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박사 배출 현황 (2015년)

미국과학재단 (National Science Foundation) 에서는 매년 미국 대학에서 배출되는 박사학위자에 대한 통계를 내고, 이것을 보고서로 발표한다. 금년도의 보고서도 얼마 전에 나왔다.

2015 Doctorate recipient from U.S.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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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것이 왜 중요한가? 서문에서는 대략적으로 “미쿡 대학은 세계 제일의 킹왕짱임.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가장 뛰어난 닝겐들이 미쿡 대학으로 박사따려고 몰려옴. 그러나 이것이 언제까지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슴. 만약 미쿡 대학이 더이상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되면 그들은 다른 나라로 가버리고 거기서 일하게 될 것임. 그러면 안돼잖아?” 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뭐 이것은 미쿡 사정이고…이 글을 읽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어 해독자일 것인데, 무슨 상관이 있을까?

물론 상관이 많이 있다! 좋든 싫든 미쿡은 현재 세계 학계의 중심이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여기서의 트렌드 변화는 세계의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친다. 더우기 한국의 경우 한국의 학계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이런 기본적인 동향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보고서의 내용을 모두 다 소개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므로 이중에서 취사선별해서 흥미있다고 생각되는 그래프 위주로 소개하도록 한다.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원문 보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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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이래 미국 대학에서 박사를 따는 사람은 급격히 증가해오고 있다. 특히 과학&공학 (S&E) 출신의 박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75% 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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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공학계에서 외국인 (Temporary visa holder) 의 비중은 2015년 약 30% 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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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외쿡인을 국가별로 분류하면? 미국대학 외국인 박사 국가별 3대장은 중!인!한!  2005-2015년 10년간 한국인 출신으로 과학 공학계 미국박사를 딴 사람이 만명이 넘는다 ㄷㄷㄷ

그렇다면 분야별로 보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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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로 보면 역시 생명과학이 제일! 미쿡의 생명과학력은 세계제이이이이이일!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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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로 미쿡인과 외쿡인의 비율을 따져보았습니다. 수학/컴싸, 엔지니어링은 월등히 외쿡인이 많군요.

그렇다면 이들은 학비를 어떻게 조달하는가? 흔히들 생각하는 오해가 미쿡 유학을 가면 집안 기둥뿌리가 부러진다 등등의 이야기인데, 적어도 대학원 유학에서는 그렇지 않다. 자기 돈으로 박사학위 공부를 하는 사람은 미국의 박사과정 중에서 1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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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것도 분야별로 그때그때 달라요인데, 주로 과학, 공학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거의 자기부담은 없고, 펠로우십, RA, TA 등이 많은 반면, 교육, 사회과학등은 자기부담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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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에 걸리는 평균 시간..Education..이거 실화냐 ㄷㄷㄷ 그것도 대개 자기부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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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렇게 졸업한 사람들은 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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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에 따라서 포닥이 디폴트인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음. 생명과학, 물리과학 등은 박사 졸업자의 60% 이상이 포닥을 합니다. 그러나 수학 혹은 컴싸, 아니면 엔지니어링 등은 3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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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직업을 얻으면 대략적으로 어느정도 수입을 올리나? 산업계로 진출한 수학/컴싸 출신들이 가장 높은 소득을 올립니다. IT 의 위엄…그 다음이 공학계, 물리과학..생명과학계는 심리학/사회과학보다도 낮은 수준...지금알았냐 그래도인문학보단 낫잖아

그렇다면 외국 유학생들은 미국에 남고 싶어하는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에 남고 싶어하는 희망을 보이는 경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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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국가별로는? 미국 유학의 3대장인 중인한 중 중-인은 거의 90% 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미국에 남고 싶어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국은 60%대..특이하게도 태국의 경우에는 28% 의 사람만이 미국에 남고 싶어하고 나머지는 자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경향을 보였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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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로는 확실히 과학 – 공학 분야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미국에 죽치고 있으려는 성향이 높고 사회과학, 교육, 인문학 등은 그렇지 않은 경향이 많았다. 역시 미쿡에 죽치고 앉아있으려면 공학, 혹은 컴퓨터과학을 하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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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혹시 외국인은 미국인에 비해서 좀 더 학위를 오래 할까? 전반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학위를 딴 후에 미국을 떠나려고 하는 사람이 미국에 남으려고 하는 외국인보다 전반적으로 학위취득에 소요되는 기간이 긴 것 같다. 왜?   왜긴 왜야 학위가 길어지니까 미쿡에 이골이 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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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미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각각 어떤 식으로 지원을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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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보면 알겠지만 미국인/영주권자에 비해서 외국인은 자기 돈으로 유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이할 만한 것은 외국 정부에서 장학금을 받은 사람의 비율이 미국을 뜨려고 하는 사람에게서 많다는 것이다. 역시 미국 유학을 가서 거기 죽치고 앉아있는 것을 막으려면 정부에서 족쇄를 채워야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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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미국에 죽치고 앉을 사람아려면 압도적으로 산업게에 자리잡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을 뜰 마음이 있는 사람은 학계에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이제 적지 않은 숫자 (2015년 기준으로 13,077명이며, 그중 공학계 3332명, 자연계 2282명, 의약계 2056명이다)의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있는데, 이들이 어떤 진로를 가게 되고, 이들이 분야별로 어느정도의 소득을 올리는지 등의 조사와 통계는 있는지 모르겠다.

P.S.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2011년부터 국내 박사학위 취득자들의 진로현황 등을 조사하는 듯하다. 

여기 또 한명의 정년트랙 과학자가 쓰러지다

요즘 S모 잡지가 과학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글을 많이 올리네염. 부수가 요즘 줄었나? 뭐 여튼 그냥 대충 번역해 볼 뿐입니다. 판단은 알아서.

Another tenure-track scientist bites the dust

Adam Ruben

매튜는 보통 주말에 연구비 신청 결과를 확인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그러나 그는 연구비를 심사하는 연구분과 (Study Section) 위원회가 연구비 심사 과정을 마치고그가 신청한 두개의 R01 연구비 신청을 펀딩할것인지의 여부를 발표했다는 것을 알았다이 연구비가 지원되느냐에 따라 매튜의 연구실 운영경비대학원생의 인건비 및 매튜 자신의 월급이 나오느냐가 결정된다그리고 이전에 냈던 다른 연구비 신청과는 달리 이 연구비의 결과에 따라서 그의 학계에서의 경력이 계속되거나아니면 끝나게 된다(역자주: R01 과제는 NIH연구비의 근간이 되는 개인 연구과제이다. 5년간 지원받으며 성과가 좋은 경우 renew 가 가능하다)

 그래서 매튜 – 내가 대학원생때부터 알던 미국 남부에 있는 큰 연구중심대학의 조교수여기서 매튜는 가명이다 – 는 월요일까지 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주말에 확인하기로 했다

 매튜는 스마트폰을 들고 미국국립보건원 (National Institute of Health)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그 결과를 지켜봤다.이게 없었다면 그냥 기분좋은 일요일 오후였을 그때그는 공원에서 그의 운명을 스마트폰을 통해 읽었다

 과학자특히 학계에 있는 과학자는 이런 종류의 긴장감을 많이 경험한다자신의 연구결과를 정기적으로 정당화하여 연구비를 얻는 것은 과학자로써의 직무 중의 하나이다그리고 이것은 학계뿐만이 아니다산업계에서 일하는 과학자로써 나는 상대적으로 이런 것에 의해서 내 인생은 덜 좌지우지된다그러나 나 역시 상당부분 연구과제에 의해 펀딩되는 회사에서 일하므로 이런 기분을 어느정도 이해한다.  

 그렇지만 매튜에게 있어서 이것은 다른 연구비 리뷰 과정과는 달랐다그는 6년간 조교수로 지냈다그동안 그는 수업을 했고학회에서 발표를 했고연구를 했고대학원생 지도를 했다. 그렇지만 열번 이상의 연구비 신청을 했지만, 그는 한번도 연구비를 얻지 못했다. 매튜는 그가 임용되었을때 받은 정착연구비를 다 써 버렸고, 계속 정년트랙에 남아있으려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 

그는 충격 속에서 스마트폰을 응시했다. 매튜가 제출한 두 개의 연구비 신청의 상태는 이러했다. “논의되지 않음” (Not Discussed)

연구비에 인생이 걸린 사람에게 있어서 “논의되지 않음” 이라는 것은 매우 잔혹한 것이다. 당신은 수년 동안 연구를 했고, 몇달에 걸쳐서 연구비 신청서를 썼다. 그리고 나서 알게 된 것은 당신의 연구비가 단지 지원을 못 받게 되었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애초에 연구비를 줄지 말지 진지하게 고려대상이 되지도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의되지 않음” 이라는 것은 연구분과위원회가 연구신청서에 점수를 부여할 때, 아예 논의에서 배제되었다는 이야기다. 즉 리뷰어들은 특별히 그 연구신청서를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싫어하지도 않은 셈이다. 왜냐하면 위원회에서 오직 3명만이 그것을 읽어봤기 때문이다. 즉 처음에 당신의 연구신청서를 읽어본 3명의 초기 리뷰어들이 이 연구비 신청서는 위원회에서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결정했다는 이야기이다.

올림픽의 체조선수가 평행봉에서 방금 착지했고, 관중들이 심판석을 보는 순간을 생각해보자. 그런데 점수를 내놓는 대신 심판들은 “미안, 우리는 니 경기 안 봤다” 라고 하는 것을 상상해보자. 아마도 “논의되지 않음” 이란 이것과 비슷한 것이다. 오직 차이는 “미안하다” 라는 이야기도 없었다는 것 정도다.

“‘논의되지 않음’이라는 평가는 정말 안좋다” 라고 매튜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것은 그냥 죽음의 키스와 비슷해”. 만약 연구비 심사 점수가 낮으면 적어도 개선할 기회는 있다. 즉 연구비를 담당하는 프로그램 오피서에게 접촉하여 다음에 무엇을 수정하면 좀 더 나아질 수 있을지 조언을 듣기라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NIH에 제출되서 “논의되지 않음” 이라고 낙인찍혀 되돌아온 연구비 프로포절는 그냥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한문장의 반응과 다를 것 없다.

매튜는 아내와 몇몇 동료에게 소식을 문자로 “나는 지금 추방된 것 같다” 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그 다음에 그는 동네 동물병원에 가서 6개월 전애 죽어서 화장되었지만, 감정적으로 준비가 될 때까지 가져오기를 미루고 있던 애견의 재를 가져왔다.

그의 연구비 신청서가 논의조차 되지 않았으므로 그의 정년트랙 교수자리는 없어졌고, 20년동안 열심히 과학계에서 일한 이후 그의 학계에서의 장래는 끝났으나 그는 감정적으로 여기에 대비가 된 것 같다.

매튜는 말했다. “불행하게도, 여기서 다시 솟아나올 불사조는 없을 거야”

아마 매튜는 이후의 진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그는 앞으로 뭘 할지에 대해서 확신이 없다. 지금 당장은 무엇이든 생각해볼 때이다.  그는 심지어 이전에 생각했던 것을 고백하기도 했다. 즉 그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분석 능력이 은행업에서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가 앞으로 정년트랙 교수자리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실패한 연구책임자를 고용해 줄 곳은 별로 없지” 라고 그는 씁슬히 이야기한다.

매튜는 이런 상황에 처한 수많은 연구자들 중의 한명일 뿐이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교수들이 마치 파리처럼 바닥에 떨어진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던 사실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잘 안하고 다닐 뿐이다

나는 매뉴의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서 알았다. 페스북에 메튜는 NIH의 사진을 올리고 공식적으로 그의 꿈에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했듯이 한 사람의 학계 과학인생이 이런식으로 끝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매튜에게 일어날지는 진짜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생물학에 숨겨져 있는 미지의 신비를 찾고자 하는 과학자라는 직업의 모든 측면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가 스무살일때, 그는 세포가 내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정교한 기작을 알아내는데 자신의 인생을 다 바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학계 과학자로써 마치 계획된 듯한 경로를 걸어왔다. 처음 대학원에서 그의 관심분야를 좁힌 다음에, 포닥과정에서 자신이 추구할 독창성있는 연구분야를 찾은 다음, 최종적으로 정년트랙 조교수가 되었다.

그는 그가 임용되었을때 한 계약을 기억한다. 10년 내에 그는 테뉴어를 신청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아무도 그 전에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가 쓴 처음 몇 번의 연구비 신청서는 거절되었고, 이것들은 그가 여태까지 걸어왔던 깨끗한 경로와는 달랐다. 연구비 리뷰어는 그의 연구를 “별로 임팩트가 없다” 라고 치부했다. 이것은 과학연구비 지원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로써, 매뉴의 연구가 아마도 세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우리는 세포가 작동하는 것에 대해서 지금보다 얼마나 많이 알아야 되는가? (많은 기초과학 연구실들이 비슷한 문제에 직면한다. 그래서 많은 연구비들이 “암 때문에~” 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다) 그는 이런 리뷰에 맞추어 연구비를 수정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면 아마 연구비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이미 소모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더 많이 낭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또한 그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대해서 절망했다. 기초과학은 몇명의 유명인에 의해서 독점되고 있다. 매튜의 연구비를 담당하는 프로그램 오피서는 언젠가 매튜에게 그는 노벨 수상자’들’  – 단수가 아니라는 데 주목하라 – 과 경쟁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연구비 리뷰어는 신참과 VIP를 따로 심사하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연구계획에 돈을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든는다. 그렇다면누가 연구비를 탈 확률이 높겠는가? 지금 바로 시작한 매튜와, 30년 동안 경력을 가진 엄청난 리소스를 가진 스웨덴산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는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고른다면?

“그들은 그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아” 하고 매튜는 절망했다. “리뷰어들은 아직도 ‘이 결과는 아직 예비수준이야’ 라고 한다. 또는 ‘이 실험, 저 실험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한다. 그렇지만 난 지금 막 연구실을 시작했을 뿐인데 뭘 어쩌라고?”

나는 많은 학생들이 과학에 대해서 너무 로맨틱한 상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흥미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답을 찾으면 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당신이 연구를 하고 싶은 것과 당신이 연구를 할 수 있는 돈을 구하기 위한 것은 반드시 같은 일이 아니다. 이것을 매튜는 아주 어렵게 깨달았다. 그들은 “예비” 결과가 없으면 돈을 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돈 없이 그들이 원하는 “예비” 결과를 어떻게 얻을지는 알아서 해야 한다.

그래서, 여러분, 아시겠지면 현재 시스템이 이렇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하는 연구를 사랑하시겠고, 아마 잘할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위원회가 당신 연구가 별로 임팩트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연구 캐리어는 바로 끝날수도 있어요. 위원회가 일단 논의라도 한다면 말이죠. 회의실에 있는 몇 사람에 의해서 참 많은 힘이 부여된 셈입니다.

메튜가 조언하는 최선의 생존방법은 항상 어디서 돈이 올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즉 학생이나 포닥시절에 하는 실험이 학위논문이나 페이퍼의 전체 구성에 어떻게 들어가는지를 생각하는 것처럼 연구비를 따와야 하는 입장이 되면 어떻게 지금 하는 연구를 어떻게 위원회를 설득하여 돈을 받아낼지를 생각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냥 재수가 없었던 사람의 불운 이야기?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이야기? 매튜와 다른 신진연구자가 허비한 노력은?  과학계에서 ‘추방된’ 랩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새로운 랩을 찾아야 할까? 현재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것을 끝마칠 돈이 없는 실험들은 그저 돈 낭비? 충분한 리소스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학생들에 대한 과학에 대한 관심을 유지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은?

이러한 수많은 질문에 대해서는 ‘지금 논의하지 않기로 한다’

저명성에 대한 집착에 의해 왜곡되는 과학 연구

과학자 역시 인간이기에 자신이 가진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기는 힘들다. 혹시 우리는 유명한 과학자 / 저명한 저널 / 유명한 연구기관 / N모상 등이 주는 권위에 취해 과학 그 자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 최근 N모잡지에 Simine Vazire 라는 사람이 기고한 글을 번역해봄. 역시 맨날 하는 이야기지만 본 번역은 무허가 번역이므로 언제라도 삭제될 수 있고, 본 번역가는 비전문 번역가이기에 날림번역-오역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공지해 둠.

Our obsession with eminence warps research

Simine Vazire

Simine Vazire 는 UC Davis 의 심리학과 교수이다.

우리는 우사인 볼트가 2등보다 얼마나 빠른지를 기록으로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자의 경우 누가 최고의 과학자인지를 말하는 것은 어려우며, 최고에서 2번째 과학자보다 최고 과학자가 얼마나 더 뛰어난가를 말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이러한 최고의 과학자라는 인식을 결정하는 것은 적어도 일부분은 심판에 의한 자의적인 결정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모든 노이즈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과학자를 판별하는 확실한 신호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호를 근거로 우리는 좀 더 나은 연구를 하는 사람의 연구결과를 출판하고, 연구비를 주고, 이런 사람을 고용한다. 저널의 에디터, 피어리뷰어, 그리고 연구비의 리뷰어로써 나는 다른 동료 과학자들의 연구 중에서 좀 더 나은 것을 찾아내는데 매우 긴 시간을 보낸다. 만약 내가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이 동전던지기 식의 무작위적인 프로세스라면 기운빠지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 부정적으로 보면  나는 우리 과학자들은 훌륭한 과학자를 식별하는 우리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너무 과신하는 것이 아닐까 염려하기도 한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연구비를 많이 가지고 있고, 상을 많이 타고, 논문이 많고, 인용빈도가 높은 과학자가 다른 과학자들에 비해서 더 뛰어난 과학자라고 가정해버리곤 한다. 저명성, 즉 특정한 업적이나 지위, 상 등에 의해서 생기는 권위가 실제보다 너무 많이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물론 나는 지금 대개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사람들이라는 것을 부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수만명의 다른 과학자들은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 역시 중요하다. 과학이라는 것은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것이므로, 과학을 잘 하는 사람들이 누군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선택된 몇 명의 유명 과학자들만 부각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과학 자체를 손상할 수 있다.

저명성이 정당화되려면 얼마나 뛰어난 과학을 하는지의 수월성에 대한 평가가 정확해야 하는데, 이 과학의 수월성이라는 것 자체가 쉽게 판별하기가  어렵다. (이 링크를 참조 go.nature.com/2qalo2l). 가끔은 어떤 논문 원고를 저널에 실어주어야 하는지, 어떤 연구비 프로포절에 돈을 주어야 하는지, 어떤 교수 임용후보자를 실제로 임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의 의견이 갈릴 때가 있다. 저널의 에디터로 일한 경험을 미루어 보자면, 한번은 다른 모든 리뷰어들이 그닥 새롭지 않다고 생각해서 출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논문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과학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냥 에디터 직권으로 출판을 허가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논문은 저널에 실린 다른 어떤 논문보다도 훨씬 관심을 받았고, 이 연구결과는 수십개의 뉴스기사로 소개되었으며, 6개월 안에 수천번 다운로드되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형편없는 연구를 건실한 연구와 구분하는 것은 건실한 연구중 최고의 연구 5% 를 그 다음 5% 와 구분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고, 논문이 게재되느냐 아니냐는 ‘최고의 연구 5%’ 와 ‘그 다음 5%’ 사이에서 갈라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고려해보면, 논문 개제승인, 채용과 같은 중요한 결정은 단순히 연구의 질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정에 영향을 주는 것들은 무엇일까?

과학자 역시 인간이며, 당연히 그들은 편향에 취약하다. 이러한 편향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지위에 따른 편향이다. 즉 특정한 연구 성과에 대한 평가는 적어도 일부는 그 사람이 이전에 받았던 평가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이전에 좋은 논문을 냈던 기록이 있는 사람들의 논문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논문에 비해서 쉽게 어셉트된다) 이것은 결국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현상, 혹은 ‘매튜 효과’ 와 비슷하며, 이것은 로버트 머튼이 거의 50년전에 논했던 이야기이다.  (R. Merton Science 1595663; 1968).

결국 저명성 자체가 저명성을 낳게 되면, 시스템의 노이즈는 증폭된다. 즉 가장 큰 성공을 하는 데에는 어느정도 운이 기여하며, 결국 운 자체가 또 다른 운을 낳는다.

설사  지위에 대한 편향이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개인적인 편향이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후보자를 다른 후보자로부터 선택할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 경우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주관적 선호에 의존하게 된다. 가령 신규 교수임용 위원회는 특정한 연구 토픽, 특정한 그룹의 사람, 혹은 특정인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선호할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이전의 성취가  미래의 성취의 확률을 높이며 결과적으로 이는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논문이나 연구 프로포절을 심사할때 엘리트 과학자를 선호하는 것은 마치 우사인 볼트가 최근 5대회에서 우승했으므로 다음 대회에서 10m 앞에서 뛰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저명성에 의해 의존받는 평가는 과학자들을 자신을 잘 포장하고, 좋은 결과만 내놓게 만드는 경향이 있으며, 과학 연구의 투명성과 건전한 비판을 저해한다. 이러한 경향은 결국 연구재현성 문제를 악화시키는 주 요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는가? 우리는 과학에서 권위를 하루아침에 없앨 수는 없다. 불완전한 해결책이라면, 저명성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좀 더 어려운 쪽으로 나가야 한다. 즉 소속된 대학의 명성이나 이전의 논문 업적 등과 같은 휴리스틱에 의존하는 것에서 떠나서, 논문이나 프로포절 자체를 잘 읽고 검토하여 이것이 좋은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내가 이러한 지위 편향을 피하는 한가지 방법이라면 스스로 저자의 신원이 누군지 보지 않고 평가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위 ‘이중 맹검 리뷰’ (Double Blind Review) 는 사회학이나 심리학분야의 많은 저널에서 현재 채용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맹검 리뷰를 체험해 본 이후에 내가 느낀 것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저자가 누군지를 연구가 어떤지 판단하는 일종의 지름길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신원에 대한 정보 없이 연구를 평가하는 것 – 잘못하면 대가의 연구에 혹독한 평가를 할 수도 있다는 – 은 정신적으로 매우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것이 과학을 평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과학 커뮤니티는 건실한 연구에 보상을 주는 동시에, 누가 최고 중의 최고 과학자인지를 추측하는 것을 삼가는 것이 좋다. 실제로 어떤 과학자들은 상위 20% 정도의 연구 계획서를 고른 다음, 실제로 누구한테 연구비를 주는지는 추첨으로 결정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F. C. Fang and A. Casadevall Science352, 158; 2016).

지위 편향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모든 사람이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 즉 과학자의 저명성에는 지금보다 덜 관심을 가지고, 이보다 관심이 떨어지는, 그러나 중요한 ‘과학적 엄밀성’ 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일 때이다.

Extraordinary and poor

S모잡지에 이 시대 과학자의 심금을 울리는 이 하나 나와서 번역해봤습니다. 역시 맨날 하는 이야기 “저는 전문번역가가 아니므로 제 번역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며, 무허가 번역이므로 저작권의 문제제기가 있으면 언제라도 삭제할 수 있습니다”

Extraordinary and poor

Peng Yuan

Peng Yuan은 스탠포드 대학에서 포닥으로 일하고 있다.

고등학교 이래 나는 뉴로사이언티스트가 되고 싶었다. 이제 최첨단의 뉴로이미징 랩에서 포닥을 하고 있고, 나는 그동안 해온 일들에 대해서 매우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내가 꿈꿔왔던 미래가 조금만 더 하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에 흥분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 연구실의 다른 포닥이 얼마전에 나한테 이랬다. “네가 이렇게 좋은대학에서 일하면서 항상 금전문제에 대해서 염려하는 것을 보니 참 안됐다” 사실이다. 나는 항상 돈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고, 결국 나는 나의 꿈을 성취하기에는 너무 가난한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서 지금 내 포닥 월급이 적다고 불평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은 미국 내의 대개의 기관보다 더 많은 월급을 준다. 새로 오는 포닥을 위한 웹 페이지에는 학교에서 포닥에게 제공하는 월급은 독신인 포닥이 먹고살기에 충분한 액수라고 했다. 실제로 만약 내가 독신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문제는 나는 내 월급으로, 몇달 전에야 겨우 일을 시작해서 파트타임 일자리에서 일하는 아내와, 박사과정때 태어난 내 두 딸, 그리고 장모를 부양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어마어마한 집세와 큰딸의 유치원 비용 때문에 우리는 매달 적자상태이다. 중국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계속 받는 것이 나는 내 꿈을 쫓는 노력을 유지시키는 원동력인 셈이다.

내가 이전에 조금 더 재정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일자리를 안 찾아본 것이 아니다. 포닥을 하기 전에 나는 몇군데의 컨설팅 펌과 면접을 봤는데, 여기서는 모두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월급의 3-4배를 제시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당시에 어떻게 금융상품에서 이익을 내게 만들지를 고려하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근에는 몇군데의 제약회사에서 제안이 왔는데, 현재 받는 월급의 3배를 준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끌리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는 컨설팅 회사에 다니거나 산업계에서 과학자로 일하는 것이 보람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 현재로써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적어도 지금 현재는 이런 금전적 이득을 버리고 학계에서 제공하는 지적 자유를 누릴 생각이다. 내 인생은 한번 뿐이고, 나는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싶다.

그렇지만 이런 맹목적인 신념은 매달 날아오는 청구서를 지불해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매달 저소득층을 위한 푸드스탬프를 받아야 하는 지금 현실에서, 내 가족과 내 자신에게 왜 내가 하는 연구가 가치가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가난하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족을  위해서 책임있는 선택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지속적인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나는 이기적일까? 나는 환상 속에 있는가? 이렇게 과학에 대한 추구가 결국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이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결코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험이 실패할때마다 이런 스트레스는 점점 가중된다. 아마도 이러한 모든 존재론적인 의문 역시 과학자가 되는 트레이닝의 일부이며, 새로운 것을 찾는 과정에서 내가 참아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재정적인 현실을 무시하는 것은 때로는 낭만적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이와 동시에 가족을 꾸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런 낭만적인 거품에서 빠져나와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결국 내 가족을 부양하는 것과 과학자로써의 캐리어를 양립하는 것을 동시에 병립하기로 했으며, 여기에 따르는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비슷한 과정을 가기로 한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부담을 받아들이면,  여기서 나오는 모든 스트레스와 의문을 통해서 당신의 인생에서의 선택이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확실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당장은 나의 학계에서의 꿈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다. 최근에 나는 영주권을 받았고, 내가 연구를 계속하면서도 파트타임 알바를 해서 추가수입을 올리는 것도 이제 불법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이런 일을 할 시간이 과연 생길런지도 문제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여전히 희망적이다. 나는 이런 모든 고생이 결국 일시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당신은 내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고등학생 과외를 하거나, 개 산책시키는 알바를 하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동시에  나는 내 이름이 실린 논문을 과학저널에서 보았으면 좋겠고,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지식을 조금이라도 발전시키는데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짚으로 된 저택 vs 작은 벽돌집 논문

요즘 논문, 특히 ‘중추신경’ 계와 비슷한 약자를 지닌 논문들을 보면 단백질 구조에서부터 세포실험, 동물실험까지 온갖 잡다한 데이터가 들어가며 참으로 대단한 주장들을 한다. 그래야 그런 저널에서 실어주니까 당연한 것이다. 논문을 보면 주 데이터 이외에도 수십장의 보조데이터가 난무하여 과연 이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이 들었는지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반면, 그렇게 한 논문에 나오는 데이터와 그 주장은 점점 거창해지는데 어째 논문의 재현이 잘 되지 않는다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자주 들린다. 왜 그런가?

여기에 대해서 몇넌 전에 래스커상을 탄 H모대학의 William G Kaelin Jr. 라는 양반이 한 소리를 하시는 컬럼을 N모잡지에 실었다. 이런 추세를 이끌어가는 대표 중의 대표인 N모잡지가 웬 셀프디스냐고 하겠지만..암튼 한번 읽어보시라. 언제나 그렇듯이 본인은 전문번역가가 아니므로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대충 생략하고 번역한 것이 있을 수 있으므로 마음에 안 들면 원문 보삼

지푸라기로 저택 대신 벽돌로 지은 집과 같은 논문을 내자.

Publish Houses of Brick, not mansions of straw 

William G Kaelin 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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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 의생명과학 연구가 점점 어설퍼지는 것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다. 논문으로 나오는 결과 중 너무나 많은 결과가 아주 한정된 조건에서밖에 사실이 아니며, 어떤 경우에는 전혀 재현이 안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의 이유는 아주 다양하나,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여태까지 잘 언급이 되지 않고 있다. 천천히 따뜻해지는 냄비 속에서 그대로 뛰쳐나가지 못하고 삶아지는 개구리처럼, 오늘날의 의생명과학 연구자들은 지난 수십년간 별 논문 하나에서 데이터와 주장하는 논점이 점점 늘어나는 시스템에 갇혀 있다. 더우기 논문의 목표가 특정한 주장을 입증하는 것에서부터, 가능한 넓은 (임팩트가 큰!)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논문은 벽돌로 지은 단단한 집보다는 짚으로 지은 웅장한 맨선처럼 변하고 있는 셈이다.

나에게 2016년 래스커상을 받게 해준 논문들은  (Gregg Semenza 와 Peter Ratcliffe와 같이 쓴)은 약 20년 전에 출판되었다.  아마 이 논문들은 별로 신빙성 없고, 너무나 예비수준의 데이터라고 까여서 요즘에는 거의 논문으로 나가기도 힘들 것이다. 첫번째 논문, 즉 암억제 단백질이 산소 시그널링에 필요하다고 주장한 논문은 아마 요즘에는 정확한 메커니즘을 제시못했고, 동물실험이 없다고 비판받을 것이다.  (O. Iliopoulos et al. Proc. Natl Acad. Sci. USA 93,10595–10599; 1996). 단백질의 주 표적이 산소의존적 변형을 일으킨다는 다른 논문은 우리가 이 작용을 행하는 효소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의 리젝트될뻔 했다  (M. Ivan et al. Science 292, 464–468; 2001). 다행스럽게도 경험 많은 에디터가 개입해서, 이 논문이 출판되면 다른 연구그룹에 의해서 해당하는 효소의 탐색의 길을 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서 겨우 논문이 나가게 됬고, 아마 이런 행운은 요즘은 별로 없을 것이다.

왜 요즘 논문들에는  ‘과다한 주장’ 이 들어가게 될까? 한가지 요인은 연구비를 주는 기관이 해당 연구의 영향력과 이것이 어떻게 의학적인 응용에 쓰일 수 있을지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요인이라면 기술적인 진보 때문에 온라인 서플먼트로 들어갈 수 있는 데이터를 쉽게 만들 수 있기때문이다. 이 두가지 요인 때문에 리뷰어와 에디터는 논문 리뷰과정에서 논문의 주요 결론과 관련있는 파생 실험이나 논문의 임팩트를 증가시킬 수 있는 추가실험을 흔히 요청하게 된다. 그리고 논문을 일단 리젝트하고 추가실험을 해 오라고 리뷰하는 것보다는 논문을 개제승인하는데 좀 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결과를 가져오면 논문을 개제승인해 주겠다고 하는 관행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요즘처럼 연구비 사정이 빡빡할때일수록 리뷰어들이 리뷰과정에서 더 많은 추가실험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추가실험을 요구해서 라이벌의 발목을 붙잡고 우리가 빨리 논문을 내는 것은 리뷰어의 기본소양 음핫핫

옛날에는 Figure 1에 흥미있는 관찰 결과를 싣고, 다음에는  이것이 얼마나 확실한지를 입증하는 여러가지 실험데이터를 제시하는 식으로 논문이 쓰여졌다. 내가 포닥할때 쓴 논문은  전체 페이퍼는 두개의 단백질이 서로 결합해 있고, 실제 세포에서 이 결합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로 구성하면 되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아마 이렇게 어떤 단백질이 결합한다는 주장은 Figure 1 에 포함되어 있는 한두개의 패널 정도가 되버릴 것이다 (잘못하면 Supplemental Figure 1 이 되버릴 수도 있다). 아마 논문의 나머지 부분은 다양한 분야의 테크닉을 이용해서 이 주장을 강화시키고, 이 결과가 임상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결과로 절정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요즘 논문의 그 넓은 폭은 깊이를 손상시키곤 한다. 모든 개별적인 연구 방법에는 각각 함정과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의 입증된 증거자료를 실험 데이터부터 추론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요즘 분위기는 하나의 주요한 주장을 여러가지 방식으로 증명하는 논문이 아니라 각각 하나의 증거밖에 없는 여러가지 주장을 하는 논문, 아니 소설이 되가는 듯하다. 즉 요즘 나오는 논문의 제일 마지막장에 나오는 결론 부분은 너무나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한 논문에서 하는 너무 폭이 넓은 주장은 피어리뷰 시스템의 한계를 노출시킨다. 비록 나는 논문 리뷰에 매우 숙련된 고참급 리뷰어지만, 요즘 논문에서 데이터양이 증가함에 따라서 이것을 완전히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종종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해석하기 힘든 논문 데이터를 만나게 된다. 만약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논문 한번 리뷰하려고 ‘미니 안식년’ 을 내야할지도 모른다. 물론 운이 좋다면 논문 에디터가 그런 폭넓은 주장을 담은 논문을 리뷰할 서로 보완되는 전공을 가진 리뷰어를 섭외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것은 하나의 연구를 속속들이 조사하기 위해서 여러명의 전문가가 수고와 노력을 기울이는 낭비를 야기하는 셈이다. 그리고 내가 우려하는 경향은 리뷰어가 보통 그닥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Supplementary Data에 좀 약한 데이터를 숨겨넣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뜨끔

이렇게 논문의 데이터 양이 증가함으로써 야기되는  의도치 않은 결과는 결국 이런 ‘걸작 논문’ 을 내야지만 졸업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논문 출판을 통해서 새로운 지식이 전파될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늘어나고, 박사과정이나 포닥 트레이닝 과정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완전히 답하지 못한 의문이나 확실히 설명되지 못한 결과는 대개 논문에서 약점으로 지적되고, 이것은 논문 출판을 지연시킨다. 이렇게 됨으로써 결국 연구윤리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향이 있는데, 즉 논문에서 데이터를 취사선택해서, 불완전하거나 일관성이 없거나 설명되지 않는 결과를 빼버리는 나쁜 행동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논문이 자체의 한계를 인정하고 확실히 설명할 수 없는 결과를 보여줄 때 과학을 강화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지야말로 임상적인 응용을 가로막는 진정한 병목지점이다. 우리는 기초과학자, 특히 학생이나 포닥에게 그들의 결과의 가치가 임상적인 응용가능성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우리는 연구논문의 독창성, 실험디자인, 데이터의 질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검사해야 하고,  그 영향을 예측하는데 좀 더 겸손해야 한다. 결국 이런 것은 시간이 지나봐야 아는 일이다. (즉 제한효소나 효모의 세포주기 돌면이체나 CRISPR-Cas9 같이 획기적인 발견은 처음에는 다 자연에 존재하는 그저 이상한 것들로만 여겨졌다) 우리는 연구의 질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이것이 어떤 후속발견을 가능케 하느냐에 신경을 써야 되고, 대신 논문을 어떤 저널에 내야 하는지에는 좀 덜 신경써야 하겠다.

논문을 리뷰할 때 던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논문의 결론이 진짜로 사실일 것 같은가이지, 만약 논문의 결론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그게 중요할까가 아니다. 실제의 과학발전은 벽돌로 지어지며, 지푸라기로 지어지지 않는다.

파이펫 입으로 빨던 시절을 넘어서

생물학 연구의 필수품?

사실 생물학 연구라고 해도 연구하는 대상이나 주제에 따라서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사용하는 기자재나 테크닉은 크게 상이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떤 생물학 연구실이라도 거의 빠지지 않고 발견되는 물건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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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파이펫 (Micropip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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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파이펫 팁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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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원심분리 튜브 (mini centrifuge tube – 속칭 E-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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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원심분리기 (mini centrifuge)

인간, 박테리아, 식물, 선충, 초파리, 바이러스, 맘모스가 되었건 무엇을 연구하든 실제로 물 묻히며 실험하는 생물학 연구실에 아래의 기구가 보이지 않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생물학 연구실에서 사진을 찍는다 하면 으례 다음과 같은 사진이 나오기 마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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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직종처럼 30년 경력자 같진 않다

“Dye로 맨든 것이…이건 괜장히 귀하네요”

출처

그렇다면 어디에나 다 있는 마이크로파이펫과 E-tube가 생물학 연구에 등장하게 된 시점은 언제인가? 오늘은 여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한다.

그전에는 입으로 빨았다. 레알.

흔히 마이크로파이펫과 E-tube가 현대생명과학이 태동할때부터 있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생각외로 마이크로파이펫과 E-tube 는 최근의 발명품이다. 마이크로파이펫은 1950년대 말에 발명되었다.

그러면 그전에는? 그냥 입으로 빨았다. -.-;;;

아니면 파스퇴르 파이펫을 사용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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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같다고? 여기에 보면 1960년대 이전의 연구자들이 얼마나 마우스 파이펫에 의존해서 실험을 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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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의 사진으로써 혈장 (Plasma)  샘플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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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C와 같은 질병관련 샘플을 다루고 있는 곳에서도 짤없이 마우스 파이펫으로 샘플을 다루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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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도 마우스 파이펫을 이용하여 샘플을 핸들링하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의 연구실에서 입으로 파이펫을 빠는 것은 금단의 기술처럼 여겨졌지만 불과 50여년 전만 하더라도 거의 모든 샘플, 즉 아무리 병원성이 심각하건, 유독물질이건, 동위원소이건 (…) 간에 대개의 샘플은 저렇게 입으로 빠는 마우스 파이펫을 이용하여 다루는 것이 보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현재 사용하는 마이크로파이펫의 원조는 어디인가? 이것은 1950년대 말의 독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과학력은 세계제이이이일!

2차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 과학을 선도하던 독일이었으나 나치스의 도래로 많은 과학자들이 독일을 탈출하고, 2차대전의 패전으로 큰 타격을 입긴 했지만 전후 독일에서도 많은 과학적/기술적인 발전이 일어났으니, 그 중의 하나가 마이크로파이펫이 탄생한 곳도 바로 독일이다.

그렇다면 마이크로파이펫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이렇게 생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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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nrich Schnitger (1925-1964)

이 하인리히 (성은 정확히 어떻게 읽는지 모르겠다 -.-) 라는 이름의 과학자는 박사학위를 따고 마버그 대학 (University of Marburg) 에서 포닥으로 일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 사람의 아버지는 발명가였다고 하고 소년시절부터 발명을 즐겼다고 한다. 그는 학위시절부터 연구를 위한 새로운 기구를 만들기를 즐겼다고 한다. 덕후네

포닥시절 그는 매우 많은 샘플을 가지고 크로마토그래피를 하고 이것을 분석할 일이 생겼는데, 발명가의 아들답게 이 샘플을 처리하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했다. 그러다가 주사기 안에 스프링을 넣고 샘플을 채취하는 그런 기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가 만든 ‘프로토타입’ 이 여러가지 액체를 지정된 양만큼 채취하는데 유용할 것 같다고 생각한 그의 보스는 대학의 공작실에 의뢰해서 그의 프로토타입을 좀 더 견고하게 만들도록 의뢰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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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이런 것이었다. 단, 이때의 모델은 파이펫에서 볼륨을 조절할 수는 없고, 고정된 볼륨만을 취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1957년 ““Vorrichtung zum schnellen und exakten Pipettieren kleiner Flüssigkeitsmengen” (Device for the fast and exact pipetting of small liquid volumes) 라는 제목으로 독일 특허를 출원하였고 1960년 특허가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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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기술은 에펜도르프 (Eppendorf)사에 독점라이센스되어 에펜도르프사는 1961년 그의 제품을 상업화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발명자인 하인리히는 큰 부자가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는 그의 발명품이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기 전인 1964년 독일 바바리아의 호수에서 수영하다가 39세의 젊은 나이로 익사하였다.ㅠㅠ

Gilson Pipette

비록 마이크로파이펫이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상용화는 에펜도르프사에서 처음 이루어졌지만, 이 제품이 독일 외의 다른 국가, 특히 미국에서 쓰이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이 파이펫의 단점이라면 고정된 부피밖에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이 볼륨을 조절할 수 있는 파이펫은 어디서 처음 만들었나? 이것은 요즘 파이펫의 ‘Industry Standard’ 라고 여겨지는 길슨 (Gilson) 사에서 처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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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슨 사는 위스콘신대학의 의대 교수였던 워렌 길슨 (Warren Gilson) 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처음 창업되었다. 이 회사는 처음에는 여러가지 실험용 기자재를 생산하던 회사였다. 볼륨 조절이 가능한 파이펫은 1972년에 처음 길슨사에 의해서 특허가 출원되었고 1974년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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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와있는 파이펫은 거의 현재 사용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즉 우리가 지금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볼륨 조정 가능한’ 마이크로파이펫은 1974년 이후의 발명품이며, 그 이전까지의 대부분의 분자생물학/생화학 연구는 ‘입으로 빠는’ 파이펫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실감이 나는가?

왜 최초의 파이펫을 상업화한 에펜돌프사에서는 볼륨을 조정가능한 파이펫을 출시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어쨋든 파이펫을 처음 상용화한 회사는 에펜돌프이지만 볼륨을 조절가능한 파이펫을 만들어서 오늘날 마이크로피펫터의 원조로 알려지는 회사는 길슨사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E-tube와 Mini Centrifuge

에펜돌프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볼륨을 조절 가능한 파이펫을 만들지 않은 것은 그네들의 실수이지만, 대신 이들은 생명과학 실험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을 만들었다.

그것은 1.7ml 미니 원심분리 튜브, 흔히 말하는 Eppendorp Tube, ‘이-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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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까지 생화학/생명과학 실험에 사용하던 작은 용량을 담는 그릇은 볼것도 없이 유리 시험관이었다. 그러나 신속하게 샘플을 분주하는 것이 에펜돌프의 최초의 파이펫으로 가능하게 된 이후에, 여기에 어울리는 작은 용량의 튜브와 이것을 원심분리할 수 있는 탁상용 원심분리기가 개발되었다. 최초의 에펜돌프 튜브가 등장한 것은 196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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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여 에펜돌프는 ‘Microlitter System’ 이라는 이름으로 1ml 이하의 시료를 다룰 수 있는 튜브, 원심분리기, 파이펫을 세트로 팔기 시작하며 이것이 1964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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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참 당연한 일이지만, 이러한 시스템은 기존에 유리시험관에 들어 있는 시료를 마우스 파이펫으로 입으로 빨아서 실험을 하던 연구자들에게 엄청난 편의를 가져오게 된다. 특히 분자생물학의 도래와 더불어 1ml 이하의 소량의 시료를 가지고 실험을 하게 된 것의 원동력은 이러한 1ml 이하의 시료를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실험기구들의 등장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위원소 입으로 빨던 선배님들을 추모하며 (…)

이렇듯 우리가 지금 현재 실험실에서 필수품처럼 여겨지던 마이크로파이펫터, E-Tube, 탁상용 원심분리기와 같은 것들은 모두 1970년대 이후에 보편화된 것이며, 그 이전까지 이루어진 모든 분자생물학적 / 생화학적 발견들, 가령 DNA 가 유전물질이라는 발견이라든지, DNA Polymerase의 발견이라든지, 온갖 잡스러운 대사관련 효소의 발견이라든지, 심지어 유전암호의 발견과 같은 것까지 대개의 분자생물학책의 발견은 ‘동위원소를 마우스 파이펫으로 빨아가며 실험하던’ (…) 선배 연구자들의 노고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니 좀 하루 파이펫질 빡세게 했다고 ‘생물학은 왜 이리 노가다인 것인가!’ 하고 좌절하지 말라고 

참고자료 

50 Years of Eppi

Klingenberg, When a common problem meets an ingenious mind, EMBO Reports 2005

Origins of the Pipette : Why Today’s Scientists Don’t Need to Use Their Mouth

유전공학 기술의 탄생 : 혁신적인 기술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Cas9 이야기와 Deja vu

최근 바이오 관련 소식중에서 가장 핫 한 이슈라고 한다면 뭐니뭐니해도 CRISPR/Cas9 과 Genome editing 소식이다. 각종 생물의 지놈 – 유전체를 떡주무르듯 조작하는 시대가 와서 형질이 개선된 농작물이나 가축이 등장하고, 불치의 유전병을 치료할 수 있는 수단이 등장하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개선된 인간’, 즉 특정한 형질이 강화된 ‘슈퍼인간’ 의 출현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지금으로 봐서는 우물 파기도 전에 숭늉찾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간혹 눈에 띈다. 이러한 아직은 공상과학 소설의 도메인에 속하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CRISPR/Cas9 에 의한 Genome Editing 에 대한 특허분쟁 소식, 해당 기술을 가진 회사가 IPO 를 했다는 소식, 혹은 이를 이용하여 면역항암치료 (CAR-T등을 위시한) 의 효율을 높였다는 이야기 등, 이 기술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는 모르지만 수많은 화제를 낳고 있다. 응용의 면은 둘째치고라도 지금 당장으로써는 이 기술은 생명과학연구에 있어서 하나의 혁신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즉 기존의 방법으로 유전체에 대한 특별한 조작방법이 없던 대개의 생물에 대해서 유전체 시퀀스만 있으면 역유전학 (Reverse genetics)이 가능해진 상황은 기존의 모델생물에 의존한 생물학의 지형도를 바꿀 수 있는 포텐셜이 있다 하겠다.

….그런데 이런 CRISPR/Cas9 이야기를 듣다 보면 뭔가 데자뷰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 안 게신가? 아마 이런 데자뷰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연구의 연식이 꽤나 된 (…강제연식인증) 분이어야 할 것이다. 즉, 이러한 이야기들은 이미 1970년-80년대 ‘1세대 생명공학기술’ 인 ‘재조합 DNA 기술’이 등장할 때 한번씩 해 본 이야기였다! 

1세대 생명공학기술이 유전자 한두개를 분리해서 이를 가지고 깨작거리는, 지금으로 봐서는 극히 초보적인 기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중후반에 이것이 도입되었을때는 많은 이들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1975년에 미국의 아실로마에서 유전공학기술의 위험성에 대해서 여러 학계인사와 매스미디어, 윤리학자등이 모여 회의를 하였으며, 유전공학기술의 위험성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암 바이러스 등과 같은 위험한 생물에 대한 유전자 조작은 삼가자라는 모라토리움 선언이 있었다.  아실로마 컨퍼런스라는 것을 검색해 보면 나오는 국문 자료라는 게 누군가가 오래전에 올린 자료 정도라는 게 함정 또한 재조합 DNA 기술을 개발한 일원인 UCSF의 허버트 보이어와 벤처기업가 로버트 스완슨에 의해서 최초의 바이오텍 기업인 제넨테크(Genetech) 가 설립되었으며, 의학용 목적의 재조합 단백질의 생산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한편 국내에서는 한참 뒤늦은 80년대 초반부터 ‘유전공학’ 의 열풍이 일었으며 정작 유전자 조작기술과는 별로 관련도 없는 ‘포마토’ (땅에는 감자가 열리고 위에는 토마토가 열린다는) 와 같은 공상과학기술이 유전공학의 향후 대표산물로 선전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 글도 찾아보니 누군가가 오래전에 올린 자료 외에는 별게 없다는 게 함정

여튼 현재 CRISPR/Cas9 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가지 일들을 보면 1970년대 유전공학 기술의 초창기에 벌어지던 여러가지 일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1970년대 유전공학 기술이 어떻게 성립되었고, 이것의 상업화는 어떻게 일어났으며 이것의 파급효과는 어떻게 생명과학과 산업계, 그리고 사회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Cas9 과 같은 신기술이 앞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생명과학계와 관련산업게에 영향을 미칠지를 예견하는 좋은 역사적 사레가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뭔가 쓰고 싶지만 (…) 이미 아주 좋은 연구서가 그것도 국내 연구자에 의해서 출간되었기에 이 책의 내용에 대한 간략한 요약 비슷한 것을 해보도록 한다.

The Recombinant University 

Yi D 2015, The Recombinant University : Genetic Engineering and the emergence of Stanford Biotechnolog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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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재 서울대 서양사학과 과학기술학 연계전공에 소속된 이두갑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및 기타 연구논문을 기반으로 한 책으로써 1970년대 유전공학 기술의 기반 연구가 수행되었던 스탠포드 대학의 생화학과를 중심으로 한 유전공학 연구가 발생하게 된 그 기반과, 순수기초연구에 기반한 연구의 상업적 이용, 그리고 이렇게 상업화된 연구가 아카데믹 연구기반에 미치는 영향 등을 기술한 학술서이다.

흔히 1970년대 유전공학 기술의 도래는 스탠리 코헨 (Stanley Cohen) 과 허버트 보이어 (Herbert Boyer) 간의 협동 연구와 그 이후 허버트 보이어와 로버트 스완슨 (Robert A Swanson) 에 의한 제넨테크(Genetech) 의 설립 등에 촛점을 맞추어 기술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유전공학 기술의 근간과 이의 상업화는 사실 이러한 소수 과학자와 기업가에 의했다기보다는 스탠포드대학의 생화학과를 중심으로 모인 일련의 연구자 집단의 ‘커뮤니티’ 에 의한 일종의 ‘집단창작’ 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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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bert Boyer & Stanley Co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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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bert Boyer & Robert A Swanson

니네 3명이서만 유전공학 기술을 만든게 아니라 이기야\

아서 콘버그와 스탠포드 생화학과 

이 책은 총 6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 장에서는 스탠포드 생화학과를 ‘창시’ 한 DNA 복제효소의 발견자 아서 콘버그와 그가 어떻게 스탠포드대학의 생화학과를 ‘창시’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서 콘버그에 대해서는 이전에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사실 이 책의 이 부분은 한국과학사회지에 “아서 콘버그(Arthur Kornberg)의 DNA 연구 제도화와 공동체적 구조의 건설” 이라는 논문으로 요약번역되어 있으므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기 바란다. 여튼 1950년대 말 미쿡이 NIH 를 통하여 의과학쪽 연구비에 show me the money 를 치고 있을 때쯤 스탠포드대학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의대를 본교가 있는 팔로알토 캠퍼스로 이전하고 의과학을 학교 발전의 모토로 하여 학교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지잡대탈피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이런 빅픽챠의 한 그림으로써 생화학과 (Department of Biochemistry) 를 키우기로 했고, 생화학과의 학과장으로 당시 Washington University of St. Louise (흔히 ‘와슈’ 라고 하는)_에서 스타생화학자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아서 콘버그를 초빙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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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콘버그는 이미 대사관련 각종효소의 생화학자로 널리 이름이 알려져있는 상태였으며, 그가 스탠포드로 초빙오퍼를 받은 시점은 1959년 DNA Polymerase로 N모상을 받은 시점이었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에 학과장으로 임용되면서 매우 강력한 권한을 가졌는데, 그가 워싱턴대학에서 초빙한 5명의 ‘콘버그와 아이들’ (그 중 두 명은 콘버그의 포닥이었고, 세 명은 콘버그가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영입한 사람들이었다) 을 그대로 생화학과 교수로 임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자기 사람’ 을 학과에 심는 것 뿐만 아니라 스탠포드 생화학과를 일종의 ‘공동체’ 처럼 운영하였는데 여기에는 장비와 시약의 자유로운 이용, 프로젝트의 공유, 심지어 각자 수주한 연구비를 모두 통괄하여 운영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스탠포드 생화학과를 ‘DNA 연구의 메카’ 로 만들고, 그 내에서 자유로운 정보교환과 시료의 교환 등이 이루어지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이 어떻게 유전공학 기술의 개발과 이어지는가.

폴 버그 (Paul Berg) 와 진핵생물 분자생물학으로의 이전 

1960년대 말까지의 분자생물학은 주로 ‘센트럴 도그마’ 라고 불리는 DNA 복제 – 전사 – 번역에 이르는 유전정보가 어떻게 단백질로 전달되는가에 촛점을 맞추어서 연구가 되었으며, 이때 주된 모델시스템은 주로 대장균 (Escherichia coli) 와 대장균 유래의 파아지 (coliphage)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1960년대 말에 이르러서 변화를 겪게 되는데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번째는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유전암호  (Genetic Code) 가 규명되고 대개의 분자생물학자는 ‘이제 분자생물학으로 풀 수 있는 것은 대개 다 푼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다른 요인은 2차대전 이후 급증한 생명의학계의 투자에 반해서 직접적인 질병에 대한 치료법의 발견은 상대적으로 더디었으며, 이에 따른 ‘생명의학에 보다 관련있는 연구를 하시지?’ 하는 압력의 증대였다. 특히 지금은 ‘래스커 상’ (Lasker Award) 으로 이름이 남은 유명한 헬스케어 관련 로비스트이자 사회활동가인 매리 래스커 등에 의해 암연구와 같은 보다 질병에 밀접한 연구에 집중적으로 정부는 지원해야 한다는 압력이 증대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탠포드 생화학과의 ‘콘버그 사단’의 일원이었던 폴 버그 (Paul Berg) 는 자신이 그동안 연구하던 람다 파지 (Lambda Phage) 에 대한 경험을 바탕삼아 자신의 연구방법을 동물바이러스인 SV40 에 적용해 보기로 한다. 처음 그는 박테리오파지에서 사용했던 생화학적인 방법론을 동물바이러스와 동물세포 시스템에서 시험해보려고 했으나, 동물바이러스는 박테리오파지에서 사용하던 방법처럼 단백질을 순수정제하여 시험해보기에는 너무 복잡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구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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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테리오파지나 동물 바이러스나 다 비슷한거 아닌감?

폴 버그는 박테리아와 박테리오파지 연구에서 Transduction, 즉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하여 박테리아의 유전체 일부를 옮기는 과정이 박테리아 유전학 발전에 매우 기여했음을 생각하고, 동물바이러스인 SV40 에서 비슷한 연구를 수행하여 SV 40 의 유전자 구조를 파악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즉 그는 동물바이러스 SV40 을 최근에 발견된 R1 Endonuclease (요즘 EcoRI 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라는 DNA 분해효소로 자르고, 이것을 학과의 냉장고 (콘버그의 생화학과에서는 대개의 실험에 필요한 효소들을 자유롭게 공유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에 있는 각종 DNA 관련 효소로 처리하며 람다 박테리오파지와 SV40 바이러스가 합쳐진 ‘키메라’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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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비슷한 연구들이 폴 버그의 연구실에서 진행되고 있었는데,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Peter Lobban 이라는 학생은 다른 박테리오파지인 P22 의 DNA 를 자른 후, 이것을 시험관내에서 붙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들은 이렇게 ‘재조합된’ DNA를 실제로 세포안에 넣지는 않은 상태였다.

재조합 바이러스와 불거진 생명윤리 

1971년도에 폴 버그의 연구실에 SV40 을 이용하여 재조합 DNA 실험을 하려고 하던 학생은 자네트 머츠(Janet Mertz) 라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그는 스탠포드대 생화학과의 다른 랩의 포닥에게서 얻은 박테리오파지 유래의 벡터를 이용하여 SV40 과 박테리오파지 DNA 를 합치는 연구를 할 생각이었다. 그는 (1) 박테리오파지 DNA 를 SV40 에 넣어서 동물세포에서 증식하도록 하는 연구와 반대로 (2) SV40 유래의 DNA를 박테리오파지에 넣어서 박테리아내에서 증식하도록 하는 연구를 계획했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내에 있는 효소 (역시 콘버그의 냉장고) 들을 조합하여 시험관 내에서 SV40 과 박테리오파지 DNA를 서로 붙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 결과를 1972년의 콜드 스프링스 하버 (Cold Springs Harbor) 미팅에서 발표했다.

그러나 이 발표를 들은 많은 과학자들의 우려가 바로 들어왔다.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동물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대장균에 넣는다고? 만약 이 대장균이 감염되서 장내에서 암 바이러스의 전염원이 되면 어쩔 것인가?  이러한 우려는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졌고, 결국 폴 버그는 예정된 실험을 중지하고, 1973년과 1975년에 두 차례에 걸친 아실로마 컨퍼런스에서 DNA 재조합 연구의 안전성에 대한 것을 논의하게 되었다. 당연히 재조합 DNA 를 만들어서 이것을 생체내에서 복제하려는 연구는 지연될 수 밖에 없었다. 대학원생은 뭔 죄야 ㅠㅠ

스탠포드 생화학과에 끼어든 타과 사람과 타학교 연구자  

이러던 도중에 중간에 끼어든 연구자들이 있었으니 한 명은 스탠포드의 유전학과 (Department of Genetics)에 재직하던 스탠리 코헨 (Stanley N. Cohen) 이고,  다른 사람은 UCSF의 생화학자인 허버트 보이어 (Herbert Boyer) 이다. 스탠리 코헨은 플라스미드 (Plasmid) 라는 세균 유래의 작은 DNA 조각에 관심이 있었고, 이들 플라스미드가 많은 경우 항생제에 내성을 띄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허버트 보이어 (Herbert Boyer) 는 대장균에서 EcoRI 이라는 제한효소를 처음 발견하였다.이렇게 보이어의 효소는 이미 폴 버그의 연구실에서 사용되고 있던 상태였다.

둘이 모르던 상태였던 코헨과 보이어는 1972년 하와이의 학회에서 처음 만나, 그 둘의 기술을 조합하면 유전자 재조합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코헨은 항생제 내성을 가지고 있는 플라스미드를 가지고 있고, 보이어는 플라스미드를 자를 수 있는 효소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재조합 DNA 분자를 만드는 것은 가능했으나, 과연 어떻게 재조합 DNA 분자가 형질전환된 대장균, 그리고 원하는 재조합 DNA 가 들어가있는 대장균을 찾을 것인가? 이들은 항생제 내성을 마커로 이용하여, 항생제 내성을 새로 가지게 된 대장균을 이용하여 재조합 DNA 분자가 형질전환된 콜로니만을 선별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게 되었다. 사실 유전자 가지고 일해본 사람이면 항생제 저항성 마커가 든 플라스미드를 박테리아에 넣고 이것을 항생제가 들어있는 배지에서 선별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이 당연한 아이디어라는 것은 코헨과 보이어가 만나기 전에는 개념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폴 버그의 랩에서 원래 유전자 재조합 실험을 준비하던 자네트 머츠 등이 생명윤리의 벽에 부딫혀 실제로 실험을 진행하지 않던 사이에 코헨과 보이어는 앞서나가서 실제로 재조합 DNA를 살아있는 대장균에 넣게 된 것이다. 그리고 코헨과 보이어는 폴 버그의 경우와는 달리 암을 유발하는 SV40 과 같은 민감한 바이러스를 사용한한 것도 그들이 가진 큰 강점일 것이다.

그렇게 하여 1973년부터 1974년동안 총 3편의 논문이 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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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쨰 논문에서는 코헨이 자연계에서 분리한 플라스미드인 R6-5 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서 만들어진 pSC101 이라는 ‘최초의 인간 손을 거친 재조합 클로닝 벡터’ 를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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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로는 최신의 실험기술인 아가로스 젤 전기영동사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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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미드가 한 가닥으로 이어져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 찍은 전자현미경사진 -.-

이 뒤를 이어 코헨은 이종생물인 포도상구균 (Staphylococcus) 유래의 플라스미드개구리의 rRNA 가 들어간 플라스미드를 만들어 대장균에서 증식시킴으로써 최초의 재조합 DNA 를 구성하여 박테리아 내에서 증식시킬 수 있음을 보인다.

그렇게 해서 결국 코헨과 보이어는 재조합 DNA 기술의 개발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정작 재조합 DNA 기술의 시작점이 된 폴 버그와 스탠포드의 생화학자들의 공로는 뒷전에 묻히게 된 점이 있다. 만약 폴 버그가 1980년 노벨 화학상에서 재조합 DNA 기술의 공로로 상을 타지 못했더라면 스탠포드 생화학자들의 업적은 그냥 무시당했을 수도 있겠으나 그나마 노벨상이 이들에게 위안이 된 셈이다. 보이어와 코헨은 둘 다 N모상을 타지 못했다. (동명의 Stanley Cohen 이라는 사람이 198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타서 혼동을 할 수도 있는데, 이 사람은 재조합 DNA 와는 관련없는 연구를 한 사람이다)

유전자 클로닝의 모럴과 경제학 

사실 이러한 재조합 DNA 기술의 아이디어가 탄생하기 위한  중요한 여건이라면 아서 콘버그가 만들어놓은 개방적이고도 공유경제적인 학과의 환경을 들 수가 있다. 즉 학과의 냉장고에 있는 누군가의 시료 (효소) 도 자유롭게 꺼내서 사용할 수 있고, 아이디어를 자기 랩만의 비밀로 붙이지 않고 공유하고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서 DNA 재조합 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당연히 스탠포드의 생화학자들은 이렇게 하여 탄생한 코헨의 플라스미드 벡터 역시 그들의 공동창작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야기되는데, pSC101 이라는 최초의 플라스미드 벡터를 가지게 된 코헨은 이것에 대해서 일종의 독점권 같은 것을 행사하려 시도했다. 즉 생화학과가 아닌 유전학과에 소속되어 있었고, 아직 테뉴어를 받지 못하여 상대적으로 스탠포드 생화학과에 있는 사람들보다 학교에서 불안정한 위치에 놓였던 코헨은 스탠포트의 생화학자들에게 자신의 플라스미드를 자유롭게 배포하기보다는 제한을 걸려고 하였으며, 그들의 공동체간에 자유롭게 시료를 주고받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던 스탠포드의 생화학자들은 이에 크게 반발하였다.

이 책의 4챕터에서는 스탠포드 생화학과에서 초라피의 발생생물학에 최초로 분자생물학적 기법을 도입하여 초파리의 유전자를 처음으로 클로닝하려고 시도했던 David S Hogness 라는 사람이 코헨과 벌인 갈등을 서술하고 있다. 그는 스탠포드 생화학과의 일원으로써, 생화학과의 지적산물에서 탄생한 플라스미드를 당연히(!) 코헨에게 요구하였으나, 코헨은 자신의 클로닝 논문이 나오기 전까지 플라스미드를 줄 수 없다고 버텨서 갈등이 벌어졌다. 그러나 코헨은 결국 자신의 논문이 나오기 몇 주 전에 플라스미드를 제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추후에 코헨과 보이어가 소속된 스탠포드와 UCSF가 특허를 출원하고자 할때 불거진다. 스탠포드 학교 당국은 특허에 소극적이던 코헨과 보이어를 설득하여 특허 출원을 시도하였고, 특허에는 코헨과 보이어 이외의 다른 사람들의 기여는 들어가지 않음으로써, 스탠포드 생화학과의 다른 연구자들과 코헨-보이어의 갈등은 더욱 심해진다.

이와 더불어 재조합 DNA 기술을 이용하여 뭔가 부가가치를 창조할 수 없을까 하는 이야기들이 제시되고, 젊은 벤처 투자가인 로버트 스완슨은 최근에 아실로마 컨퍼런스에 참석한 사람의 명단을 A부터 차례로 연락하여 회사를 설립할 수 있을지를 타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터무니 없는 이야기로 무시하거나, 폴 버그와 같은 사람들은 국가의 연구비로 수행된 연구비로 생산된 연구결과로 사익을 취하는 것 자체를 경멸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버그 다음에 나온 보이어의 경우 스완슨에게 10분 정도의 시간을 내 주었고, 그들의 만남은 3시간으로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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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은 각자 500불씩 내서 회사를 세우기로 했는데, 그 회사는 후에 Genetech 가 된다. 코헨 지못미 B자가 C자보다 끝발이 딸려서

연구 환경의 변화 

1950년대 이후 미국의 의생명과학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던 환경도 점점 변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부터 질병에 대한 특이적인 치료법을 요구하는 사회단체들의 목소리들이 강화되기 시작하고, 이들의 로비에 의해서 1971년 닉슨 행정부는 ‘암과의 전쟁‘ 을 선포하고 미국 독립 200주년인 1976년까지 암을 정복하겠다는 (…) 야무진 계획을 세우고, 암 분야에 막대한 연구비를 쏟아붇기 시작하였다. 물론(…) 암의 실체도 정확히 모른 상태에서 쏟아붇는 연구비로 딱히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는 못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여튼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서 일종의 ‘공유경제’ 를 형성하던 스탠포드의 생화학자들의 커뮤니티 역시 변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70년대 미국 경제의 침체로 연구비 증가가 정체되고, 그리고 옆동네 (…) 의 돈벼락 (Genetech 는 1980년에 상장하고, 보이어는 일순간에 수천만불의 재산을 가진 재산가가 된다) 을 보면서 아서 콘버그를 포함한 스탠포드의 생화학자들은 국가의 연구비만을 믿고서는 안되겠으니 우리가 뭔가 해봐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여러가지 시도 중의 하나가 DNAX 라는 회사의 설립이었다. 이 회사는 상업적인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세워진 회사라기보다는 콘버그, 폴 버그, 찰스 야노프스키와 같은 스탠포드의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과학 연구’ 를 위한 지속적인 펀딩을 위한 회사였다. 즉 정부의 연구비에 의존하지 않은 연구를 수행하고, 여기서 나온 산물을 가지고 별도의 벤처를 수립하여 산업화를 한다는 구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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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X의 구상  상당히 허술해보인다 요즘 이런 거 가지고 투자못받을듯

그러나 이렇게 설립된 회사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하였다. 결국 이 회사는 설립된 지 2년도 안되어 빅파마인 schering-Plough 에 인수된다. 요즘 생각하면 구체적으로 ‘뭘 한다’ 라는 계획도 없이 그저 분자생물학적인 방법론을 이용하여 회사를 세우고 오래 가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보일 일이지만..아무튼 이러한 시도는 정부의 연구비에 독립한 자신들만의 문화를 유지시키기 위한 하나의 고육책 (결국은 실패했지만) 의 하나로써 시도된 의의 정도는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새로운 산업의 탄생

이 책은 유전자 조작 기술이라는 기존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산업 자체를 일으킨 기술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즉 기술 자체의 산업적인 성숙 과정 보다는 산업 자체를 일으킬 기술이 어떻게 기초과학적인 탐구의 욕망 속에서 ‘우연치 않게’ 나오는 과정을 매우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과정들은 적어도 생명공학 관련해서 장차 큰 산업을 형성하는 발견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고 있다. 즉 처음에는 아무런 응용과 관련된 기대 없이 기초과학을 수행하기 위해서 개발된 기술들이 점점 여러사람들의 아이디어를 통해서 성숙되고, 그 기술이 어느정도 숙성하면 외부의 경제적인 동인을 가진 투자자 등이 달려들어와서 본격적인 상업적 기술개발 단계로 전이하는..

그러나 결국 문제는 아무리 경제적인 동인을 가지고 있는 사업가가 존재하고 자본이 있어도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기초과학 연구결과가 없으면 재조합 DNA 와 같이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산업을 백지에서 만들어 내는 ‘창조경제’ 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창조경제의 역할에서 정부가 한 일은 무엇일까? 결국 이것은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국가주도의 연구개발이 시작되며 투자한 기초과학 연구의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국가가 주도하여 ‘재조합 DNA 기술’ 을 개발하라고 탑다운 연구비를 설정한 것도 아니요,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베이 에리어에 ‘재조합 DNA 기술 테크벨리’ 를 개발한 것도 아니다. 정부는 그저 어느정도의 연구비를 연구자들에게 지속적으로 공급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게 한 것 뿐이며, 이러한 연구 결과 중에서 의도치 않게 성숙된 결과물이 투자가와 기업가의 눈에 띄어서 본격적으로 산업화를 가게 된 것이다.

반면 이 당시에 미국의 국책과제로 추진되었던 목적지향적인 프로젝트였다는 “War on Cancer’가 결국은 그 당시에는 별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실질적으로 의생명과학에 퍼부은 R&D 결과가 실제 암 생존율의 상승으로 나타난 것은 약 20-30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은 되어서였다.  즉 과학에 대한 투자는 생각만큼 빨리 효과를 나타내기는 힘들다.

오히려 “War on Cancer” 가 가져다 준 가시적인 이익이라면 원래 기대했던 암에 대한 치료보다는 “War on Cancer” 에서 암의 타겟이 아닐까 하고 디립다 연구했던 레트로바이러스에 대한 축적된 연구 때문에 1980년대에 급격히 등장한 HIV/AIDS에 대한 대책이 비교적 빨리 나왔다는 것이 아닐까. 과학에 대한 투자와 그 결과는 손쉽게 예측할 수 없느니라.

아무튼 이 책은 재조합 DNA 기술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과학도, 혹은 과학사학도, 그리고 어떻게 하면 혁신적인 기술로 산업화를 하고 싶은 기업가, 그리고 어떻게 산업을 만들 새로운 기초과학의 성과가 발견되는지를 알고 싶은 많은 대중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그런데 아직 번역이 안 된 것이 흠이랄까…(그냥 한국어로 이 주제로 대중서 좀 쓰시면 안될까요? 저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