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펫 입으로 빨던 시절을 넘어서

생물학 연구의 필수품?

사실 생물학 연구라고 해도 연구하는 대상이나 주제에 따라서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사용하는 기자재나 테크닉은 크게 상이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떤 생물학 연구실이라도 거의 빠지지 않고 발견되는 물건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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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파이펫 (Micropip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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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파이펫 팁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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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원심분리 튜브 (mini centrifuge tube – 속칭 E-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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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원심분리기 (mini centrifuge)

인간, 박테리아, 식물, 선충, 초파리, 바이러스, 맘모스가 되었건 무엇을 연구하든 실제로 물 묻히며 실험하는 생물학 연구실에 아래의 기구가 보이지 않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생물학 연구실에서 사진을 찍는다 하면 으례 다음과 같은 사진이 나오기 마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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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직종처럼 30년 경력자 같진 않다

“Dye로 맨든 것이…이건 괜장히 귀하네요”

출처

그렇다면 어디에나 다 있는 마이크로파이펫과 E-tube가 생물학 연구에 등장하게 된 시점은 언제인가? 오늘은 여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한다.

그전에는 입으로 빨았다. 레알.

흔히 마이크로파이펫과 E-tube가 현대생명과학이 태동할때부터 있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생각외로 마이크로파이펫과 E-tube 는 최근의 발명품이다. 마이크로파이펫은 1950년대 말에 발명되었다.

그러면 그전에는? 그냥 입으로 빨았다. -.-;;;

아니면 파스퇴르 파이펫을 사용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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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같다고? 여기에 보면 1960년대 이전의 연구자들이 얼마나 마우스 파이펫에 의존해서 실험을 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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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의 사진으로써 혈장 (Plasma)  샘플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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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C와 같은 질병관련 샘플을 다루고 있는 곳에서도 짤없이 마우스 파이펫으로 샘플을 다루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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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도 마우스 파이펫을 이용하여 샘플을 핸들링하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의 연구실에서 입으로 파이펫을 빠는 것은 금단의 기술처럼 여겨졌지만 불과 50여년 전만 하더라도 거의 모든 샘플, 즉 아무리 병원성이 심각하건, 유독물질이건, 동위원소이건 (…) 간에 대개의 샘플은 저렇게 입으로 빠는 마우스 파이펫을 이용하여 다루는 것이 보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현재 사용하는 마이크로파이펫의 원조는 어디인가? 이것은 1950년대 말의 독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과학력은 세계제이이이일!

2차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 과학을 선도하던 독일이었으나 나치스의 도래로 많은 과학자들이 독일을 탈출하고, 2차대전의 패전으로 큰 타격을 입긴 했지만 전후 독일에서도 많은 과학적/기술적인 발전이 일어났으니, 그 중의 하나가 마이크로파이펫이 탄생한 곳도 바로 독일이다.

그렇다면 마이크로파이펫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이렇게 생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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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nrich Schnitger (1925-1964)

이 하인리히 (성은 정확히 어떻게 읽는지 모르겠다 -.-) 라는 이름의 과학자는 박사학위를 따고 마버그 대학 (University of Marburg) 에서 포닥으로 일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 사람의 아버지는 발명가였다고 하고 소년시절부터 발명을 즐겼다고 한다. 그는 학위시절부터 연구를 위한 새로운 기구를 만들기를 즐겼다고 한다. 덕후네

포닥시절 그는 매우 많은 샘플을 가지고 크로마토그래피를 하고 이것을 분석할 일이 생겼는데, 발명가의 아들답게 이 샘플을 처리하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했다. 그러다가 주사기 안에 스프링을 넣고 샘플을 채취하는 그런 기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가 만든 ‘프로토타입’ 이 여러가지 액체를 지정된 양만큼 채취하는데 유용할 것 같다고 생각한 그의 보스는 대학의 공작실에 의뢰해서 그의 프로토타입을 좀 더 견고하게 만들도록 의뢰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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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이런 것이었다. 단, 이때의 모델은 파이펫에서 볼륨을 조절할 수는 없고, 고정된 볼륨만을 취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1957년 ““Vorrichtung zum schnellen und exakten Pipettieren kleiner Flüssigkeitsmengen” (Device for the fast and exact pipetting of small liquid volumes) 라는 제목으로 독일 특허를 출원하였고 1960년 특허가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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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기술은 에펜도르프 (Eppendorf)사에 독점라이센스되어 에펜도르프사는 1961년 그의 제품을 상업화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발명자인 하인리히는 큰 부자가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는 그의 발명품이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기 전인 1964년 독일 바바리아의 호수에서 수영하다가 39세의 젊은 나이로 익사하였다.ㅠㅠ

Gilson Pipette

비록 마이크로파이펫이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상용화는 에펜도르프사에서 처음 이루어졌지만, 이 제품이 독일 외의 다른 국가, 특히 미국에서 쓰이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이 파이펫의 단점이라면 고정된 부피밖에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이 볼륨을 조절할 수 있는 파이펫은 어디서 처음 만들었나? 이것은 요즘 파이펫의 ‘Industry Standard’ 라고 여겨지는 길슨 (Gilson) 사에서 처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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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슨 사는 위스콘신대학의 의대 교수였던 워렌 길슨 (Warren Gilson) 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처음 창업되었다. 이 회사는 처음에는 여러가지 실험용 기자재를 생산하던 회사였다. 볼륨 조절이 가능한 파이펫은 1972년에 처음 길슨사에 의해서 특허가 출원되었고 1974년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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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와있는 파이펫은 거의 현재 사용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즉 우리가 지금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볼륨 조정 가능한’ 마이크로파이펫은 1974년 이후의 발명품이며, 그 이전까지의 대부분의 분자생물학/생화학 연구는 ‘입으로 빠는’ 파이펫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실감이 나는가?

왜 최초의 파이펫을 상업화한 에펜돌프사에서는 볼륨을 조정가능한 파이펫을 출시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어쨋든 파이펫을 처음 상용화한 회사는 에펜돌프이지만 볼륨을 조절가능한 파이펫을 만들어서 오늘날 마이크로피펫터의 원조로 알려지는 회사는 길슨사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E-tube와 Mini Centrifuge

에펜돌프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볼륨을 조절 가능한 파이펫을 만들지 않은 것은 그네들의 실수이지만, 대신 이들은 생명과학 실험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을 만들었다.

그것은 1.7ml 미니 원심분리 튜브, 흔히 말하는 Eppendorp Tube, ‘이-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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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까지 생화학/생명과학 실험에 사용하던 작은 용량을 담는 그릇은 볼것도 없이 유리 시험관이었다. 그러나 신속하게 샘플을 분주하는 것이 에펜돌프의 최초의 파이펫으로 가능하게 된 이후에, 여기에 어울리는 작은 용량의 튜브와 이것을 원심분리할 수 있는 탁상용 원심분리기가 개발되었다. 최초의 에펜돌프 튜브가 등장한 것은 196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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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여 에펜돌프는 ‘Microlitter System’ 이라는 이름으로 1ml 이하의 시료를 다룰 수 있는 튜브, 원심분리기, 파이펫을 세트로 팔기 시작하며 이것이 1964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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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참 당연한 일이지만, 이러한 시스템은 기존에 유리시험관에 들어 있는 시료를 마우스 파이펫으로 입으로 빨아서 실험을 하던 연구자들에게 엄청난 편의를 가져오게 된다. 특히 분자생물학의 도래와 더불어 1ml 이하의 소량의 시료를 가지고 실험을 하게 된 것의 원동력은 이러한 1ml 이하의 시료를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실험기구들의 등장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위원소 입으로 빨던 선배님들을 추모하며 (…)

이렇듯 우리가 지금 현재 실험실에서 필수품처럼 여겨지던 마이크로파이펫터, E-Tube, 탁상용 원심분리기와 같은 것들은 모두 1970년대 이후에 보편화된 것이며, 그 이전까지 이루어진 모든 분자생물학적 / 생화학적 발견들, 가령 DNA 가 유전물질이라는 발견이라든지, DNA Polymerase의 발견이라든지, 온갖 잡스러운 대사관련 효소의 발견이라든지, 심지어 유전암호의 발견과 같은 것까지 대개의 분자생물학책의 발견은 ‘동위원소를 마우스 파이펫으로 빨아가며 실험하던’ (…) 선배 연구자들의 노고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니 좀 하루 파이펫질 빡세게 했다고 ‘생물학은 왜 이리 노가다인 것인가!’ 하고 좌절하지 말라고 

참고자료 

50 Years of Eppi

Klingenberg, When a common problem meets an ingenious mind, EMBO Reports 2005

Origins of the Pipette : Why Today’s Scientists Don’t Need to Use Their Mouth

유전공학 기술의 탄생 : 혁신적인 기술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Cas9 이야기와 Deja vu

최근 바이오 관련 소식중에서 가장 핫 한 이슈라고 한다면 뭐니뭐니해도 CRISPR/Cas9 과 Genome editing 소식이다. 각종 생물의 지놈 – 유전체를 떡주무르듯 조작하는 시대가 와서 형질이 개선된 농작물이나 가축이 등장하고, 불치의 유전병을 치료할 수 있는 수단이 등장하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개선된 인간’, 즉 특정한 형질이 강화된 ‘슈퍼인간’ 의 출현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지금으로 봐서는 우물 파기도 전에 숭늉찾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간혹 눈에 띈다. 이러한 아직은 공상과학 소설의 도메인에 속하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CRISPR/Cas9 에 의한 Genome Editing 에 대한 특허분쟁 소식, 해당 기술을 가진 회사가 IPO 를 했다는 소식, 혹은 이를 이용하여 면역항암치료 (CAR-T등을 위시한) 의 효율을 높였다는 이야기 등, 이 기술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는 모르지만 수많은 화제를 낳고 있다. 응용의 면은 둘째치고라도 지금 당장으로써는 이 기술은 생명과학연구에 있어서 하나의 혁신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즉 기존의 방법으로 유전체에 대한 특별한 조작방법이 없던 대개의 생물에 대해서 유전체 시퀀스만 있으면 역유전학 (Reverse genetics)이 가능해진 상황은 기존의 모델생물에 의존한 생물학의 지형도를 바꿀 수 있는 포텐셜이 있다 하겠다.

….그런데 이런 CRISPR/Cas9 이야기를 듣다 보면 뭔가 데자뷰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 안 게신가? 아마 이런 데자뷰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연구의 연식이 꽤나 된 (…강제연식인증) 분이어야 할 것이다. 즉, 이러한 이야기들은 이미 1970년-80년대 ‘1세대 생명공학기술’ 인 ‘재조합 DNA 기술’이 등장할 때 한번씩 해 본 이야기였다! 

1세대 생명공학기술이 유전자 한두개를 분리해서 이를 가지고 깨작거리는, 지금으로 봐서는 극히 초보적인 기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중후반에 이것이 도입되었을때는 많은 이들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1975년에 미국의 아실로마에서 유전공학기술의 위험성에 대해서 여러 학계인사와 매스미디어, 윤리학자등이 모여 회의를 하였으며, 유전공학기술의 위험성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암 바이러스 등과 같은 위험한 생물에 대한 유전자 조작은 삼가자라는 모라토리움 선언이 있었다.  아실로마 컨퍼런스라는 것을 검색해 보면 나오는 국문 자료라는 게 누군가가 오래전에 올린 자료 정도라는 게 함정 또한 재조합 DNA 기술을 개발한 일원인 UCSF의 허버트 보이어와 벤처기업가 로버트 스완슨에 의해서 최초의 바이오텍 기업인 제넨테크(Genetech) 가 설립되었으며, 의학용 목적의 재조합 단백질의 생산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한편 국내에서는 한참 뒤늦은 80년대 초반부터 ‘유전공학’ 의 열풍이 일었으며 정작 유전자 조작기술과는 별로 관련도 없는 ‘포마토’ (땅에는 감자가 열리고 위에는 토마토가 열린다는) 와 같은 공상과학기술이 유전공학의 향후 대표산물로 선전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 글도 찾아보니 누군가가 오래전에 올린 자료 외에는 별게 없다는 게 함정

여튼 현재 CRISPR/Cas9 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가지 일들을 보면 1970년대 유전공학 기술의 초창기에 벌어지던 여러가지 일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1970년대 유전공학 기술이 어떻게 성립되었고, 이것의 상업화는 어떻게 일어났으며 이것의 파급효과는 어떻게 생명과학과 산업계, 그리고 사회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Cas9 과 같은 신기술이 앞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생명과학계와 관련산업게에 영향을 미칠지를 예견하는 좋은 역사적 사레가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뭔가 쓰고 싶지만 (…) 이미 아주 좋은 연구서가 그것도 국내 연구자에 의해서 출간되었기에 이 책의 내용에 대한 간략한 요약 비슷한 것을 해보도록 한다.

The Recombinant University 

Yi D 2015, The Recombinant University : Genetic Engineering and the emergence of Stanford Biotechnolog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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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재 서울대 서양사학과 과학기술학 연계전공에 소속된 이두갑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및 기타 연구논문을 기반으로 한 책으로써 1970년대 유전공학 기술의 기반 연구가 수행되었던 스탠포드 대학의 생화학과를 중심으로 한 유전공학 연구가 발생하게 된 그 기반과, 순수기초연구에 기반한 연구의 상업적 이용, 그리고 이렇게 상업화된 연구가 아카데믹 연구기반에 미치는 영향 등을 기술한 학술서이다.

흔히 1970년대 유전공학 기술의 도래는 스탠리 코헨 (Stanley Cohen) 과 허버트 보이어 (Herbert Boyer) 간의 협동 연구와 그 이후 허버트 보이어와 로버트 스완슨 (Robert A Swanson) 에 의한 제넨테크(Genetech) 의 설립 등에 촛점을 맞추어 기술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유전공학 기술의 근간과 이의 상업화는 사실 이러한 소수 과학자와 기업가에 의했다기보다는 스탠포드대학의 생화학과를 중심으로 모인 일련의 연구자 집단의 ‘커뮤니티’ 에 의한 일종의 ‘집단창작’ 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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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bert Boyer & Stanley Co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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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bert Boyer & Robert A Swanson

니네 3명이서만 유전공학 기술을 만든게 아니라 이기야\

아서 콘버그와 스탠포드 생화학과 

이 책은 총 6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 장에서는 스탠포드 생화학과를 ‘창시’ 한 DNA 복제효소의 발견자 아서 콘버그와 그가 어떻게 스탠포드대학의 생화학과를 ‘창시’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서 콘버그에 대해서는 이전에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사실 이 책의 이 부분은 한국과학사회지에 “아서 콘버그(Arthur Kornberg)의 DNA 연구 제도화와 공동체적 구조의 건설” 이라는 논문으로 요약번역되어 있으므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기 바란다. 여튼 1950년대 말 미쿡이 NIH 를 통하여 의과학쪽 연구비에 show me the money 를 치고 있을 때쯤 스탠포드대학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의대를 본교가 있는 팔로알토 캠퍼스로 이전하고 의과학을 학교 발전의 모토로 하여 학교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지잡대탈피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이런 빅픽챠의 한 그림으로써 생화학과 (Department of Biochemistry) 를 키우기로 했고, 생화학과의 학과장으로 당시 Washington University of St. Louise (흔히 ‘와슈’ 라고 하는)_에서 스타생화학자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아서 콘버그를 초빙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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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콘버그는 이미 대사관련 각종효소의 생화학자로 널리 이름이 알려져있는 상태였으며, 그가 스탠포드로 초빙오퍼를 받은 시점은 1959년 DNA Polymerase로 N모상을 받은 시점이었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에 학과장으로 임용되면서 매우 강력한 권한을 가졌는데, 그가 워싱턴대학에서 초빙한 5명의 ‘콘버그와 아이들’ (그 중 두 명은 콘버그의 포닥이었고, 세 명은 콘버그가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영입한 사람들이었다) 을 그대로 생화학과 교수로 임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자기 사람’ 을 학과에 심는 것 뿐만 아니라 스탠포드 생화학과를 일종의 ‘공동체’ 처럼 운영하였는데 여기에는 장비와 시약의 자유로운 이용, 프로젝트의 공유, 심지어 각자 수주한 연구비를 모두 통괄하여 운영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스탠포드 생화학과를 ‘DNA 연구의 메카’ 로 만들고, 그 내에서 자유로운 정보교환과 시료의 교환 등이 이루어지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이 어떻게 유전공학 기술의 개발과 이어지는가.

폴 버그 (Paul Berg) 와 진핵생물 분자생물학으로의 이전 

1960년대 말까지의 분자생물학은 주로 ‘센트럴 도그마’ 라고 불리는 DNA 복제 – 전사 – 번역에 이르는 유전정보가 어떻게 단백질로 전달되는가에 촛점을 맞추어서 연구가 되었으며, 이때 주된 모델시스템은 주로 대장균 (Escherichia coli) 와 대장균 유래의 파아지 (coliphage)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1960년대 말에 이르러서 변화를 겪게 되는데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번째는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유전암호  (Genetic Code) 가 규명되고 대개의 분자생물학자는 ‘이제 분자생물학으로 풀 수 있는 것은 대개 다 푼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다른 요인은 2차대전 이후 급증한 생명의학계의 투자에 반해서 직접적인 질병에 대한 치료법의 발견은 상대적으로 더디었으며, 이에 따른 ‘생명의학에 보다 관련있는 연구를 하시지?’ 하는 압력의 증대였다. 특히 지금은 ‘래스커 상’ (Lasker Award) 으로 이름이 남은 유명한 헬스케어 관련 로비스트이자 사회활동가인 매리 래스커 등에 의해 암연구와 같은 보다 질병에 밀접한 연구에 집중적으로 정부는 지원해야 한다는 압력이 증대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탠포드 생화학과의 ‘콘버그 사단’의 일원이었던 폴 버그 (Paul Berg) 는 자신이 그동안 연구하던 람다 파지 (Lambda Phage) 에 대한 경험을 바탕삼아 자신의 연구방법을 동물바이러스인 SV40 에 적용해 보기로 한다. 처음 그는 박테리오파지에서 사용했던 생화학적인 방법론을 동물바이러스와 동물세포 시스템에서 시험해보려고 했으나, 동물바이러스는 박테리오파지에서 사용하던 방법처럼 단백질을 순수정제하여 시험해보기에는 너무 복잡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구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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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테리오파지나 동물 바이러스나 다 비슷한거 아닌감?

폴 버그는 박테리아와 박테리오파지 연구에서 Transduction, 즉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하여 박테리아의 유전체 일부를 옮기는 과정이 박테리아 유전학 발전에 매우 기여했음을 생각하고, 동물바이러스인 SV40 에서 비슷한 연구를 수행하여 SV 40 의 유전자 구조를 파악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즉 그는 동물바이러스 SV40 을 최근에 발견된 R1 Endonuclease (요즘 EcoRI 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라는 DNA 분해효소로 자르고, 이것을 학과의 냉장고 (콘버그의 생화학과에서는 대개의 실험에 필요한 효소들을 자유롭게 공유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에 있는 각종 DNA 관련 효소로 처리하며 람다 박테리오파지와 SV40 바이러스가 합쳐진 ‘키메라’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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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비슷한 연구들이 폴 버그의 연구실에서 진행되고 있었는데,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Peter Lobban 이라는 학생은 다른 박테리오파지인 P22 의 DNA 를 자른 후, 이것을 시험관내에서 붙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들은 이렇게 ‘재조합된’ DNA를 실제로 세포안에 넣지는 않은 상태였다.

재조합 바이러스와 불거진 생명윤리 

1971년도에 폴 버그의 연구실에 SV40 을 이용하여 재조합 DNA 실험을 하려고 하던 학생은 자네트 머츠(Janet Mertz) 라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그는 스탠포드대 생화학과의 다른 랩의 포닥에게서 얻은 박테리오파지 유래의 벡터를 이용하여 SV40 과 박테리오파지 DNA 를 합치는 연구를 할 생각이었다. 그는 (1) 박테리오파지 DNA 를 SV40 에 넣어서 동물세포에서 증식하도록 하는 연구와 반대로 (2) SV40 유래의 DNA를 박테리오파지에 넣어서 박테리아내에서 증식하도록 하는 연구를 계획했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내에 있는 효소 (역시 콘버그의 냉장고) 들을 조합하여 시험관 내에서 SV40 과 박테리오파지 DNA를 서로 붙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 결과를 1972년의 콜드 스프링스 하버 (Cold Springs Harbor) 미팅에서 발표했다.

그러나 이 발표를 들은 많은 과학자들의 우려가 바로 들어왔다.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동물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대장균에 넣는다고? 만약 이 대장균이 감염되서 장내에서 암 바이러스의 전염원이 되면 어쩔 것인가?  이러한 우려는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졌고, 결국 폴 버그는 예정된 실험을 중지하고, 1973년과 1975년에 두 차례에 걸친 아실로마 컨퍼런스에서 DNA 재조합 연구의 안전성에 대한 것을 논의하게 되었다. 당연히 재조합 DNA 를 만들어서 이것을 생체내에서 복제하려는 연구는 지연될 수 밖에 없었다. 대학원생은 뭔 죄야 ㅠㅠ

스탠포드 생화학과에 끼어든 타과 사람과 타학교 연구자  

이러던 도중에 중간에 끼어든 연구자들이 있었으니 한 명은 스탠포드의 유전학과 (Department of Genetics)에 재직하던 스탠리 코헨 (Stanley N. Cohen) 이고,  다른 사람은 UCSF의 생화학자인 허버트 보이어 (Herbert Boyer) 이다. 스탠리 코헨은 플라스미드 (Plasmid) 라는 세균 유래의 작은 DNA 조각에 관심이 있었고, 이들 플라스미드가 많은 경우 항생제에 내성을 띄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허버트 보이어 (Herbert Boyer) 는 대장균에서 EcoRI 이라는 제한효소를 처음 발견하였다.이렇게 보이어의 효소는 이미 폴 버그의 연구실에서 사용되고 있던 상태였다.

둘이 모르던 상태였던 코헨과 보이어는 1972년 하와이의 학회에서 처음 만나, 그 둘의 기술을 조합하면 유전자 재조합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코헨은 항생제 내성을 가지고 있는 플라스미드를 가지고 있고, 보이어는 플라스미드를 자를 수 있는 효소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재조합 DNA 분자를 만드는 것은 가능했으나, 과연 어떻게 재조합 DNA 분자가 형질전환된 대장균, 그리고 원하는 재조합 DNA 가 들어가있는 대장균을 찾을 것인가? 이들은 항생제 내성을 마커로 이용하여, 항생제 내성을 새로 가지게 된 대장균을 이용하여 재조합 DNA 분자가 형질전환된 콜로니만을 선별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게 되었다. 사실 유전자 가지고 일해본 사람이면 항생제 저항성 마커가 든 플라스미드를 박테리아에 넣고 이것을 항생제가 들어있는 배지에서 선별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이 당연한 아이디어라는 것은 코헨과 보이어가 만나기 전에는 개념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폴 버그의 랩에서 원래 유전자 재조합 실험을 준비하던 자네트 머츠 등이 생명윤리의 벽에 부딫혀 실제로 실험을 진행하지 않던 사이에 코헨과 보이어는 앞서나가서 실제로 재조합 DNA를 살아있는 대장균에 넣게 된 것이다. 그리고 코헨과 보이어는 폴 버그의 경우와는 달리 암을 유발하는 SV40 과 같은 민감한 바이러스를 사용한한 것도 그들이 가진 큰 강점일 것이다.

그렇게 하여 1973년부터 1974년동안 총 3편의 논문이 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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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쨰 논문에서는 코헨이 자연계에서 분리한 플라스미드인 R6-5 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서 만들어진 pSC101 이라는 ‘최초의 인간 손을 거친 재조합 클로닝 벡터’ 를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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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로는 최신의 실험기술인 아가로스 젤 전기영동사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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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미드가 한 가닥으로 이어져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 찍은 전자현미경사진 -.-

이 뒤를 이어 코헨은 이종생물인 포도상구균 (Staphylococcus) 유래의 플라스미드개구리의 rRNA 가 들어간 플라스미드를 만들어 대장균에서 증식시킴으로써 최초의 재조합 DNA 를 구성하여 박테리아 내에서 증식시킬 수 있음을 보인다.

그렇게 해서 결국 코헨과 보이어는 재조합 DNA 기술의 개발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정작 재조합 DNA 기술의 시작점이 된 폴 버그와 스탠포드의 생화학자들의 공로는 뒷전에 묻히게 된 점이 있다. 만약 폴 버그가 1980년 노벨 화학상에서 재조합 DNA 기술의 공로로 상을 타지 못했더라면 스탠포드 생화학자들의 업적은 그냥 무시당했을 수도 있겠으나 그나마 노벨상이 이들에게 위안이 된 셈이다. 보이어와 코헨은 둘 다 N모상을 타지 못했다. (동명의 Stanley Cohen 이라는 사람이 198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타서 혼동을 할 수도 있는데, 이 사람은 재조합 DNA 와는 관련없는 연구를 한 사람이다)

유전자 클로닝의 모럴과 경제학 

사실 이러한 재조합 DNA 기술의 아이디어가 탄생하기 위한  중요한 여건이라면 아서 콘버그가 만들어놓은 개방적이고도 공유경제적인 학과의 환경을 들 수가 있다. 즉 학과의 냉장고에 있는 누군가의 시료 (효소) 도 자유롭게 꺼내서 사용할 수 있고, 아이디어를 자기 랩만의 비밀로 붙이지 않고 공유하고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서 DNA 재조합 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당연히 스탠포드의 생화학자들은 이렇게 하여 탄생한 코헨의 플라스미드 벡터 역시 그들의 공동창작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야기되는데, pSC101 이라는 최초의 플라스미드 벡터를 가지게 된 코헨은 이것에 대해서 일종의 독점권 같은 것을 행사하려 시도했다. 즉 생화학과가 아닌 유전학과에 소속되어 있었고, 아직 테뉴어를 받지 못하여 상대적으로 스탠포드 생화학과에 있는 사람들보다 학교에서 불안정한 위치에 놓였던 코헨은 스탠포트의 생화학자들에게 자신의 플라스미드를 자유롭게 배포하기보다는 제한을 걸려고 하였으며, 그들의 공동체간에 자유롭게 시료를 주고받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던 스탠포드의 생화학자들은 이에 크게 반발하였다.

이 책의 4챕터에서는 스탠포드 생화학과에서 초라피의 발생생물학에 최초로 분자생물학적 기법을 도입하여 초파리의 유전자를 처음으로 클로닝하려고 시도했던 David S Hogness 라는 사람이 코헨과 벌인 갈등을 서술하고 있다. 그는 스탠포드 생화학과의 일원으로써, 생화학과의 지적산물에서 탄생한 플라스미드를 당연히(!) 코헨에게 요구하였으나, 코헨은 자신의 클로닝 논문이 나오기 전까지 플라스미드를 줄 수 없다고 버텨서 갈등이 벌어졌다. 그러나 코헨은 결국 자신의 논문이 나오기 몇 주 전에 플라스미드를 제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추후에 코헨과 보이어가 소속된 스탠포드와 UCSF가 특허를 출원하고자 할때 불거진다. 스탠포드 학교 당국은 특허에 소극적이던 코헨과 보이어를 설득하여 특허 출원을 시도하였고, 특허에는 코헨과 보이어 이외의 다른 사람들의 기여는 들어가지 않음으로써, 스탠포드 생화학과의 다른 연구자들과 코헨-보이어의 갈등은 더욱 심해진다.

이와 더불어 재조합 DNA 기술을 이용하여 뭔가 부가가치를 창조할 수 없을까 하는 이야기들이 제시되고, 젊은 벤처 투자가인 로버트 스완슨은 최근에 아실로마 컨퍼런스에 참석한 사람의 명단을 A부터 차례로 연락하여 회사를 설립할 수 있을지를 타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터무니 없는 이야기로 무시하거나, 폴 버그와 같은 사람들은 국가의 연구비로 수행된 연구비로 생산된 연구결과로 사익을 취하는 것 자체를 경멸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버그 다음에 나온 보이어의 경우 스완슨에게 10분 정도의 시간을 내 주었고, 그들의 만남은 3시간으로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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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은 각자 500불씩 내서 회사를 세우기로 했는데, 그 회사는 후에 Genetech 가 된다. 코헨 지못미 B자가 C자보다 끝발이 딸려서

연구 환경의 변화 

1950년대 이후 미국의 의생명과학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던 환경도 점점 변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부터 질병에 대한 특이적인 치료법을 요구하는 사회단체들의 목소리들이 강화되기 시작하고, 이들의 로비에 의해서 1971년 닉슨 행정부는 ‘암과의 전쟁‘ 을 선포하고 미국 독립 200주년인 1976년까지 암을 정복하겠다는 (…) 야무진 계획을 세우고, 암 분야에 막대한 연구비를 쏟아붇기 시작하였다. 물론(…) 암의 실체도 정확히 모른 상태에서 쏟아붇는 연구비로 딱히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는 못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여튼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서 일종의 ‘공유경제’ 를 형성하던 스탠포드의 생화학자들의 커뮤니티 역시 변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70년대 미국 경제의 침체로 연구비 증가가 정체되고, 그리고 옆동네 (…) 의 돈벼락 (Genetech 는 1980년에 상장하고, 보이어는 일순간에 수천만불의 재산을 가진 재산가가 된다) 을 보면서 아서 콘버그를 포함한 스탠포드의 생화학자들은 국가의 연구비만을 믿고서는 안되겠으니 우리가 뭔가 해봐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여러가지 시도 중의 하나가 DNAX 라는 회사의 설립이었다. 이 회사는 상업적인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세워진 회사라기보다는 콘버그, 폴 버그, 찰스 야노프스키와 같은 스탠포드의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과학 연구’ 를 위한 지속적인 펀딩을 위한 회사였다. 즉 정부의 연구비에 의존하지 않은 연구를 수행하고, 여기서 나온 산물을 가지고 별도의 벤처를 수립하여 산업화를 한다는 구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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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X의 구상  상당히 허술해보인다 요즘 이런 거 가지고 투자못받을듯

그러나 이렇게 설립된 회사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하였다. 결국 이 회사는 설립된 지 2년도 안되어 빅파마인 schering-Plough 에 인수된다. 요즘 생각하면 구체적으로 ‘뭘 한다’ 라는 계획도 없이 그저 분자생물학적인 방법론을 이용하여 회사를 세우고 오래 가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보일 일이지만..아무튼 이러한 시도는 정부의 연구비에 독립한 자신들만의 문화를 유지시키기 위한 하나의 고육책 (결국은 실패했지만) 의 하나로써 시도된 의의 정도는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새로운 산업의 탄생

이 책은 유전자 조작 기술이라는 기존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산업 자체를 일으킨 기술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즉 기술 자체의 산업적인 성숙 과정 보다는 산업 자체를 일으킬 기술이 어떻게 기초과학적인 탐구의 욕망 속에서 ‘우연치 않게’ 나오는 과정을 매우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과정들은 적어도 생명공학 관련해서 장차 큰 산업을 형성하는 발견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고 있다. 즉 처음에는 아무런 응용과 관련된 기대 없이 기초과학을 수행하기 위해서 개발된 기술들이 점점 여러사람들의 아이디어를 통해서 성숙되고, 그 기술이 어느정도 숙성하면 외부의 경제적인 동인을 가진 투자자 등이 달려들어와서 본격적인 상업적 기술개발 단계로 전이하는..

그러나 결국 문제는 아무리 경제적인 동인을 가지고 있는 사업가가 존재하고 자본이 있어도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기초과학 연구결과가 없으면 재조합 DNA 와 같이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산업을 백지에서 만들어 내는 ‘창조경제’ 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창조경제의 역할에서 정부가 한 일은 무엇일까? 결국 이것은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국가주도의 연구개발이 시작되며 투자한 기초과학 연구의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국가가 주도하여 ‘재조합 DNA 기술’ 을 개발하라고 탑다운 연구비를 설정한 것도 아니요,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베이 에리어에 ‘재조합 DNA 기술 테크벨리’ 를 개발한 것도 아니다. 정부는 그저 어느정도의 연구비를 연구자들에게 지속적으로 공급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게 한 것 뿐이며, 이러한 연구 결과 중에서 의도치 않게 성숙된 결과물이 투자가와 기업가의 눈에 띄어서 본격적으로 산업화를 가게 된 것이다.

반면 이 당시에 미국의 국책과제로 추진되었던 목적지향적인 프로젝트였다는 “War on Cancer’가 결국은 그 당시에는 별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실질적으로 의생명과학에 퍼부은 R&D 결과가 실제 암 생존율의 상승으로 나타난 것은 약 20-30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은 되어서였다.  즉 과학에 대한 투자는 생각만큼 빨리 효과를 나타내기는 힘들다.

오히려 “War on Cancer” 가 가져다 준 가시적인 이익이라면 원래 기대했던 암에 대한 치료보다는 “War on Cancer” 에서 암의 타겟이 아닐까 하고 디립다 연구했던 레트로바이러스에 대한 축적된 연구 때문에 1980년대에 급격히 등장한 HIV/AIDS에 대한 대책이 비교적 빨리 나왔다는 것이 아닐까. 과학에 대한 투자와 그 결과는 손쉽게 예측할 수 없느니라.

아무튼 이 책은 재조합 DNA 기술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과학도, 혹은 과학사학도, 그리고 어떻게 하면 혁신적인 기술로 산업화를 하고 싶은 기업가, 그리고 어떻게 산업을 만들 새로운 기초과학의 성과가 발견되는지를 알고 싶은 많은 대중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그런데 아직 번역이 안 된 것이 흠이랄까…(그냥 한국어로 이 주제로 대중서 좀 쓰시면 안될까요? 저자님?)

여럿이서 효율적으로 생각하기

싱글 코어보다는 멀티 코어가 낫다. 그러나..

흔히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 혹은 경험이 적은 사람 과알못 들은 과학의 연구활동이 어떤 특출난 개인의 천재적인 두뇌활동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뉴턴의 사과 드립이라든가, 아르키메데스의 목욕탕 탈출후 나체쇼사건 (..) 등과 같은 흔한 전설을 들어서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현대과학, 아니 그리 가깝지 않은 근대과학만 하더라도 혼자의 창의성(?)에 의해서 중요한 과학발전이 아루어지는 것보다는 최소한 둘 이상의 머리가 모여서 결정적인 돌파구를 만들어 낸 경우가 더 많다. 

가령 연구실보다는 맥주집이나 티 룸에서 더 많이 목격되던 이 말 많은 듀오는 DNA 이중나선이라는 것을 ‘만들어’ 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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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미드’ 라는 요상한 DNA 덩어리를 연구하던 세균유전학자와, 세균 내에 존재하는 DNA를 분해하던 효소를 연구하던 생화학자의 만남은 재조합 DNA 기술이라는 생명과학과 바이오테크놀로지의 혁신을 이루는 원천기술의 기본을 만들어 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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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인턴을 막 시작하던 두명의 젊은 의사의 만남은 콜레스테롤과 심혈관질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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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잘 알려진 예를 더 들지 않더라도 인간의 문명 창조에서 복수의 두뇌 둘이 만나서 1+1 =2 가 아닌 그 이상의 시너지를 일으킨 일은 수도 없이 많다. 설령 연구 과정에서  생각을 공유하여 공동 연구를 않더라도 오늘날의 과학 연구가 발표되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 (리뷰어가 사실 나의 지도교수였다) 아이디어가 공유되고, 이것이 합쳐져 결국은 돌파구를 만들어낸다. 즉, 요즘은 뛰어난 한 개인의 창의성에 의해서 의미있는 과학발전이 이루어진다는 통념은 요즘의 과학이 행해지는 실상과는 잘 맞지 않는 이야기에 가깝다.

그렇다면 단지 여러 사람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기만 하면 더 나은 결과가 얻어지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브레인스토밍’ 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회의에서 왜 새로운 아이디어는 한번도 나온 적이 없으며, 교수님과의 미팅에서는 왜 항상 동일한 이야기만 돌고 도는 것이며, 랩 전체 세미나에서는 항상 일방적인 발표와 교수님의 지적사항만 반복되는 것일까? 그리고 연구실 동료와 이야기하다 연구 이야기를 해도 매일 겉도는 이야기만 나올까? 이런 것이 계속되다보면 아예 여러 명이 모여서 생각해서 시너지를 이룬다는 것은 어디 신화에서만 나오는 이야기처럼 생각되고, 내가 다 혼자서 생각해서 하는게 속편하겠다! 라는 생각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멀티코어에 최적화되지 않은 소프트웨어는 싱글 코어에서 더 빠르게 되는 경우도 있듯이 말이다. 

오늘 알아볼 내용은 과연 어떻게 ‘여러명이 효율적으로 생각을 하는가’, 혹은 ‘여러명이 생각을 할때 시너지가 나올 조건’ 에 대한 이야기이다.

생각을 하는 사람의 지식수준이 비슷해야 하느니라

사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동등하게 생각을 해서 시너지가 나오려면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지식의 수준, 그리고 생각의 수준이 비슷해야 한다. 즉, 그 중의 한 사람의 지식수준이 너무나도 다른 참여자에 비해서 높거나, 혹은 한 사람이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하는 ‘브레인스토밍’ 이란 브레인스토밍이 아닌 일방적인 ‘강의’ 내지는 ‘보고’ 에 그치게 된다. 마치 온라인게임에서 한 팀을 구성하는 구성원 중에서 실력이 확실히 쳐지는 사람이 있다면 패했을 경우 그 사람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지는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해보자. 가령 어떤 연구토픽을 수십년 동안 연구해온 교수가 있고, 랩에는 해당 연구토픽을 접한지 한두달밖에 안되는 학부생 내지 석사 1학기생만 디글거리는 랩미팅을 생각해보자. 여기서 과연 어떻게 동등한 대화와 생각의 교류가 일어나겠는가? 이런 경우에는 결국 일방적인 지식의 전달 내지는 지시밖에 일어날 수가 없다. 

즉 대화와 토론을 통해 뭔가 효율적인 생각의 창조를 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지식수준의 평준화, 적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의 레벨업이 있어야 한다. 가령 수십년 경력의 교수와 해당 분야 접한지 몇개월밖에 안된 쪼랩 대학원생들의 모임이라면 결국 여기서 생산적인 토론과 의견교환이 있으려면 어떻게 해서든 ‘쪼랩’ 의 랩업을 위한 노오오력이 필요한 것이다. 반대로 실무의 디테일을 전혀 모르는 직장상사가 부하의 보고서에 뭔가 생산적인 코멘트를 하기 위해서는 부하의 보고서에 무슨 내용이 들어 있는지는 미리 사전에 숙지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교수와 학생 (혹은 포닥) 간의 생산적인 디스커션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둘 간의 정보와 지식의 격차가 적어야 한다. 교수가 학생에게 (혹은 학생이나 포닥이 교수에게)  “무슨 선행연구에 따르면 이런 결과가 있는데 우리의 결과는 이것과 틀리고…”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듣는 상대방이 그 선행연구 자체의 존재를 모른다면 무슨 이야기가 되겠는가.

그러므로 일단 여럿이서 생산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둘 간의 레벨이 비슷한, 아니면 적어도 돌 몇 점 깔고 접바둑을 둘 정도는 되어야 한다. 만약 이러한 것 때문에 제대로 된 대화가 되지 않는다면 일단 그나마 이야기가 통할 수 있을 수준의 유사레벨의 사람들끼리 모여서 ‘연습게임’ 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가능하면 위계질서가 배제된 상태가 좋느니라 

특히 위계질서와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관계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교환이 쉽게 일어나기 힘들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래도 ‘윗사람’ 은 누구든 어느정도는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답만 말하면 돼!) 의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 가령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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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철수야, 너 지난주에 랩미팅에서 하라고 했던 실험은 해 봤니. 우리의 가설에 따르면 무슨무슨 조건에서는 단백질 A는 인산화되고 단백질 B 는 줄어야 하는데.

철수(대학원생) : 네, 교수님, 제가 몇 번 정도 해 봤는데 결과가 이상하게 나옵니다. 단백질 A는 인산화되는것 같은데 단백질 B는 그대로인데요?

교수 : 야, 너 지금 학기수가 몇 학기인데 그런 간단한 실험도 제대로 못 하니. 진짜 그렇게 나오는 것 맞아? 빨리 지금 이 데이터가 있어야 논문을 서브미션할 거 아니야. 너 데이터가 안 나오는바람에 지금 얼마나 늦어지고 있는지 알아?

철수 : (…..) 네, 이번 주에 다시 한번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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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상황에서 철수가 막손 (..) 이라서 반드시 나와야 하는 결과를 못 나오고 있는 상황일수도 있겠지만 교수가 생각한 가설 (‘우리’ 라고 했지만 대개 교수만의 머릿속에 있는 가설일 가능성이 많다) 이 실제의 사실을 잘 부합하지 않거나 간과한 요인이 있어서 결과가 안 나올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전에 뻔한 실험도 실패해 본 철수의 전력(..) 을 잘 아는 교수는 이번에도 으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철수를 쪼게 된다. 그렇게 교수님의 쪼임을 당한 철수는 다음에도 실험이 제대로 나오지 않자 (….이하생략)

어디선가 있음직한 이야기 아닌가? 유감스럽게도 사회적인 위계질서를 넘나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이렇게 활발한 의견 교환과 상사에 대한 반대를 쉽게 주장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상급자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일방적인 지시로 변질되게 된다. 반면 상급자가 디테일에 대해서 모든 것을 하급자에게 위임하는 반대의 경우라면 하급자는 결국 상급자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만 하도록 길들여지게 되고 서로간의 의견을 교환하면서 생기는 시너지 같은 것은 ‘그거 먹는 거임?’ 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1. 고심끝에 직책명과 호칭을 폐지하겠습니다 : 많은 기업 등에서 행하는 방법이다. 실제로 이러한 기업 문화를 조성함으로써 직원들 (혹은 연구실이라면 연구실원 간의) 내의 의사소통이 좀 더 자유로워졌다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에 별반 상관이 없다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서로 상반된 의견이 나오는 것은 아마 이러한 조직구조의 문제도 있겠지만 해당 집단의 ‘리더’ 의 역할에 많이 좌우하라라고 본다. 리더가 ‘답정너’ 를 기대하는 상황, 그리고 아무리 자유로운 토론을 하라고 리더가 떠들지만 결국 결론은 리더가 생각한 대로 나고 하급자의 의견은 대개 반영되지 않게 된다면 결국  하급자는 가만히 아무 말도 있거나 리더가 원하는 이야기나 해 주는 것이 그로써는 안전한 선택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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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처음부터 위계 질서가 없는 사람들끼리 만난다  사실 조직에서 위계질서를 없애고 평등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고 해도 결국 보스는 보스, 쪼랩은 쪼랩이다 (…) 이런 것을 완벽하게 없앨 수는 없다! 무슨 실리콘 밸리의 테크기업의 수평적인 문화 이야기 하시는 분들 많지만 뭐 구글의 페사장이나 페북의 주사장 앞에서 주사장이 싫어할 말만 항상 골라할 용자는 생각만큼 많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한다? 이러한 브레인스토밍을 아예 처음부터 위계 질서가 배재된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다! 가령 동종업계에 있는 사람들의 모임, 옆 랩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모임, 그것도 아닌 학회에서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대화를 할 때 오히려 더 새로운 아이디어의 교환이 나오는 것을 느낀 경험을 한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저 위에 ‘둘이서 머리를 맡댄 듀얼 코어의 성공사례’ (…) 처럼 소개된 왓슨-크릭, 골드슈타인-브라운, 코헨-보이어 등은 모두 둘 간의 권력관계나 위계질서가 없는 평등한 ‘아저씨’ (군대에서 다른 중대의 병사를 호칭할때의 그 ‘아저씨’ 말이다) 간의 만남이었다. 크릭은 35세의 병특출신의 늦깍이 대학원생이었고 왓슨은 23세의 미국에서 갑툭튀한 포닥이었고 둘 사이에는 아무런 위계질서라든지 권력관계가 존재하기 힘든 그저 ‘아저씨’ 간의 만남이었을 뿐이다. 이런 아저씨 둘이서 만나서 ‘환멸이 난다, 이넘의 학계! 술 졸라 쳐먹고 뒤져버리겠다’ 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술집에서 맥주나 쳐묵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결국 DNA 이중나선 구조와 같은 것의 바탕이 나오게 된 것이다.

둘이 ‘같되 달라야’ 하느니라 

그러면 지식수준이 유사하고, 위계질서가 없는 쌍동이 같은 동료끼리만 모여있으면 뭔가 창조경제적이고 저탄소 녹색성장을 이룰수 있는 4차산업혁명적인 혁신적인 발상이 나올까? 둘의 ‘지식수준’ 이 유사하다는 것은 알고 있는 것, 혹은 스킬셋이 동일하다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랩’ 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즉 2인이서 서로 팀을 짜고 팀플을 할때 둘다 힐러만 선택하면 무슨 넘의 게임이 되겠는가. 즉, 동일한 스킬과 배경을 가진 사람끼리만 이야기하면 항상 비슷한 이야기 하다가 끝나게 된다! 뭔가 시너지를 보려면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뭔가에 능통한 사람과 디스커션, 협력을 하는 것이 좋다.

가령 저 위의 왓슨은 소시적 조류 관찰자를 꿈꾸던 박테리오파지 전공자였고, 크릭은 원래 생물은 1도 모르는 병특출신의 물리학자였다. 그러나 이들의 서로 다른 백그라운드가 만나서 이들이 서로 시너지를 이룬 것을 생각해보자.

그러나 여기에서도 문제가 있다. 만약 서로 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이 이야기 할 경우, 나는 이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방은 저 이야기를 하고, 가령 나는 ‘웻 랩 실험’ 의 실험순서를 이야기하는 ‘프로토콜’ 을 이야기했는데 상대방은 ‘FTP’ 내지는 ‘TCP/IP’ 등의 전송방식을 이야기하는 ‘프로토콜’ 로 알아들으면 곤란하다. 즉 상대방이 다른 스킬셋을 가지고 있더라도 적어도 그 용어가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도록 노오오력을 하자! 만약 노오오력을 해도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면 뭐 포기하도록 하고. 적어도 상대방이 뭔 말을 하는지 정도는 알아먹을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갖추자. 이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지식수준의 평준화, 적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의 레벨업이 있어야 한다” 와 상통되는 것이다.

꽁꽁 비밀로 붙여봐야 사실 별거 아니다. 

그런데 일부 학계의 연구실등을 보면 자신의 연구실에서 현재 진행되는 일을 함부로 언급하기 싫어하는 경우들이 있다. 물론 문화가 있는 경우는 뭔가 이전에 아픈 추억(…) 이라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을 말하자면, 대개의 사람은 당신이 하고 있는 연구에 그닥 큰 흥미가 없다! 당신은 당신의 연구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고 나의 아이디어가 알려지면 누군가가 나의 아이디어를 스틸~ 해갈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흠 그게 뭐지, 뭔 말인지 모르겠다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 의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많다. 그나마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관련없는 남의 일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호의의 표시일 수도 있다! 

결국은 누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어느정도 상세한 지식이 있어야 외부와의 협력이 가능할테고, 또 창조적인 디스커션이 가능할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좋은 예가 N모상의 산실이라고 흔히 이야기되는 영국의 Laboratory of Molecular Biology (LMB) 의 문화이다. 이 곳 출신 N모상 수상자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가, 이 연구소의 가장 큰 강점은 뛰어난 시설이나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바로 ‘식당’ (Canteen) 을 중심으로 과학 이야기를 하는 문화를 꼽는다. 즉 식당에서 차 한잔 마시면서 다른 연구실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문화를 통해서 많은 연구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령 리보좀 구조를 풀어서 N모상을 받은 톰 스테이츠 (Tom Steitz) 는 “처음에 이 곳에 가니 웬넘의 닝겐들이 실험은 하나도 안 하고 식당에 모여서 노가리만 까드라! 그런데 몇 달 지나다 보니 이런 식으로 연구소에 있는 사람들을 다 알게 되고, 그들이 내 프로젝트에 주는 조언, 혹은 그 사람이 추천하는 연구토픽이 나중의 연구 일생에 큰 보탬이 되더라” 하는 회상을 하곤 한다.

그래봐야 주변에 이야기할 사람이 없던데 뭐 어쩌라고 

라고 생각할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해한다! 한국의 바닥은 좁고,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한 문화가 하루아침에 없어지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그런 것을 불평만 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바꿔보는 것은 어떤가.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또 광고한다고 욕하실지 모르지만 흔한 블로그 홍보를 위한 페북 페이지인 본 블로그의 페북 분점은  이제 약 7천명이 넘는 사람이 구독하고 있으며, 요즘은 웬만한 논문을 올리면, 해당 논문의 저자 혹은 관련자가 덧글을 다는 (…) 그런 소규모의 커뮤니티 비슷하게 되어 가고 있다. 좀 더 관심이 있으면 이런 사람들 몇명이 상주하는 Slack Community 인 Open Bio Korea에 가입해도 좋다. 온라인은 재미없다고? 2회 매사페가 생각보다는 멀지 않았다! 주변에 터놓고 과학 디스커션을 할 사람이 없다면 바깥에서 찾아보자. 기승전매사페광고 뭐 요즘 쓰는 글이 언제나 그렇지

주갤러와 한국 정부 R&D가 돈을 못 버는 이유

한국 정부 R&D가 별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요.그런 집단이 하나 더 있지. 

요즘 흔히 나오는 기사 중에서 한국의 국가 R&D 투자 규모가 세계에서 몇 위, GDP대비 세계 1위에 가까운데 왜 이리 경제적인 성과가 안 나오는거냐 과학자 공학자 네 넘들이 그냥 놀기 때문이냐 등등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사실 이런 수치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것인가에도 좀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고, 이러한 R&D 예산 분배의 비효율성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한 것은 국가의 입장에서는 이전보다 많은 돈을 투자하는데 왜 성과가 안 나오나!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왜 한국의 정부 R&D 투자가 원하는 경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느냐에 대해서 근원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이 전에 어쩌면 전혀 관계없을 집단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주갤러. 그냥 일반적인 개미 주식투자가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최근의 탄핵 정국을 보면 과연 주갤에는 능력자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주갤에서 주식으로 돈 많이 벌었다는 사람 본 적이 있는가. (물론 가끔 인증하는 사람 있다는 정도는 안다)  오죽하면 ‘주식 뺴고 다른 것은 다 잘하는 주갤러’ 라는 이야기가 상식이 되는가.

그렇다면 한국 정부 R&D와 주갤러가 왜 돈을 못 버는가? 이 둘이 생각만큼 돈을 못 버는 데는 하나의 이유를 공유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빨리 돈을 버는데 너무 집착하기 때문이다”

아니 이게 무슨 뻘 소리여!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정부 R&D로 국부를 창조하는 데 집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주갤러가 주식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 라고 반문하실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돈을 못 버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대한 (과다한) 집착 때문인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잠시 부연설명하도록 한다.

성장동력과 경제 발전을 이끄는 정부 R&D?

한국의 정부 R&D 투자의 기조는 기본적으로 차세대 성장동력의 발굴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주력 산업인 전자, 기계, 조선 (..벌써 한물갔지만) 등이 한물갔을때 대.한.민.쿡.을 먹여살릴 산업기술의 근간이 될 뭔가를 발굴하려는 것이 국가 R&D의 정책기조라고 하겠다. 이를 위해서 ‘성장동력’ 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목하에 많은 연구비가 투자되어 왔다. 그러나 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국가 R&D 를 통해서 이렇다할 경제적 성과를 창출할 만한 과학발견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아직 성숙단계가 아니지만 미래에는 그런 것으로 성장할 ‘뭔가’ 가 있을지는 모른다.

그럼 왜 그러한가? 그 전에 우리는 어떤 것을 ‘성장동력’ 이 될만한 연구주제라고 생각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경제적인 성장을 이끌 원천기술이 나올만한 연구주제’ 는 아직 해당하는 토픽이 산업적인 효과를 창출하지는 못했지만 그럴 만한 비전이 보여지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비전’ 은 어디서 나오냐는 것이다. 누군가가 연구를 해서 그런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오! 이 분야가 앞으로 비전이 있겠군! 여기에 연구비 올! 인!’ 을 외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그 연구를 한 사람은 누구인가?

유감스럽게도 그런 ‘비전’ 을 제시하고 ‘앞으로 돈 될 것 같은 연구분야’ 를 처음으로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의 정부 R&D를 수혜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 물 건너에 있는 연구자들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즉 그런 분야는 대개 누군가 선행연구를 해 두어서 비전을 제시한 것이고(그러니 한국 정부조차도 앞으로 잘나갈 분야라고 다 아는거지!), 당연히 응용분야에 대한 원천기술에 대한 특허 역시 ‘다른 누군가’ 가 확보한 상태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분야에 대해서 우리의 대한민국 정부는 ‘이런 분야에 연구를 하여 대단한 성과를 내면  이것은 미래의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이 된다능!’ 하고 연구비를 왕창 때린다. 가령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면 ‘인공지능이 우리의 희망이라능!’ 하고 AI 분야에 연구비를 왕창 때리고 (들어는 봤나, 4차 산업혁명?), 이전에 톰슨 아저씨가 인간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서 배아줄기세포가 화제가 되니 줄기세포 분야에 연구비를 왕창 때린다! 결국 한국의 대개의 정부 주도의 R&D는 이미 누군가가 선행 연구를 한참 해서 잘나간다고 크게 선전을 해 둔 분야에 집중되고, 그런 분야에서는 누군가가 이미 한참 전에 앞서가고 있다. 

물론 아주 운이 좋으면 분야에 따라서 부분적으로 1등을 쫒아가서 추월을 할 수도 있고 (뭐, 1등으로 달려가던 마라톤 주자가 갑툭튀한 자전거에 치일 수도 있지!)  한 5-10 등 정도 따라가서 1등이 흘리는 과자 부스러기 정도는 먹을 수 있을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출발시점이 틀리니 1등을 넘기는 힘들고, 힘은 힘대로 들고 (남 따라가는거 쉬운 거 아니다.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 뚜렷한 경제적 성과가 나는 연구가 나오기도 힘들다.

그러다가 그 ‘일등’ 이 ‘이 길이 아닌가벼!’ 하고 중도포기할 수도 있고 (그런 분야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다가 다른 쪽에서 “이 분야가 뜬다더라!” 하면 우리의 대한민쿡 정부는 또 그 분야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지정하여 연구비를 몰빵! 그러면 대개의 연구자들은 연구비를 따라서 존나게….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결국 돈 되는 뭔가가 나오고 싶어도 나오기 힘든 것이다. 주갤러 이야기를 왜 했는지 이제 이해하는가? ‘무슨 주식이 뜬다더라!’  ‘누구는 이걸로 벌써 두 배 벌었더라!’ 하고 올리면 자극받아 그 주식 덥석 매수하고, 그러다 보면 상투잡은 우리의 주갤러 엉아들…한국의 정부 R&D와 비슷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뭘 하면 진짜 대박이 터지나?

그걸 알면 내가 여기서 블로그나 하고 있지는 않는다 (..)  과학의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고, 더우기 그 결과가 나중에 어떤 응용 결과를 낳을지 예측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고 불가능에 가깝다! 이 블로그에서 많이 이야기한 것들 (예 : 이 연구를 하면 밥이 나오나 쌀이 나오나 맥주집에서 쓸데없는 실험이야기 하던 더쿠들 온천에 사는 세균이나 찾던 미생물학자) 의 발견과정을 따라보면 이런 연구가 시작될 때 하등의 경제적 가치를 예상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대개의 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연구는 처음에는 남이 돈이 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야에서 유래되고, 남들이 대개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자신이 특정한 발견에 대해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되는 편이다. 남들이 관심을 안 가졌는데 나는 이 분야에 대해서 잘 아니까 권리도 취득하고, 한참 앞서나가게 되고, 뒤늦게 돈이 된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카피캣이 튀어나오지만 대개의 경우 이런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뛰어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러면 남이 하지 않는 그런 연구를 하면 될 것이 아니냐고? 그러고 싶다! 그런데 그런 연구에 대해서 한국의 연구자 및 정부 R&D는 별로 관심이 없고 따라서 지원도 적다! 왜? 그 연구가 무슨 결과를 낼 지는 예측하기 어렵고, 지금은 당연히 돈 안 되는 쓸모없는 연구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혈세로 그런 쓸데없는 개인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연구를 지원할 여력은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혈세로 하는 연구로 국부를 창조해야지 어디 그런 쓸데없는 것을 해서 혈세를 낭비해?

…라는 마인드이기 때문에 이런 연구는 하기도 쉽지 않고, 해도 오랫동안 할 수가 없다. 그런 연구비가 책정되어도 앞에서 말한‘성장동력’ 내지는 ‘돈 되는 연구’ 라고 포장된 연구 (그러나 결국 돈 버는 사람은 바다 건너 따로 있는 분야의) 를 지원하느라 충분히 지원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학계에서 연구한 것 중에서 실제로 돈이 될 만한 것, 독창적인 IP가 없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차피 정부과제를 하려면 ‘돈이 되는 분야’ 라고 생각되는 것에서 남이 이미 한 것에 조금 더 덧붙이는 수준의 연구밖에 할 수 없고, 그런 과제의 연구성과가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 IP로 탈바꿈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남이 한 기초연구 성과를 가지고 잽싸게 응용 연구를 한다?

그래서 기초과학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하면 꼭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다. “한국이 그리 돈도 많지 않은데 어떻게 아무거나 연구를 다 하냐. 우리는 선진국의 기초연구를 잘 찾아보고 잽싸게 응용할 수 있는 것을 응용하면 된다”

그러나 실제로 돈을 못 벌어 본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ㅋㅋ

물론 기초연구를 하는 사람이 자신이 발견한 연구의 응용적 가치를 모르고 내버려두고 있다가, 다른 사람이 그 가치를 발견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뭐랄까 산삼을 캐는 심마니가 산삼을 도라지인줄 알고 내다버린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이다. 그렇게 내다버린 산삼은 아마 산삼을 캐려는 다른 경쟁 심마니가 바로 가져가지 않을까?  요즘은 기초 연구를 하다가도 해당 연구가 돈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하면 잽싸게 태세전환을 하는 시스템이 매우 잘 되어 있다. 기초 연구자는 평생 너는 돈 되는 연구에는 관심없어용……만을 선서하고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유전자 가위 때문에 세기의 특허분쟁이 일어난 CRISPR 특허 분쟁의 당사자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특허 분쟁의 두 당사자가 되는 과학자인 브로드 연구소의 펭 장이나 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는 응용 연구자였나? 펭 장은 원래 옵토제네틱을 박사과정때 연구한 연구자였고, 유전자 가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옵토제네틱을 연구하기 위해서 쥐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다 보니까 유전자 가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고 다우드나는 원래 유명한 RNA 분야의 구조생물학자이다. 원래 응용 연구하고는 관련이 1도 없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쩌다’ 돈 될 거리가 되는 발견을 하자 다 주변에서 알아서 몰려들고, 돈이 몰리고, 회사가 만들어지고 해서 응용 연구자처럼 된 것이다.

결국 남의 기초연구 성과를 잽싸게 응용하여 응용연구를 한다? 남이 (확인하지 않고) 버린 로또 1등 복권으로 벼락부자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와 별반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아마 잘 뒤져보면 로또 5등 정도는 버리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즉 주갤러의 경우에도 돈을 벌려고 주식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한강 정모 (…) 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처럼 한국정부의 국가 R&D도 마찬가지이다. 빠른 시일내에 (특히 이번 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에 라든지!)  가시적인 성장동력이나 경제적 효과를 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바로 이러한 성장동력이나 경제적 효과를 내는 연구를 막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그럼 어떻게 하나?

“그냥 그런 기대는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그럼 R&D 투자는 하지 말라고? 어허….그냥 지갑은 거기 두고 잊으시라고요. 뭐 그렇게 포기하다 어쩌다 한번 터질지 아나? 그냥 잊으시면 편해요. 돈은 내시고.

‘쓸모 없는 지식’ 의 쓸모 있음에 관하여

Nature Reviews Chemistry에 실린 ‘On the usefulness of useless knowlege’ 라는 에세이의 번역이다. 언제나 그렇듯 전문번역가가 아닌 내 번역은 틀릴 수 있으며, 생략일 수도 있고, 원문링크 걸어놨으니 번역 불평말고 원문 보삼.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있음에 관하여

헬무트 슈와르츠 (Helmut Schwartz)

Institut für Chemie Technische, Universität Berlin, Berlin 10623, Germany.

Alexander von Humboldt-Stiftung, Bonn 53173, Germany.

3줄 요약

기초 연구는 새로운 기술을 창출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도박이다. 이런 도박에서 가장 안전하게 베팅하는 방법이라면 가장 똘똘한 인재에게 그의 큰 꿈을 펼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하고 뭘 하든 마음대로 해 보슈 하는 자유를 주는 것이다. 

과학 연구를 발전시키는 돌파구는 대개 계획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타나며, 계획될수도 없다. 이런 돌파구들은 오히려 전혀 예상치 않던 변방에서 나타나기 마련이다. 주요한 과학적인 발견이나 발전을 촉발시킨 것은 연구자 개인의 열정이기 때문에 어떤 학술기관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사람을 골라어 이들에게 지적 자유와 넉넉한 펀딩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 된다.

프린스턴대의 고등과학원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의 초대 사무총장인 아브라함 플렉스너 (Abraham Flexner) 는 1939년 기초연구의 의의를 설명하는 수필을 하나 썼다. “쓸모 없는 지식의 유용성 The Usefulness of Useless Knowledge” 이라는 제목의 산문에서 그는 별로 목적이 없어보이는 몇 가지의 연구가 어떻게 가장 중요한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지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과학연구의 진흥과 연구비 배분에 있어서 과학 연구의 “유용성” 에 대해서 강하게 논박했다. 그는 과학 연구가 얼마나 유용한 결과를 가져올지가 아니라 “인간 정신의 해방” 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호소했다. 그의 수필은 자유로운 과학 연구의 장점과 미덕을 웅변적으로 대변해 주는 담론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글은 이미 나온지 75년이나 된 글이지만, 기초 연구의 필수적인 역할, 즉 기초 연구의 문화적인 역할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기초 연구가 인류에 주는 장점에 대해서 가장 잘 묘사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개인 연구자의 역할

기초 연구는 과학자들이 아직 인류가 모르는 새로운 영역 – terra incognita – 을 탐험하려는 욕망을 통해서 발전하게 된다. 즉 인류가 잘 모르는 새로운 지식의 영역을 발견하고, 이를 조사하여 설명하고, 이것을 이용하여 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초연구의 특성을 말하자면 매우 오랜 기간 한번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고 반드시 좌절이 수반된다는 것이다. 즉 연구에서의 돌파구라는 것은 이루고 싶다고 계획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설령 연구에서의 돌파구를 이룩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가치와 유용성은 처음에는 잘 알기 힘들고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과학의 발전과정에서 계속해서 알려져 왔다. 비록 과학은 마치 모자이크처럼 수많은 개인 연구자들의 업적과 열정에 의해서 만들어져 왔지만 이러한 돌파구들은 창의성, 지성, 호기심, 끈질김 그리고 우연의 복합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돌파구들을 만들어내는 개인 연구자들은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장소, 자유 및 신뢰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그들이 중요한 과학적 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위험을 감수할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된다. 3년 안에 SCI 논문 10편 안내면 님 재암용 빠이빠이 하면서 무슨 중요한 과학적 발견이 나오겠냐즉, 연구원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근시안적인 일정과 매우 협소하게 정의된 목표에 의해서 제한되서는 안되고,  연구자금의 연속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유럽의 13,00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서명하고 유럽의 기관들과 의회에 제출 한 성명서인 ‘연구자를 신뢰하라 Trust Researchers‘ 의 핵심 요구사항이다.

기초 연구 (Fundamental Research)란 

인류에게 새로운 지식은 연구자가 미지의 사실을 이해하려고 하는 욕망, 즉 구체적인 응용이나 확고하게 고정된 목표의 제약에서 벗어난 순수한 지적추구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1차 대전 직후 유럽을 덮고 있는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막스 플랑크는 “지식은 응용에 선행되어야 한다” 라고 선언하였으며, 이것은 막스플랑크 협회 (Max-Planck-Gesellschaft “MPG)가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모토로 남아있다. 충분한 재정적인 지원과 함께 기초 연구에 대한 집중, 그리고 타협하지 않고 가장 뛰어난 과학자를 고용하겠다는 것이 바로 막스플랑크 협회를 세계최고의 연구소로 유지하고 있는 동력이다. 1948년 이후 막스플랑크  소속 연구자 중 18명 이상의 노벨 수상자가 나왔다. 이와 비슷한 성공 사례는 영국 캠브리지의 Laboratory of Molecular Biology (LMB), AT&T의 벨 연구소, 혹은 미국 국립보건원 (NIH) 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성공적인 연구소가 가지는 공통점은 이들 연구소가 ‘탁월함의 원칙’ 에 기반하여 운영된다는 것이다.

기초 연구에서부터 혁신까지

과학자의 호기심에 기반한 연구가 결국은 혁신을 창출하는 원동력이 되지만, 이런 연구의 초반에는 처음 멀고 험한 길을 거쳐야 하고, 조류를 거슬러서 헤엄쳐야만 하고, 지금 당장 지름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장애물을 극복해야만 한다. 한마디로 기초 연구는 시간이 많이 소모되며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과학자들이 기초 연구의 중요성을 일반 대중이나 정치가, 정책을 결정하는 관료에게 이런 기초 과학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상, 많은 국가에서 기초 연구는 자기 자신의 존재가치를 정당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기초과학은 위험에 처해 있으며 취약해지고 있다. 오늘날 여러 국가에서 지배적인 정책은 연구의 가치를 그 연구가 “유용한지” 의 여부만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다. 즉, 연구의 목적이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거나, 혹은 몇 년 안에 시장성이 있는 ‘제품’ 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따라서 연구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이  추세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대항하기 위하여 영국의 많은 학자들은 영국 대학 수호 협의회 (Council of Defence of British Univerities) 라는 것을 설립하여 과거에 고등교육기관의 성공에 핵심적인 정신 및 지적분위기를 복원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네트워크에서 기초연구의 노드가 삭제되는 경우 응용 연구와 산업 역시 타협받게 되며, 네트워크에서 하나의 노드에서 다른 노드로의 경로가 선형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전체의 네트워크가 위험을 받게 된다. 따라서 기초 연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가장 비용 효율적인 공공재로 작용한다.

기초 연구에서 혁신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는 사회에서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사실은 기초 연구에서 기인한 여러가지 지식이 없이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불편할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은 분명히 어떤 실용적인 응용과도 관계없어 보였지만, 상대성 이론이 없이는 GPS 기기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었다.또한 뢴트겐의 X선의 발견은 분명히 우연한 실험에서 기인한 것이고, 왓슨과 크릭의 DNA 이중나선의 규명은 완벽히 호기심에 의거한 일이었지만, 이러한 발견은 생명과학계를 뒤흔드는 혁명적인 발견이었다.  레이저의 발견은 ‘특정한 문제를 찾기 위한 해결책’ 정도로 간주되었으며, 폴 디락의 1927년의 반물질 예측 (양전자 등의)은 당시에는 거의 쓸모없고 중요하지 않은 요상한 연구의 일화로만 여겨졌지만, 수십년 후 대개의 병원에서는 암 조기 진단을 위하여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이 이용된다.  마이클 페러데이가 수행한 전기와 자기에 대한 수수께끼에 대한 연구를 생각해보자. 그의 전자기학에 대한 과학적인 흥미가 없었다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19세기 전반기에만 해도 재미있긴 하나 대개 실용적인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그의 연구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전기 없는 어둠의 세상에 살고 있을 것이다!  영국의 글래드스톤 총리가 패러데이에게 “국민의 혈세로 지원한 전기 연구가 과연 무슨 쓸모가 있을 것이냐” 라고 물었을때 페러데이는 “언젠가 이걸로 세금을 걷을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고, 그런데 진짜로 그것이 일어났다. 물론 글래드스톤 자신은 전기 산업의 발전과 여기에 따른 세수증가를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여기서 주는 교훈은 연구 투자에 따른 수익은 장기적이고 막대할 수 있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세계 경제의 약 20% 가 어떤 방식이건 화학 촉매와 관련이 있다. 즉 처음에는 분자내의 결합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파괴되는지에 관련한 순수한 학문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렇게 된 것이다. 또한 전자의 파동 특성을 설명하기 위한  슈뢰딩거 (Schrödinger)의 1926년 공식 (방정식 1) 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기초 이론 물리학 연구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 국내생산의 약 20 %가 양자 역학의 응용에 근거한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목록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심을 가지지 말지어다. 즉 기초 연구는 조만간 더 많은 발견이나 발명을 가능하게 하고 사회에 도움이되는 응용을 창출하는 공익 활동이다. 기초 연구의 지원에 관하여, 기초연구의 지원은 궁극적으로 공익의 문제로 남아 있어야 한다. 기초연구의 지원은 이를 통해 얼마나 신속하게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정치적인 기회주의적인 고려와는 무관해야만 한다.

연구지원기관의 역할 

독일의 혁신가인 Erich Staudt는 “Innovation im Konsens ist Nonsens”(consensus innovation is nonsense 모두가 공감하는 혁신이란 말도 안된다) 라는 말로, 혁신은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서 잘 닦여진 길을 피해갈때만 발생한다고 주장했다.Staudt는 기술적인 결과에 의해서만 동기부여된 프로젝트는 오히려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프로젝트 자체에는 전혀 집중하지 않고,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사람들과 이들의 전문성에 중점을 두는 것을 옹호했다.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변화를 주도함으로써 진정한 혁신을 일으키는 것은 항상 개인 또는 소수의견 소유자일 것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대담한 아이디어 중 많은 아이디어는 대개 실패할 것이지만, 몇 가지는 성공할 것이다.

필자가 소속된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 (Alexander von Humboldt Stiftung)의 경험에 따르면,  연구자 개인에 대한 지속가능한 충분한 지원은 이러한 연구의 실패에 대한 위험과 변화에서 범위를 제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 재단은 60년 전 설립된 이래로 연구에 대한 지원 원칙이 변하지 않았다. 이 원칙은 그동안 시간의 테스트를 견뎌왔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를 지원하는 것
  • 최고의 연구자를 찾는것
  • 균일한 배분 – 국가, 분야, 성별, 연령 등은 고려하지 않는 것
  • 유행에 따라 변화하는 단기 프로젝트에 관여하지 않는 것

우리는 개인 연구자를 지원하고, 이것이 기초 연구를 지원하는 가장 좋은 정책이라는 데에 대해서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과학자, 특히 젊은 과학자들에게 꿈을 실현할 수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열심히 노오오력한다.결국 사회의 꿈과 희망은 젊은이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어떤 공간과 창의적인 기회를 제공받는가에 달려 있다.  젊은 과학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으며,  아이디어를 구현하는데 방해받지 않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젊은 과학자와 학자들은 지식에 대한 탐구를 추구하고 자신과 아이디어를 시험할 공간이 필요하다. 너무 많은 통제와 너무 많은 제한은 여기에 치명적으로 작용된다. 결국 젊은 사람들은 특별히 열정적일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열정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에 대한 사람으로 꽃필수 있다. 그들의 능력이 펼쳐지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다. 이러한 젊은 재능은 창의적인 환경에서 양성되어야 한다. 그들의 능력을 논문 몇 편 냈나, 혹은 얼마나 연구비가 많냐로 평가하는 것은 정말 몰지각한 행위인데, 그 이유는 이러한 수치는 그들의 과학적인 업적의 창의성이나 독창성을 표현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학교에서 사람을 고용하거나 테뉴어를 줄때의 기준을 맥스월, 피셔, 파울링, 크릭, 하이젠베르그에게 적용한다고 해 보자. 이들 중 몇 명이 아카데믹 잡을 잡을 수 있을까? 평생 논문 몇 편 밖에 못 낸 프레데릭 생거 (DNA 시퀀싱의 개발자) 한테 매년 결과보고서를 쓰라고 하고, 논문 편수를 채우라고 했다면 그가 과연 현대 과학에서 생존할 수 있었을까?

젊은 연구자들에 대한 지도와 지원, 이들이 일할 자리의 확보, 개성 존중과 개성의 강화, 그리고 개인 네트워크의 강화는 젊은 연구자를 양성하기 위해서 모두 다 필수적인 요소이며 모두 연결되어 있는 요소이다. 이러한 것을 중견급 학자들에게나 허용되는 사치로 간주되서는 안된다. 만약 이러한 태도가 학계에 만연한다면 과학의 장래를 해롭게 할 뿐만 아니라, 대학이라는 존재 이유를 수십년 후에는 위태롭게 할 것이기 때문에 매우 치명적이다. 기초 연구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해안’ 으로 향하는 기회를 준다.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 젊은 사람들의 열정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가장 안전한 재산인 것이다.

기초 연구는, 마치 오페라 창작과 비슷하게 일종의 문화적인 사업이며, 이것은 사치라기보다는 사회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더우기 기초연구의 진흥에는 지속성과 인내가 필요하다.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감시하는 것보다는 사람의 신뢰에 기반하는 시스템은 충분히 그동안 가치가 있음이 확인되었으며, 프로젝트 자체보다는 연구자를 지원한다는 원칙은 시간의 테스트를 거친 검증된 시스템이다. 이러한 것을 가장 확실하게 요약한 것은 미국 국립과학재단 (National Science Foundation) 의 창립자이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자문위원이었던 바네바 부시(Vannevar Bush)의 이야기이다. 즉 “과학적인 진보는 자신이 선택된 주제에 따라서,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 이끄는대로 행해질 때 발생된다”

과학자의 커뮤니케이션과 매사페

커뮤니케이션의 양쪽 말단

과학자는 골방 연구실에 처박혀서 일만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나, 여튼 현대사회에서 과학자가 자신의 일을 타인과 교류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어느 레벨의 과학자이건 결국 타인과 자신의 직업에 관련된 일을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은 여러가지 다양한 층위를 가진다. 가령 자신이 하는 연구분야를 논문 형태로 출판할때 거치는 피어리뷰 과정의 리뷰라든가, 학술대회에서의 학술 발표등은 극히 한정된 대상, 그리고 자신의 연구 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 소수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사실상 이런 논문, 학술 발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하는 것 자체가 직업인으로써의 과학자를 기르는 트레이닝 과정에서의 주된 목표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과학자의 본연의 밥벌이’ 로써의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하게 되는데는 과학자로써의 트레이닝에 소요되는 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지만, 일단 이러한 트레이닝 과정을 제대로 마친 사람이라면 이러한 자신의 본업 관련 커뮤니케이션 활동이  여러가지 과학자가 해야 하는 다양한 층위의 커뮤니케이션 중 가장 편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의 제일 반대편 극단에는 직업이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 혹은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사람들에게 과학을 이해시키는 커뮤니케이션이 있다. ‘흥, 난 그런 거 잘 못하는데’ 라고 생각하는 과학자라도 설, 추석명절때 오랫만에 만난 친인척에게 “내가 뭐를 하면서 밥 벌어먹고 살고 있다” 를 설명할 일이 가끔은 있을 것이다. 한번 오랫만에 만난 삼촌, 큰아버지에게 ‘그래, 자네가 하는 일이 뭐라고 했지?” 라는 물음을 들었을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 했다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대중을 위한 과학 커뮤니케이션과 과학자 

가끔 이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글을 보고서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은 대중에게 과학을 쉽게 설명하는데 관심이 높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진짜로 그러한가? 사실을 말하자면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MadScientist라는 필명을 쓰는 자는 그닥 대중에게 과학을 쉽게 설명하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여기서 분명히 ‘큰 관심이 없다’ 라고 했지 ‘대중에게 과학을 쉽게 설명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라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즉, 내가 관심이 없는 것과 중요하지 않다는 같지 않다! 오히려 대중에게 과학을 쉽게 설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관심이 없는 이유라면 그것은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며, 대중에게 과학을 설명하는 일 이외에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 잠깐 부연설명을 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로써의 트레이닝 과정이 높아갈수록 대중의 눈높이로 맞춘 설명을 제대로 하기는 힘들어진다. 이는 높은 산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인적이 드물고, 사람이 많이 사는 평지와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이다. 그리고 그런 산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사람이 많은 평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깨닫기는 힘든 노릇이고, 자칫 딴 생각을 하다가는 천길만길 벼랑으로 떨어지기 쉽상이다. 게다가 어떤 봉우리이건 먼저 올라가려는 경쟁 ‘등산가’ 가 붙어있다는 상황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

물론 직업적인 과학자이고, 일류 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커뮤니케이션에도 능한 과학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극히 일부의 예외적인 존재이고 일반화되기 힘들다.가령 NFL과 MLB 에 동시에 뛰었던 보 잭슨이나 디온 샌더스 같은 별종의 사람, 혹은 MIT 수학박사과정과 NFL 선수생활을 동시에 하는 존 어셀 같은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람은 소수의 아웃라이어며 이들의 사례를 가지고 이런 것이 모든 과학자들에게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무리이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은 24시간이 주어지며,  그 사람이 얼마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건,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기는 쉽지 않다. 즉, 대중의 눈높이로 과학을 설명하려는 노력에 시간을 들인 만큼, 세상의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지점에 올라가려는 노력은 그만큼 감소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과학자 중에서는 이미 오를 봉우리를 다 오른 이후에 과학커뮤니케이션 등의 활동에 치우치는 분도 계시고, 혹은 높은 봉우리를 굳이 오르는데 집착하기보다는 적당히 낮은 산을 오르는 것을 즐기면서 과학커뮤니케이션을 겸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이며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튼 직업적인 과학자이고 지금 당장 생산력이 최상의 상태에 오른 그런 과학자들에게 굳이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압박을 크게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그럴 시간이 현실적으로 부족하다는 문제를 넘어서, 이들은 대중에게 과학을 설명하는데 최적의 당사자는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 해설자 

그리하여 과학을 대중에게 해설하는 사람은 반드시 현업 과학자일 필요는 없다. 과학저술가, 과학저널리스트, 과학커뮤니케이터 등 여러가지 이름이 있을 수 있겠으나, 아무튼 ‘해설가’ 의 노릇을 하는 사람이 분명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야구 중계를 할 때 반드시 현역의 선수가 나와서 중계를 할 필요는 없다. 이대호나 오승환이 자신이 등판하지 않는 경기에 나와서 해설을 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일류의 과학자에게 중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을 수준으로 최신 과학연구 결과를 설명하라는 요구를 하지는 않는 것이 좋다. 중계와 해설은 이전에 선수 경력이 있고 해설 경력이 있는 해설위원이 하면 되는 것이다. 혹은 선수 경력이 없더라도 적어도 경기에 대해서 규칙은 이해하고 있는 수준의 아나운서도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전문인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높은 산 위에 올라가 있는 현업의 과학자는 사실 평지의 일반인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모른다!  대중의 눈높이에서 최신의 과학정보를 설명하는 것은 비단한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며, 이것은 어쩌면 특정한 전공에 대한 전문지식에 추가적으로 더해져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특정한 전공에 대해서 잘 아는 것, 혹은 새로운 연구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과 이를 제대로 설명하는 재능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물론 한국 현실상 이러한 ‘중간 지식 거래상’ 이 제대로 설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끔은 현업의 과학자에게 과학 해설자의 역할을 종용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현업의 과학자가 과학 해설자를 겸업하는 것은 과연 과학자에게 이득이 되는가? 물론 사회에 대한 봉사와 공헌의 차원에서 현업 과학자가 과학 해설자로 일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있으며, 바쁜 시간을 쪼개서 대중에 대한 과학해설을 하는 분들에게는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개의 경우 이러한 ‘사회봉사’ 활동은 이들의 과학자로써의 캐리어에는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중서를 많이 출판한들, 혹은 대중강연을 아무리 많이 한들 그 사람이 정규직 일자리를 잡거나 승진을 하는 평가에는 그닥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오히려 좋지 않은 영향 (연구보다는 ‘딴일’ 에 관심이 더 많다는 시선 -.- ) 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더 많다.

즉, 직업과학자가 과학해설자를 겸임하는 것은 어느정도 크던 적든 과학자로써의 캐리어에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하는 희생에 가까우며, 현실적으로 이를 상쇄할 수 있는 금전적인 보상도 지금의 한국 현실에서는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들어봤나 김영란법? 그런 상황에서 직업과학자들에게 ‘왜 대중에게 나서서 적극적으로 교류하지 않는가?‘ 라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영화 속의 이런 대사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

물론 굳이 희생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대중에게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이를 취미삼아 하시는 분들도 많이 존재한다. 실제로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바쳐가면서 시간을 내는 과학자들의 대부분이 이런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직업과학자의 취미활동도 지속적으로 계속되기 위해서는 과학자도 이런 행사에 참여해서  지적인 면에서 얻어가는 ‘보상’ 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즉 ‘어, 당신이 뭐에 대해서 잘 안다는데, 우리가 알아듣기 쉽게 한번 썰 좀 풀어 보소’ 로 지식을 쪽쪽 빨아먹는 것으로 대중에 대한 과학 해설이 그치기보다는 과학자도 이러한 행사에 참여하여 뭔가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이런 것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과학 이외의 전문분야와 교류하여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든지 등등..이러한 것이 전제되지 않은 일방적인 과학 교양의 전달을 직업과학자에게 원한다면 그러한 ‘봉사’ 를 계속할 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연애관계에서 비대칭적인 정성과 사랑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대개 경험한 사람이면 알고 있듯이 말이다. 세상만사 대개 다 그렇지만 기브 앤 테이크이다. 과학자가 자신에게 그가 알고 있는 전문지식을 설명해 줄 것을 기대하는 당신은 무엇을 그에게 줄 수 있는가? 

그 중간의 커뮤니케이션  

물론 과학자가 해야 할 커뮤니케이션이 ‘자기와 동일한 분야를 전공하는 전공자’ 와 ‘과학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일반인’ 의 두 가지 분야로 딱 구분되서 나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는 수많은 다른 층위의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하며, 사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자기와 동일한 분야를 전공하는 전공자, 즉 자신이 쓴 논문에 대해서 피어리뷰를 할 수준의 전문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아닌 다른 과학자와도 과학자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경우가 빈번하게 생긴다.

  • 가령 같은 분과학문이지만 다른 주제를 하는 연구자가 있을 수 있을 것이며,
  •  조금 다른 분과학문이지만 크게 퉁치면 큰 분야로 포함될 수 있는 학문 (광의의 생명과학, 물리학, 화학 등)
  • 그냥 자연과학 (생명과학+물리학+화학)
  •  자연과학 및 공학
  •  그냥 과학 (자연과학 + 사회과학 + 공학)
  • 학계
  • 기타 전문인, 학생

어쩌면 과학자가 직업적으로 더 중시해야 할 커뮤니케이션은 이런 중간 단계의 커뮤니케이션일수도 있다. 자신이 근무하는 세부분과에서는 난제로 생각되던 것이 조금 다른 분야에서는 그냥 학부 4학년생이 배우는 교과서의 테크닉으로 풀 수 있는 문제이지만, 학문분야별로의 교류가 부족하기 때문에 모르고 있을 겨우도 허다하며, 학문의 세분화에 따라서 조금만 세부분과가 틀려져도 해당 분야의 소식에 대해 그냥 ‘일반인’ 과 비슷한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을 때도 허다하다. 물론 이들 모두가 과학적인 방법론에 대해서 기본적인 트레이닝이 된 사람들이라고 전재한다면 과학자로 훈련되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좀 더 수월하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 역시 ‘어느 정도 수준에서 알고 있을 것인가’ 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상호간에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이러한 서로 다른 과학분과, 세부분과에서 종사하는 사람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은 과학자의 본업에도 시너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일반적인 과학자가 중시해야 할 커뮤니케이션이 어떤 것인지는 명백하지 않은가? 그리고 일단 과학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쉽다!

매사페와 과학자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  

블로그를 읽던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얼마전에 Mad Science Fest 라는 약빤 이름의 행사를 개최했다. 이름만을 보고서 이 행사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하지 못한 분도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행사는 궁극적으로 과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 특히 과학을 즐길 수 있는 과학덕후의 코미케 (…) 비슷한 느낌의 행사로 진행하고 있다. 즉, 과학을 하는 사람에 의한, 과학을 하는 사람을 위한, 과학을 하는 사람의 행사다. 이 행사는 결코 일반인에게 과학을 어떤 것이라는 것을 설명할 것을 기대하고 하는 행사가 아니다! 물론 ‘이 행사는 과학짬빰이 몇년 이상 된 업계 종사자만 오는 행사임! 문외한 꺼지셈!’ 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유의하기 바란다. 과학에 대해 관심이 있는 과학애호가라면 주저하지 말고 오라! 그래서 여기서 실제로 과학을 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라!  과학저널리스트와 해설가에 의해서 대중의 입맛에 맞게 가공된 것이 아닌 날것으로써의 과학자의 목소리를 들어라! 과학은 실제로 이렇게 진행된다에 대한 느낌이라도 얻고 가시라! 

물론 이 행사가 본질적으로 특정한 전공자들만이 모이는 장소가 아닌 다학제적인 과학자들이 모이는 행사이기에, 행사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들은 그래도 특정한 전공자들만 모이는 전문학회에서 나오는 이야기보다는 그래도 일반인들이 접하기에 알아듣기 쉬운 이야기일 것으로 생각한다. 각자 세부전공학회에서 이야기하는 식으로 막 던지면 우리도 일반인처럼 멘붕할테니 적당히 쉽게 설명해야 하거던.

여튼 이 행사의 근본적인 목적은 비교적 넓은 분야의 과학자 (대략적으로 이 블로그에서 이야기되는 범생물학관련 이야기 정도가 되는) 들간의 상호교류와 친목, 그리고 분야의 장벽을 뛰어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것임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장소는 장차 과학커뮤니케이터, 과학해설가를 꿈꾸는 과학자/과학도에게도 좋은 트레이닝 그라운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자신이 알고 있는 전문지식과 중요성을 과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고 싶다면, 일단 자신과 조금 틀린 연구를 하는 사람에게 이것을 설명해 보아라! 만약 옆 방의 친구에게 자신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어찌 수많은 대중에게 설명할 수 있으리? 

과학자가 가장 먼저 소통해야 할 대상은…동료 과학자. 

아마도 본 블로그, 혹은 ‘오마매의 바이오톡’ , 혹은 매사페와 같은 활동을 통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과학자는 소통이 필요하며, 그 우선 대상은 당신 주변에 있는 과학자라는 것이다. 수신제가후 치국평천하 같은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굳이 하고 싶진 않다. 근데 이미 했잖아굳이 멀리서 소통의 대상을 찾지 말자. 손쉽게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소통을 통해서 뭔가 생산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동료 과학자와의 소통부터 행하자. 그것에 성공한다면 한 걸음, 한 걸음 그 범위를 넒혀 나가자.

라고 쓰고 결국 기승전매사페광고 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