽의 체조선수가 평행봉에서 방금 착지했고, 관중들이 심판석을 보는 순간을 생각해보자. 그런데 점수를 내놓는 대신 심판들은 “미안, 우리는 니 경기 안 봤다” 라고 하는 것을 상상해보자. 아마도 “논의되지 않음” 이란 이것과 비슷한 것이다. 오직 차이는 “미안하다” 라는 이야기도 없었다는 것 정도다.

“‘논의되지 않음’이라는 평가는 정말 안좋다” 라고 매튜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것은 그냥 죽음의 키스와 비슷해”. 만약 연구비 심사 점수가 낮으면 적어도 개선할 기회는 있다. 즉 연구비를 담당하는 프로그램 오피서에게 접촉하여 다음에 무엇을 수정하면 좀 더 나아질 수 있을지 조언을 듣기라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NIH에 제출되서 “논의되지 않음” 이라고 낙인찍혀 되돌아온 연구비 프로포절는 그냥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한문장의 반응과 다를 것 없다.

매튜는 아내와 몇몇 동료에게 소식을 문자로 “나는 지금 추방된 것 같다” 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그 다음에 그는 동네 동물병원에 가서 6개월 전애 죽어서 화장되었지만, 감정적으로 준비가 될 때까지 가져오기를 미루고 있던 애견의 재를 가져왔다.

그의 연구비 신청서가 논의조차 되지 않았으므로 그의 정년트랙 교수자리는 없어졌고, 20년동안 열심히 과학계에서 일한 이후 그의 학계에서의 장래는 끝났으나 그는 감정적으로 여기에 대비가 된 것 같다.

매튜는 말했다. “불행하게도, 여기서 다시 솟아나올 불사조는 없을 거야”

아마 매튜는 이후의 진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그는 앞으로 뭘 할지에 대해서 확신이 없다. 지금 당장은 무엇이든 생각해볼 때이다.  그는 심지어 이전에 생각했던 것을 고백하기도 했다. 즉 그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분석 능력이 은행업에서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가 앞으로 정년트랙 교수자리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실패한 연구책임자를 고용해 줄 곳은 별로 없지” 라고 그는 씁슬히 이야기한다.

매튜는 이런 상황에 처한 수많은 연구자들 중의 한명일 뿐이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교수들이 마치 파리처럼 바닥에 떨어진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던 사실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잘 안하고 다닐 뿐이다

나는 매뉴의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서 알았다. 페스북에 메튜는 NIH의 사진을 올리고 공식적으로 그의 꿈에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했듯이 한 사람의 학계 과학인생이 이런식으로 끝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매튜에게 일어날지는 진짜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생물학에 숨겨져 있는 미지의 신비를 찾고자 하는 과학자라는 직업의 모든 측면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가 스무살일때, 그는 세포가 내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정교한 기작을 알아내는데 자신의 인생을 다 바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학계 과학자로써 마치 계획된 듯한 경로를 걸어왔다. 처음 대학원에서 그의 관심분야를 좁힌 다음에, 포닥과정에서 자신이 추구할 독창성있는 연구분야를 찾은 다음, 최종적으로 정년트랙 조교수가 되었다.

그는 그가 임용되었을때 한 계약을 기억한다. 10년 내에 그는 테뉴어를 신청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아무도 그 전에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가 쓴 처음 몇 번의 연구비 신청서는 거절되었고, 이것들은 그가 여태까지 걸어왔던 깨끗한 경로와는 달랐다. 연구비 리뷰어는 그의 연구를 “별로 임팩트가 없다” 라고 치부했다. 이것은 과학연구비 지원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로써, 매뉴의 연구가 아마도 세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우리는 세포가 작동하는 것에 대해서 지금보다 얼마나 많이 알아야 되는가? (많은 기초과학 연구실들이 비슷한 문제에 직면한다. 그래서 많은 연구비들이 “암 때문에~” 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다) 그는 이런 리뷰에 맞추어 연구비를 수정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면 아마 연구비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이미 소모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더 많이 낭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또한 그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대해서 절망했다. 기초과학은 몇명의 유명인에 의해서 독점되고 있다. 매튜의 연구비를 담당하는 프로그램 오피서는 언젠가 매튜에게 그는 노벨 수상자’들’  – 단수가 아니라는 데 주목하라 – 과 경쟁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연구비 리뷰어는 신참과 VIP를 따로 심사하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연구계획에 돈을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든는다. 그렇다면누가 연구비를 탈 확률이 높겠는가? 지금 바로 시작한 매튜와, 30년 동안 경력을 가진 엄청난 리소스를 가진 스웨덴산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는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고른다면?

“그들은 그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아” 하고 매튜는 절망했다. “리뷰어들은 아직도 ‘이 결과는 아직 예비수준이야’ 라고 한다. 또는 ‘이 실험, 저 실험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한다. 그렇지만 난 지금 막 연구실을 시작했을 뿐인데 뭘 어쩌라고?”

나는 많은 학생들이 과학에 대해서 너무 로맨틱한 상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흥미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답을 찾으면 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당신이 연구를 하고 싶은 것과 당신이 연구를 할 수 있는 돈을 구하기 위한 것은 반드시 같은 일이 아니다. 이것을 매튜는 아주 어렵게 깨달았다. 그들은 “예비” 결과가 없으면 돈을 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돈 없이 그들이 원하는 “예비” 결과를 어떻게 얻을지는 알아서 해야 한다.

그래서, 여러분, 아시겠지면 현재 시스템이 이렇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하는 연구를 사랑하시겠고, 아마 잘할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위원회가 당신 연구가 별로 임팩트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연구 캐리어는 바로 끝날수도 있어요. 위원회가 일단 논의라도 한다면 말이죠. 회의실에 있는 몇 사람에 의해서 참 많은 힘이 부여된 셈입니다.

메튜가 조언하는 최선의 생존방법은 항상 어디서 돈이 올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즉 학생이나 포닥시절에 하는 실험이 학위논문이나 페이퍼의 전체 구성에 어떻게 들어가는지를 생각하는 것처럼 연구비를 따와야 하는 입장이 되면 어떻게 지금 하는 연구를 어떻게 위원회를 설득하여 돈을 받아낼지를 생각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냥 재수가 없었던 사람의 불운 이야기?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이야기? 매튜와 다른 신진연구자가 허비한 노력은?  과학계에서 ‘추방된’ 랩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새로운 랩을 찾아야 할까? 현재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것을 끝마칠 돈이 없는 실험들은 그저 돈 낭비? 충분한 리소스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학생들에 대한 과학에 대한 관심을 유지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은?

이러한 수많은 질문에 대해서는 ‘지금 논의하지 않기로 한다’

저명성에 대한 집착에 의해 왜곡되는 과학 연구

과학자 역시 인간이기에 자신이 가진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기는 힘들다. 혹시 우리는 유명한 과학자 / 저명한 저널 / 유명한 연구기관 / N모상 등이 주는 권위에 취해 과학 그 자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 최근 N모잡지에 Simine Vazire 라는 사람이 기고한 글을 번역해봄. 역시 맨날 하는 이야기지만 본 번역은 무허가 번역이므로 언제라도 삭제될 수 있고, 본 번역가는 비전문 번역가이기에 날림번역-오역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공지해 둠.

Our obsession with eminence warps research

Simine Vazire

Simine Vazire 는 UC Davis 의 심리학과 교수이다.

우리는 우사인 볼트가 2등보다 얼마나 빠른지를 기록으로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자의 경우 누가 최고의 과학자인지를 말하는 것은 어려우며, 최고에서 2번째 과학자보다 최고 과학자가 얼마나 더 뛰어난가를 말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이러한 최고의 과학자라는 인식을 결정하는 것은 적어도 일부분은 심판에 의한 자의적인 결정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모든 노이즈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과학자를 판별하는 확실한 신호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호를 근거로 우리는 좀 더 나은 연구를 하는 사람의 연구결과를 출판하고, 연구비를 주고, 이런 사람을 고용한다. 저널의 에디터, 피어리뷰어, 그리고 연구비의 리뷰어로써 나는 다른 동료 과학자들의 연구 중에서 좀 더 나은 것을 찾아내는데 매우 긴 시간을 보낸다. 만약 내가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이 동전던지기 식의 무작위적인 프로세스라면 기운빠지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 부정적으로 보면  나는 우리 과학자들은 훌륭한 과학자를 식별하는 우리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너무 과신하는 것이 아닐까 염려하기도 한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연구비를 많이 가지고 있고, 상을 많이 타고, 논문이 많고, 인용빈도가 높은 과학자가 다른 과학자들에 비해서 더 뛰어난 과학자라고 가정해버리곤 한다. 저명성, 즉 특정한 업적이나 지위, 상 등에 의해서 생기는 권위가 실제보다 너무 많이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물론 나는 지금 대개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사람들이라는 것을 부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수만명의 다른 과학자들은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 역시 중요하다. 과학이라는 것은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것이므로, 과학을 잘 하는 사람들이 누군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선택된 몇 명의 유명 과학자들만 부각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과학 자체를 손상할 수 있다.

저명성이 정당화되려면 얼마나 뛰어난 과학을 하는지의 수월성에 대한 평가가 정확해야 하는데, 이 과학의 수월성이라는 것 자체가 쉽게 판별하기가  어렵다. (이 링크를 참조 go.nature.com/2qalo2l). 가끔은 어떤 논문 원고를 저널에 실어주어야 하는지, 어떤 연구비 프로포절에 돈을 주어야 하는지, 어떤 교수 임용후보자를 실제로 임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의 의견이 갈릴 때가 있다. 저널의 에디터로 일한 경험을 미루어 보자면, 한번은 다른 모든 리뷰어들이 그닥 새롭지 않다고 생각해서 출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논문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과학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냥 에디터 직권으로 출판을 허가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논문은 저널에 실린 다른 어떤 논문보다도 훨씬 관심을 받았고, 이 연구결과는 수십개의 뉴스기사로 소개되었으며, 6개월 안에 수천번 다운로드되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형편없는 연구를 건실한 연구와 구분하는 것은 건실한 연구중 최고의 연구 5% 를 그 다음 5% 와 구분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고, 논문이 게재되느냐 아니냐는 ‘최고의 연구 5%’ 와 ‘그 다음 5%’ 사이에서 갈라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고려해보면, 논문 개제승인, 채용과 같은 중요한 결정은 단순히 연구의 질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정에 영향을 주는 것들은 무엇일까?

과학자 역시 인간이며, 당연히 그들은 편향에 취약하다. 이러한 편향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지위에 따른 편향이다. 즉 특정한 연구 성과에 대한 평가는 적어도 일부는 그 사람이 이전에 받았던 평가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이전에 좋은 논문을 냈던 기록이 있는 사람들의 논문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논문에 비해서 쉽게 어셉트된다) 이것은 결국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현상, 혹은 ‘매튜 효과’ 와 비슷하며, 이것은 로버트 머튼이 거의 50년전에 논했던 이야기이다.  (R. Merton Science 1595663; 1968).

결국 저명성 자체가 저명성을 낳게 되면, 시스템의 노이즈는 증폭된다. 즉 가장 큰 성공을 하는 데에는 어느정도 운이 기여하며, 결국 운 자체가 또 다른 운을 낳는다.

설사  지위에 대한 편향이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개인적인 편향이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후보자를 다른 후보자로부터 선택할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 경우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주관적 선호에 의존하게 된다. 가령 신규 교수임용 위원회는 특정한 연구 토픽, 특정한 그룹의 사람, 혹은 특정인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선호할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이전의 성취가  미래의 성취의 확률을 높이며 결과적으로 이는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논문이나 연구 프로포절을 심사할때 엘리트 과학자를 선호하는 것은 마치 우사인 볼트가 최근 5대회에서 우승했으므로 다음 대회에서 10m 앞에서 뛰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저명성에 의해 의존받는 평가는 과학자들을 자신을 잘 포장하고, 좋은 결과만 내놓게 만드는 경향이 있으며, 과학 연구의 투명성과 건전한 비판을 저해한다. 이러한 경향은 결국 연구재현성 문제를 악화시키는 주 요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는가? 우리는 과학에서 권위를 하루아침에 없앨 수는 없다. 불완전한 해결책이라면, 저명성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좀 더 어려운 쪽으로 나가야 한다. 즉 소속된 대학의 명성이나 이전의 논문 업적 등과 같은 휴리스틱에 의존하는 것에서 떠나서, 논문이나 프로포절 자체를 잘 읽고 검토하여 이것이 좋은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내가 이러한 지위 편향을 피하는 한가지 방법이라면 스스로 저자의 신원이 누군지 보지 않고 평가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위 ‘이중 맹검 리뷰’ (Double Blind Review) 는 사회학이나 심리학분야의 많은 저널에서 현재 채용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맹검 리뷰를 체험해 본 이후에 내가 느낀 것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저자가 누군지를 연구가 어떤지 판단하는 일종의 지름길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신원에 대한 정보 없이 연구를 평가하는 것 – 잘못하면 대가의 연구에 혹독한 평가를 할 수도 있다는 – 은 정신적으로 매우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것이 과학을 평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과학 커뮤니티는 건실한 연구에 보상을 주는 동시에, 누가 최고 중의 최고 과학자인지를 추측하는 것을 삼가는 것이 좋다. 실제로 어떤 과학자들은 상위 20% 정도의 연구 계획서를 고른 다음, 실제로 누구한테 연구비를 주는지는 추첨으로 결정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F. C. Fang and A. Casadevall Science352, 158; 2016).

지위 편향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모든 사람이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 즉 과학자의 저명성에는 지금보다 덜 관심을 가지고, 이보다 관심이 떨어지는, 그러나 중요한 ‘과학적 엄밀성’ 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일 때이다.

Extraordinary and poor

S모잡지에 이 시대 과학자의 심금을 울리는 이 하나 나와서 번역해봤습니다. 역시 맨날 하는 이야기 “저는 전문번역가가 아니므로 제 번역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며, 무허가 번역이므로 저작권의 문제제기가 있으면 언제라도 삭제할 수 있습니다”

Extraordinary and poor

Peng Yuan

Peng Yuan은 스탠포드 대학에서 포닥으로 일하고 있다.

고등학교 이래 나는 뉴로사이언티스트가 되고 싶었다. 이제 최첨단의 뉴로이미징 랩에서 포닥을 하고 있고, 나는 그동안 해온 일들에 대해서 매우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내가 꿈꿔왔던 미래가 조금만 더 하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에 흥분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 연구실의 다른 포닥이 얼마전에 나한테 이랬다. “네가 이렇게 좋은대학에서 일하면서 항상 금전문제에 대해서 염려하는 것을 보니 참 안됐다” 사실이다. 나는 항상 돈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고, 결국 나는 나의 꿈을 성취하기에는 너무 가난한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서 지금 내 포닥 월급이 적다고 불평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은 미국 내의 대개의 기관보다 더 많은 월급을 준다. 새로 오는 포닥을 위한 웹 페이지에는 학교에서 포닥에게 제공하는 월급은 독신인 포닥이 먹고살기에 충분한 액수라고 했다. 실제로 만약 내가 독신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문제는 나는 내 월급으로, 몇달 전에야 겨우 일을 시작해서 파트타임 일자리에서 일하는 아내와, 박사과정때 태어난 내 두 딸, 그리고 장모를 부양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어마어마한 집세와 큰딸의 유치원 비용 때문에 우리는 매달 적자상태이다. 중국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계속 받는 것이 나는 내 꿈을 쫓는 노력을 유지시키는 원동력인 셈이다.

내가 이전에 조금 더 재정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일자리를 안 찾아본 것이 아니다. 포닥을 하기 전에 나는 몇군데의 컨설팅 펌과 면접을 봤는데, 여기서는 모두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월급의 3-4배를 제시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당시에 어떻게 금융상품에서 이익을 내게 만들지를 고려하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근에는 몇군데의 제약회사에서 제안이 왔는데, 현재 받는 월급의 3배를 준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끌리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는 컨설팅 회사에 다니거나 산업계에서 과학자로 일하는 것이 보람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 현재로써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적어도 지금 현재는 이런 금전적 이득을 버리고 학계에서 제공하는 지적 자유를 누릴 생각이다. 내 인생은 한번 뿐이고, 나는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싶다.

그렇지만 이런 맹목적인 신념은 매달 날아오는 청구서를 지불해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매달 저소득층을 위한 푸드스탬프를 받아야 하는 지금 현실에서, 내 가족과 내 자신에게 왜 내가 하는 연구가 가치가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가난하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족을  위해서 책임있는 선택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지속적인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나는 이기적일까? 나는 환상 속에 있는가? 이렇게 과학에 대한 추구가 결국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이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결코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험이 실패할때마다 이런 스트레스는 점점 가중된다. 아마도 이러한 모든 존재론적인 의문 역시 과학자가 되는 트레이닝의 일부이며, 새로운 것을 찾는 과정에서 내가 참아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재정적인 현실을 무시하는 것은 때로는 낭만적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이와 동시에 가족을 꾸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런 낭만적인 거품에서 빠져나와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결국 내 가족을 부양하는 것과 과학자로써의 캐리어를 양립하는 것을 동시에 병립하기로 했으며, 여기에 따르는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비슷한 과정을 가기로 한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부담을 받아들이면,  여기서 나오는 모든 스트레스와 의문을 통해서 당신의 인생에서의 선택이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확실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당장은 나의 학계에서의 꿈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다. 최근에 나는 영주권을 받았고, 내가 연구를 계속하면서도 파트타임 알바를 해서 추가수입을 올리는 것도 이제 불법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이런 일을 할 시간이 과연 생길런지도 문제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여전히 희망적이다. 나는 이런 모든 고생이 결국 일시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당신은 내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고등학생 과외를 하거나, 개 산책시키는 알바를 하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동시에  나는 내 이름이 실린 논문을 과학저널에서 보았으면 좋겠고,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지식을 조금이라도 발전시키는데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