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에서 구조까지 83년 걸린 단백질

지금은 효소(Enzyme)가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학부 1학년생도 아는 상식이다. 그러나 그 상식은 언제부터 상식이었는가? 적어도 20세기 초반에는 이것이 상식이 아니었다.

사실 세포를 깨서 나온 물질이나 혹은 생물에서 분비된 물질이 시험관 내에서 화학 반응을 촉매한다는 것은 19세기 중반부터 알려져 있었다. 가령 위액에 존재하는 물질인 ‘펩신’ (Pepsin)이 단백질을 분해한다거나, 효소 추출물에서 존재하는 인버타아제 (Invertase)가 설탕 (Sucrose)를 글루코스 (Glucose)와 과당 (fructose)로 분해한다는 것은 20세기 이전에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화학 반응 자체가 단백질이라는 물질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도 축적되어갔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촉매 반응 자체가 단백질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일까?

지금의 생화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놀랄만한 일이지만, 20세기 초반에만 하더라도 이러한 효소의 촉매 반응이 단백질에 의해서 일어나는지, 아니면 단백질은 실제로 촉매 작용을 수행하는 화학 물질에 붙어 있는 ‘군더더기’ 같은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특히 20세기 초까지 가장 활발히 연구되던 단백질인 헤모글로빈⁠1이 산소를 결합하는데는 별도의 화학물질인 헴 (Heme)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효소의 화학 반응에는 단백질은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니며, 단백질은 단지 이러한 촉매 반응을 수행하는 촉매단 (Prosthetic Group) 역할을 하는 화학물질의 운반체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20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한 학계에서는 주류 학설이 되었다.

이를 반증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촉매 반응을 수행할 수 있는 소분자 화학물질이 들어있지 않은 단백질을 순수 정제하여 순수한 단백질만으로 화학 촉매 반응이 일어나는지를 밝혀야만 했다. 그리고 당시에 단백질이 순수 정제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은 단백질의 결정화였다. 알다시피 결정은 단일한 물질이 격자를 형성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어떤 물질이 결정을 이룬다는 것은 해당 물질이 순수 정제되었다는 궁극적인 증명이 되는 셈이다.

최초로 효소를 정제하여 이를 결정화하고, 순수한 단백질로만 된 효소가 촉매 활성을 보인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은 미국의 생화학자인 제임스 섬너 (James B Sumner, 1887-1955)이다. 코넬 대학의 교수였던 섬너는 작두콩 (Jack Bean)에서 요소를 분해하는 요소분해효소 (Urease)를 정제하고 이를 결정화하였다.⁠2 섬너가 요소분해효소를 정제할 때 사용한 방법은 지금 보기에는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한데, 그는 작두콩을 아세톤과 물을 섞은 액체에 갈아서 추출물을 얻고, 이를 밤새도록 방치해 두어 생기는 결정을 거름종이에 여과하여 분리하였고, 이 결정이 바로 요소분해효소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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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B Sumner, 1887-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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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너가 얻은 요소분해효소의 결정..결정 얻는게 어렵다구요? 난 콩 갈아서 걍 물하고 아세톤 하고 섞어서 슥슥 놔두니 결정이 막 깔리던데 

그러나 섬너의 결과는 당시 주류 학계인 독일 학계에서는 잘 받아들여져지지 않았다. 섬너는 후속 논문으로 그가 얻은 결정을 녹인 액체에 펩신이나 파파인과 같은 단백질 분해 효소를 처리하니 요소분해효소의 활성이 없어진다는 논문을 발표하여 그의 요소분해효소 활성이 단백질에 의존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3 그러나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장한 효소 = 단백질이라는 이론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효소가 단백질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후 록펠러 연구소의 존 노스롭 (John H Northrop, 1891-1987) 이 단백질 분해효소 펩신을 결정화한 이후에⁠4 비로소 인정되기 시작하였다. 섬너와 노스롭은 1946년 효소를 최초로 결정화하여, 효소가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최초로 증명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고, 효소=단백질이라는 것은 그제서야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는 상식이 되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섬너가 1926년 결정화한 최초의 효소 유래의 결정인 콩 유래의 요소분해효소의 구조는 2010년(!)까지도 규명되지 않았다! 2010년 발표된 JMB의 이 논문에서 ‘결정이 만들어진 이후 83년 만에’ 규명된 Jack Bean 유래의 요소분해효소에 대한 기술을 하고 있다. 물론 다른 생물 유래, 특히 미생물 요소분해효소의 구조는 이전에 풀렸고, 콩 유래의 요소분해요소 역시 다른 구조와 그닥 틀리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흔히 단백질 결정학에서 가장 병목이 결정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상당수의 단백질들이 아주 멋있게 결정을 이루지만, 제대로 회절을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유로 구조를 규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데 이 예가 아마 가장 적절한 예가 될지도 모른다. 결정 만든 후에 구조를 푸는데까지 83년 걸린 경우도 있으니 결정 만들고 회절을 안 한다고 울지 마세염..내가 결정 만든 후에 구조 푸는데까지 3년 걸려봐서 아는데 

1 헤모글로빈이 가장 활발히 연구된 이유는 혈액에서 충분한 양을 얻을 수 있으며, 아주 손쉽게 결정화하여 결정 형태의 순수 정제된 단백질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Sumner, J. B. (1926). The isolation and crystallization of the enzyme urease preliminary paper. Journal of Biological Chemistry69(2), 435-4

3 Sumner, J. B., Kirk, J. S., & Howell, S. F. (1932). The digestion and inactivation of crystalline urease by pepsin and by papain. J. Biol. Chem, 98, 543-552.

4 Northrop, J. H. (1930). Crystalline pepsin: I. Isolation and tests of purity. The Journal of general physiology, 13(6), 739-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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