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과 꿈
잠을 자는 것은 동물인 우리에게 있어서 삶의 일부분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잠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흔히 잠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즉 꿈도 안 꾸고 빠져드는 깊은 잠과 생생한 꿈을 꾸는 잠. 보통 꿈을 꾸는 잠을 잘떄는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Rapid eye movement)고 하여 이것을 REM 수면 (REM sleeps) 이라고 하며, 그렇지 않은 깊은 잠은 Non-REM 수면이라고 칭한다.
이런 수면의 단계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것은 뇌파 (electroencephalogram : EEG)의 측정인데, 깨어 있을때, Non-REM 수면 단계일때, REM 수면일떄의 뇌파를 측정하면 다음과 같다고 한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잠알못(..) 인 관계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어쨌든 이러한 잠의 생물학적인 기전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은 많다.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잠을 못 이루어서 고생을 하고 있는가? 여튼 이런 것에 뭔가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동물이 어떻게 잠을 자게 되고, 그리고 잠의 여러단계로 넘어가는데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것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어떤 생명현상이건 현대생물학의 주된 사조인 분자생물학에서는 주로 선발-중간계투-마무리의 분업화된 방식으로 연구하는 것이 보통이며, ‘잠’ 과 같이 우리의 이해가 일천한 분야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하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유전학자일 것이다.
즉, 이리저리 다양한 행동을 보이는 돌연변이체를 많이 만들어서 원하는 형질을 보이는 넘들을 선별한 후 (가령 잠을 엄청 많이 자는 넘, 혹은 잠이 없는 넘), 이러한 돌연변이가 어떠한 유전자에 일어났는지를 밝힘으로써, 잠에 관련된 유전자들을 하나씩 밝혀나가는 것이 이러한 문제를 푸는 중요한 연구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정 유전학과 역 유전학
이러한 유전학적인 방법론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아무래도 라이프 사이클이 짦은 모델생물인 초파리, 애기장대, 효모 등과 같은 생물체이나, 그렇다고 잠을 안 자는 애기장대, 효모 등을 가지고 잠에 관련된 유전자를 찾을 수는 없는 관계로 (..) 이러한 연구는 주로 초파리를 가지고 많이 진행되었다. 가령 2005년에 돌연변이 초파리를 스크리닝하여 잠을 덜 자는 초파리 (minislip 이라는 돌연변이체로 불린)를 찾았는데, 이 돌연변이는 잘 알려진 포타슘 채널인 Shaker 라는 유전자에 존재하고 있었다. 또한 2008년에는 Sleepness 라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야생형에 비해서 80% 이상 잠을 덜 자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이 돌연변이가 있는 초파리에서는 Shaker 단백질의 발현이 적게 되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하여 주로 모델동물인 초파리를 이용하여 수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렇게 돌연변이체를 만들고, 여기서 원하는 종류의 특이한 표현형을 가진 돌연변이체를 찾은 다음, 여기서 유전자를 찾아나가는 것을 정유전학 (Forward Genetic) 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유전학적인 스크리닝은 초파리, 애기장대, 선충과 같은 라이프사이클이 이 빠르고 많은 개체를 유지하는데 용이한 모델생물에서는 쉽게 수행가능하지만, 여타 생물에서는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가령 마우스와 같은 생물에서는 이러한 정유전학적인 스크리닝보다는 다른 모델생물 혹은 셀라인등과 같은데서 검증된 유전자들을 지놈 상에서 확인한 후 이를 낙아웃하여 표현형을 보려는 연구가 더 많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방식의 연구는 돌연변이 -> 표현형 -> 유전자로 나가는 고전적인 유전학 연구에 비해서 거꾸로인 유전자 -> 표현형의 방식으로 역으로 진행되는 관계로 역 유전학 (Reverse Genetic) 이라고 한다.
그러나 역 유전학의 문제라면, 우리가 기대한 가설과는 동떨어진 표현형이 나오는 경우, 혹은 뚜렷한 표현형을 관찰하기 힘든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즉 생물의 복잡성을 잘 말해주는 것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낙아웃 마우스 만들어서 표현형이 안나와요 엉엉엉 하는 주변 동료 (혹은 본인) 를 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래도 연구에 노력을 들여서 뭔가 가시적인 결과를 얻는 것은 역유전학보다는 정 유전학 쪽이 더 용이하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꽤 존재한다 (물론 원하는 돌연변이를 얻지 못하면 어떻게 하죠? 라고 생각할 분도 있겠으나 뭐 거기까지 들어가면 너무 골치아픈 관계로 -.-) 그러나 정유전학적인 스크리닝을 아무 생물에서나 할 수는 없고..적어도 사람을 가지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정유전학적인 스크리닝을 쥐를 이용하여 수행하여 수면에 관련된 돌연변이를 찾아낸 용자들이 여기 있으니..오늘 알아볼 논문은 다음 논문이다.
Funato et al, Forwad-genetics analysis of sleep in randomly mutagenized mice, Nature 2016
쥐 8,000마리를 다오
이들은 수컷 쥐에 돌연변이원인 ENU (Ethylnitrosourea) 를 주사한 후 이 쥐의 정액을 이용하여 야생형과 인공수정을 하여 새끼를 받았다. 그리하여 dominant 한 방식으로 (즉, 아빠엄마 중 아빠에게만 돌연변이가 있어도 형질이 나오는) 유전되는 돌연변이를 찾았다. 쥐에 뇌파측정 전극을 이식한 후 약 8000마리 (..) 의 쥐에 대해서 뇌파측정을 해서 수면시간, REM 수면시간, Non-REM 수면시간을 측정하였다.
http://www.ctb.upm.es/?page_id=514
대충 이런식으로 대가리에 전극을 꽂은 쥐를 8,000 마리 대상으로 EEG를 측정했나보다. ㄷㄷㄷ
그 결과 야생형에 비해서 현저하게 더 많이 자는 잠꾸러기 마우스를 찾았는데, 이들은 이 이름을 Sleepy 라고 붙였다.
여기서 보라색은 잠꾸러기 돌연변이체 (Sleepy) 마우스의 평균 깨있는 시간이고, 파란색은 야생형의 깨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즉, 확실히 돌연변이 마우스는 더 많이 잔다!
그렇다면 이 돌연변이는 어떤 유전자의 변이로 유발된 것일까? 결국 SIK3라는 단백질 카이네이즈의 유전자의 한 염기가 바뀌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이렇게 바뀐 돌연변이에 의해서 13번 엑손이 건너뛰어져서 좀 더 짧은 단백질이 나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이 유전자만이 이러한 표현형을 가져오는 유일한 변화일까? 를 검증하기 위하여 선택적으로 해당 유전자만을 결실시키기 위해서 Zinc-Finger Nuclease (ZFN) 를 이용하여 유전자를 결실시킨 heterozygote 를 검새해 보니 역시 동일한 표현형이 나타났다.
쥐만 그런 게 아냐!
그런데 이 유전자는 초파리나 선충과 같이 기존에 수면 연구에서 사용되는 모델 생물에서도 보존되어 있는 유전자였다. 특히 이 돌연변이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엑손 13 번은 PKA에 의해서 인산화되는 세린 잔기가 존재하고 이는 초파리나 선충에까지 보존이 되어 있었다. 과연 이 유전자의 이 부분을 건드리면 다른 생물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올까?
그러합니다.
초파리에서 인산화되는 세린 잔기를 알라닌으로 변형한 유전자를 과발현하는 초파리에서는 역시 쥐와 마찬가지로 초파리의 잠이 많아진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것으로써 이 유전자는 척추동물뿐만 아니라 곤충에서도 보존되어서 잠을 조절하는 유전자임을 확인하였다.
초파리에서도 동일한 형질이 재현된다면 왜 초파리를 이용한 뮤탄트 스크리닝에서는 이 표현형은 발견되기 힘들었냐에 대해서 좀 의문이 들지만..그랬으면 쥐 8000마리 가지고 생고생 안해도 되잖아여기서는 넘어가도록 하자.
꿈이 없는 쥐
이러한 스크리닝 과정을 통해서 단순히 수면 시간뿐만 아니라 REM 수면과 Non-REM 수면의 길이도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재미있는 표현형을 가진 쥐가 발견되었는데, 이 쥐는 REM 수면의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꿈을 꿔도 상당히 짧게 (..) 단편으로 꾸는 쥐가 되겠다. 즉 꿈도 제대로 못 꾸는 쥐로써 (..) 이 돌연변이 마우스는 Dreamless 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꿈도 희망도 업서
이 돌연변이는 Nalcn 이라는 유전자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 유전자를 CRISPR/Cas9 에 의해서 동일한 치환을 만든 결과 같은 표현형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 유전자는 voltage-gated cation channel 로 추정되는 유전자로써, 문제의 돌연변이는 transmembrane helix 중간에 있는 Asparagine 을 Lysine 으로 변형하는 돌연변이였다. 야생형과 뮤턴트의 채널의 활성을 HEK293T 세포에서 발현해서 조사해 본결과 전위의 증가에 따라서 컨덕턴스가 올라가긴 하나, 돌연변이 채널이 훨씬 더 강력하게 반응함을 확인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REM 수면 기간중에서 활성이 조절되는 뉴런들이 이 채널에 의해서 조절되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가지고 야생형과 돌연변이의 뉴런을 가지고 실험해본 결과 이 돌연변이가 있는 뉴런은 좀 더 활동성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특정 종류의 뉴런들이 REM 수면을 조절한다 뭐 이런 이야기인것 같다. 뉴로바이올로지알못
결론적으로 이 연구는 기존에 상상할 수 없는 하이스루풋 스크리닝 시스템을 쥐에 적용하여 이전에 초파리 등의 모델생물에서나 수행할 수 있는 정유전학적인 스크리닝 시스템을 적용하여 돌연변이를 선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어디서 한 일인가 보니 일본 츠쿠바대학에 있는 국제연합수면의학연구조직 (International Institute for Integrative Sleep Medicine (WPI-IIIS)) 라고 한다. 이 분야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 징한 닝겐들은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를 보고 말았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