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호지킨 (Dorothy Hodgk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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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2014년 5월 12일) 구글 두들에는 이런 것이 올라왔음. 이게 뭘까? 오늘은 영국의 화학자인 도로시 호지킨 (Dorothy Hodkins, 1910-1994) 의 탄생일이다. 단백질 결정학을 주요 연구도구중의 하나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내가 사용하는 툴의 기틀을 닦은 양반에 대해서 뭔가 써야 할 의무감을 느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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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굇수

구조생물학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면? 당연히 생체물질의 구조를 규명하는 일이다. 구조를 규명한다면 기왕이면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구조면 더욱 좋겠지? 평생 하나의 중요한 생체물질의 구조 정도만을 규명해도 이 바닥에서 “우와 무슨 무슨 구조를 푼 누구누구 짱짱맨~”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이 양반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혼자서 푸신 양반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양반이 이렇게 복잡한 화학물질의 구조를 X선 결정학을 이용하여 풀기 전까지는 그런 것이 가능하다라고 생각하지조차 못했다는 사실.

– 페니실린 G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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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만 하더라도 X선 결정학은 일부 물리학자들이나 가지고 노는 실험방법이라고 간주되었고, 이것을 이용하여 복잡한 화학물질의 구조를 규명하는 것은 어불성실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도로시 호지킨이 X선 결정법에 의해서 베타락탐링을 가지는 페니실린의 구조를 발표했을때 이것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러한 구조는 너무 불안정해서 자연계에 존재할 수 없다나.. John Cornforth라는 사람은 심지어 이렇게 말했다고. “ㅋㅋ 저게 페니실린의 구조라면 난 걍 화학을 관두고 버섯이나 키울란다 ㅋㅋㅋㅋㅋ”  If that’s the formula of penicillin, I’ll give up chemistry and grow mushrooms”

그러나 도로시 눈화의 그 구조는 맞아버렸고, 뻔뻔스럽게도 ‘버섯가이’ 는 자기의 호언장담은 입싹씻고 그냥 화학연구를 계속했다. 독버섯은 기억상실증을 유도할수도 있습니다 연구하다가 심심했는지 도로시 눈화가 갔다온 10주년 기념으로 1975년 스웨덴에 관광도 가기도 하고.

비타민 B1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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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업적때문에 이 양반은 1964년 스웨덴에 갔다오셨다. 참고로 여성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것은 마리 퀴리와 그 딸 이레느 퀴리 이후 세번째. 즉 이름에 ‘퀴리’ 가 안 들어간 분으로는 최초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보통 노벨상 받은분들이면 걍 이제 퍼져노셔도 연구의 일선에서 떠나기 마련이지만 이 양반은 그 이후에도 연구에 전념.그리하여,

인슐린 (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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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양반은 한개를 풀어도 오오 스웨덴 어서오세염~ 할만한 일을 3인분을 하셨다는. 게다가 그 당시는 요즘처럼 결정을 만들면 슥 올려놓으면 자동으로 수백장의 데이터를 모아주고 자동적으로 회절이미지를 분석해주던 시기도 아니고, 결정 하나에 엑스레이 사진 한장 꽝 찍고, 그리고 이걸 디벨로퍼와 픽서를 가지고 현상~ 이걸 수백번 반복.  현상한 필름에서 나온 점들의 위치를 재고….등등을 반복하여 일일히 복잡한 계산을 하던 시가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ㅎㄷㄷ

2. 사회운동가

과학자로써도 초일류의 사람이었으나, 이 사람은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꽤 앞장서 발언을 하는 사람으로 유명했었다. 아마도 그 이유로는 이 사람의 멘터인 존 데스먼드 버날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이 사람은 X선 결정학의 발전과정에서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정치적인 활동으로도 유명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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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절린드 프랭클린을 Birbeck College로 스카우트해간 사람도 이사람.

여튼 도로시 호지킨은 남편인 라이오넬 호지킨과 함께 여러가지 사회정치적인 활동을 했는데, 객관적으로 볼때 좌파라고 볼 수 있는 스탠스를 가진 양반이었다. 소련쉴드 Pugwash conferences on Science and World Affairs 라는 세계평화를 위한 학자 단체의 회장도 오래하시고.

3. 멘터
그런데 도로시 호지킨은 옥스포드대학에서 있을때 학부생들을 데리고 일을 많이 했었음. 성품이 괜찮으신 듯해서 많은 학생들이 따랐다고 함. 이중 마거릿 로버츠 (Margaret Hilda Roberts) 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이 학생은 1947년 학부 4학년때 도로시 호지킨의 지도하에 그라미디신 (Gramidicin)이라는 항생제의  결정 실험을 하고 이것으로 학사 졸업논문을 썼다고 함 그리고 학부 졸업한 후 전공 살려 취직했음.그런데 이 학생은 연구직에 얼마 안 있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게 되는데..그게 바로 정치. 그리고 결혼한 후 남편 성을 따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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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사람이 장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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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garet Thatcher 이 됩니다.

정치적으로는 좌파라고 볼 수 있는 도로시 호지킨의 제자가 신자유주의의 화신과 같은 마거릿 대처라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칼한 일이지만, 이러한 정치노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거릿 대처는 도로시 호지킨의 밑에서 연구를 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또한, 이학사를 가진 최초의 영국수상이라는 사실에 대해 최초의 여자수상이라는 것보다도 저 자랑스럽게 여겼다나. 이것은 이과부심…보다 정확히 말하지면 N모상 수상자 제자부심? ㅎ

공학사를 가진 최초의 한국대통령은 Carbon dioxide를 ‘이산화가스’ 라고 이야기하시지만...뭐 전자과라서 그렇다고 하고…그렇다면 전자기학이 출동하면 어떨까?

게다가 이 사람의 경우 실제로 학생으로, 그리고 회사의 연구원으로 연구를 해 본 경험에 의해서 과학 연구에 대해서는 실제로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 제일 잘 판단할 수 있다 라는 믿음을 정치가가 되서도 버리지 않았다고 함. 그전까지 영국의 과학 정책은 소위 ‘Haldane Principle’, 즉 어떤 연구에 얼마나 투자할지는 관료가 아닌 실제 연구를 하는 과학자가 결정해야 한다는 1917년의 원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지만 1970년, 이러한 영국의 과학정책을 수정하여 보다 시장중심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고 함. 그때 이러한 제안에 (흔히 ‘시장주의의 화신’ 이라고 생각되던 이미지와는 달리) 동의하지 않고 과학은 과학자에게 맡겨두어야 한다는 소신을 마거릿 대처는 잃지 않았다고 함. 아마 이것도 어느정도는 마거릿 대처에게 ‘과학이란 어떤 것이다’ 를 보여줬던 도로시 호지킨의 덕일지도.

로절린드 프랭클린에 대한 짦은 이야기

로절린드 프랭클린 (Rosalind Franklin, 1920-1958) 이라고 들어보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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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르는 분은 모르시겠지만, 이 블로그에 들락거릴 분이라면 어디선가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DNA 발견 히스토리에 대해서 좀 알고 계신 분이라면 “아~ DNA 구조사진 찍었는데 왓슨이 훔쳐가서 노벨상 못타고 몇년후에 요절한 눈화?” 정도로 기억할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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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진을 이 눈화가 찍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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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내들이 훔쳐가서 이 누나는 분노속에 화병도져 요절했다?

글쎄,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그정도로 기억되어야 하는 인물일까? 이러한 대중 속의 이미지와 실제 로절린드 프랭클린이 그닥 길지 않은 인생동안 남긴 족적과는 큰 차이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 조금 글을 쓰도록 하자.

1. 로절린드 프랭클린이 살아있었으면 노벨상을 받았을까?

나의 대답은 “예” 이다. 그러나 한가지 의외로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사람은 왓슨과 크릭 (그리고 모리스 윌킨스) 이 노벨상을 받을때 같이 노벨상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그 이후에 별도의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982년 노벨 화학상은 Aaron Klug 이라는 사람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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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사람이 한 일이 뭔데? N모상 홈페이지에 가보면 이렇게 나와있다.

Prize motivation: “for his development of crystallographic electron microscopy and his structural elucidation of biologically important nucleic acid-protein complexes” 결정학적 전자현미경과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핵산 – 단백질 복합체의 구조결정

음 이게 뭔데? 그런데 이 사람은 1953년 영국의 Birbeck College라는 곳에서 처음 연구를 시작하였는데, 이때 이 사람은 바로 다름아닌 로절린드 프랭클린과 함께 연구를 한 사람이다. 이 사람과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연구주제는 담배모자익 바이러스 (Tobacco Mosaic Virus) 의 구조결정.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킹스칼리지에서 DNA 연구를 마치고 Birbeck College 로 옮겨서 담배모자익 바이러스의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 X선 회절에 의해서 연구를 시작했다. 이때 같이 참여한 사람이 Aaron Klug 즉 이 아저씨는 로절린드의 부사수였는데 나중에 N모상 득템.

로절린드 프랭클린이 DNA 연구 이후에 1958년 요절하기 이전까지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는 요기 혹은 죠기 를 뒤벼보면 잘 나온다. 그러나 간단히 요약해보자.

1. 기존에도 JD Bernal 과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TMV 바이러스에 대한 X선 회절실험이 이루어진적이 있었다. 그러나 X-ray 덕후녀였던 프랭클린 눈화는 기존보다 더 나은 아래와 같은 회절사진을 찍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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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DNA 사진과는 비교가 안되는 알흠다운 사진

2. 이러한 데이터를 해석하여, 1955년, 최초로 TMV의 구조 – 이자 최초의 바이러스 구조 – 를 제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에 논문을 꽝 이 누님은 자연쯤에는 내고 싶을 때 논문을 내는 여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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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런식으로 단일가닥의 RNA가 나선형으로 말려있고 캡시드 단백질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결국 이 모델은 후학들에 의해서 좀 더 자세하게 만들어졌으며 근본적으로 프랭클린이 1955년에 제시하였던 모델이 맞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것은 인류 최초의 바이러스 구조 규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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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후에 이 눈화는 다른 바이러스 구조, 즉 TMV와는 다른 모양인 폴리오 바이러스 (Polio Virus), 튤립 옐로우 모자익 바이러스 (TYMV) 등의 구조규명에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58년 4월에 난소암으로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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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ato shunt mosaic Virus와 Turlip Yellow Mosaic Virus의 단일결정 회절사진.

이 눈화는 죽기 한달전까지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었다. 바이러스 (Potato virus X) 라는 바이러스의 구조를 알아보기 위하여 협력연구자에게 샘플을 요청할 정도로..

어쨌든 요점은 이 눈화는 굳이 DNA 가지고 스웨덴에 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정도의 업적은 쌓았고,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대단한 발견을 했을 것이다. 부사수가 같은 토픽 가지고 계속 연구해서 노벨상 탔대니깐 뭔 말이 필요하냐. 글니까 연구자 여러분들은 건강 잘 챙기삼. 아무리 대단한 발견을 해도 죽으면 노벨상이건 뭐건 국물도 없음.

2. DNA 이중나선 모델은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것인데 왓슨 크릭이 훔쳐갔다?

아뇨.

많은 사람들이 로절린드 프랭클린을 “왓슨크릭에게 데이터 뺏기고 요절한 불운의 과학자”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요절했으니까 불운한 과학자일수는 있고, 왓슨-크릭이 그 구조모델을 만드는데 프랭클린의 데이터를 훔쳐본 것에 기여하긴 했지만 사실 프랭클린의 관점에서 그 데이터는 사실 너무 꾸려서 모델을 만들 시도도 안했을 뿐이다가 좀 더 정확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왓슨-크릭의 논문이 실린 ‘자연’ 이라는 잡지의 같은 호에는 (왓슨이 훔쳐본)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X-ray fiber diffraction 사진에 대한 프랭클린의 해석에 관련한 논문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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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요 사진에 대해서 너무 과대해석을 하지는 않겠지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음.
– 구조는 아마 나선형일 것이고,
– 인산그룹은 구조의 밖으로 위치해서 나선에서 20A 의 직경으로 존재할 것이다.
– 아마 나선은 두개의 수직으로 대칭된 분자로 구성될 것임
즉 우리생각은 이전에 왓슨 & 크릭 이친구들이 제시한 모델과 불일치하지는 않음.”
Thus our general ideas are not inconsistent with the model proposed by Watson and Crick in the preceding communication
걔내들이 말하는게 우리 아이디어와 일치하지 않는건 아냐. 글타고 걔내들이 말하는게 다 맞는지 아닌지는 내가 알바가 아니고ㅋ 정도의 이야기. 사실 위 논문의 모든 내용은 프랭클린이 왓슨 크릭이 모델을 구축한 것을 보기 전에 쓴 이야기이고, 단지 왓슨 크릭의 모델을 본 다음에  “흥 뭐 걔내가 뭐라고 하는 모델과 내생각이 딱히 불일치한것은 아냐 흥” 하고 한마디 덧붙였다고 한다 츤데레가 요기잉네?
사실 왓슨 크릭 모델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염기간 베이스 페어링 (A-T, G-C) 에서는 당연히 아무런 말이 없는데, 그 당시 프랭클린이 뽑은 데이터만으로는 절대 베이스 페어링에 대한 이야기를 할수 없으므로, 프랭클린은 아마도 이 데이터 가지고 이런 구체적인 모델을 만드는 것이 너무 오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구조생물학적으로 왓슨 & 크릭의 DNA 이중나선, 염기쌍 구조가 원자수준에서 규명된 것은 이보다 훨씬 이후인 1981년의 일이다.

3. 왓슨 & 크릭과 프랭클린은 사이가 나빴다?

그닥 나쁘지는 않았는데염?
왓슨 & 크릭이 모델을 구축할때 프랭클린의 사진에서 결정적인 힌트를 얻은 것처럼, 프랭클린 역시 DNA 구조를 해석할 때 크릭이 제시한 이론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다. 이것은 프랭클린 버전의 구조해석 논문에도 잘 나와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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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왓슨과 크릭과 이사람과의 사이도 나쁘지 않았음. 왓슨은 프랭클린이 TMV 구조푸니까 “오오 눈화 미쿡와서 제발 톡해주세염~구조좀 보여주세염~ 현기증난단 말이예여” 하고 편지를 몇번 썼고 프랭클린이 미쿡에 오니까 직접 운전기사해서 동부에서 서부까지 모셨다는..(근데 프랭클린 눈화가 돌아가시니 뒷담화하는 책을 써…)
사실 프랭클린이 TMV연구를 하기 전에 왓슨은 TMV에 대해서도 좀 발을 담근 적이 있는데 사실 TMV의 capsid 단백질이 helical 한 구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실험적, 이론적으로 규명한 것은 왓슨이었다. 논문 재미있게도 왓슨은 DNA 이중나선 구조에 대해서는 전혀 실험을 한 적이 없는데, TMV에 대해서는 직접 실험을 했다는..사실 왓슨이 프랭클린의 사진을 한번 보고서 ‘오오 이것은!’ 하고 힌트를 얻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면 같이 나선구조를 가진 TMV에 대해서는 자기가 실험을 해 본 이유일수도 있다. 어쨌든 프랭클린의 연구 자체는왓슨의 선행연구에 영향을 받았고, 이 둘은 서로 연구결과를 토의하는 사이었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그리 사이가 나쁜 상황이 아니었다.
사실 이러한 오해가 나오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왓슨의 책임이 큰데, 그는 1968년에 출판된 자신의 저서 (라고 쓰고 디스모음집이라고 읽는다) 인 ‘이중나선’ (Double Helix)에서 프랭클린을 좀 괴팍한 여자 정도로 묘사했다. 그런데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버렸어! 그러다 보니 이 사람의 이미지가 그런 식으로 고착된 점이 크다. 

4. 프랭클린의 유산

프랭클린이 죽고 나서 프랭클린과 같이 연구를 하던 동료들은 캠브리지의 MRC 로 옮겨가서 그녀가 수행하던 바이러스 구조연구들을 계속 수행하였다. Aron Klug 은 이 연구를 계속해서 스웨덴에 갔다는 것은 이야기했고..

그녀의 대학원생으로 Kenneth Holmes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Aron Klug 과 함께 바이러스 연구를 같이했고, 이 연구가 어느정도 마무리된 다음에는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로 옮겨서 다른 생체고분자, 그리고 역시 나선의 성질을 가진 구조를 연구했는데, 이게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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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틴 필라멘트 모델이다. 참고로 이 모델은 DNA 구조와 TMV 에 사용된 방법인 Fiber diffraction 을 이용하여 결정되었다. 즉 고해상도의 구조를 결정할때 사용되는 단일결정에 의한 X-ray Crystal Diffraction 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 프랭클린 눈화의 박사과정 학생이 푼 구조를 가지고 또 찝적거리는 찌그레기 1인인 본 블로그 주인의 경우에는 결국 구조생물학에서의 족보를 따져보면 로절린드 프랭클린 눈화까지 올라가게 되는 셈이다. 그러니까 우리눈화 가지고 괜히 설레발 떨지말라구..ㅋ

어떤 음대생의 외도

일단 베토벤 첼로 소나타 유튜브 동영상을 하나.

일단 피아니스트는 에마뉴엘 엑스 (Emanuel Ax)라는 클래식 음악을 좀 들어봤으면 이름쯤은 들어봤을 네임드 피아니스트이다. 그런데 첼리스트? 웬 UCSF의 초파리 유전학자라고 한다. 웬 초파리 유전학자가 네임드 클래식 피아니스트와 같이 베토벤 첼로소나타를 켜는지? 음악시작하기 전에 둘이 떠드는 것을 보니 학교 동창이라는것 같다. 그러나 이 초파리 유전학자가 첼로를 잘 켜는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다. 사실은 알고보니 에마뉴엘 엑스와 같이 줄리어드 음대를 같이 다닌 동창생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왜 줄리어드 음대를 다닌 사람이 미국의 유명 연구중심대학인 UCSF에서 초파리 유전학을 연구하는가?

오늘 하게 될 이야기는 이 사람이 첼로를 버리고 생명과학 연구자가 된 연유이다.

이 사람의 이름은 톰 콘버그 (Thomas Kornberg). 음 근데 콘버그? 이름이 어째 친숙하네 하실 블로그 주인장과 동종업계인들이 계실 것이다. 사실 이 사람은 DNA Replication으로 유명하고 노벨상을 득템한 아서 콘버그(Arthur Kornberg, 1918-2007) 의 아들이자, 2006년 RNA Polymerase 구조규명으로 노벨상을 탄 로저 콘버그 (Roger Kornberg, 1947-) 의 동생이다. “아항” 하실 분들이 계실 것이다. “첼로켜다가 아빠하고 형이 잘나가니까 나도나도 하고 연구를 했구먼?” 이렇게 생각하실 것이다.

그러나 사정을 좀 더 뒤벼보면 이것보다 좀 더 재미있는 사정이 있으니..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잠깐 톰 콘버그의 아빠인 아서 콘버그의 이야기부터 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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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1959년 (마흔두살 ㅋ) “for their discovery of the mechanisms in the biological synthesis of ribonucleic acid and deoxyribonucleic acid” 라는 제목으로 스웨덴에 화약업자 유산받으러 갔다 오셨다. 

즉 업자용어로 말하자면 최초로 DNA가 효소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였으며, 이러한 생화학적인 활성이 있는 효소를 발견한 공로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요런 논문을 1958년에 JBC에 출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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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DNA라는 물질이 생체내에 있다는 것은 꽤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지만,뭐하는 듣보 물질인지 관심이 거의 없다가 1944년 혹시 DNA가 유전물질이 아닐까 하는 근거를 제시한 논문이 나왔으나 대부분의 생명과학자들에게는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그러나 왓&클의 DNA 이중나선 모델은 1953년에 나온 이후부터 DNA가 유전물질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이러던 와중에 1958년에 아서 콘버그 및 그 수하들은 대장균에서 어떤 효소를 발견하였는데, 이것이 DNA를 합성해 낸다는 증거를 확인한 게 저 논문이다.구체적으로 뭔 실험을 했는지는 요기를 참고

이렇게 해서 발견된 것이 바로 DNA Polymerase I 이고, 바로 다음해에 아서 콘버그는 스웨덴으로 직행. 논문 한편내고 다음해에 스웨덴가는 상당히 아스트랄한 상황이었지만 뭐 역시 사람은 때를 잘만나야 한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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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젊은 나이에 노벨상을 득템한 아서 콘버그는 그 이후에도 DNA Polymerase 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였고, 생화학적인 방법론으로 생체외 (시험관) 에서 DNA를 복제하기 위해서는 어떤 단백질들이 관여하냐 등등을 거의 대부분 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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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사람의 실험방법론은 거의 대부분 생화학적인 방법론, 즉 DNA 합성이라는 생화학 반응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기질 및 효소들을 모두 정제하여 생체외 (시험관, In vitro) 내에서 재현하는 방법론에 의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다른 분야의 과학자, 특히 유전학자들로부터, ‘그래 너네가 발견한 효소로 시험관에서 DNA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맞다고 쳐. 그렇지만 니가 발견한 효소가 과연 생물내에서 필요한 유전정보가 담겨있는 DNA를 복제하는 효소 맞아?“라는 의구심/공격을 받고 있었다.

이렇게 콘버그의 DNA Polymerase가 진짜 유전정보가 담겨있는 DNA를 복제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 중에 John Cairns 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콘버그의 DNA Polymerase는 유전정보가 담겨있는 DNA를 복제하는 효소가 아니라는 가설을 세웠다. 만약 이 가설이 맞는다면, 콘버그의 효소를 암호화하는 유전자에 영 좋지 못한 일이 생겨서 콘버그의 DNA Polymerase 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대장균은 자라기는 자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콘버그의 효소가 유전정보를 복제하는 효소라면 그 유전자는 대장균의 생육에 꼭 필요로 하겠지.

John Cairns은 랩의 테크니션인 De Lucia 라는 사람을 시켜서 콘버그의 효소 유전자에 영 좋지 않은 일이 생긴 대장균 변이주를 분리하려고 했다. 이들이 돌연변이주를 찾는데 쓴 방법은 어떻게 보면 열라 무식한 방법인데..누군가를 저격하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지 핫핫

1. 대장균에게 돌연변이원을 처리하여 생존한 균에서 수천개 콜로니를 따서 키워서 다 키워버려 ㅋㅋ

2. 각각의 변이주에서 콘버그가 기술한 방법대로 DNA Polymerase 활성을 측정

3. DNA Polymerase 활성이 안나오는 넘을 찾아라

그런 식으로 마침내 콘버그가 기술한 DNA Polymerase 활성이 야생형의 5% 미만인 변이주를 찾았다. DNA Polymerase 활성은 동위원소로 표지된 dNTP 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DNA 를 만들고, 이걸 필터페이퍼에 가한 후 TCA 처리를 하면 핵산은 침전되어 필터페이퍼에 붙지만 남아있는 동위원소 표지 dNTP 는 워싱과정 중에서 없어지게 된다. 이렇게 워싱된 필터페이퍼를 Scintillation counter 에 넣고 방사능을 재면 간단히 DNA 를 얼마나 만드느냐를 측정가능하다. 아래 그래프에서 W의 경우 야생형, P의 경우 찾은 변이주의 조효소액을 넣고 활성을 측정한 결과. PW는 P에 W 1% 를 넣고 측정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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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변이주는 야생형과 그닥 자라는게 차이가 없어! 그 이야기는 콘버그가 발견한 효소는 대장균이 자라는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이야기이고 따라서 대장균의 유전물질을 복제하는 ‘바로 그 효소’ 가 아니라는 이야기. 이 변이주와 야생형 균주의 차이점은 자외선 처리 등 DNA 손상에 좀 더 민감하다는 정도(아마도 콘버그의 효소는 여기에 관여하는지도.) 그래서 이 논문은 1969년에 자연 잡지에 떡 하고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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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이런 논문이 발표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은 ‘푸핫 저 아저씨는 지금까지 생명체에서 DNA 복제를 하지도 않은 효소가지고 그렇게 썰을 푼것임?ㅋㅋㅋㅋㅋㅋㅋㅋ’ 하고 콘버그를 비웃공격하기 시작하였다. ‘DNA 폴리머레이즈라는게 있긴 있는거 맞아?’ 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특히 그 당시에 네이처에서 최초로 만든 ‘자매지’ 인 Nature New Biology라는 잡지에서는 “DNA 폴리머레이지는 새빨간 거짓말” (Red herring) 이라고까지 무기명 기사를 통하여 칭하면서 디스하기 시작했다 우리 영국인은 무식한 양키는 까야제맛이라고 생각하죠

거의 콘버그는 10년전에 탄 노벨상을 게워네야 할 분위기. 그때 콘버그를 구원해 준 것은….

엉뚱하게도 미국 반대편 뉴욕에서 첼로켜던 둘째 아들이었다.

톰 콘버그는 자기 형 (Roger Kornberg)이 어려서부터 실험실에 들락거리며 연구를 하고, 학부때 과학을 전공한 것에 반하여 뉴욕의 콜롬비아 대학과 줄리어드 음대에 동시에 적을 두고 (이런게 가능한건지 모르겠지만 여튼 그렇댄다) 첼로 전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1970년, 손에 부상을 입게 되어서 당분간 첼로를 켤 수 없게 되었다. 아마 “쳇 첼로도 못키는데 이참에 생물학점이나 따자” 하고 콜롬비아 대학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강의 중 (생화학? 아마) 강사가 대충 이런 멘트를 한 모양이다.

“너네들 DNA 폴리머레이즈라고 아냐? 10년 전쯤에 이걸 가지고 아서 콘버그라는 사람이 노벨상을 탔어. 그런데 얼마전에 그게 다 개구라라는게 밝혀졌거던? 콘버긐ㅋㅋㅋㅋㅋ 노벨상 다 게워내야됔ㅋㅋㅋㅋㅋㅋㅋ 콘버그가 엉뚱한 효소 가지고 생난리 치느라 우리는 진짜 DNA를 복제하는 효소가 아직도 뭔지도 몰랔ㅋㅋㅋㅋ”

강의를 듣고 있던 톰 콘버그는 당연히 빡쳤고, 아마도 “우리 아빠는 그렇지 않아!” 하고 외쳤을 것 같다.

konberg

아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강사에 강력히 항의하는 톰 콘버그.jpg (상상도)

그래서 생각한 것은 “흥 내가 아빠가 못찾은 DNA 폴리머레이즈, 내가 찾고만다” 하는 생각이었다. 첼로켜다 생화학 수업 듣던 학부생 나부랭이가 참으로 패기넘치는 생각을 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이 사람은 실제로 콜롬비아 대학에 있는 어떤 교수(Malcolm L Gefter)의 연구실을 찾아가서 ‘새로운 DNA 폴리머레이즈를 찾고싶다’ 라는 계획을 이야기했다. “아마도 노벨상 수상자 아드님이 좀 심심하신가부다, 아참 이 사람 아빠한테 이 기회에 잘 보일 기회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Gefter라는 사람은 톰 콘버그라는 학부생을 실험실에 받아주었다.

그리고 나서 1년이 안되서 그는 새로운 DNA 폴레머레이즈를 찾았다. 그것도 두 개나.

이 사람이 한 실험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1. 이전에 분리된 ‘아빠 콘버그의 DNA Polymerase’ 가 작동하지 않는 돌연변이 대장균을 키워서 세포를 깨고, 진짜로 DNA Polymerase의 활성이 없는지를 조사하였다. 활성이 야생형 균주의 5% 로 줄어들긴 했지만 아주 약한 DNA 를 만드는 활성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2. DNA Polymerase의 활성은 기존에 알려진 아빠 콘버그의 효소와 같은 것이고 단지 활성이 줄어든 것인가? 아니면 이와 별도로 활성을 가지는 별도의 효소가 있는 것인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몇 가지 실험을 하여 1970년에 논문으로 보고하였다.

– 기존의 ‘콘버그 효소’ 는 높은 이온농도에도 활성이 있었지만 이 활성은 높은 이온농도에는 줄어든다.

– 기존의 ‘콘버그 효소’ 는 활성자리에  Free Cysteine의 thiol group (SH) 이 필요하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thiol group과 반응하는 4-Chloromercuribenzoic acid 를 쳐도 이 활성은 남아있다.

– 기존의 ‘콘버그 효소’ 를 인식하는 항체를 넣어도 이 활성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렇게 ‘콘버그 효소’ 와 틀린 다른 DNA Polymerase가 대장균내에 있다는 확신을 가진 톰 콘버그는 이 효소활성을 순수정제를 시도하였다. 그래서 이런 논문을 1971년 발표하였다.

Konberg and Gefter, Purification and DNA Synthesis in Cell-Free Extracts: Properties of DNA Polymerase, PNAS 1971

참고로 요즘은 단백질 하나 정제한다고 한다면 유전자 PCR로 떠서 어피니티 tag 붙이고, 대장균에서 과발현하여 어피니티 크로마토그래피로 대부분의 단백질을 거의 원, 투스텝으로 정제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그땐 그딴 거 없었다. 그냥 어떤 단백질을 정제하기 위해서는 무작정 수십리터의 대장균을 키워서 활성을 찾아가는 노가다의 연속. 심지어 믿을랑가 모르겠지만 우리가 단백질 정제과정을 모니터링하는데 흔히 사용되는 SDS-PAGE 라는 테크닉 자체가 1970년에 처음 나온 것 이므로 대개의 경우 젤도 한번 걸지 못하고 오로지 효소의 활성과 활성이 얼마나 증가했는지만을 기준으로 단백질을 정제하는 시대였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Purification Table 을 만들고 각각의 스텝별로 얼마나 효소의 특이활성 (단백질대 효소 활성)이 증가되었는지를 따지는 것이 정제정도를 판별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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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표 만들어 본 독자는 몇 분이나 계실까 모르겠다. 본 블로그 주인장은 해봤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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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로서는 최신의 테크닉인 PAGE 를 이용한 단백질 순도검증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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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단백질 정제과정 중에서 Phosphocellulose (Negative Charge를 띄고 Postive Charge를 띄는 단백질을 결합하므로 이것은 Cation Exchange Chromatography이다. 대개의 DNA Polymerase는 강한 Negative Charge를 띄는 DNA에 결합해야 하므로 Positive Charge를 띄는것이 보통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컬럼에서 단백질을 분별해 보니 두개의 DNA Polymerase 활성이 나왔다. 즉 그 이야기는 최소 2가지 다른 DNA Polymerase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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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활성이 dATP, dGTP, dCTP를 필요로 하고, 마그네슘이 필요로하고, DNA 가 필요로 한 전형적인 DNA Polymerase 이며, 기존 콘버그 효소를 인식하는 antiserium 을 넣어도 별 변화가 없는, 즉 기존 콘버그 효소와는 별도의 DNA Polymerase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자, 그렇다면 이 효소는 그동안 찾던 E.coli DNA 를 복제하는 ‘레알’ DNA Polymerase인가? 일단 이것을 확인하기 전에 두가지 서로 다른 DNA Polymerase 활성이 분리되었다는 것을 기억해 보자. 1972년 콘버그는 이 활성 중 또다른 하나를 정제하여 그 특성을 보아서 논문을 냈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 뭐 또 다른 넘이 있다라는 이전 논문과 비슷한 내용

Konberg and Gefter, JBC 1972

그렇다면 과연 이 두 효소 중 어떤 효소가 ‘레알’ DNA Polymerase인가? 이것을 암시하는 결과는 다음 논문으로 나왔다.

Gefter et al., PNAS 1971

앞서 John Cairns의 결과는 ‘아빠콘버그 효소’ 가 없어도 E.coli 가 잘 자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빠콘버그 효소’ 가 없는 E.coli 변이주를 찾았다. 만약 지금 발견한 두가지 효소 중에서 어떤 것이 E.coli 의 DNA 복제에 관여한다면, 이 효소가 없으면 아예 E.coli 는 자라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변이주를 만들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험을 못하잖아 ㅠ.ㅠ

이렇게 건드리면 생물 자체를 완전히 죽여버리는 ‘필수적인’ 효소/유전자의 기능을 파악하는 꽁수로는 ‘일반 조건에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만 특정 조건에서는 불활성화되는’ 변이주를 찾는 것이다. 어떻게? 가령 E.coli 정상 생육조건보다 좀 더 높은 섭씨 41도에서는 잘 자라지 못하지만 섭씨 30도에서는 자라는 돌연변이주를 선별할 수 있다. (단백질이 불안정화되어 30도에서는 기능을 유지되지만 41도에서는 기능이 유지못하게 된다든지) 그래서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돌연변이주를 선발하였다.

(1) 박테리아에 돌연변이원을 처리해서 콜로니를 얻어!

(2)  그 다음에 이 콜로니를 그대로 카피를 뜹니다.

(3) 두개의 플레이트에 이걸 복사

(4) 한 플레이트는 30도에, 다른 플레이트는 41도에 두고, 30도에서는 자라지만 41도에서는 안 자라는 넘을 30도씨 플레이트에서 골라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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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렇게 골라낸 온도에 따라서 자랐다 안자랐다 하는 넘들 중 DNA 합성에 관련있는 넘들을 따로 골라냄. 뭐 자세하게는 이 논문 을 참고하고,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동위원소로 표지된 dNTP를 이용하여 동위원소가 DNA에 들어가는 정도로 선택을 함.

아무튼 저 위의 논문에서는 이렇게 발견된 DNA 합성에 관련된 온도감수성 돌연변이주를 John Cairns이 만든 돌연변이주(아빠콘버그 효소가 없는 균주)와 크로스해서 이중 돌연변이주를 만들고, 이들에서 DNA Polymerase 활성을 체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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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A 패널은 John Cairns이 선별한 아빠콘버그 효소가 없는 균주. B패널은 야생형 균주. 세포의 단백질을 크로마토그래피로 분별하니 2개의 상이한 피크가 나오는데, A패널, 즉 아빠콘버그 효소 (Pol I) 이 없는 곳에서는 두 개의 피크가 나오고, B패널, 즉 Pol I 이 있는 곳에서는 첫번째 피크의 활성이 훨씬 크게 나온다. 즉 Pol I 은 Pol III (먼저 나오는 피크) 와 같은 위치에 있고 Pol II (나중에 나오는 피크)는 Pol III 과 다른 위치에 나오므로 두개의 활성을 서로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서 Pol III를 암호화하는 유전자를 찾기 위해서 각각의 이중 돌연변이주의 Pol II 와 Pol III 활성을 체크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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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발견된 돌연변이주 중에서 dnaE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만 30도에서는 활성이 있는데 41도에서는 완전히 Pol III 활성이 안나오는 것이 나옴. 반면 Pol II 는 그딴 거 없음.

즉 여기서 얻은 결론은

1. dnaE 유전자는 Pol III의 유전자이며

2. Pol III의 활성이 없으면 E.coli 는 자라지 않음.

3. 따라서 Pol III는 E.coli 의 복제에 필요한 레알 DNA Polymerase.

그래서 아빠 콘버그는 첼로켜던 아들의 객기 때문에 구라꾼이 될 위기를 면했고 (비록 Pol I 은 E.coli 생육에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Pol III와 DNA를 합성하는 특성은 유사하기 때문에) 아들 콘버그는 아마 이런 연구에의 성공 때문에 첼로는 그만두고, 1973년 E.coli DNA Polymerase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 박사학위 취득 후에는 아마 아빠가 하던 거 계속하는 것은 좀 지겹다고 생각했는지 초파리 유전학으로 변신하여 현재 UCSF에서 실험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 아빠나 형처럼 노벨상은 못 탔지만 여튼 유명한 과학자로써 일하고 있고 첼로는 아직도 취미로 가끔 켠단다. 친구인 에마뉴엘 엑스가 서부로 오면 같이 연주도 하고. (위의 인증동영상 참조)

(아빠 콘버그:아들아 뭐하는거냐? 둘째아들 콘버그:아버지, 노벨상을 계승하고 있습니다.아빠 콘버그:미안한데… 큰아들 줄거다)

마지막으로 콘버그 부자의 이야기는 그만하고,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DNA Pol I 과 Pol III 에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E.coli의 DNA Pol I, 즉 아빠 콘버그가 처음 발견한 효소는 단일 폴리펩타이드 체인으로 된 단백질이고 대충 이렇게 생겼다.

PolI

PDB:1KLN

우리가 PCR에 사용하는 Taq Polymerase 혹은 Pfu Polymerase는 다 이 효소의 사촌격인 셈. 가끔 PCR을 수행하면 Error 가 있는데 그렇다면 이 효소로 DNA 를 복제하는 Thermus 등의 균은 왜 DNA 정보를 그대로 유지해요? 하는 질문을 받을때가 있는데, 앞에서 말했듯이 DNA Pol I 은 생물의 DNA 복제에 사용되는 효소가 아니라 손상을 받았을때 수선하는데 사용하는 거다.

그러나 아들 콘버그가 발견한 DNA Polymerase, 즉 E.coli 의 지놈을 복제하는 ‘레알 DNA Polymerase’ 인 Pol III는 훨씬 복잡하게 생겼는데,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이 여러개의 서브유니트로 구성된 효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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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E 유전자는 실제 DNA Polymerase 의 촉매역할을 하는 alpha subunit에 해당. alpha subunit와 DNA는 대충 이렇게 붙는다.

3E0D

PDB:3E0D

DNA를 엄청난 속도로 복제하려면 DNA Polymerase가 DNA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서브유닛이 필요한데, 이것은 beta subunit 이 담당하며 다른 말로 DNA clamp라고도 칭한다. DNA clamp와 DNA는 다음과 같이 붙어있다.

clamp

PDB : 3BEP

그래서 대충 alpha 와 beta는 이런 구성으로 되어있지 않을까 예상되고 있다.

Screenshot 2014-03-08 19.45.04

즉 DNA Polymerase III를 구성하고 있는 개별 구성부품들의 구조는 대개 다 규명되어 있다. 그러나 톰 콘버그가 이 효소를 발견한지 어언 40년이 넘었는데도 DNA Polymerase III holoenzyme, 즉 E.coli DNA를 복제하는 이 정교한 기계의 완전한 구조는 아직 우리 손에 쥐어져 있지 않다. 구조생물학은 이제 할게 없다고?

“젊은 사람들은 그냥 니네가 관심있는거 아무거나 골라서 연구하면 됨”

 자기의 연구대상도 아닌 부수적으로 정제한 단백질로 노벨상을 받은 시모무라 할배의 인터뷰 중 일부

[Q] 그래서 너님의 생물발광에 대한 관심은..

[S] 그래서 해파리로부터 1961년에 최초의 생물발광 단백질을 정제했음.

[Q] 아 글쿠나. 그럼 이게 GFP네?

[S]  ㄴㄴㄴㄴㄴㄴㄴㄴㄴ 이건 발광단백질. 형광단백질 아님. 사람들이 형광과 발광을 착각하더라고. 해파리에는 두가지의 단백질이 있음. 하나는 방금 전에 말한 형광단백질. 이 단백질은 아큐오린 (aequorin) 이라고 함. 다른 단백질은 발광단백질에서 내는 빛을 받아 형광을 내는 별도의 단백질. 이게 이번 노벨상 주제. 

[Q] 글쿠먼요.

[S] 근데 뭐 정제를 하고 나서 솔직히 이 형광단백질 뭐에 써먹을지 전혀 생각 없었거던? 같이 노벨상 받은 마틴 챌피가 1994년에 이 단백질을 살아있는 세포에서 발현해서 형광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전까지는. 난 그냥 이 GFP 라는 단백질을 발견은 하긴 했는데 이걸 뭐에 써야될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 없었음 ㅋ

[Q] 그래서 님하가 처음 정제한 단백질을 발광단백질이구먼.

[S] ㅇㅇ 그게 바로 내 목적이자 연구 주제라니깐. 

[Q]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려고 해파리 대박 잡으셨다매여. 

[S] 당근. 그리고 프로젝트 수행도중에 어려운점이 엄청 많았음. 그렇지만 어쩌다 단백질을 어떻게 추출할지 알아냄. 그렇게 일단 방법을 셋업한 다음에는 단백질을 조낸 뽑아야 되잖음. 그래서 매년 여름에 워싱턴주의 Friday Harbor라는데 배타고 나가서 해파리 대박 잡음. ㅋ

[Q] 그래서 얼마나 잡으셨음?

[S] 음 그러니끼리…..음 여름 한철 한두달 사이에 5만마리 ㅋ

[Q] 5만마리 ㄷㄷㄷ 대ㅋ박ㅋ

[S] 한해에 잡은게 그거라니까.

[Q] 그래서 매년 잡았음? ㅋ

[S] ㅇㅇ. 그리고 19년동안 계속해서 총 85만마리 ㅋㅋㅋ

 

[Q] 님좀 짱인듯. 그냥 님 생화학의 뽕을 뽑으셨구만. 

[S] 당근. 이게 바로 생화학의 정수지. 유전학 그런거 관계없는 순수한 노가다의 생화학 정수 ㅋㅋㅋㅋ

[Q] 근데 아직도 자연계에 빛을 내는 안알려진 분자가 있다고 생각함?

[S] 당근 아직 많이 있고 적어도 나한테는 엄청 흥미가 있다. 근데 문제는….오늘 아침에도 이야기한 거지만 젊은 사람들은 이런거에 관심 없음 ㅠㅠ

[Q] 왜 그런거 같음? 왜 젊은사람들은 그런거 안하려고 하는데?

[S] 어려우니깐.

[Q] 허걱.

[S] 뭐 걔내들은 쉬운 연구 좋아하드라구. 그리고 뭐 결과 바로 나올만한 연구주제를 선호하지. 그렇지만 좋은 결과는 대개 남들이 안하는 연구에서 나오지. ㅋㅋ

[Q] ㅇㅇ 그리고 이번 노벨상(GFP 화학상)은 특정 분야의 연구가 다른 분야에 전혀 기대하지 않던 방향으로 영향을 끼친 좋은 예지.

[S] ㅇㅇ. 그렇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나는 그걸 연구할 때 뭐 대단한 응용이나 특별한 이익을 위해서 연구를 한게 아니라는 점이지. 그냥 나는 그넘의 해파리가 왜 빛을 내고 형광이 왜 나는지를 알려고 연구했을 뿐이거던?

[Q] 그렇다면 앞으로 젊은사람들에게 조언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S] 젊은 사람들은 그냥 니네가 관심있는거 아무거나 골라서 연구하면 됨. ㅋ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연구주제의 끝을 볼때까지 관두지 말라구. 걍 끝장을 보는게야. 그리고 좋은 연구주제는 조낸 어렵거던? 너님들이 포기하면..뭐 그순간 거기서 끝나는거야. 뭐 성공하려면 도중에 겪는 어려움 쯤은 극복해야지.

[Q] 님 이미 우즈홀 해양연구소에서 은퇴하셨다며. 근데 님 댁 지하실에서 연구실 차려서 계속 일하심?

[S] 걍 지하실 ㅋ

[Q] 글쿠먼요. 요즘은 뭐하심?

[S] 지금은 넘 바빠서 실험 못함. ㅠ.ㅠ 넘 시간 없음. 그리고 노벨상 발표난 이후에 몇달 동안 앞으로 안될거 같음. 

[Q] 그럴듯. 그리고 님 인생에도 새 전기가 되신듯. 

[S] 그런듯. ㅠ.ㅠ 그렇지만 어차피 최근 두세달은 논문이나 쓰고 남들 뒤치닥거리나 해주고 있었었음. 

후락..

그의 ‘실패’

미국학술원 (NAS)회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Science의 편집장이자 유명한 교과서 Molecular Biology of the Cell의 주저자로 유명한 브루스 앨버트 아저씨는 “내가 박사과정때 실패한 이야기” 를 하기를 좋아하는 편. 그래서 기회가 있을때마다 아래 동영상에 나오는 것 같은 이야기를 하곤 함.
Learning from Failure


Plos Genetics 인터뷰
‘Wake-up’ call

사실 어떻게 보면 흔히 대학원생이라면 겪을 수 있는 과정으로 보이고 그닥 대단한 ‘실패’ 로 생각되지는 않는다면, 어쨌든 그가 말하는 실패는 대충 이런거인듯.

– 50년대 말, 분자생물학의 태동기에 하버드 학부를 다니다가 우연히 연구에 참여. 운이 좋아서 Nature 및 PNAS 논문으로 결과가 나옴. 그래서 “훗 과학이라는거 되게 쉽네? 아님 나님 좀 짱인듯 ㅋㅋㅋ” 과 같은 착각(?)을 하게 됨.

– 박사과정에 들어가서는 매우 원대한 목표를 세움. 당시 규명되지 않았던 Genetic Code의 규명 + DNA Replication mechanism의 규명. ㅋ 이를 위해서 매우 복잡한 가설과 모델을 만들고 (마치 Watson + Crick이 거의 통빡만으로 Double Helix 모델을 만들었듯이) 이를 검증하기 위한 실험에 들어감. 그런데 가설 틀렸음. ㅋ 거의 5년 정도를 큰 결과없이 낭비하다가 사이드 프로젝트로 박사논문을 썼으나..

– Thesis committee에서 ‘너님  6개월 더 하삼’ 빠꾸놓음. 그당시에 유럽에 포닥가려고 계획 다 세우고 살던 집까지 뺀 상태여서 멘붕.

– 그래서 내가 ‘실패’ 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분석. (이게 포인트)

* 박사과정에 하려고 했던 것은 미리 세운 가설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일을 많이해도 도루묵이 되버리는 프로젝트였음.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슴. 결과가 예상한 대로 나오던 그렇지 않게 나오든 무엇인가 얻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해야 할 것 같아. 그런데 우리는 안하잖아. 아마 안될거야.

* 어차피 가설이 틀렸으므로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Genetic Code의 규명이건 DNA Replication 메커니즘의 규명이건 다른 경쟁자도 하고 있던 일이었음. 경쟁을 피하려면 나만이 할 수 있는 테크닉이나 메소드가 있어야 함.

– 그래서 박사학위과정중 우연히 발견한 사실 (DNA와 Cellulose resin을 섞고, 말렸더니 DNA가 Cellulose Resin에 잘 붙더라. 이것을 가지고 DNA affinity resin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을 가지고 DNA 에 결합하는 단백질을 정제하는 것을 포닥프로젝트로 수행. 그런데 포닥 1년 하니 프린스턴에서 겨수로 오라고 하던데 ㅋㅋ

….저기여 영감님, 그냥 자랑하시는거져? ;;;;

아무리 봐도 늙어서까지 두고두고 말할 만한 ‘실패’ 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여튼 “뭔가 잘 되지 않은 경우에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분석하고, 다시는 그런 실패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게 그의 결론. 동일한 이유로 계속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그것을 고치지 않으면 그건 님 문제.

결국 실패 별로 안한 어떤 영감님 1인의 자랑질 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