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기술의 원천을 찾아서 : PCR 이야기

서두 : 돈 되는 기술’ 의 원천을 찾아서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항상 과학계에 일하는 사람만 만나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들과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있다. 가령 명절에 오랫만에 만나는 친척들이 “그래, 요즘 뭐 하고 있나?” 하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상황에 따라서 틀리겠지만 열심히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했더니 그 친척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볼 때가 있다. “….그걸 연구하면 앞으로 전망이 좋은가?” 보다 직설적인 분이라면 이렇게 물어보기도 한다.

그거 하면 ?

상황에 따라서 틀리지만 “그거 하면 돈 돼?” 라는 물음에 “그럼요!” 라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중력파를 검출한다든지와 같은 연구는 제아무리 상상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그 연구가 어떤 실용적인 가치, 즉 가까운 시일 안에 ‘돈’ 과 연결되는를 줄수 있을지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하기 힘들 것이다. 심지어 명백하게 목적이 보이는 응용연구를 하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지금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상용화되서 실제 경제적인 이익으로 실현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즉 대개의 자연과학 연구는 어차피 직접적인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반대로 ‘확실히 돈이 되는 연구’ 는 무엇일까? 이론적으로 그 가능성이 예측되었고, 실험적으로 그 이론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시간, 노력(=돈)을 들여서 이들을 구체화하고 최적화하여 산물을 만드는 것 정도는 ‘확실히 돈이 되는 연구활동’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반도체의 미세공정을 한 단계 낮추어 수율을 높인다든가, 특정한 단백질을 저해하는 화합물을 찾고, 이를 최적화한다든가 이런 것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기존에 이미 알려진 원리를 구체화하는 ‘개발’ (Development) 에 속하는 일로써, 엄밀히 말하면 공학의 영역에 속하는 일일 것이다. 물론 산업화를 위해서는 이러한 구체적인 개발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발’ 은 대개는 이전에 존재하는 ‘뭔가’ 를 더 낫게 개량하는 일에 속한다. 그렇다면 그 처음의 ‘뭔가’ 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그 ‘뭔가’ 를 태어나게 하는 이론과 실험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가령 지금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산물을 생각해 보자. 휴대폰, 컴퓨터, 자동차,  항바이러스약, 바이러스 진단 키트 등등..분명히 전 세기에는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기존에 개념조차 없었던물건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 등장하게 되는가. 생각외로 이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아마도 우리 주변에 보이는 현대문명의 산물 우리가 이것의 탄생과정을 개념 창시 단계부터 바라볼 있었던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 할 이야기는 그러한 기존에 없던 개념 어떻게 탄생하고, 이것이 어떻게 우리의 특정한 문제를 해결할 있는 기술로 발전하여, 실제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하나의제품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작은 전혀 기대하지 않던 곳부터 일어난다.

어떤 미생물학자
이 이야기의 시작을 이끌 사람은 톰 브록 (Thomas D Brock)이라는 사람으로써 1926년생이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후 2차세계대전으로 징집되어 해군에서 복무하다 제대후 1946년 오하이오 대학에 입학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버섯과 효모에 대한 연구를 하여 1952년에 학위를 취득한다. 그는 대학에서 연구를 하기를 원했지만 학교의 자리는 그리 쉽게 나지 않았고 그러다 항생제를 연구하는 제약회사 업존 (UpJohn) 에 취업을 하게 된다. 이전에는 세균학에 대한 경험이 없었지만 회사에서 항생제 관련한 미생물을 스크리닝 하는 등의 연구를 하면서 세균학 연구에 대한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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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그는 1960년 인디애나 대학에 조교수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다. 그는 여러가지 종류의 미생물 관련 연구를 했지만 점점 미생물 생태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던 도중 발견한 해양미생물인 Leucothrix mucor 라는 미생물이 필라멘트 형태로 자라면서 매듭 형태의 모양을 형성한다는 현상을 발견하여 S모잡지에 표지로 실리기도 한다.
여튼 그는 부지런히 연구하는 미생물학자였다.
끓는 온천 속의 미생물
그러던 중 1964년 그는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 여행을 갔다.  거기서 그는 다음과 같은 광경을 보았다.%ec%8a%a4%ed%81%ac%eb%a6%b0%ec%83%b7-2016-09-28-15-14-12

뜨거운 온천 주변에 온통 초록색의 물결이 있고 위치에 따라서 색이 틀려지는 것을 보았다.

이거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이 아닐까? 그는 온천이 동적 평형을 이루는 생태계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 속에 어떤 미생물이 존재하는지를 찾아보려고 했다. 그는 광합성에 관심이 있었으므로 이렇게 채취한 샘플 중에서 클로로필 함량을 측정함으로써 온천 내에서의 미생물 생태계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1965년부터 샘플을 채취하였다.

그러나 어떤 온천에서는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식으로 핑크색의 거품이 일어나기도 했다. ‘문어못’ (Octopus Spring) 이라고 이름붙인 곳에서는 끊임없이 핑크색의 물질들이 흘러나왔고 여기의 온도는 섭씨 82도에 달했다. 과연 이렇게 높은 온도에서도 미생물이 살 수 있을까? 그 당시까지 알려진 미생물 중 가장 높은 온도에서 사는 미생물은 섭씨 55도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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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을 채취해서 분석을 해 본 결과 단백질이 존재하였다! 이 이야기는 여기에 뭔가 생명체가 살고 있을 것이라는 의미였다.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여튼 그는 더 본격적인 연구를 하기 위해서 미국과학재단 (National Science Foundation:NSF)에 옐로우스톤 온천의 미생물, 특히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을 중심으로 연구를 하기 위한 연구비 신청서를 제출하였고, 이것이 통과되서 1966년부터 연구비를 받아서 본격적으로 옐로우스톤의 온천에 사는 미생물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학부생이 찾은 미생물 
1966년부터 톰 브록은 옐로우스톤에서의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연구를 위해서는 거들어 줄 인력이 필요하기 마련 이때 학부 2학년생의 허드슨 프리즈 (Hudson Freeze)라는 학생이 실험실에서 학부연구생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브록 교수는 그에게 같이 옐로우스톤에 가서 샘플을 채취하지 않겠느냐고 권유한다. 이 학생은 좋다고 (공짜 여행인데 당연히 좋다고 하겠지!) 샘플 채취여행에 따라나선다. 그들은 80도에서 솟아나오는 핑크색 샘플과 이보다 조금 낮은 온도인 70도에서 솟아나오는 몇 군데의 온천에서 샘플을 채취했다.

그래서 그는 학부생 허드슨에게 배양을 시켜보았다. 그는 교수가 시키는대로 샘플을 배지에 넣고 70도에서 배양해 보았다. 며칠 지나도 일반적인 미생물이 배양되면 생기는 것처럼 배지가 뿌옇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튜브의 밑에는 모래 비슷한 것이 조금 깔려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실망해서 튜브를 그냥 버릴까 하다가 다시 70도 워터베스에 놓아두고 며칠동안 내버려 두었다. 며칠 지나니 그 ‘모래’ 비슷한 것이 점점 늘어났다.

그는 “모래가 더 많이 생겼네?” 생각하고 버릴까 하다가, 이를 현미경으로 관찰해 보기로 했다. 그 결과..
막대기 형태의 박테리아가 디글거렸다! 그와 Brock 은 그 박테리아에 YT-1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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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은 다른 온천에서도 비슷한 미생물을 찾을 수 있는지를 보았다. 다른 온천에서도 여러 종류의 미생물이 나왔다. 재미있는 것은 온천이 아닌 인디아나 대학의 온수 파이프에서 채취한 생물에서도 70도에서 배양을 해보니 비슷한 미생물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미생물을 여러가지 온도에서 키워서 최적 생장 조건을 보니 약 69도에서 제일 자랐으며 78도 정도에서도 꽤 자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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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이들은 이들의 발견을 1969년 Journal of Bacteriology 에 논문으로 내고 이 미생물은 Thermus aquaticus 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약칭 T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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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해에는 그들은 Taq유래의 효소인 aldolase 를 정제해서 그 특성을 살펴보았다. 재미있는 것은 미생물 자체의 생육 최적온도는 약 70도이지만, 이 미생물에서 유래된 효소는 약 97도에서도 활성을 유지했다!
처음에 이 미생물을 발견하였을 때는 ‘세상에 이런 일도’ 식의 취급을 받았지만, 높은 온도에서도 활성을 유지하는 효소는 다른 생화학자들에게도 서서히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래서 Thermus aquaticus 유래의 효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한둘씩 늘어갔다.
1976년에는 신시내티 대학의 존 트렐라 (John M Trela) 라는 사람은 이 미생물 유래의 DNA Polymerase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 미생물 유래의 DNA Polymerase 를 추출하여 정제해본 결과 최적 활성 온도가 80도라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분자량은 약 63,000에서 68,000 에 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논문을 하나 내고, 더이상 여기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았다. 조금 늦게 연구를 했더라면 DNA Polymerase를 암호화하는 유전자를 클로닝한다든지 이러한 연구를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아직 유전자 클로닝 등에 대한 것들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던 시기여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이렇게 논문 하나 쓰고 더이상 이 미생물의 DNA 중합효소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십여년 후에 땅을 치고 후회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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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를 안 내고 뭐했습니까 님들아
한편 1980년, 러시아 (당시 소련) 의 과학자들이 역시 비슷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역시 Thermus aquaticus YT-1 유래의 DNA Polymerase를 정제하고 그 활성을 보았으며, 다른 DNA Polymerase와 유사하게 마그네슘 이온이 반응에 필요하고 분자량은 약 62,000 에 효소 활성의 최적온도는 70도임을 확인하였다. 그들 역시 논문 하나 내고 더 이상 연구를 하지 않았다.

극한미생물

한편 Brock이 최초로 이렇게 높은 온도에서도 미생물이 산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 다른 연구자들도 이렇게 높은 온도에서 사는 미생물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를 시도하였다. 특히 바다 속의 해구에서는 Thermus aquaticus 가 생육하는 온도보다 훨씬 높은 온도, 즉 거의 ‘끓는물’ 에서 살 수 있는 고세균 – Archeae 가 발견되었다. 독일의 미생물학자인 Karl Stetter가 발견한 이 미생물이  Pyrococcus furious 이다.이 미생물은 섭씨 70도에서 103도까지 자라며, 생육 최적온도는  ‘끓는물’ 온도인 섭씨 100도이다. 섭씨 70도 이하는 이 녀석들에게 너무 차가운 냉장고 수준의 온도라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

Thermus aquaticus를 시작으로 고온, 극단적인 pH 등 정상적으로 생물이 살기 힘들다고 생각되던 조건에서 잘도 살아남는 미생물들이 발견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이러한 미생물은 그저 ‘세상에 참 별난 일도 있네’ 수준의 호기심거리 정도로만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 미생물 유래의 효소 역시 높은 온도에서 활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이들은 서서히 응용의 용도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가령 이 미생물 유래의 단백질 분해효소인 ‘aquolysin’ 이라는 효소가 역시 80도 이상의 온도에서 최적활성을 나타내고, SDS같은 계면활성제에 저항성을 가진다는 것이 1988년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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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Bacillus thermocatenulatus 라는 박테리아에서는 70도 이상에서도 활성을 나타내는 지방분해효소가 발견되었다. 아니, 단백질 분해효소나 지방분해효소가 높은 온도에서 활성을 나타내는 것이 뭐가 중요하냐고? 빨래의 때의 성분인 단백질이나 지방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가 높은 온도에서 활성을 나타낸다면 더운물 빨래를 할때도 넣을 수 있는 세제용 첨가물로써 유용하겠지? 그리고 여러가지 당의 가공에 있어 사용되는 효소의 경우에도 온도가 높은 상태에서도 효소반응이 유지된다면 더 빠르게 효소반응이 일어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성질을 가진 효소는 꽤 유용하게 사용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극한미생물 유래의 효소가 나름 쓸모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는데, 역시 극한 미생물의 효소가 극적인 역할을 하는 기술이 1980년대 중반에 개발되게 된다. 여기에 설명하기 전에 일단 시계를 다시 뒤로 되돌려 톰 브록과 학부생 허드슨 프리즈가 막 Thermus aquaticus 논문을 출판하던 1960년대 말로 되돌아가보자.

별난 대학원생

한편 1960년대 말, 버클리 대학의 생화학과에는 케리 멀리스 (Kerry Mullis) 라는 이름의 대학원생이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었다. 그가 다니고 있던 랩은 조 닐렌드(Joe Neilands)라는 교수의 랩이었고 주로 연구하는 토픽은 미생물의 철 수송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닐렌드 교수는 거의 랩의 학생들이 뭘 하든 내버려두는 스타일이었던 듯 하고, 멀리스는 그냥 자기 하고 싶은거 아무거나 하면서 60년대말의 대학원 생활을 만끽했다. 생화학과 학생이 우주론에 관련된 논문(?)을 네이처에 개제하는가 하면, 60년대 히피문화의 상징인 LSD를 마음껏 즐기다가 음악 강의를 듣는 등 그 당시의 시대상에 걸맞은 생활이라고 쓰고 막 산다고 읽는 을 하는 젊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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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캐리 멀리스. 사진만 봐서는 멀쩡해 보이는데

그러나 이런 대학원생이라고 쓰고 백수라고 읽는 생활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었다.  지도교수는 결국 멀리스를 졸업시켰으며 -.- 멀리스는 1972년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당연히도 미래에 대한 계획 같은 것이 없었다. 인생 계획이 있다면 막 산다는 말을 듣진 않겠지 학생시절 졸업한 아내가 의대 진학 관계로 캔사스로 이사하자 같이 따라갔다. 거기 의대에서 포닥으로 약 2년 동안 연구를 했다. 그러다가 결혼생활이 깨졌고, 그는 다시 캘리포니아로 되돌아왔다. 딱히 직업이 없어서 빵가게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UCSF의 실험실에서 테크니션처럼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그는 캘리포니아의 Cetus 라는 바이오텍 회사에 부사장으로 있던 친구인 톰 화이트(Tom White)의  DNA 올리고를 합성하는 일자리를 얻어 Cetus에 취업하게 된다. 이때가 1979년이었다.

Cetus

Cetus는 1971년 캘리포니에에서 수립된 거의 최초의 생명공학회사로써,  주된 프로젝트는 당시의 1세대 바이오텍에서 진행되는 것과 같이 인터루킨-2 (IL-2), 인터페론 등의 사이토카인을 재조합 DNA 기술을 이용하여 생산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그 당시 이 회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연구는 해당 유전자를 먼저 확보하는 일이었다. 즉 단백질 서열에서 유추된 DNA 서열에 의거해서 만들어진 올리고를 이용하여 cDNA 라이브러리에서 원하는 유전자를 스크리닝하여 찾아내는 일이 이 회사의 주력 R&D였다. 그래서 멀리스는 회사의 올리고 합성실에서 올리고 합성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Cetus 는 이외에도 여러가지 분야의 연구를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는 유전병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분자진단이었다. 이미 당시에도 몇 종류의 질병, 가령 헤모글로빈 유전자에 대한 돌연변이에 의해서 일어나는 겸상적혈구증 (Sickle Cell Anemia) 의 존재는 알려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 것인가?

물론 1980년대초 당시에도 이론적으로는 재조합 DNA를 클로닝하여 증폭하는 기술과, 1977년 생거의  DNA 시퀀싱 기술이 개발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퀀스를 결정함으로써 개개인의 유전변이를 알아내는 것은 가능했다. 그러나 약 32억 염기서열에 달하는 거대한 휴먼 지놈 안에 들어있는 원하는 조각을 어떻게 찾는가?

그를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1) 지놈을 조각내어 파지 DNA에 연결한 ‘라이브러리’ 를 구축

(2) 이 라이브러리 중에서 원하는 조각이 들어있는 파지를동위원소로 라벨링된 Probe를 이용하여 찾는다.

(3) 이렇게 얻어진 파지에 들어있는 조각을 제한효소를 이용하여 잘게 쪼갠 다음 시퀀스 결정!

출처

말은 쉬어보이지만, 그 당시는 이것 자체만 성공적으로 수행해도 박사학위를 받을 수준의 일, 즉 수년의 시간과 노력이 걸리는 일이었다.  단 한 사람의 유전자에 대해서도 이러한데 개별 환자에 대한 진단과 같은 일은 불가능한 셈이었다. 즉, 지놈 상에 존재하는 특정한 서열 내에 존재하는 변이를 아는 것도 그리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런 것을 비교적 쉽게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멀리스는 옆의 랩의 의뢰로 올리고를 합성해주던 와중에, 해당 랩에서 진행되는 베타 글로빈에 존재하는 돌연변이를 검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최초의 아이디어

멀리스는 1990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게제된 에세이를 통하여 당시 그가 어떤 식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갔는지를 설명한다.

멀리스는 처음에 생거 시퀀싱처럼 우리가 돌연변이를 알아보고 싶은 영역 근처에 대해서 올리고를 만들고 여기에 DNA polymerase와 dNTP, ddNTP 를 넣어 시퀀싱을 하면 안됨?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험을 별로 열심히 안 한 멀리스의 아이디어답게 (…) 이 방법은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든 방법이었다. 즉 약 32억 베이스에 달하는 길고 긴 인간 지놈 DNA에 약 20bp 정도의 올리고와 비슷한 영역은 많이 존재하고, 여기저기에서 붙어서 DNA 중합반응이 일어나면 제대로 된 시그널이 나올리가 없었다.

멀리스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랐다. 만약 지놈 시퀀스 상에서 아래와 같은 G 영역이 G 인지, 아니면 다른 염기인지를 알아보려고 한다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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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DNA 이중나선을 끓여서 떨어뜨리고 양쪽 방향에 해당하는 프라이머를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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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DNA 중합효소와 동위원소로 표지된 ddNTP를 넣는다. dNTP는 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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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만약 원하는 염기서열이 G 라면 ddC 가 프라이머에 들어가고 더이상 중합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동위원소가 프라이머에 DNA 중합효소에 의해서 끼어들어갈 것이며, 이것은 프라이머를 조사해 봄으로써 알 수 있다. 어떤 동위원소가 프라이머에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프라이머 다음 염기가 어떤 염기일지 결정될 것이다. 보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 반대편 가닥에도 프라이머를 만들고, ddG 가 들어가게 되면 의심할 여지가 없이 우리가 알아보려는 서열은 ‘G’ 일 것이다.

그래서 멀리스는 ‘오 나님 좀 똑똑한듯!’ 하고 자신의 아이디어에 만족을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멀리스의 그 회사에서의 직업은 올리고를 합성하는 일인데, 올리고에 종종 반응하지 않은 dNTP 가 들어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dNTP 를 없앨 수 있을 것인가? 만약 dNTP가 올리고에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DNA 중합효소는 중합반응을 진행해 버릴 것이고, 원하는 대로 확인하려는 염기서만 ddNTP가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DNA 올리고를 PAGE 로 정제하면 dNTP와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멀리스는 그런 생각을 못했나보다)

그는 미량의 dNTP를 없애버리기 위해서 그냥 올리고 + 두 쌍의 프라이머 + DNA 중합효소를 넣고 반응을 진행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남아있는 dNTP 보다 올리고의 양이 많다면 어차피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고.

그러던 중,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멀리스의 말에 따르면 그는 이 아이디어를 야밤에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고가면서 떠올렸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Polymerase Chain Reactions

만약 두 개의 프라이머가 지금은 한 염기를 건너서 있지만 어느정도 적당히 떨어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이 상태에서 DNA 중합반응이 일어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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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프라이머의 거리에 상응하는 두 개의 DNA 분자가 생성될 것이다. 여기에 다시 동일한 반응이 일어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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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분자가 4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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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분자가 8개가 되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사이클을 반복할수록 2-4-8-16-32-64로 증가할 것이다. 즉 염기서열을 알고 있는 임의의 DNA 서열은 두 개의 프라이머와 DNA 중합효소를 이용하여 증폭가능하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떠올린 다음날 회사에 가서 도서관을 뒤져보았다. 과연 이런 비슷한 아이디어를 이전에 생각한 사람이 없을까? 이렇게 간단한 아이디어인데? 그러나 실제로 그런 아이디어로 DNA 를 증폭해 낸 사람은 없었다.

그는 이 과정을 시험해보기로 했다.그래서 회사의 다른 분자생물학자들과 이야기를 해 봤다. 그러나!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평소에 그의 회사에서의 평판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상황

그는 그 당시 제넨테크에서 처음 클로닝하여 발표한 인간 신경성장인자(Nerve Growth Factor) 유전자의 400bp 단편을 지노믹 DNA에서 증폭하려고 시도를 했다. 만약 특정한 하나의 엑손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이전처럼 cDNA 라이브러리를 만들고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지노믹 DNA에서 증폭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폭이 되지 않았다! 사실 멀리스는 대학원 때 그리 열심히 연구를 한 사람이 아닌 관계로 실험테크닉이 그리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다. 게다가 콘트롤 실험을 제대로 하지 않는 과학자로써는 매우 안 좋은 버릇도 있었다. 그는 그래서 실험을 프레드 팔루나(Fred Faloona) 라는 테크니션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지노믹 DNA를 가지고 제대로 증폭이 되지 않는 관계로, 그는 그의 아이디어가 진짜로 작동하는지를 보기 위해서 일단 플라스미드에 클로닝된 유전자를 대상으로 약 370bp 의 밴드가 증폭되는지 보기로 했다. 그리고 당시의 사용하던 DNA 중합효소는 일반적인 대장균 유래의 중합효소인 관계로 열을 가해서 DNA 가닥을 풀어주는 과정에서 불활성화된다. 따라서 매 사이클마다 효소를 추가해주어야 했다.

그리하여 약 1984년경 멀리스는 플라스미드에서 원하는 단편을 증폭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실험은 아무런 콘트롤 없이 단 하나의 튜브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제대로 된 콘트롤이 없다고 생각한 Cetus 의 다른 연구원들은 그닥 관심을 두지 않았다.

1984년 가을, Cetus 의 연구원들은 자신들이 연구하는 프로젝트와 그 계획을 발표하는 사내 컨퍼런스를 열었고, 여기에는 노벨상 수상자이자 Cetus 의 자문을 하고 있었던 조슈아 레더버그 (Joshua Lederberg)가 참석하였다. 멀리스도 자신의 결과를 발표하였고 조슈아 레더버그는 이 결과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인다. “만약 제대로 된다면 말이지

지노믹 DNA에서의 증폭과 유전자 검출. 

멀리스를 회사에 취직시킨 톰 화이트는 멀리스의 PCR를 회사에서 진행중에 있던 헤모글로빈 유전자 돌연변이 검사 프로젝트에 응용하기로 한다. 그러나 문제는 멀리스는 그닥 꼼꼼히 실험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또 착실하게 프로젝트에 임하는 성격도 아니었으므로 연구가 잘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대개의 연구자들은 그의 결과를 신용하지 못했다. 게다가 콘트롤 실험을 잘 하지 않은 과학자로써는 매우 안 좋은 버릇도 있었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개시된 지 약 1년이 넘었는데도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는 데이터를 뽑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톰 화이트는 실험을 더 꼼꼼하게 잘 하는 랜달 사이키 (Randall Saiki) 라는 사람에게 멀리스 대신 PCR 관련 실험을 시켰다. 그는 몇 달만에 원하는 데이터를 뽑아내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PCR 을 이용하여 헤모글로빈에 존재해서 겸상적혈구증을 일으키는 돌연변이를 검출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어낸다. 단, 이때의 DNA 증폭 효율은 그닥 좋지 못해서 아가로스 젤에서 밴드를 확인할 수 없어서 동위원소와 써던 블롯을 이용하여 DNA가 증폭된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리고 DNA 중합효소는 여전히 대장균의 중합효소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매 사이클마다 뚜껑을 열고 효소를 넣어주는 반복작업을 수작업으로 해야만 했다. -.-;;

그래서 원래의 계획은 멀리스가 PCR의 이론과 이를 입증하는 결과를 내는 논문과 이를 이용하여 겸상적혈구증을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의 논문 두 개를 동시에 내기로 하였다. 그러나 멀리스는 논문에 필요한 실험을 하는 대신, 회사 컴퓨터에서 프랙탈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래밍 잉여짓을 하면서 놀았다.

그래서 멀리스의 논문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사이키의 응용 논문이 사이언스에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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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폭 산물이 아가로스 젤에서 EtBr로 보이지 않았으므로 동위원소와 써던 블랏을 이용하여 증폭되었다는 것을 표시하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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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증폭된 PCR 산물을 제한효소로 잘라서 지노타이핑을 할 수 있게 된다.

한편 뒤에 투고한 멀리스의 논문은 이미 PCR의 응용 논문이 나왔다는 이유로 사이언스와 네이처에서 모두 리젝되었고 1987년도에 Method of Enzymology 의 이슈에 수록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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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안정성 DNA 중합효소와 PCR 사이클러

이렇게 최초로 등장한 PCR 은 매우 불완전한 것이었다. 즉 사이클마다 연구원이 지키고 앉아있다 대장균의 DNA 중합효소를 1마이크로리터씩 넣어주는 노가다를 해야 했다. 즉 30사이클의 반응을 위해서는 튜브를 열고 30번 효소를 넣어주어야 한다! 한때는 사이클에 맞추어서 DNA 중합효소를 자동으로 넣어주는 기기까지 개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섭씨 95도로 DNA 가닥을 풀어주는 과정에서도 그 활성을 잃지 않는 열에 강한 DNA 중합효소가 있다면? 시약을 추가하지 않아도 한번에 반응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효소는 이전에 발견되었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즉 앞에서 말했듯이  1976년 신시내티 대학의 존 트렐라라는 사람이 이미 Thermus aquaticus 에서DNA 중합효소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상태이다. Cetus 의 연구원들은 이 문헌에 따라 곧바로 Thermus aquaticus 에서 DNA 중합효소를 정제하고, 이를 이용하여 PCR 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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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멋지게 증폭되었다! (A의 9-11). 기존의 E.coli 중합효소로 PCR을 (매 사이클마다 효소를 넣는 노가다를 해 가며) 하는 경우에는 제대로 증폭이 잘 되지 않아서 인간 유전자를 증폭하고자 할때 아가로스 젤에서 밴드를 보는 것은 불가능했고, B에서 보는 것처럼 동위원소를 이용하여 서던 블랏을 통해서만 겨우 원하는 DNA가 증폭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Thermus 의 열 안정성 DNA 중합효소를 이용하니 효소를 더 넣을 필요도 없이 한번에, 그리고 인간 염색체에 있는 DNA를 아가로스 젤에서 단일밴드로 볼 수 있을 수준으로 증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PCR 좀 해 본 사람이라면 ‘당연한 거에 왜 호들갑이냐’ 라고 생각할런지 모르곘지만 이 당시는 이게 당연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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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PCR 산물을 직접 시퀀싱하여 염색체에 있는 염기서열의 변화를 바로 알아볼 수 있게 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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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kb가 넘는 긴 DNA 단편도 증폭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결과를 모아서 그들은 1988년 사이언스에 논문을 출판한다. 이 논문이 출판될 때인 1988년에는 이미 멀리스는 회사를 떠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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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는 온도를 바꾸는 것을 어떻게 자동화할 것인지였다. 아마 처음의 PCR은 연구원이 각각의 온도로 맞추어진 항온수조에 튜브를 옮기며 (…) 실험을 진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 사이클의 반응을 이렇게 진행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를 자동화하기 위하여 Cetus 는 Perkin-Elmer 라는 회사와 합작하여 온도를 바꿀 수 있는 펠티어 소자 (peltier device) 를 이용하여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든다. 이것이 최초의 PCR 기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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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계 써 보신 분 있으려나 모르겠다. 지금 글 쓰는 사람은 이거 써봤다. 요즘 나오는 PCR 기기와 기본적인 원리는 같지만, 요즘 기기는 샘플의 증발을 막기 위해서 위에서 히팅을 하는 히팅 덮개가 있지만 이 기기는 그런게 없다. 그래서 튜브에 샘플의 증발을 막기 위해서 미네럴 오일을 넣어야만 했다. 당시 퍼킨 엘머와 Cetus 는 PCR 기술의 보급을 위해서 이 기기를 미국 내의 대학이나 연구실에 많이 공짜로 뿌렸다고 한다. 그 결과 이 기기는 아직도 중고로 Ebay 등에서 그닥 비싸지 않은 가격에 구할 수 있다.  집에 실험실을 차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 노려볼만 하다!

여튼 PCR은 이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원래 응용용도 처럼 분자진단 등의 용도로 이용되었으나 그후에는 분자생물학 실험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적인 실험 기술이 되었다. 즉 이전에 개발된 DNA 시퀀싱과 DNA 재조합기술과 함께 1세대 유전자 조작 기술의 ‘3종 신기’ 중의 하나가 된 셈이라고 할까. 특히 1990년대 이후에 휴먼 지놈 프로젝트를 비롯한 각종 동식물 및 미생물의 지놈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여러가지 생물의 지놈 시퀀스가 나오는 것과 PCR의 등장은 매우 큰 시너지를 가지게 되었다. 즉 기존에는 특정한 유전자를 얻어서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지루하고 복잡한 라이브러리 스크리닝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이제는 지놈시퀀스가 알려진 유전자라면 지노믹 DNA에서 어떤 서열이라도 증폭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PCR 이전의 분자생물학’ 에서는 특정한 유전자에 대한 클론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플라스미드에 클로닝된 유전자를 타인에게 안 주면 다른 사람은 그 유전자를 분리해 내기 위해서 수년간의 작업을 다시 반복해야만 했었으므로. 그러나 PCR 이후에는 일단 염기서열이 결정되어 있는 유전자라면 지노믹 DNA만 존재한다면 증폭해 낼 수 있다! 결국 PCR의 개발은 분자생물학 실험을 ‘정보학’ 의 범주로 끌어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후 그들은 어찌 되었나. 

캐리 멀리스

멀리스는 특허가 출원된 이후 발명의 댓가로 1만불의 보너스를 회사에서 받았다. 그러나 그는 회사 동료들과 그다지 원만하게 지내지 못했으며, 1986년 회사를 떠나서 다른 회사로 옮기고 얼마 안 있어 프래랜서 컨설턴트 라고 읽고 백수 된다.

Cetus는 그 당시 진행중이던 IL-2 의 FDA 승인이 제대로 나지 않아서 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졌고,  1992년 회사의 PCR 관련 특허와 진단은 Roche 에 3억불에 인수된다. Cetus 에서 PCR을 연구하던 대개의 연구자들은 두둑한 보너스를 받고 Roche 의 진단사업부로 옮겼다. 멀리스? 이미 오래 전에 회사를 떠난지라 그는 금전적으로 얻은 게 없었다. 회사 동료들은 ‘조금만 더 회사에 남아있었으면..’ 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뭐 이미 회사 한참전에 떠났는데 어쩌라고.

그러나 1년 후 그는 스웨덴에서 전화가 와서 상을 받으러 가게 된다. 어찌보면 회사에 남아서 PCR을 상업화하는데 기여한 동료들은 로슈에서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게 되고, 멀리스는 그의 아이디어가 인정되어 N모상을 받게 되었으므로 나름 균형이 맞는 결과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멀리스의 별난 성질은 여전해서, 노벨상 받으러 스웨덴에 가서 바로 수상식날 아침에 호텔방에서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레이저 포인터로 장난하다가 스웨덴 경찰에 구속될뻔 하기도 했다. 아..아재 뭐하세여

그래서 N모상 수상 이후 그는 상금을 받고, 여기에 따른 유명세로  그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연구를 하던 사람이 아니었으니 더욱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PCR에 관련된 강연만 하는 게 아니라 아무말 대잔치를 벌여서 물의를 빚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 기후변화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
  • AIDS가 HIV에 의해서 유발되는 것은 근거가 없다
  • 프레온가스에 의한 오존층 결핍은 근거가 없다.
  • 외계인을 만났다

그만해! 청중의 멘탈은 이미 0이야!

물론 그답게 (..) 특별한 근거를 가지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아무말 대잔치지   그러나 그 넘의 N모상 수상자라는 유명세 때문에 그의 어그로는 매스컴을 탄다는 것이 문제.

결국 그의 PCR이라는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 기술을 낳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는 이 점에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라는 측면에 있어서 그는 이전에도 그렇고, N모상 수상 이후에도 과히 존경받을 만한 과학자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뭐 어쨌든 상만 타면 그만이지! 과학사를 통해 최고의 ‘One-hit Wonder’ 의 주인공이라면 바로 캐리 멀리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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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스옹의 근황. 니넨 실험실에서 실험이나 해라. 난 서핑이나 하련다

톰 브록과 허드슨 프리즈

톰 브록은 그 후에 위스콘신 대학으로 옮겨서 연구를 계속하다가 은퇴하여 명예교수가 되었다. 극한미생물이라는 연구 분야를 개척한 학자로써 학계에서 두루 존경받고 있으며 그가 1970년에 처음 저술한’Biology of Microorganisms’ 이라는 교과서는 14번째 개정판이 출판되었고, 이제 집필은 후배 학자들이 하고 있지만 아직도 ‘Brock Biology of Microorganism’ 이라는 명칭으로 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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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이 Thermus aquaticus를 발견한 학부생 허드슨 프리즈는 논문을 낸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그리고 당생물학 분야의 저명한 학자가 되어 현재는 샌포드 번햄 연구소의 교수로 재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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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슨 프리즈

그들은 Thermus asquaticus 를 발견하여 극한미생물학의 시초가 되었고, 그리고 나중에 PCR 의 발견에 응용된 공로로 2013년, 둘이 공동으로 ‘Golden Goose Award‘ 라는 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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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황금거위상 (..)의 의의는 애초에는 응용 가능성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수행된 순수한 기초 연구 결과, 특히 연방정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고 수행된 연구 결과가 나중에 큰 파급효과를 발생하여 경제적/사회적으로 큰 이익이 주는 사례를 발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외에 GFP 의 발견에 관여한 사람들 역시 이 상을 수상한 바 있다.

PCR

한편 PCR은 분자생물학의 표준실험법으로 수많은 곳에 응용된다. 특정한 유전자를 증폭하여 유전형을 알아보는 그런 것부터, 네안데르탈인의 뼈에서 추출한 DNA에서 증폭한 서열로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관련성을 알아본다든지, 신종플루, HIV, MERS, 지카바이러스, 장염비브리오균, 콜레라균에 이르기까지 온갖 병원균을 검출하고 종류를 확인한다든지, 변사체의 신원을 알아본다든지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곳에 사용된다. Transparent Market Research 라는 곳의 추산에 따르면 전세계 PCR 시장의 규모는 2013년 기준 61억불에 달하며, 2020년에는 약 96억불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와는 별도로 PCR 이 기반 기술로 작동하는 차세대시퀀싱 시장은 조만간 200억불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PCR은 ‘현대 문명’ 을 구성하는 하나의 핵심적인 요소가 된 셈이다.

그리고 이것의 기반이 된 발견은 끓는 온천물 안에는 어떤 미생물이 살고 있을 것인가와 같은 어떻게 보면 엉뚱한 의문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끝마치며 : 돈이 진짜로 되는 기술은 어떻게 유래되고 개발되는가

여기서 우리는 불과 30여년 전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기술이 어떻게 개발되는지의 한 예를 볼 수가 있다. 이 발견의 근원이 된 DNA 복제효소라든지, 온천에서 사는 미생물과 같은 연구들은 연구 시작 당시에는 그 연구가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이, 그저 과학적인 호기심을 풀기 위한 순수한 ‘연구를 위한 연구’ 로써 진행되었을 따름이다. 아마 Thermus aquaticus 나 DNA 복제효소를 연구한 사람들이 당시에 이 연구가 나중에 큰 돈이 되는 연구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면 당신 좀 정신이 나간게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아무 짝에도 돈이 안 될 것 같은 연구’ 들이 나중에 엄청난 시장성이 있는 기술의 근원이 되었다.  물론 여기서 보여준 PCR의 예에서 보듯이 이러한 기초연구의 발견 자체가 시장성이 있는 기술로 발전하는데에는 여러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캐리 멀리스와 같이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Cetus의 동료 연구자들처럼 이러한 것을 실현가능하고 재현성 있는 형태로 구체화하여 발전시키는 것 역시 중요하며, 결국 이러한 과정은 상업과 과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쩌면 한국 같은 곳에서 수행되어 온 ‘연구’ 와 ‘개발’ 은 아이디어 정립단계 자체보다는 이미 어느정도 아이디어가 정립되어 있고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어 있는 것을 좀 더 ‘개선’ 하거나 ‘효율을 높이는’ 단계에 국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정한 문제 (캐리 멀리스가 직면했던 PCR 증폭의 문제)를 해결하여 기존에 없는 솔루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역시 기존에 없는 발견이 필요하며, 이러한 것은 상당부분 원래 의도하지 않은 다른 분야의 기초연구에서 기원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개발의 원재료’ 가 풍부한 토양에서는 응용 연구 역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으며, ‘원재료’ 를 풍부하게 접하기 힘든 환경에서 제대로 된 응용 연구 – 즉 사람들이 좋아하는 ‘돈이 되는 연구’, 혹은 ‘독자적인 원천기술’ – 가 수행되기는 쉽지 않다.

최근 매스컴 등에서 ‘한국은 이제 연구개발비에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왜 그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느냐’ 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정답을 나는 알고 있다. “‘한국은 돈이 되는 것 처럼 보이는 연구’ 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정작 새로운 원천기술을 만들어 내기 힘들다” 라고 말해주겠다.

즉, 지금 보기에’ 돈이 될 것처럼 보이는 연구’라는 것은 나만 아는 게 아니라 세계의 모든 해당 분야 연구자라면 다 아는 것이고, 결국은 기존에 진행되는 연구에 숟가락 하나 올리는 수준의 추격연구밖에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특허를 취득하든 지적소유권을 확보하건 어차피 이는 근원적인 기술의 확보는 되기 힘들다. 가령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처음 만드는 것과 스마트폰의 버튼을 둥글게 나오던 것을 네모지게 만든다 정도로 비교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것은 실제로 ‘물건’ 을 만들고 효율을 높여야 하는 산업계에서는 중요한 문제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품 개발 차원의 연구가 아닌  학계의 연구라면 기존에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한 ‘새로운 자연에 대한 이해’ 가 없이 세상에 없는 무언가, 그리고 세상을 바꿀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까? 물론 아주 운이 좋다면 남이 발견해 놓은 것들을 조합하여 남들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응용분야를 창출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것은 비슷하며, 요즘과 같이 정보의 유통이 빠른 시대에서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자는 언제라도 이것을 응용하는 응용연구자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물론 기초연구의 가치를 이러한 응용 연구의 토양만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비록 기초연구를 통해 창출된 지식 자체는 당장 응용될 수 있는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동안 인류가 쌓아올린 수많은 지식들과 견고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우리가 현재 자연을 바라보는 지식의 기반이 된다. 이러한 견고한 기반 위에서 국가와 사회가 바라는 국부 창출이건, 경제발전을 위한 기술이든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과연 몇백년, 몇천년 뒤의 역사가는 동아시아에 위치한 이 블로그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거주했던 어떤 동아시아 반도의 한 국가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이 시대를 대표하는 과학문명, 산업문명의 산물 중에서 진정으로 이 나라에서 기인하여 역사에 남을 수 있는게 과연 무엇이 있을까?  지금 이대로라면 그 시대 타국에서 주로 유래한 과학문명에 의존하여 무임승차를 한 이름없는 변방국가 정도로 평가받지 않을까 하는 게 솔직한 걱정이다. 그런 후세의 평가, 아니 지금 현재도 그렇게 보고 있을수 있는 주변국의 시선이 싫다면…알아서 할 일이다.

 

 

2 thoughts on “돈 되는 기술의 원천을 찾아서 : PCR 이야기

  1. 언제나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이 많은 정보들을 다 수집하시고 글로 엮으실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나가는 무임승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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