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논읽남 in Video] Inflammasome structure

이 블로그의 주 콘텐트 중 하나가 최신 (가끔은 옛날) 논문을 마치 랩세미나 하는 것처럼 읽어주는 기사, 소위 ‘논문읽어주는남자’ 일 것이다.

그런데 논문을 읽어주는것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요즘 비주얼 시대를 맞이하야, 동영상으로 프레젠테이션 비슷한 형식으로 읽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났다. 그래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오마매의 바이오톡‘ 포드캐스트에서 진행한 ‘비디오 논읽남’ 을 했었는데, 이것을 공개하도록 한다 아마 이것의 오디오 버전은 조만간 공개될 것인데, 일단 비디오 버전부터 선행 공개를..

Zhang et al., Cryo-EM structure of the activated NAIP2-NLRC4 inflammasome reveals nucleated polymerization, 2015 Science

그렇게 그들은 과학자가 된다 : 포닭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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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닭블루스 : 과학자가 직접 그린 실험실 뒷 이야기,신인철 저, 마리기획, 2016, 16,000원

과학자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과학자의 이미지는 어린 시절 읽은 위인전에 나오는 아인슈타인, 퀴리부인 등의 레전드급 과학자, 혹은 SF영화에서 전형적으로 묘사되는 그런 모습 (전공을 불문하고 하얀 가운을 입고, 혹은 칠판에 신들린듯 알수없는 수식을 써내려가거나, 아니면 양손에 연기가 나는 색색깔 플라스크를 들고 등등) 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진짜 과학자’ 들은 누구인가? 그들 역시 동료나 직장상사와의 갈등에 고민하고, 넉넉치 않은 월급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며,  몇년 동안 준비한 프로젝트가 생각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기도 하며, 정규직으로 취직하기 힘든 현실을 한탄하기도 하는 보통 생활인일 뿐이다. 더우기 우리가 위인전에서 읽은 ‘천재 레전드 과학자’ 들의 영웅적인 모습 뒤에도 이러한 생활인으로의 모습이 숨어있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대개의 대중들은 관심이 없다. 아이돌의 화장 안한 생얼에 그닥 관심이 없듯이 말이다.

그러한 과학자의 모습을 가장 현실적으로, 실감나게 알 수 있는 책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더우기 실제 현업에서 연구를 하는 과학자가 직접 쓴 책은 더욱 더 좋을 것이며 게다가 만화로 된 책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해외의 과학자가 아닌 한국인 과학자가 쓴 책이면 더더욱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러나 그전까지 이런 책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책이 나왔으니 바로 이 책, ‘포닭블루스 : 과학자가 직접 그린 실험대 뒷 이야기’ 이다.

그렇다면 ‘포닭’ 은 무엇인가? 과학자가 과학자로써 가장 생산력이 높을 시기라면 아무래도 박사학위를 마친 직후, 즉 포스트 닥터 (Post-Doctor) 과정을 하는 시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 포스트닥, 약칭 ‘포닥’ 시기는 반대로 과학자에게 있어서 가장 힘겨운 시기이기도 하다. 수년의 시기를 거쳐서 애써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오늘날 대개의 학문분야에서는 박사학위를 받고 바로 정규직 연구자로 취업하기보다는 불안정한 계약직의 신분으로 대학 혹은 연구소의 연구실에 소속되어 연구를 계속하는 과정을 이어가고, 이것을 포닥이라고 한다. 비록 박사학위를 받은 고급인력이지만 국가를 막론하고 이들의 대우는 대졸 초봉 수준의 열약한 대우인 경우가 많으며, 고용 역시 불안정한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왜 ‘포닥’ 아니 ‘포닭질’ 을 하는가? 대개의 포닥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이 독립적으로 일하는 연구자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하는 신분에 이르는 것이다. 상당수의 직장인들의 꿈이 창업을 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사업을 하는 꿈을 가지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물론 창업을 꿈꾸는 모든 직장인이 성공한 창업가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이러한 포닥 중에서 독립연구자의 꿈을 이루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많은 ‘포닭’ 들은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 믿으며 끝나지 않을 ‘포닭질’ 을  하고 있다.

저자인 신인철 한양대 교수는 국내외에서 한 10여년의 포닥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만화를 코센 (KOSEN)에 2005년부터 연재하였으며, 이 만화는 수많은 포닥 및 대학원생, 그리고 포닥 과정을 거친 수많은 연구자들을 울리고 웃겼다. 이 만화의 주인공은 저자와 마찬가지로 미국 및 국내에서 포닥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애환을 겪으며, 마침내 조(새) 교수로 ‘업글’ 되게 된다.

그러나 이 만화의 끝은 여기가 아니다!  흔히 많은 ‘포닭’ 들은 오랜 비정규 연구원 생활에 지쳐 교수가 되면 자신의 모든 고민이 해결될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하곤 한다. 그러나 바닥이 있으면 지하실이 나온다는 오랜 격언과 마찬가지로,  조교수로 업글된 우리의 주인공은 포닥 때에는 경험하지 못하던 수많은 새로운 난관, 즉 부족한 연구비, 수많은 잡무, 연구에 의욕을 보이지 않는 대학원생을 만난다. 과연 우리의 주인공은 이러한 난관을 뚫고 한 사람의 독립된 연구자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 보면 시대의 상황에 따라서 세부적인 연구 여건은 많이 변화하였지만 한 사람의 과학자로써 성장하여 의미있는 연구결과를 남기기 위해서는 지난한 노력과 고초가 따른다. 본서는 오늘의 현실에서 ‘한 사람의 과학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를 가장 현실적인 눈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머스럽게 보여주는 책으로써, 과학자 및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 그리고 과학자는 나와는 관계없는 별난 천재들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모든 일반인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Disclaimer: 아래의 글은 저자의 의뢰에 의한 추천사로 본서에 수록되었고 증정본을 받았슴다. 본 포스팅의 제목은 고레에다 히로가츠 감독의 영화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에서 힌트를 얻었슴.

‘라쇼몽’과 함께 보는 현실의 과학연구 (후편)

영화 이야기는 이제 됐고 이제 과학 이야기를 할 차례

전편에서는 영화 이야기를 했으니까 이제 과학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물론 과학사를 들추어보면 무수한 ‘라쇼몽과 같은 순간’ 이 있겠지만 그래도 ‘라쇼몽’의 나뭇꾼처럼 주변에서 직접 목격한 이야기가 좋을 것이므로 지금 이 글을  쓰는 사람이 그래도 근처에서 직접 목격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그 전에 공지 하나만.

Disclaimer : 본인은 아래에서 언급되는 모든 연구과정에 전혀 참여한 적이 없으며 이 연구에 참여한 연구자들과 현재 아무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미리 밝혀둔다. 그 바닥 뜬지 10년이 넘었거든요

어떤 생물이 시스테인을 단백질에 넣는 방법

이것은 단백질의 번역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단백질의 번역과 유전암호는 이미 1960년대에 다 규명된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사람이라면 정신차리고 읽어주길 바란다. 

일반생물학이나 분자생물학책을 펴 보면, DNA에 코딩되어 있는 유전정보가 mRNA 를 거쳐 단백질로 번역되기 위해서는 유전암호와 아미노산을 연결시키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tRNA (transfer RNA) 이며, 20가지의 ‘표준’ 아미노산에 상응하는 tRNA 는 각각에 해당하는 짝이 되는 아미노산과 연결이 되며, 이 과정을 촉매하는 것은 아미노아실-tRNA 합성효소 (Aminoacyl-tRNA synthetase)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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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뻘건놈들’ 을 이야기한다.

20종류의 아미노산과 연결되어 단백질 합성에 전달하는 tRNA 가 있으므로 이들과 아미노산의 연결을 해주는 20가지의 효소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특정한 아미노산에 대한 코돈은 여러 종류가 있긴 하지만 tRNA는 항상 코돈에 상응하는 숫자대로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에 코돈의 세번째 염기는 좀 애매하게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여튼 20종류의 아미노산을 각각 짝이 되는 tRNA 에 붙이는 20가지 효소는  특이성이 있어서 제대로 된 tRNA와 아미노산을 구분하여 붙임으로써 유전정보가 제대로 전달되도록 한다..가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기 되겠다.

물론 사람을 포함한 진핵생물의 세포질, 혹은 대장균과 같은 일부 박테리아(하필 운 좋게도 우리가 분자생물학의 주 모델 시스템으로 사용했던!) 에서는 이렇게 교과서에서 기술된 것처럼 20종의 아미노아실 tRNA 합성효소가 존재하여 단백질에 사용되는 ‘표준’ 20개의 아미노산을 붙이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수의 박테리아와 대개의 Archaea (이전에는 ‘고세균’ 이라고도 하던) 의 경우에는 아미노아실 tRNA 합성효소가 20가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아미노산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아미노산은 어떻게 단백질에 들어가게 되는가?

거의 대부분의 박테리아 (대장균 등의 극히 일부의 그람 음성세균을 제외하는) 에서 단백질에 사용되는 글루타민은 직접 글루타민이 글루타민 tRNA에 붙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단 글루탐산이 글루타민 tRNA 에 붙은 다음, 이것이 글루타민-tRNA 아미도기전달효소 (Glutamyl-tRNAGln amidotransferase) 라는 효소에 의해서 글루탐산이 글루타민으로 전환되어 글루타민이 만들어지게 된다. 반면 사람과 같은 진핵생물대장균 등의 극히 일부 세균에서는 글루타민 tRNA 합성효소 (GlnRS) 에 의해서 직접 tRNA에 붙어서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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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파라진의 경우도 상당수의 박테리아와 모든 Archaea 에서는 동일한 경로로 일단 아스파르트산이 아스파라진 tRNA에 붙은 다음에 아미노기가 전달되어서 아스파라진으로 전환되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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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전에 누군가가 연구한 주제가 바로 이거라는 것은 안비밀

그래서 상당수의 박테리아, 혹은 Archaea에는 20개의 아미노아실 tRNA 합성효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19개, 혹은 18개의 아미노아실 합성효소가 있다는 것은 이미 30년 전에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1996년, 최초의 Archaea 지놈인 Methanococcus janaschii 의 지놈이 시퀀싱되면서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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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같은 크벤양반

이 미생물의 지놈을 아무리 뒤져봐도 기존에 알려진 아미노아실 tRNA 합성효소에 상응하는 유전자가 고작 16개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즉 기존에 간접경로로 만들어지는 글루타민과 아스파라진 이외에 라이신, 시스테인을 tRNA 에 붙이는 효소에 해당하는 유전자도 지놈 내에서 찾을 수 없었다. 이들 역시 표준적인 유전암호를 사용할 텐데 어떻게 라이신과 시스테인을 단백질에 집어넣는 것일까?

제일 먼저 밝혀진 것은 Methanococcus janaschii 등의 archaea에는 기존의 라이실 tRNA 합성효소 (LysRS) 와는 전혀 틀린 LysRS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든 아미노아실 tRNA 합성효소는 크게 클래스 I 과 클래스 II 로 구분되는데, 그때까지 알려진 모든 아미노아실 tRNA 합성효소는 종에 상관없이 이 구분이 확실했다. 박테리아에서부터 진핵생물까지 발견된 모든  LysRS 는 클래스 II 로 구분될 수 있는 효소인데, Methanococcus janaschii클래스 II 가 아닌 클래스 I 로 구분될 수 있는  효소가 있었고, 이의 활성은 생화학적인 단백질 정제와 유전자 클로닝, 그리고 대장균에서의 complementation 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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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생물은 Class II의 LysRS를 갖는데, 이 미생물만 ‘클래스’가 틀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어떻게 이 미생물이 시스테인을 합성할 것인가를 밝히는 것이다. 그리하여 1990년대 후반에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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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잡을 뛰는 ProRS?

결국 미생물의 전체 지놈 시퀀스가 밝혀졌음에도 시스테인을 단백질에 넣는 경로를 알아내는 데는 별로 보탬이 되지 않았으므로, 이를 풀기 위해서 고전적인 생화학 방법론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즉  세포를 왕창 키운 후,  이걸 파쇄해서 시스테인을 tRNA 에 붙이는 단백질 활성을 따라가서 효소를 정제했다. 그리고 이렇게 정제한 효소의 단백질 서열을 확인하여 시스테인을 tRNA 에 붙이는 미지의 단백질을 정제한 후, 이의 아미노산 서열을 확인해 봤더니….

프롤린을 tRNA에 붙이는 프롤린-tRNA 합성효소 ( ProRS) 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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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테인을 붙이는 활성이 프롤린을 붙이는 효소와 동일하였다!

즉, 원래 프롤린을 tRNA(Pro) 에 붙인다고 알려진 효소가 , 시스테인도 tRNA(Cys) 에 붙인다는 결과이므로 각각 고유한 tRNA 에 특이적인 효소가 있다는 종래의 패러다임을 깨는 획기적인 결과였다. 이렇게 하여 논문은 2000년 사이언스에 등장된다. 해당 논문을 낸 포닥은 고국에 신나서 교수자리를 잡아서 갔고..다른 그룹의 연구자들에 의해서도 보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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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연 어떻게 하나의 활성자리를 가지는 단백질(일부 진핵생물의 경우처럼  두 개의 다른 효소가 하나의 폴리펩타이드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다)이 두 개의 다른 tRNA 합성효소의 활성을 가지게 되는지, 특히 tRNA 합성효소와 같이 기질 특이성이 중요한 효소에서 이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전혀 다른 CysRS가 존재한다?

그런데 바로 다음 해에 tRNA 업계에서 해당 그룹과 쌍벽을 이루는 (이라고 쓰고 최대의 앙숙이라고 읽는) 다른 그룹에서 이런 논문을 낸다. 내용의 요지는 기존의 클래스 I 및 클래스 II와는 전혀 상동성이 없는 단백질이 CysRS의 활성을 가지며, 아마도 ProRS 가 CysRS 의 투잡을 뛴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추정하는 (그러나 이전의 연구 결과를 반증하는 결과는 없는) 일종의 반박 논문이었다.  그러나 이 결과는 그 후 타 연구실, 혹은 이 연구를 수행한 연구실에서도 일체 재현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며, 이 단백질에 대한 후속 연구는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 이 단백질을 hhpred 와 같은 것으로 구조예측을 해보면 뭔가를 분해하는 효소처럼 나오는데, 현재까지 알려진 tRNA synthetase와는 전혀 닮지도 않았다. 그럼 뭐하는 단백질인데. 낸들 아나slide1

이 단백질은 시스테인을 tRNA에 붙이긴 붙이는데, 어디다 붙이는 것인가?

그래서 이전의 ProRS의 실험결과를 재현해서 보다 확실한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한 후속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해당 연구를 이어서 진행하던 연구자 (대학원생) 가 매우 놀라운 결과를 발견하였다.

ProRS가 tRNA에 시스테인을 붙이는 것은 맞지만, tRNA(Cys) 에 시스테인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프롤린이 붙어야 할 tRNA(Pro) 에 시스테인을 (잘못) 붙이는, 즉 Cys-tRNA(Pro) 를 형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Methanococcus janaschii 의 ProRS 뿐만 아니라 대장균을 포함한 대부분의 세균의 ProRS는 tRNA(Pro) 에 Cys 를 붙이는 (Mischarging) 활성이 어느정도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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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2000년도 사이언스 논문에서는 기질로 전체 tRNA를 사용하였으므로 tRNA(Pro) 에 붙는지, tRNA(Cys)에 붙는지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이 효소는 순수정제한 tRNA(Pro) 를 상대로는 Cys를 붙이지만 tRNA(Cys) 를 붙이지 못했다. 왜 제대로 된 tRNA를 줘도 아미노산을 붙이지를 못하니. 원래 못붙이는거였어 미안 쏘리

그렇다면 tRNA(Pro) 에 잘못 들어가는 Cys는 어떻게 처리되는가? 이는 별도의 단백질인 ybaK라는 단백질에 의해서 제거된다는 것이 차후에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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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결과는 시험관 속에서 반응하는 효소의 ‘에러’ 에 해당하는 이야기로써, 실제로 단백질 내에 시스테인을 넣는 기전과는 별 상관이 없는 발견인 셈이다. 즉 기존의 결과는  시험관 내에서의  결과를 보다 엄밀한 검증 없이 그대로 믿어버린 데서 나온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2000년도의 사이언스 논문에도 이 활성이 암시하는 결과가 있었다. 즉, 방사능 동위원소로 표지된 시스테인과 함께 동위원소가 표지가 되지 않은 과량의 프롤린을 반응액 속에 넣으면 더 이상 tRNA에 아미노산이 붙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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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백질이 tRNA(Pro) 에 시스테인을 다는 성질을 가진다는 것을 안 시점에서는 이 결과는 과량의 프롤린을 넣으면 Cys-tRNA(Pro) 대신에 Pro-tRNA(Pro) 를 만들기 때문에, 동위원소로 표지된 Cys-tRNA(Pro) 가 나오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논문을 낼 당시에는 이 결과를 ‘프롤린과 시스테인의 효소 활성위치가 같고, 프롤린이 많이 존재하는 경우 tRNA(Pro) 에 Pro 를 붙이고, 시스테인이 많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tRNA(Cys) 에 Cys를 붙이는 이 단백질의 성질을 보여주는 것이다’ 라고 해석을 했다. 과연 이 당시에는 정말로 이 효소가 tRNA(Pro)에 Cys를 (잘못) 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지금으로써는 알 도리가 없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그렇다면 다른 그룹에서 제시된 클래스 I도 아니고 클래스 II도 아닌 ‘CysRS’ 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이들을 포함하여 대장균 뮤턴트에서 in vivo 실험이 수행되었으나  ProRS 역시 대장균의 CysRS 돌연변이주를 회복하지 못하였고, 이전에 다른 곳에서 보고된 ‘클래스 III CysRS’ 역시 in vivo 에서 활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몇 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의문, 즉 Methanococcus  janaschii 에서 어떻게 시스테인을 단백질에 넣느냐에 대한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였다. 즉 수년간의 연구를 진행했지만 결국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는 상황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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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또 다른 대학원생은 처음부터 Methanococcus janaschii 에서 ‘진짜로’ tRNA(Cys)에 시스테인을 붙이는 활성을 찾기 위한 실험에 들어갔다. 다들 쟤 언제 졸업하냐고 걱정했었지. 헛된 걱정이 되었지만

한 스탭이 아닌 두 스텝

일단 기존의 효소 활성을 검출하는 검출법은 tRNA(Pro) 에 시스테인을 (잘못)붙이는 것과 tRNA(Cys)에 시스테인을 (제대로) 붙이는 활성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를 구분하고자, 아미노산이 붙은 tRNA와 그렇지 않은 tRNA 를 전기영동을 통해서 분리하고, tRNA (Cys) 만을 노던 블랏으로 검출해내는 검출방법을 세팅하고, 효소활성을 측정하였다.

이 결과 세포를 파쇄한 후 초원심분리를 돌려서 얻은 조효소액에서는 tRNA(Cys)에 시스테인을 붙이는 활성이 검출되었다. 그러나 이 조효소액을 후속 정제 (이온교환크로마토그래피) 를 하기 위해서 투석 (Dialysis) 를 수행하자 효소 활성이 없어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결국 효소 활성에 필요한 ‘보조인자’ 가 투석에 의해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알았고, 우여곡절끝에 이것이 Phosphoserine Sodium Sulfide 라는 것을 알았다.

결국 시스테인 합성의 실체는, 처음에 tRNA(Cys)에 인산화세린(Phoshoserine, Sep) 을 결합을 시키는 효소 (SepRS) 에 의해서 Sep-tRNA(Cys) 가 생성되고, 별도의 효소(SepCysRS) 에 의해서 인산화세린이 시스테인으로 전환되는 2단계의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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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화세린을 tRNA에 붙이는  SepRS 로 확인된 효소가 어떤 단백질인지 보니  이전에 지놈 시퀀싱이 된 다음  단백질 상동성에 의한 어노테이션 (BLAST search 등에 의한) 으로는 페닐알라닌을 붙이는 PheRS 와 유사하다고 하여 두번째의 PheRS 로 어노테이션 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백질을 발현하여 생화학적 활성을 조사해 본 결과 페닐알라닌을 tRNA 에 붙이는 활성은 없어서, 그냥 pseudogene 인가부다 하고 방치되어 있었던 유전자였다. 즉 그렇게도 찾아 헤메던 유전자는 같은 랩의 냉장고에 몇년 전에 클로닝되서 (정체를 확인하지 못한 채) 있던 클론이었다는 것이다. 즉 시퀀스 상동성에 의한 단백질의 어노테이션을 너무 신봉하지 말라는 좋은 예가 바로 여기서 나온다 (..)

결국 해당하는 합성 경로는 거의 10여년의 세월을 거쳐, 많은 삽질과 혼선끝에 밝혀진 셈이다.

그래서 이 연구 결과는 이 스토리에 관련되어 발표된 무려 3번째 (..) S or N 논문으로 2005년 사이언스에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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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했으면 하나의 CNS 논문으로 끝날 것이 3개가 된 기적(?)

의도하지 않은 응용을 낳은 연구

이렇게 그동안의 의문이 풀리고 나니, 그 다음의 연구들은 그렇게 무리없이 흘러갔다. 여기에 관련된 두 개의 단백질, 즉 SepRS와 SepCysRS 의 구조가 결정되었다.

그리고 인산화세린을 tRNA(Cys) 에 붙이는 SepRS 를 이용하여 중요한 응용이 시도된다. 즉, 특이적인 위치에 인산화된 세린을 넣을 수 있는 단백질 발현시스템이 개발된 것이다. 즉 tRNA와 SepRS, 그리고 aa-tRNA를 전달해주는 연장인자 (Elongation Factor) 인 EF-Tu 를 뜯어고쳐서, 일정한 위치에 스톱코돈을 넣고 이 위치에 인산화된 세린을 넣을 수 있는 단백질 발현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최근에는 이렇게 단백질 안에 삽입된 인산화세린을 화학적으로 변형시켜 임의의 변형된 아미노산을 넣을 수 있는 시스템도 개발되었다.

여튼 이러한 응용 자체는 해당 연구가 초창기에 있던 시절, 즉 어떤 생물이 시스테인을 어떻게 단백질에 넣을까와 같은 의문을 가질 때는 미처 상상하기 힘들던 일이다. 결국 기초과학의 발전이 응용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수많은 예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아무튼 숲 속에서 헤메던 거의 1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비밀이 걷혀지기 시작한 후에는 빠르게 비교적 확고한 사실로 규명되어 나가게 되었다.

숲 속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가져야 할 태도

이렇게 미궁 속에서 서로 엇갈린 정보들로 혼란스러웠던 발견이 점점 진실에 가까워지는 하나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기술한 과정은 사실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고, 우리가 보는 교과서의 대부분의 ‘과학적 상식’ 들이 발견된 과정에서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즉, 과학 연구의 초창기에는 누구나 ‘라쇼몽’ 의 등장인물들이 겪었던 것과 같은 ‘라쇼몽 효과’ 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의 시행착오나 잘못된 결론은 어쩌면 과학적 발전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겪어야 할 통과의례일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라쇼몽 상태’ 에서 비교적 ‘과학적 진실’에 가까운 상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물론 위에서 예를 든 케이스는  비교적 단순한 생화학반응으로 설명되는 것이지만 이보다 훨씬 복잡한 시스템에서 이루어지는 연구의 경우, 좀처럼 쉽게 ‘라쇼몽 상태’ 를 벗어나기 힘든 경우도 많이 있다. 어떤 경우에서는 현재의 연구 방법론과 전혀 다른 연구 방법론이 나와 연구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다음에야 가능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기술적인 장벽이 아닌, 현존하는 기술에 의해서 사실에 대한 비교적 제대로 된 사실에 근접한 이해가 가능한  상황에서 ‘미궁’ 을 빠져나가려면 우선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기존의 결과와 이론에 집착하지 않는 생각 : 사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만 하더라도 20개의 아미노아실 tRNA 합성효소는 특이성을 가지고 있으며, 결단코 남의 tRNA에 엉뚱한 아미노산을 달지 않는다는 것이 일종의 패러다임처럼 생각되어 왔었다. 그러나 프롤린을 tRNA(Pro)에 달아두는 것으로 생각했던 ProRS가 시스테인과 같은 다른 아미노산도 자신의 tRNA에 달 수 있는 생화학적인 활성이 있다는 것은 여기서 처음 밝혀진 결과이다. 물론 이렇게 아미노산이 잘못 달린 tRNA는 별도의 교정효소에 의해서 교정되는 것이 후에 알려졌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tRNA에 시스테인을 달아버리는 활성은 tRNA(Cys)  에 결합시키는 활성이라고 전제해 버렸고, 이러한 전제는 차후의 연구에 큰 혼선을 가져왔다. 즉, 기존에 구축된 이론, 특히 도그마화되어 버린 ‘법칙’ 은 그 법칙 외부의 무엇이 발견될때 진보를 방해하는 주된 요소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좋은 계기라고 할 수 있다.

2. 특별한 주장은 특별한 증거를 필요로 함 :  프롤린을 tRNA(Pro) 에 결합시킬 수 있는 효소가 시스테인을 tRNA (tRNA-Pro 인지 tRNA-Cys인지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에 결합한다는 생화학적인 결과만을 가지고 너무 빠르게 두 가지 서로 다른 활성을 하나의 활성자리가 가진 효소가 겸할 수 있다는 매우 특별한이라고 쓰고 무리수라고 읽는주장을 했고, 이것을 정확히 검증하지도 않은채 결과를 발표하는 바람에 후속의 연구에서 큰 혼선을 낳았다. 적어도 기존의 ‘법칙’ 에서 발견되지 않은 예외적인 현상을 발견하여 이것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이를 검증하는 예외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하지 않았을까?

3. 자기 자신과 자신의 결과 역시 의심 : 많은 연구자들은 이것이 자신의 손에 의해서 직접 수행된 결과, 혹은 자신의 랩에서 수행된 결과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는 선입견, 아니 ‘본능’ 과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실질적으로 자신이 관찰한 것을 믿을 것이냐, 남이 관찰한 것을 믿을 것이냐와 같은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의 관찰 대신 타인의 관찰을 더욱 신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한다고 해도, 잠시 타인의 시선에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특히 미궁에 빠진 순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자신이 그렇지 못하다면 제 3자의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자.

4.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 모든 과학 연구과정은 실수의 연속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내가, 혹은 나의 랩에서 낸 이전의 결과라도 충분히 과정적인 실수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며, 데이터의 해석이 잘못되었을수도 있다. 틀린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아집이 진정한 과학 발전을 가로막는다.

5. 이런 조건이 모두 갖추어졌어도 당분간 미궁을 못 빠져나갈 수 있다고 인정하는 태도 (..) 그래서 과학은 어렵다 (…) 그런 경우에는 잠시 이 문제를 놓고 다른 문제를 생각해 본다. 지금 풀 수 없는 미궁에 빠진 문제라도 기술의 발전, 혹은 우연한 제 3자의 발견으로 실마리가 생길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지금 안 풀리는 문제에 집착해봐야 그 문제를 푸는 데 보탬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영화 라쇼몽으로 다시 돌아가자. ‘라쇼몽’ 은 헤이안 시대에 시체를 내다버리는 장소이고, 거기에 누군가가 어린아이를 유기했다. 나무꾼조차 정직하지 않은 면이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되자, 승려는 아이를 데려가려는 나무꾼을 제지한다. 그러나 나무꾼은 여섯 아이가 이미 있는데 아이 한 둘이 더 있는 것이 무슨 상관이겠냐며 자신이 키운다고 한다. 승려는 여기에 감동하여 “인간에 대한 믿음을 지킬 수 있게 하여 감사하다” 고 하며 나무꾼에게 아기를 내주고 영화는 끝난다.

즉, 인간은 과연 자신의 이익을 초월하여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 영화지만 결국 인간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은 감독의 시선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결국 과학도 그러하다. 우리가 아무리 과학의 진실을 탐구하고자 한다고 해도, 우리가 접하는 개별적인 관찰은 좀처럼 객관적이고 누구나 다 믿을 수 있는 과학적 진실의 형태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런 본질적으로 어려운 과학 연구가 그나마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인간에 대한 믿음,. 과학적 진실을 밝힐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의도적이고 교묘한 연구부정 행위가 이러한 ‘진실 추구’ 활동에 얼마나 큰 해악을 가져오는지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끝으로 참으로 어리숙한 야매 과학자였던 나에게 과학의 어둡고, 밝으면서도 리얼한 여러 면을 동시에 구경시켜준 그 당시의 ‘그때 그 친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로써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근데 지금도 야매

근데 님은 이때 이 연구 안하시고 뭐 하셨어요? 저는 영화봤…’라쇼몽’ 이랄까, ‘7인의 사무라이’, ‘동경이야기’ 등등..

‘라쇼몽’ 과 함께 보는 현실의 과학연구(전편)

스토리가 있는 연구의 함정

과학자가 아닌 사람, 혹은 경력이 일천한 과학도의 경우 과학논문을 ‘객관적으로 입증된 과학적 관찰 혹은 사실에의 기술’ 과 같이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널에 지금 나오는 과학논문만으로는 그것이 ‘확실히 입증된 사실’ 이 되는 것도 아니고, 결론을 배제한 단순한 ‘관찰’ 로만 논문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은 대개의 과학논문은 ‘자신이 입증하고자 하는 명제에 대한 주장 및 이것을 입증하기 위한 근거의 제시‘ 이다. 이러한 개별적인 ‘주장’ 들이 모이고, 어떤 경우는 서로 상이한 주장들이 대립하다가 반박되기도 하고, 수정되기도 하면서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서 어떤 의문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과학적 지식이 하나씩 씌여져 나간다.

그러나 프로페셔널 과학자가 아닌 대개의 사람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정제되서 과학적 지식의 엑기스화되어 있는 것들을 교과서로 접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교과서에 적혀 있는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탄생되는지에 대한 과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뭐 대개는 이런 과정을 잘 모른다고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자가 아니니까!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걸음을 처음 떼는 학생들, 특히 대학원에 처음 들어온 학생들이다. 즉 열심히 교과서를 읽고 교과서에 소개된 과학지식과 발견의 이야기를 읽고 과학에 흥미를 느끼고  과학자가 되는 첫 길을 걸으며 대개 느끼는 것은 ‘책에서 읽은 과학과 직접 하는 과학은 같지 않다‘ 라는 것이다! 책에서는 과학적 발견을 위해서는 기존의 연구결과와 관찰을 통해서 가설을 성립하고,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실험을 해서, 결론을 내고, 논문을 빵 내고 유명한 과학자가 된다고 들었다! 그리고 저널클럽에서 읽는 그런 논문들도 다 그런 식으로 씌여져 있다.  그러나 나의 실험은 왜 교수님이 처음 이야기한 그대로 안 되는가!

오늘 할 이야기는 이런 것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헐리우드 스타일의 영화와 논문

영화 이야기를 했으니 계속 영화 이야기를 해보겠지만, 대개의 흥행 영화들은 그리 복잡한 구도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액션 영화라면 우리가 감정이입할 히어로 (혹은 히로인) 이 있으며, 이들과 대립하는 악당(매드사이언티스트라든가 -.-)이 존재한다. 히어로를 도와주는 조역들도 존재하며, 그중에는 영화 중반에 안타깝게 죽어주어야만 하는 희생양도 존재한다. 스토리는 처음에 몇가지의 단서가 튀어나오면서 점점 긴장이 고조되다가 클라이막스를 향해서 최고 절정에 달하며, 긴장이 해소되고 우리의 히어로는 지구 정복을 획책하는 나쁜 매드사이언티스트를 물리치고 지구를 구한다. 그러나 요즘 성공적인 영화는 속편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 완전히 모든 긴장이 해소되기보다는 뭔가 뒤끝을 남기는 편이다.

이와 비슷하게 요즘 유명 저널에 실리는 논문도 비슷한 식의 구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가령 처음의 논문의 서론에서는 연구의 배경을 소개한 다음, 무엇이 현재 안 풀린 문제인지를 제시한다. 그리고 결과의  Figure 1 에서는 연구의 전제가 되는 첫 데이터를 통해서 주요 ‘등장인물’ (유전자나 단백질일수도 있고, 특정한 표현형을 가지는 뮤턴트일수도 있다)를 소개한 다음, Figure 2, Figure 3 에서는  이들의 정체를 규명하여 이들이 어떻게 ‘사건’ 에 연루되었는지를 소개한다. Figure 4, Figure 5 에서는 ‘범인’ 이 어떻게 범인인지를 입증하는 여러 증인들이 나와서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것을 서술하고, Figure 6 에서는 그렇게 해서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소위 ‘메커니즘’ 을 보여주는 그림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결론을 제시한다. 아직 안 풀린 미스테리에 대해서는 ‘후속편’ 이 될 논문에서 답을 해 줄 것을 약속하고..이렇게 해서 블록버스터 논문을 마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헐리우드 영화 스타일의 잘 짜여진 스토리를 가진 논문’ 은 실제 연구 수행시에도 그렇게 잘 짜여진 가설에 의거하여 빈틈없이 수행된 것일까? 조금 연구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즉 연구를 시작할 때의 가설은 실제 논문에 씌여진 것과는 전혀 딴판일 수도 있고, 현재 논문에서 원래의 결론을 보조하기 위해 수행된 것처럼 씌여진 실험 데이터는 실제로 다른 쪽 방향으로 나가던 연구가 현재의 방향으로 나가게 된 계기가 된 데이터일수도 있는 것이며, 연구의 전제가 되어 이를 바탕으로 연구가 진행된 것처럼 서술된 지노믹스 데이터는 개별 유전자에 대한 실험이 수행되어 결론이 이미 도출된 상황에서 연구의 합목적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추가된 데이터일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실제의 많은 논문은 연구과정의 시간대별로의 기술이 아닌, 일종의 ‘수정주의적 역사관’ (Revisionist History)과 비슷한 방식으로 씌여진다는 이야기이다.

상당수의 연구는 원래 기획된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서, 예기치 않은 발견이 생기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설명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들이 발견된 이후에, 원래의 연구를 시작할 때와는 크게 틀린 ‘새로운 가설’ 이 제시되고, 여기서부터 다시 논문이 씌여져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승전결’ 이 말끔하고 ‘스토리가 명확한’ 논문이 되는 경우가 많다.즉, 대개의 연구자는 아직 확정된 대본이 없이 촬영되는 영화, 즉 촬영 현장에서 씌여지고 수정되는 쪽대본에 의해서 촬영되는 영화 속의 연기자와 비슷한 상황이라고나 할까. 다만 연구자는 연기자와는 달리 이 대본이 쓰여지는 과정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경험이 많은 연구자라면  스토리가 잘 보이지 않는 마구잡이의 필름 무더기를 가지고도 기승전결이 짜여져 있는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영화감독처럼 단편적인 증거에서 ‘이야기’ 를 찾아서 ‘이야기가 되는’ 논문의 스토리를 엮어나가며 앞으로의 연구를 진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역량이 뛰어난 연구자는 훌륭한 영화감독처럼 연기자나 다른 스탭들은 짐작하지 못하는 필름 더미에서 이것을 잘 편집하여 기승전결이 구별되는 영화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훌륭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력이 부족한 연구자, 또는 연구를 처음 시작하는 연구자라면 현실 연구의 복잡성에 좌절하거나 길을 잃기가 쉽다. 물론 여기서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 지도교수의 존재의의겠지만, 세상 일이 언제나 다 이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즉, 논문을 작성할 때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와 같은 단선적인 스토리’로 쓰는 것은 분명 논문을 읽는 독자들을 위한 유효한 방법론이긴 하지만, 실제 과학을 수행하는 과학도에게 있어서는 결코 현실 연구상황에 근접한 방법은 아닐수도 있다. 즉, 현실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언제나 깔끔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으며, 생각보다 좀 더 복잡하고 골치아픈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 웃기는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러니까 누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만 보래? 그러니 다양한 영화를 보라!

뭐래는거야 이 인간이라고 생각하셨을지 모르겠는데 뭔 말인지 궁금하시면 빨리 다음 내용으로 스크롤

라쇼몽 (羅生門)

본 블로그는 분명히 과학덕후를 위한 블로그이나 본 블로그의 관리자는 과학덕후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외에도 다른 장르의 덕질을 많이 하고 있는데….그 중의 하나가 영화 감상이고, 특히 일본 고전 영화를 꽤 열심히 본다. 비단 일본 고전영화 뿐만 아니라 영화 쫌 본다고 잘난체 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영화 중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黒澤明 감독이 1951년에 제작한 ‘라쇼몽’ 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안 본 분들을 위해서 간략히 영화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이 영화는 제작된 지 50년이 넘은 영화로써 저작권이 만료되어 합법적으로 유튜브에서 시청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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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나올 것 같은 다 쓰러진 ‘라쇼몽’. 라소몽은 원래 시체 갖다버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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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사건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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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인 나무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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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하러 숲속 깊이 들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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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찔려 죽은 시체를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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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에 신고하니,

결국 칼에 찔려 죽은 사무라이의 시체, 겁탈을 당한 사무라이의 부인, 용의자로 추측되는 산적이 관가에 끌려가서, 각각의 증언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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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혀온 산적 (미후네 토시로) 의 증언

내가 사무라이를 죽인 것은 사실이야! 그렇지만 이것은 정당한 결투를 통해서 죽인 이라고! 나는 사무라이와 아내를 보고서 아내에게 혹심을 품었다. 나는 보물을 숨겨둔 장소를 미끼로 사무라이를 데려온 다음 그를 습격해서 포박한다. 그리고 사무라이의 아내를 데려온 , 사무라이 앞에서 그의 아내를 겁간했지. 그러자 그의 아내는 사무라이와 도둑 하나는 죽어야 된다고 싸움을 부추겼고, 나는 사무라이와 결투해서 정정당당하게 이겼다. 그런데 여자는 도망갔을 뿐이지.

사무라이의 아내(쿄 마치코)의 증언

제가 그 도둑에게 겁간을 당한 것은 사실이예요. 그런데 그 후 도둑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나를 보는 눈이 심상치 않더군요.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그 눈빛! 저는 차라리 남편에게 저를 죽여달라며 단도를 주었지만 계속 노려보기만 하더군요! 결국 저는 이성을 잃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단도가 남편의 가슴에 꽂혀 있더군요. 이후에 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영매를 통해서 증언한 사무라이(모리 마사유키)의 유령 :
도둑이 아내를 겁간한 다음, 도둑은 아내에게 자기와 같이 살자고 꼬셨다. 그러자 아내는 도둑을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나한테도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그 눈길로! 아내는 도둑에게 남편을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도둑은 아내의 말을 듣지 않았고, 아내는 도망쳤다. 그리고 도둑은 나를 풀어줬지. 여기서 나는 도둑을 용서하기로 했어. 나는 아내가 배신했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결국 아내가 가지고 있던 단도로 자결했다.


나무꾼 (시무라 다카시) 의 증언 2탄.
사실 나무꾼은 시체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숨어서 상황을 보고 있었다. 도적은 아내를 겁탈한 다음 자신과 함께 달아나자고 여자를 꼬셨다, 그러나 여자는 사무라이를 풀어주었다. 도둑은 이것이 둘이서 싸워서 이긴 사람이 아내를 차지하라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무라이는 이런 여자를 위해서 목숨걸기는 싫고, 내가 왜 싸워야 한다고 하며 아내보고 자결하라고 한다. 그걸 보고 도둑 역시 여자에게 정이 떨어졌는지 여자를 포기한다. 여자는 빡쳐서 사무라이와 도둑에게 싸움을 붙인다! 남자답게 싸움을 해서 이긴 사람이 자신을 차지하라고! 그렇게 해서 억지로 하는 사무라이와 도둑의 싸움은 도둑이 말한 정정당당한 싸움은 커녕 매우 추잡한 개싸움이 된다. 그러다가 휘두른 도둑의 칼에 사무라이는 죽었고, 여자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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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얼핏 이 사건의 제 3자인 나무꾼의 이야기가  객관적인 진실인 양 받아들여질 것 같지만 여자가 자결을 할 때 쓰려던 값비싼 단도는 어디 갔을까? 결국 나무꾼은 그 단도를 훔친 사건의 관찰자가 아닌 사건의 한 귀퉁이에 연결된 ‘당사자’ 의 일원이며, 그 역시 완벽한 관찰자가 아닌 사건의 당사자 중의 1인이다. 따라서 그의 증언 역시 완벽한 제 3자가 아니므로 그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왜곡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결국 여기서 확실한 팩트는 다음과 같다.

(1) 사무라이는 단도에 심장을 찔려 죽었다.

(2) 도둑은 사무라이의 부인을 겁간한다

(3) 단도는 사라졌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것은 불확실하다.

(1) 사무라이를 실제로 살해한 사람은 누구인가?

(2) 사무라이와 도둑은 어떤 과정에서 싸우게 되었는가?

(3) 사무라이와 그 부인은 누가 누구를 배신하였는가?

결국 이 영화는 절대적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끝난다. 즉 이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는 자신의 입장에 따라서 해석된 ‘진실’ 을 이야기하지만 그 ‘진실’ 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과연 그들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기에 ‘거짓’ 을 이야기하는가? 어쩌면 그들이 말하는 그들의 ‘진실’ 은 해당의 사건의 이해당사자로써 가질 수 밖에 없는 편견에 의해서 왜곡되어서 관찰된 그들 나름만의 ‘진실’ 이며, 인간은 원래 그러한 존재라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즉, 자신과 연관되어 있는 사실을 자신의 시각으로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것은  개인의 윤리적 문제 차원이 아닌 인간 본연의 문제라는 것이 감독의 시선이다.

근데 이것이 과학 연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우리는 과학을 하다 보면 종종 라쇼몽의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자주 처하기 때문이다. 과연 과학연구의 논문에서 말하는 것은 얼마나 ‘객관적인 진실’ 인가, 아니면 라쇼몽의 주인공들이 각자 진술하는 ‘진실’ 인가?

나는 지금 실험실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영화 촬영장에 있는 것일까.

연구를 하다 보면 종종 특정한 결과에 대해서 다른 설명을 제시하는 논문이 종종 나올 때가 있다. 때로는 과거의 연구결과를 부정하는 논문이 나오며, 이것을 또 다시 반박하는 논문이 이어지며 긴 논쟁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특정한 연구의 한계가 드러나서 어떤 쪽의 결론이 옳은 것으로 판명되기도 하는 반면, 두 개의 서로 대립된 설명이 사실에 부합되지 않고, 제 3의 설명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여러 개의 설명이 각각 해당하는 부분에서는 맞지만, 전체적으로는 잘 부합이 안 되는 경우도 종종 존재한다. 이것은 완전히 ‘라쇼몽’ 과 같은 상황이 아닌가!

이것은 연구가 어느정도 정돈된 결론으로 정리되어 논문으로 나왔을때의 이야기이다. 아직 논문형태로 정리가 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의 연구의 경우 이전의 실험 결과와 부합되지 않는 결과가 나오는 것은 연구에서 일상다반사이다. 과연 이것이 현재 실험과정에서의 실수인가? (실험자가 게다가 실험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쪼랩 연구자라면?)  아니면 과거의 실험에서 문제가 있었나? 어디서인가 문제가 있었다면 과연 무엇이 그런 오차를 내게 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원래 현재의 측정한계로는 오락가락하는 결과가 나와야 정상인걸까?  동일한 실험이 아닌 A와 B가 현재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이것은 A나 B중에 무엇이 문제인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이론이 문제인 것인지? 혹시 현재의 A와 B의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은 가능한 것일지? 이를 입증하려면 어떤 실험 C를 수행해야 할 것일까?

문제는 실험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가 객관적인 관찰자가 되기는 생각외로 힘들다는 것이다.  가령 특정한 가설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하는 경우 이 가설에 부합되는 관찰과, 그렇지 않은 관찰을 100% 객관적인 시선으로 평가하기는 힘든 경우가 많다. 만약 다른 여러가지 실험이 가설에 부합되는 것으로 나왔지만 한두가지 실험이 가설과 상반되게 나왔다면 과연 여기에 집착하여 다른 설명을 찾아보려고 하는 쪽해당 관찰은 실험상의 오류 혹은 아티팩트라고 간주하고 넘어가는 것 중 어느 쪽을 선택하게 될까? 만약 해당 논문을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 실험자의 졸업, 취업, 승진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라면? 그리고 동일한 주제에 대해서 자신이 실험한 것과 타인이 실험한 것의 결과가 상반되게 나왔다면 과연 누구의 실험 결과를 더 신뢰하게 될까? 아무래도 자기 손으로 관찰한 것에 대해서 좀 더 선입관을 가지고 높게 평가하는 것이 보통 아닐까? 아니면 서로 다른 실험 테크닉, 혹은 모델 시스템을 이용하여 수행한 결과가 다를 때, 어떤 테크닉을 좀 더 신뢰하게 될까? 객관적인 관찰을 하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험 연구에서의 관찰은 확증편향을 피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경우가 많다. 흔히 이러한 것을 ‘연구윤리’ 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물론 이러한 것이 연구부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어쩌면 이 문제는 연구윤리 차원에서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즉, 진지하게 연구를 해 본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번쯤은 ‘라쇼몽’ 속의 나무꾼이 된 느낌을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과학자로써의 능력이 부족한 것일까? 라는 자괴감에 빠진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과학은 사람의 활동이며,  이러한 한계 속에서 조금이나마 합리적인 설명을 찾으려는 노력이 바로 과학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해서 주변에서 관찰한 실제 과학 연구에서 벌어진 ‘라쇼몽’과 비슷한 사례를 소개하기로 한다. 그러한 사례는 과학사를 통틀어 매우 많이 있을 것이고 연구 경험이 어느정도 된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라쇼몽’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사람도 가급적 주변에서 관찰한 사례, 즉 ‘나뭇꾼’ 의 입장에서 본 한 사례를 들고자 한다. 후편을 기대하시라 ! 근데 라쇼몽에서의 나뭇꾼은  단도라도 주웠지만 난 별거 주운 게 없는데?

3인의 의사양반

가끔 외부 강연을 의뢰받는 경우가 있슴. 최근에 두 곳의 의과대학에서 의과대학 재학생들을 위한 강연을 했는데, 뭔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그냥 블로그에 소개된 이야기를 묶어서 다음과 같은 강연자료를 만들었슴다. 물론 여기 올라온 다른 자료에서 돌려쓰기한 슬라이드도 눈에 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뭐 다 그런거죠 네네  

근데 의대생 보다는 연구에 이미 발을 담근 사람(이라고 쓰고 이 블로그에 들락거리는 많은 분들) 이 더 재미있어 할 것 같다라는 게 함정?  재미 없으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